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호

특집 | 이제는 대선이다 - 문재인 대세론의 함정

2002년 文-유병언 소송 판결문, 2017년 美 세월호 재산 환수 근거

세월호 참사 12년 전 文, 유병언 채권회수 책임자였다

  • 배수강 기자 | bsk@donga.com

    입력2017-03-21 15:5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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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文, 신세계종금 파산관재인으로 유병언 소송
    • 대여금 승소 후 채권 회수 못하고 청와대行
    • 세월호 이후 재산 1000억 발견…“그땐 뭐했나”
    • 2002년 판결문, 美 법원 제출해 소송 중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결정이 난 3월 10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진도 팽목항 세월호 분양소를 찾았다. 지난 대선(大選)에서 박 전 대통령과 맞붙은 ‘정치적 라이벌’이자,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그가 탄핵 심판일에 던진 ‘정치적 메시지’였다. 이날 헌재가 대통령 탄핵사유로는 인용하지 않았지만, 세월호 참사는 재난 대응과 사후수습, 대통령 당일 행적이 논란이 되면서 박근혜 정부의 최대 ‘실정(失政)의 상징’이다. 따라서 그의 팽목항 방문은 비극의 현장에서 희생자 유가족의 아픔을 치유하는 동시에 박근혜 정부의 실정을 강조하는 이중적 메시지로 해석됐다.

    세월호 사건은 그 비극적 참상만큼 우리 사회에 던진 파장이 컸다. 해양경찰청이 해체되는 등 정부조직이 바뀌었고, 우리 사회 곳곳에 쌓인 부정부패와 적폐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일었다. 검찰은 특별수사팀을 꾸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의 재산 추적에 나섰고, 장남 대균 씨 등 30여 명을 구속했다. 재산환수 소송은 지금도 미국에서 진행 중이다.

    ‘신동아’ 취재 결과, 미국에서 진행 중인 유 전 회장 일가의 재산 환수 소송에는 2002년 문 전 대표가 유 전 회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대여금 반환소송 판결문이 집행권원(집행력이 부여된 공정증서)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원고 문재인 vs 피고 유병언

    신동아가 입수한 부산지법 판결문과 집행문, 자산양도계약서 등에 따르면, 문 전 대표와 유 전 회장은 2002년 법정에서 원고와 피고로 만났다. 2000년 7월 신세계종합금융(신세계종금) 파산관재인으로 선임된 문 전 대표는 2002년 1월 18일 유병언 등 5명과 (주)세모를 상대로 대여금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파산관재인은 채권을 회수해 채권자들에게 나누어주는 역할을 하는, 파산한 회사를 관리하는 부실회사 대표로 보면 된다.  



    앞서 (주)세모는 1995년 11월 14일 유병언 등 5명의 연대보증인을 세워 신세계종금과 거래한도액 45억 원의 어음거래약정을 맺었고, 1997년 5월 29일 약속어음(담보)을 발행해 45억 원을 대출받았지만, 만기(1998년 2월 15일)가 지나도 갚지 않자 문재인 파산관재인과 예금보험공사(예보)가 대여금 반환 소송을 낸 것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당시 유병언 등 피고인들은 7693만 원만 갚았을 뿐 원금 약 44억3000만 원과 연체이자 12억590만 원 등 56억2897만 원을 갚지 않았다. 1997년 (주)세모 부도로 신세계종금 등 5곳의 채권 금융회사가 파산했고, 2200억 원의 돈을 떼였다.

    부산지법 재판부는 2002년 10월 8일 “피고들은 연대해서 문재인 파산관재인과 예보에 원금과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하면서 “원고들이 가집행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유 전 회장 등의 재산에 대해 즉시 강제집행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런데 채권회수 작업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2004년 5월 신세계종금 파산관재인과 예보 자회사인 정리금융공사(부실자산의 신속한 정리를 위해 설립된 예보 자회사, KR&C의 전신) 간 체결된 자산양도계약서에는 40억 중 38억4000여만 원의 미회수 대출금을 공사에 양도한 것이다. 계약서에 나타난 양도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정재성 변호사. 2003년 1월 문 전 대표가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에 임명되면서 파산관재인에 선임됐다.



    유병언 140억 빚 탕감

    어쨌든 2002~2004년 사이 찾아내지 못한 유 전 회장 재산은 세월호 참사 이후 국내 840억 원, 해외 100억 원 규모(김주현 예보 사장의 2014년 10월 22일 국회 국정감사 발언)로 알려지면서 문재인·정재성 파산관재인과 예보가 재산 조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국 현지 언론들도 “유 전 회장은 이미 1989년 4월 세모USA를 설립해 해외 투자에 나섰고, 1990년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670만 달러 상당의 리조트를 매입하는 등 많은 부동산을 보유했는데 이들 해외 재산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않았다”며 부실 재산조사 의혹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 민주당 측은 “문재인 변호사는 공익적 차원에서 파산관재인을 맡은 것이다. 실제 업무는 예금보험공사 직원들이 나와서 다 했고, 변호사들은 적은 보수로 의무적으로 이런 일을 했다”고 해명한 바 있다. 파산관재인을 지낸 A변호사의 설명이다.

    “‘공익적 차원’이라고 해서 ‘자원봉사’하는 건 아니다. 파산관재인은 정해진 보수를 받는 데다, 관련 채권·채무 소송을 자신이 속한 법무법인이 수임하는 경우가 많아 변호사로선 나쁘지 않은 감투다. 물론 예보 직원들이 실무를 담당하지만, 관재인 임무는 재판에 승소한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채권 확보 조치를 해 채권단의 돈을 돌려주는 거다. 이 점을  감안하면 문 전 대표와 예보는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이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니까 부랴부랴 유병언 일가를 조사해 1000억 원에 이르는 재산을 발견하지 않았나. 2002년 재판 후 강력한 의지를 갖고 조사했으면 유병언의 재기를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말처럼 “돈이 없다”고 버티던 유 전 회장은 이후 2010년 1월 예보로부터 140억 원의 채무를 탕감받았다. 예보는 숨겨놓은 재산을 확인하지 못한 채, 유 전 회장이 6억5000만 원을 변제하겠다고 제안하자 채무조정을 통해 이를 승인한 것이다.

    다음은 예보 관계자와의 일문일답.

    ▼ 유 전 회장의 채무탕감은 어떻게 이뤄졌나.

    “2006~2009년 사이 예금, 주식, 부동산, 골프회원권 등 모두 7회 재산조사를 해 1억9000만 원을 찾아냈다. 예보법에 따라 정상적 채무변제가 불가능한 채무자는 발견된 재산을 근거로 채무조정을 한다. 6억5000만 원을 받으면서 동시에 ‘숨겨둔 재산이 발견되면 조정을 무효화한다’는 각서도 받았다.”



    예보 사장 “조사 미진했다”

    ▼ 세월호 사건 이후 은닉 재산이 발견됐다.

    “세월호 이후 조사에서 재산이 발견돼 각서는 무효화됐다. 따라서 2002년 판결문을 근거로 자녀들 재산에 대해 환수 작업을 시작한 거고.”

    ▼ 2002년 승소 후 채권회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유 전 회장 일가는 부동산을 매도하기도 했는데.

    “그러한 지적은 있을 수 있다. 다만 2002년 승소했지만 우리가 계좌추적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작심하고 숨겨놓은 재산을 찾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유 전 회장의 자녀인) 상나 씨의 미국 콘도도 우리가 발견하기 전 매각해 조치할 수 없었다.”

    한편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140억을 탕감해줬다’는 비판에 대해 김주현 예보 사장은 2014년 국정감사장에서 “유 전 회장이 수감생활을 하고 있어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보고 부실책임자로 지정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조사가) 미진했다”고 답한 바 있다 .

    현재 예보는 2002년 ‘승소 판결문’을 미국 법원에 제출해 유병언의 상속재산을 3분의 1씩 승계한 자녀 유상나, 유혁기, 유섬나 씨 재산 환수에 나섰다. 부인 권윤자 씨와 장남 대균 씨는 법원으로부터 상속포기를 인정받아 제외됐다.

    신동아가 입수한 ‘유병언 미국재산 환수재판 관련 자료’에 따르면, 2014년 7월 유병언 일가의 재산조사 결과 혁기 씨의 뉴욕 소재 저택과 콘도(회수가능 금액 106만3100달러로 추정), 캘리포니아 소재 저택(〃 30만8500달러 추정)에 대해 소송을 진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나 씨 소유의 뉴욕 소재 콘도는 이미 매도 처분됐고, 혁기 씨 부부 소유 뉴욕 소재 부동산 역시 회수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2002년 승소 후 적극적인 재산 추적이 아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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