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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작성한 한국 정치지도자들의 비밀 파일

  • 이흥환·정광호 미국 KISON 연구위원

미국이 작성한 한국 정치지도자들의 비밀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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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12월28일)

1970년 12월 주일 대사에서 신임 중앙정보부장으로 자리를 옮기자마자 이후락은 4개월 후에 있을 71년 4월의 7대 대통령 선거라는 정치적 대과제를 맡아 또 한번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국무부의 정보조사국이 70년 12월28일 작성한 비밀 보고서 ‘정보 노트(Intelligence Note)’에는 신임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에 대한 평과 함께 그의 정치적 역할을 분석한 보고가 담겨 있다.

‘업무 능력은 뛰어나지만 각종 스캔들로 얼룩진 비도덕적 인물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후락이 주일 대사로 11개월간 일본에 체류하다 김계원 중앙정보부장 자리를 이어받아 한국으로 돌아왔음. 김계원 전 중앙정보부장은 박 대통령의 대선 상대인 야당 후보 지명에 대한 정지 작업을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누가 야당의 대선 후보가 될 것인지조차 예견하지 못했음.

이후락의 업무 수행 능력은 따라갈 자가 없으며 대통령에게 맞서 고언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음. 부패에 연루되어 한때 일본에 보내지긴 했으나 그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임은 여전히 두텁고, 전투를 방불케 할 내년 봄 선거에 대비해 이미 갑옷을 입고 무장을 끝낸 박 대통령이 내년 선거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적임자로 이후락을 지목해 중앙정보부장에 임명한 것으로 평가됨.’


‘박정희, 선거전에 대비해 무장하다’라는 제목이 붙은 이 비밀 보고서 서두에는, ‘박 대통령이 71년 봄에 치열하게 전개될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후락을 중앙정보부의 책임자로 임명해 측근 진영(inner circle)에 불러들였으며, 김종필도 박 대통령 팀에 합류시켜 정치 일선에서 활동시키려 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어 이 보고서는 ‘이와 동시에 박 대통령은 금년 초 섹스-살인 스캔들(정인숙 사건: 역주)에 이름이 연루된 정일권 국무총리를 교체하고 청와대 참모진을 새로 임명해 행정부의 이미지 쇄신을 꾀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70년 12월26일, 미 대사관이 국무부에 전송한 비밀 전문은 정일권 전 국무총리(63년부터 70년 12월까지 국무총리 역임: 역주)가 미 대사관 요원을 만나 민주공화당의 임박한 당직 개편에 대해 나눈 대화를 싣고 있다. 정일권은 자신이 김종필과 함께 당 부총재로 임명될 것 같다고 전하면서, 김종필은 당 의장 자리를 원했는데 부총재가 될 것 같아 불만족스러워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정일권이 대사관 요원에게 전한 정보 가운데 특기할 만한 부분은 당시 주일 대사로 도쿄에 나가 있던 이후락의 복귀에 대한 내용이다.

‘이번 당정 개편의 ‘큰 이변’은 이후락 임명인데, ‘대중 이미지’가 큰 문제다. 박 대통령은 일찌감치 이 문제가 쉽지 않음을 느끼고 있었다. 이후락을 도쿄에 그대로 두고 싶어했으며, 본국으로 돌아오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대통령의 생각이 바뀌었다. (아마도 이후락이 자신의 거취 문제를 항의하기 위해 12월9일부터 12일까지 서울을 방문했을 때인 것 같다.) 박 대통령은 이후락의 대중적인 이미지가 나쁘긴 하지만 중앙정보부장으로서의 그의 재능이 필요하다고 결정했다.’

[ 잠재적 지도자 신상명세 보고서 ]

(PLBRP)


미 국무부의 정보력은 미 국방정보국(DIA) 및 중앙정보국(CIA)과 더불어 타 정보기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해외 공관을 통해 해당국 유력 인사들의 인사 자료를 수집 분석하고 비밀리에 관리하는 ‘잠재 지도자 신상명세 보고 프로그램(PLBRP, Potential Leader Biographic Reporting Program)’도 국무부가 가동하는 비밀 정보의 파이프라인 가운데 하나다.

국내 정치뿐만 아니라 남북 관계를 포함해 국제 정세의 격변기였던 1970년대 초, 미 국무부는 한국 각계의 유력 인사들을 상대로 PLBRP 리스트를 비밀리에 작성하고 관리했다. 1973년도 국무부의 PLBRP 리스트에는 정계 언론계 학계 및 행정부와 군부 인사 등 84명의 지도자급 인물들이 기재되어 있는데, 군부에서는 육군 공수단의 전두환 준장과 김복동 준장의 이름이 올라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비밀 전문에 따르면, 미 국무부의 이 리스트는 1년 4회 주기로 수정 보완 작업을 거치게 되어 있다. 일종의 개정판인 셈인데, 가장 최근에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 인물들에 대한 정보를 보완하는 기능을 한다. 주한 미 대사관이 차기 작업에 들어가기 전 리스트를 먼저 국무부에 보고하는 것이 원칙이되, 국무부가 주한 미 대사관에 특정 조사 대상자의 리스트를 하달하기도 한다.

1971년의 경우, 국무부가 주한 미 대사관에 하달한 비밀 전문을 보면, 대사관에서 119명의 리스트 가운데 22명에 대한 정보와 10명의 사진을 국무부에 보낸 것으로 되어 있다. 다음은 71년 1월26일 국무부가 초안을 작성해 2월10일 주한 미 대사관에 보낸 비밀 전문 가운데 당시 김대중 신민당 대통령 후보에 대한 내용의 일부분이다.

‘알랜 크로스(주한 미 대사관)는 김대중에 대한 아주 훌륭한 신상 보고서(1970년 12월17일 A-506)를 제출했다. 그의 성품, 경력, 개인 이력과 정치관 등 자세한 사항이 담겨 있다. 크로스와 윌리엄 킹스베리, 리처드 피터스 등은 대화 비망록을 통해 김씨에 대한 통찰력 있는 관찰기를 추가로 보고했다.’

대사관이 수행한 PLBRP 작업에 대한 국무부의 평가서이기도 한 이 2월10일자 비밀 전문에는 또한 대사관이 가동시키는 ‘국별 팀(Country Team)’ 멤버들이 이후락 신임 중앙정보부장, 백두진 신임 국무총리 등 행정부나 입법부에서 새로 인사 발령을 받은 인사들에 대해 별도의 개인 정보를 보고한 것에 대해서도 평가하고 있다.

이 PLBRP 리스트 작성은 작업 효율성을 위해 FS-405라 불리는 국무부의 ‘신상기록 양식’을 따르도록 되어 있으며, 별도로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는 신상 정보는 따로 초안을 첨부하게끔 되어 있다. 71년도 3차 리스트의 경우 유진산 장덕진 백선엽 이낙선 씨 등의 개인 신상 정보가 별첨으로 처리됐다. 신상 정보를 작성할 때는 우선 순위에 원칙이 있다. 즉 특정인의 최근 활동 및 태도, 조직 내에서 잘 어울리는 사람의 명단 등을 최우선으로 보고하게 되어 있으며, 국무부가 발행한 ‘신상 기록 지침(Biographic Handbook)’에 따라 지역사회에서 취득한 특정인에 대한 개인 정보도 포함시키도록 규정하고 있다.

PLBRP와 관련된 또 하나의 1972년도 평가서(1972년 11월6일 A-10909)에는 ‘한국 내 잠재 지도자들의 새로운 목표 명단(a new target list)이 아직 서울에서 제출되지 않았다’는 표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매 주기 혹은 매년 새로운 지도자급 인물을 탐지해 보고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리스트 작성에는 일정한 원칙이 있다. 대사관의 풍부하고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마련된 일종의 ‘비공식적인 경험 원칙’이다. 내각에 들어갔거나 이와 유사한 지위에 있는 인사들은 ‘잠재적 지도자’로 분류하지 않는다. 이미 정치적 주요 인사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연령은 잠재적인 지도자 기준에서 무시된다. 중년이거나 그 이상이라도 여전히 ‘잠재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무부가 마련해 대사관에 하달한 기준에 따르면, 신민당의 유진산 당수같이 당 최고위직에 있는 정치인의 경우에는 이 리스트에서 제외시키도록 되어 있다. 특히 야당의 경우, 전국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하지만 당 내에서 상당한 파워를 행사하는 인물은 리스트에 포함시킨다. 군부 인사의 경우, 소장급 이상은 역시 리스트에서 제외한다. 이미 정치적인 영향력이 상당한 인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단, 군에서 전역을 했으나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위치에 다시 복귀할 것으로 보이는 인사는 리스트에 포함시킨다.

1973년 3월30일자로 국무부가 서울의 주한 미 대사관에 보낸 잠재적 지도자 리스트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정치인: 민병기, 장기영, 한병기, 김영도, 김용태, 길전식, 박준규, 이해원, 이병희, 이범준(여, 전 이화여대 정치학과 교수), 소영희(여, 전 경희대 신방과 부교수), 고흥문, 이철승, 김영삼, 엄영달, 조윤형, 김대중, 이중재, 김수한

정부 관리: 노신영, 장상문, 지성구(외무부 아시아국장), 박경원, 조동원, 함병춘, 김정렴, 최광수, 박종규, 홍성철, 김성진, 정소영(대통령 경제담당 비서관), 김만재(KDI 회장), 이재술(경제기획원 부원장), 박필수, 김원기(한국개발은행장), 김용환, 김동수, 김형기, 황병태, 이선기, 한성준(한국과학기술원장), 이건개, 강인덕, 이규현(문공부 차관)

언론계: 박태영(코리아타임스 칼럼니스트), 심범식(서울신문 사장), 서인석(코리아헤럴드 사장), 박권상(동아일보 편집국장), 남재희(서울신문 편집국장), 신상초(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상만(동아일보 사장), 진철수(동아일보 편집 부국장)

학계: 한배호(고려대 아시아연구센터 정치학과 교수), 한기천(대통령 경제 자문,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권두영(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김영원(서강대 학장), 이영희(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김옥길(이화여대 총장), 이한빈

군부: 서종철 대장(대통령 안보 담당 자문), 채석천 소장(합참 작전계획과장), 강창성(육군 보안대장), 진종채 소장(수방사령관), 최성택 준장(한국대학 ROTC단장), 전두환 준장(육군 공수단), 김복동 준장, 조종성 소장(육군 특전대장)

기타: 이동원(전 외무부 장관), 이범석, 한기수, 이명환, 김말룡, 이종영(대림건설 회장) 박성일(두산개발 회장), 조정식(한일개발 부회장), 정조수(대하실업 회장), 강원용(크리스천 아카데미 목사), 남궁윤(한국조선 회장), 이건희(중앙일보 사장), 정인영(현대건설), 김수한(추기경)


[ 김영삼의 박정희 평가, 미국의 김영삼 평가 ]

(1972년 10월24일)


1972년 10월24일자 비밀 전문은 신민당 김영삼 의원이 국무부 마셜 그린(Marshall Green) 차관보와 나눈 대화 내용을 담고 있다.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직후이자 유신헌법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되기 한 달 전에 이루어진 만남인 데다가 야당 지도자와 미 고위 정책 입안자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시기적으로나 사안으로나 중요한 때였다.

김영삼 씨도 당시 야당인 신민당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정치적 영향력이 컸기 때문에 어느 쪽이 먼저 만남을 요청했든 주한 미 대사관이나 국무부의 고위 관리들과 자주 접촉하는 주요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김영삼 의원이 국내 정치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부분이나 상대방과 나눈 대화 과정 등 국무부의 비밀 전문이 담고 있는 내용을 보면 깊이 있는 정치 분석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용어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거나, 자기 주장을 강변하는 부분이 자주 눈에 띈다. 정치권 내의 일반적인 흐름을 있는 그대로 대변하면서 자신의 심중을 좀체 드러내지 않는 것도 특징이며, 간혹 부정확한 예측을 불쑥 거론하기도 한다.

12월30일 하비브 주한 미 대사가 김영삼 씨를 만난 후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국무부에 보낸 비밀 전문에는 자신의 사적인 견해(comment)를 덧붙인 내용이 있는데, ‘탁월한 야당 지도자라는 김영삼의 위치를 고려해 볼 때, 그가 말한 것 가운데 특기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음’이라고 되어 있다.

다음은 1972년 10월24일자 전문 가운데 주요 부분을 발췌한 것인데, 김영삼 씨가 72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 국무부 관리들을 만나 나눈 대화다. 남북한 지도자인 박정희와 김일성을 김영삼 씨 자신의 어휘로 비교한 부분, 헌법 개정안의 핵심적인 성격에 대해 미 국무부 관리들로부터 ‘교육(?)’을 받은 장면들이 이채롭다.

‘10월20일 신민당 지도자인 김영삼이 그린 차관보를 방문해 한국의 발전에 대해 토의했다. 그와 그의 가족이 박 정권과의 관계 때문에 묘한 상황에 처해 있는 탓으로 말을 삼가서 하겠으며, 이전과는 달리 이 만남을 전후해 언론과는 접촉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박정희는 무한정한 권력 유지에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한국 국민 대다수는 지금 계엄령이 남북 대화를 진전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박의 강변에 어리벙벙해 있다. 그러나 10월27일 헌법 개헌안이 공고되고 나면 국민들은 뭔가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군부에서도 분노가 확산되고 있다.

김은 또한 남북간의 핵심적인 차이점에 대해서도 느낀 점이 있다고 말했다. 박정희가 권위 독재주의를 구축하면 박과 김일성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도 없다. 남한에서는 많은 사람이 기본적인 생활 필수품마저 부족한 반면 김일성은 최소한 부를 나누어주려고 시도했다. 만약 남북한을 구별짓는 점이 흐릿한 채 오래 지속된다면 북한을 좋게 바라보는 남한 사람들이 생기게 될 것이다.

(한국의) 새로운 정치 구조가 다른 나라의 정치 구조를 본뜬 것인지를 그린 차관보가 물었다. 김은 프랑스 시스템의 요소가 있다고 대답했다. 그린 차관보는 김영삼에게 프랑스에서는 입법부와 대통령이 직접 선거로 선출된다고 말해주었다. 한국과장인 레너드(Ranard)는 발의된 헌법 개정안의 특징은 이전에 완벽하게 보장되어 있던 기본적인 인권과 자유를 법적 개정의 대상으로 바꾸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린 차관보는 헌법 조항을 살펴보니까, 정부가 인권을 제한하기로 판단했을 때를 예외로 하고 인권을 보장한 1889년의 일본 이토 헌법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김영삼이 차관보가 헌법 개정안 전문을 검토해볼 시간이 있다면 검토하고 나서 그에 대한 견해를 들려주거나 충고를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자, 그린 차관보는 헌법 개정안을 찬찬히 살펴보기는 하겠지만 자신이 그에 대해 충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김영삼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헌법 개정 발의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계엄령하에서 실시돼서는 안 되며 자유로운 토론을 허용하도록 권고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박 대통령에게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늦어도 2월 전에 실시돼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 점과 관련해 김은 한국 정부의 변화에 대한 미 의회 반응을 주시하면서 의회의 주요 인사들에게 이 점을 설명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의회 주요 인사들이 지금은 모두 선거 때문에 워싱턴에 있지 않으므로 김은 지역구로 몇몇 인사를 찾아갈 계획이다.’


하비브 주한 미 대사가 국무부 장관에게 보낸 1971년 12월30일자 비밀 전문의 제목은 ‘신민당 국회의원 김영삼의 견해’다. 12월29일 신민당 간부회의가 끝난 직후 하비브 미 대사와 김영삼 씨가 만나 나눈 대화록이다. 국내 정치 상황 전반에 대한 김영삼 의원의 견해가 A4 용지 2쪽 분량으로 기록돼 있는데, 비밀 전문 마지막 부분에는 집권 여당인 민주공화당의 내분과 박정희 대통령의 과도한 음주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

‘김영삼은 또 말하기를 민주공화당에는 세력이 둘로 나뉘어 대통령의 관심을 끌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하나는 이후락과 백남억이 주도하고 또 한 세력은 김종필과 오치송이 주도하고 있다고 했다. 김은 또 주장하기를 박 대통령이 최근 들어 늦게까지 과음을 한다고 했다(박 대통령은 원래 과음을 한다. 그러나 본 대사관은 이 점과 관련해 다른 정보원들로부터 특기할 만한 확증적인 징후를 들은 바 없음).

본인의 견해: 탁월한 야당 지도자라는 김영삼의 위치를 고려해 볼 때, 그가 말한 내용 중에 특기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음.’


[ 국무부의 개인 기록 비밀 파일들 ]

국무부와 주한 미 대사관 사이에 오간 비밀 전문은 한국의 외무장관, 주미 한국 대사 등 고위직 외교관 면담 내용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런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통상 및 외교 등 한미 관계, 남북 관계, 유엔을 포함한 한국의 외교정책 등에 관한 한국 정부의 의견이 미국 측에 전달된다.

따라서 미국 쪽에서는 한국 외무장관이나 주미 한국 대사 등을 가장 빈번하게 접촉한다. 이들의 개인 이력은 물론 취향이나 성품, 협상 태도, 한국 내에서의 평가 등 모든 것이 국무부의 비밀 파일 속에 기록되어 있다.

최규하 전 대통령은 1967년 6월30일부터 1971년 6월3일까지 외무부 장관을 지내면서 미국과 공식 채널을 가동했다. 1971년 4월에 작성된 미 국무부의 이른바 ‘최규하 파일’ 가운데 일부분.

‘최규하: 베테랑 외교관. 1967년 6월부터 외무장관 재직. 언행이 느리고 따분하다는 평을 얻고 있으며, 현직 업무 수행은 별로 인상적이지 않고 활기차지도 않음. 표면상의 외교 능력은 있는데도,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태도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영향력 부족으로 유효성에 한계가 있는 듯함.

외형적으로는 협조적이고 이해심이 많은 것처럼 행동하지만 자기 자신의 생각은 거의 이야기하지 않으며, 상황 고려와 의전 문제에 지나치게 민감함.

최는 풍채가 좋고 옷매무새가 말끔하며 세련됨. 신장은 5피트 10인치로 평균 한국인보다는 큰 편이고, 약간 등이 굽었음. 일어와 중국어가 유창하며, 영어 실력은 좋은 편. 약간의 프랑스어와 독일어도 구사. 정원 가꾸기가 취미.’


최규하 외무장관의 뒤를 이어 71년 6월에 신임 외무장관으로 임명된 사람은 김용식 씨다. 다음은 미 국무부가 비밀 분류해 보관했던 김용식 파일 중에서 학력이나 경력 부분을 제외한 개인평 부분을 있는 그대로 옮긴 것이다.

‘김용식: 58세. 1971년 6월3일 외무부 장관에 임명. 주한 미 대사관 요원에 따르면 김은 이기적이고 우유부단하며 극도로 조심스러움. 한국의 외무부 관료들은 김이 유엔에서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적절한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다고 느끼고 있으며, 동료나 하급자들은 공개적으로 그의 업무 수행을 비판함. 영어와 일어가 아주 뛰어남.’

신동아 200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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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환·정광호 미국 KISON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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