2016년 12월호

특집 | 崔&朴 슈퍼게이트

“朴, 숨만 쉬며 연명하는 뇌사(腦死)정부 만들었다”

최순실 폭탄 맞은 청와대·정부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송국건 |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입력2016-11-18 10:4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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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순실 쇼크가 강타했고 박 대통령은 리더십에 치명상을 입었다. 하야 요구가 빗발치는 가운데 그는 내치를 책임총리에게 넘기겠다는 봉합책을 제시했다. 나라를 지탱해나갈 책무가 있는 청와대와 정부의 현주소는?
    최순실 사태는 해외에도 소상히 알려졌다. “언뜻 ‘무당’이 연상되는 대통령의 여자친구가 대를 이어 대통령을 조종하면서 거액을 긁어모으려 했다. 분노한 한국인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하야를 외치고 대통령은 어쩔 줄 몰라 한다.” 대략 이런 내용이다.

    1호 가상국가 ‘BITNATION’의 수전 템플호프 회장은 최근 유엔인권포럼과의 인터넷 대담에서 “한국 정부는 숨만 쉬며 연명하는 뇌사(腦死)정부로 들어선 것 같다”고 말했다.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힘을 잃었고 선동가들의 목소리에 휘둘리게 됐다. 아무 결정도 안 할 것이고 아무 결정도 못 한다. 내각 총사퇴 같은 수를 써도 새 내각은 뇌사 상태의 정부를 그저 숨만 쉬게 하도록 해주는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다. 국가 수장(首長)이 식물인간이 된 나라에선 엄청난 판의 흔들림이 있게 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가까운 주변 사람들은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을 전혀 몰랐다고 말한다. 모두들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한다. ‘정보통’ ‘빅 마우스’로 통하는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도 그간 ‘최순실’을 언급한 적이 없다. 박 위원장은 ‘만사올통(모든 일은 박 대통령의 올케인 서향희로 통한다)’, ‘만만회(박근혜 정권의 실세는 박지만, 이재만, 정윤회다)’ 같은 말을 했지만 정작 최강 비선 실세 최순실은 잡아내지 못한 것이다.





    “두 여성과만 어울려”

    그러나 경고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최순실이 프리패스를 받아 청와대를 드나들고 온갖 대기업을 들쑤시는데 흔적이 남지 않을 리 없다. 지난해 박관천 전 경정은 ‘정윤회 문건’ 파문과 관련해 “우리나라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했다. 경제지 귀퉁이에도 미르재단 이야기가 실렸다.  

    기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두어 번 들은 적이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사정기관 고위직을 지낸 A씨는 “박 대통령이 일과 시간이 끝나면 두 여성과만 관저에서 어울리거나 전화를 주고받는다더라. 한 사람은 최순실이 분명한데, 다른 한 사람은 누군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금 나타나는 정황으로 보면 최순실 씨의 언니인 최순득 씨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가을 무렵 이명박 정부 청와대 고위 참모를 지낸 B씨는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청와대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귀띔이라며 다음과 같은 말했다.

    “다들 걱정을 태산같이 하더라.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수시로 청와대로 들어와서 머물다 간다고 한다. 큰 사달이 날지도 모르겠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확인된 11월 3일 박 대통령은 이원종 비서실장과 김재원 정무수석을 사퇴시키고 비서실을 ‘한광옥 체제’로 개편했다. 지금의 청와대 참모진은 비상시국을 헤쳐 나가기엔 한계가 많다.



    툭 던지고 나왔는데…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한광옥 실장은 경륜이 풍부하고 합리적이고 게다가 호남 출신이지만 상황을 장악하기엔 힘이 달린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과 감정의 공감대가 약하다는 것이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캠프에서 활동했고 그 공로로 대통령 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지만 박 대통령이나 친(親)박근혜계와는 교감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 난세에 한광옥만한 인물을 구하기도 힘들다”는 이야기도 많다. 박 대통령은 11월 8일 국회를 전격 방문해 정세균 의장을 만났다. 정 의장 측에선 만나기 싫은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냥 찾아갔다. 이 깜짝 이벤트는 한 실장이 기획한 것으로 알려진다. 13분 회동에서 박 대통령은 “국회가 국무총리를 추천해주면 수용하겠다”고 툭 던지고 나왔다.

    박지원 위원장은 수(手)를 읽었는지 이를 “덫”에 비유했다. 책임총리, 내치총리, 내·외치총리, 거국중립내각, 2선 후퇴, 하야, 탄핵…. 박 대통령이 김병준 카드를 거두고 국회 추천 총리 수용 카드를 던지자 경우의 수가 늘어났다. 의원들과 헌법학자의 해석도 제각각. ‘노답’인 데다 야권의 단일대오는 흐트러질 조짐이 나타났다.

    11월 14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청와대에 양자 영수회담을 불쑥 제안하자 한광옥 실장은 ‘무조건 콜’ 사인을 줬다. 저쪽에서 똥볼 찬 것을 직감한 때문이다. 청와대가 ‘노타임’으로 수락한 지 반나절 뒤 추 대표가 제안을 철회했다. “이게 나라냐”는 비판이 이젠 추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에 날아들었다.



    박 대통령의 범죄혐의가 최순실 공소장 같은 데에 적시돼 국민에게 공표되는 건 대통령에겐 좋은 일이 아니다. 최재경 신임 청와대 민정수석의 임무는 이 문제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현 청와대의 맨파워가 세다고 할 순 없다. 국회가 청와대에 대해 ‘슈퍼 갑(甲)’인 상황이므로 청와대 정무수석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방송인 출신 허원제 정무수석은 18대 의원을 지냈지만 다선의 노회한 여야 지도자들을 제대로 상대해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간 박 대통령은 정무수석의 역할에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외교관 출신(박준우)을 정무수석으로 기용하기도 했다.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정무수석을 하는 11개월(2014년 6월~2015년 5월) 동안 단 한 차례도 대통령과 독대하지 않았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공식 참모 라인에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보다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비롯한 새로운 비선에 의존한다는 소문이 돈다. 여권 고위 관계자 C씨는 “한광옥 실장이나 허원제 수석은 여당 친박계 중진들과의 연락책 역할 정도만 하는 것 같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문고리 권력 3인방(정호성, 안봉근, 이재만 전 비서관)의 빈자리를 김기춘 전 실장이 혼자 메우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선 실세 때문에 이렇게 데었는데 또 공식 직함 없는 비선에 의존할까’ 하는 의문도 나온다.



    “이 또한 지나가리”

    만에 하나 김 전 실장의 도움을 어느 정도 받더라도 지금은 박 대통령이 결국 직접 선택해야 하는 상황으로 비쳐진다. 퇴진 위기에 몰린 박 대통령 측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다음은 청와대와 가까운 여권 인사의 말이다.

    “올여름부터 문고리 3인방 중 한 사람을 만나기 어려워졌다. 극도로 몸조심을 하더라. 최순실 쪽 정보가 뭔가 외부로, 언론 같은 데로 샜다는 걸 감지한 것이다. 최순실 사태가 터지고 보니 박 대통령 주변 인사들이 허탈해한다. ‘비선의 비선’ 즉, ‘최순실 최측근’의 면면을 보고서다. ‘아니 우리나라 권력서열 1위라는 사람이 이런 후진 선수들과 국정을 논하고 일을 기획해왔단 말이냐!’ 다들 망연자실해한다.

    최순실이 지적 수준이나, 교양 수준이나, 만나는 사람의 수준에서 어느 정도 기본은 될 줄 알았는데, 완전 배신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원망은 박 대통령의 사람 보는 안목에 대한 불신으로도 이어진다.

    그러나 박 대통령 본인은 평정심을 잃지 않은 것 같다. 두 번째 대국민 사과 때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지만 이내 “잠은 보약” 비슷한 말을 하며 해맑게 지낸다. 박 대통령은 어떤 굳은 신념을 갖고 있는 듯하다. ‘아버지가 만든 나의 나라’ ‘나는 문제없어’ ‘어떠한 역경도 이겨왔어’ 하는.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은 그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모른다.”

    이런 운명론적 긍정의 힘이 그를 대통령으로 밀어 올렸는지 모른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아마 박 대통령은 다윗 왕의 반지 속에 새겨진 말 ‘이 또한 지나가리’를 떠올리고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건별로 분리해서 볼 것 같다. 어느 것 하나 그리 죽을죄라 여기지 않을 것 같다. 아버지 시대에 비춰봐도 죽을죄가 아니고 역대 대통령의 측근비리와 견주어봐도 대역죄가 아니고….”



    “대통령 연설문, 前 정권 때도…”

    몇몇 관계자는 “지난 정권에서도 대통령이 연설하기 전 청와대 참모가 연설문을 민간에 보내 내용을 검토하게 하는 일이 있었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최순실의 ‘빨간 펜 첨삭’은 부적절한 행위는 맞지만 하야나 퇴진 감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8월 21일 이석수 특별감찰관에 의해 최순실 게이트가 수면으로 떠오를 기미를 보일 때 박 대통령은 청와대 관계자의 입을 빌려 “부패한 기득권 세력과 좌파세력이 식물 정부로 만들려는 국기문란 행위”라며 저항선을 쳤다. 이것이 박 대통령의 본심일지 모른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보수 성향 시민은 시간이 지나면 평상심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는 것 같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보수 세력이 진보 진영을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런 맥락에서 박 대통령은 외교·국군통수권을 야권이 추천하는 총리에게 내주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른 한 여권 인사는 “100만 관료조직에 의해 국가는 일상적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박 대통령은 지금 ‘내가 곧 정부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본인이 하야·탄핵 위기에서만 벗어나면 정부는 정상 궤도에 오를 것이라고 여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박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지금의 난국이 아니라 퇴임 후의 기소 문제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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