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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인물|‘하버드 스님’ 현각의 스승 崇山 큰스님

어린아이의 얼굴을 가진‘달마대사’

  • 허문명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어린아이의 얼굴을 가진‘달마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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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버렸지만 진정한 스승을 얻었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니 점심시간. 요즘은 화계사의 동안거철이다. 지난 12월 중순부터 2000년 2월 중순까지 3개월 동안 집중 참선수련이 이뤄진다. 미국 유럽 소련 동남아 등지에서 온 40여명의 외국인이 수행에 정진중이다. 스님이 되고 싶어 화계사에서 생활하고 있는 외국인 행자들이 바삐 움직이는 것도 보였다.

왜 저들은 이 먼 곳 한국까지 와서 저렇게 머리를 깎고 스님 생활을 하고 있을까. 이 추운 겨울에 찬물에 손이 부르터가며 혹독한 절살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제 숭산 스님의 외국인 제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통해 이에 대한 답을 찾아보기로 하자.

50여명이나 되는 큰스님의 외국인 제자 중에는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많다. 출가라는 행위 자체가 파격이기도 하지만 서양에서는 불교가 아직 신(新)사상이기 때문에 불교 수행자, 그것도 한국 불교 수행의 길을 선택한 이들은 어떤 면에서 보면 기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삶 하나 하나가 드라마틱한 이유는 거기에 있다.



우선 미국인이 많다. 그들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이가 현각 스님. 미국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예일대와 하버드 대학원을 나온 뒤 출가해 화제가 된 인물이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만행’의 주인공으로 최근에는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열림원)라는 책을 냈다.

나는 그를 지난 11월 중순 지리산 노고단 중턱쯤에 있는 상선암이라는 암자에서 만났다. 흙으로 지은 초가 같은 작은 집에서 그는 홀로 수행하고 있었다. 두 평 남짓 될까. 방 정면에는 커다란 석굴암 불상사진, 그 아래에는 작은 불단이 마련돼 있었다. 향로에서는 향이 피어 오르고 있었고 그 옆에는 풍채좋은 한국인 노스님 한 분이 크게 웃는 사진 하나가 놓여 있었다.

저 사진의 주인공이 누구냐고 물었다.

“제 스승 숭산 큰스님입니다”

그리고 현각 스님은 자신의 인생을 바꾼 큰스님과의 인연을 이렇게 얘기했다.

“어릴 때부터 진리란 무엇인가, 왜 사는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이런 것들이 궁금했어요. 대학과 대학원에 들어가 서양 철학을 공부한 것도 뭔가를 찾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지요. 그러던 1990년 5월 하버드 대학원 대강의실에서 특별강연을 하는 한국의 숭산 큰스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마음이 무엇이냐, 인간이 무엇이냐, 고통은 어디에서 오느냐, 삶은 무엇이냐 하는 이런 거대담론들에 대해 너무도 간단명료하고 막힘없는 대답으로 좌중을 파고들었습니다. 큰스님은 진리를 찾고 싶으면 수행을 하라고 했어요. 배고픈 사람에게는 밥을 줘야지, 밥이 그려진 그림을 보여줘서는 안 된다고 하시면서요. 저는 그동안 진리를 찾기 위해 책과 성경만 파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책에서 얻은 지식이란 밥이 아니라 ‘그림’이라고 하셨지요. 강의가 이어지는 두 시간 동안 나는 너무 놀랐습니다. 어릴 때부터 가졌던 진리에 대한 의문과 갈망이 확 풀리는 듯한 느낌, 이제야 진정한 스승을 만났다는 생각에 그날밤 잠을 못 이뤘습니다.”

당시 스물다섯의 하버드 대학원생이었던 폴 뮌젠은 다음날 큰스님이 운영하는 케임브리지 젠센터로 달려갔고 2년여뒤에 중국 남화사에서 사미계를 받고 ‘현각’으로 다시 태어난다. 장차 훌륭한 교수가 될 것이라 기대했던 가족들과 그를 사랑했던 여자친구를 뒤로 하고 한국에서 10년째 살고 있다.

세계 제일 부자나라에서 태어나 그것도 중산층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승려가 된 자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원한다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매일 파티에서 술에 진탕 취했고 여자친구도 있었지요. 남에게 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바로 미국입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은 늘 허전했지요.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찾아 헤맸으니까요. 더 좋은 옷, 더 좋은 차, 더 좋은 여자친구… 끝이 없었습니다. 97년 1년 동안 미국의 로드 아일랜드에 큰스님이 미국에 처음 세운 절인 홍법원 주지를 했습니다. 그때 대학동창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다들 미국의 상류사회에 진입한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나를 부러워하더군요. 겉보기엔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것 같은데 속은 허무감으로 가득했어요.”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란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바깥 상황은 언제나 변합니다. 여기에 집착해 자기 내부를 들여다보지 못하면 오직 고통만 있을 뿐입니다. 진정한 자기를 찾아야 합니다. 부처님도 예수님도 도와주지 못합니다. 오직 자신만이 내 안에 있는 참자아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영원한 행복이 찾아옵니다.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찾고 싶다면 하루 10분만이라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참선수행을 해보세요. 책이나 남의 경험은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오직 수행, 수행하는 일만이 나와 다른 사람의 삶을 고통의 바다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환생

현각 스님보다 훨씬 먼저 큰스님의 제자가 된 무상 스님은 숭산 큰스님의 1세대쯤 되는 제자다. 1964년 하버드대학에서 고대문학을 전공한 그는 그리스 철학은 물론 러시아문학까지 두루 섭렵했다. 러시아어는 물론 불어 독일어 라틴어 고대그리스어에 유창하고 한국어까지 한다. 쇼펜하워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에다 고대희랍비극, 셰익스피어까지 모두 그의 머릿속에 저장돼 있다.

무상스님은 하버드 대학 졸업 후 흑인 인권운동을 했던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미국 남부인 앨라배마와 미시시피로 내려가 흑인에게 참정권을 주자는 인권운동을 했다. 당시 그 운동에 뛰어들었던 젊은이 몇몇은 백인 우월주의자들에게 살해 당하기도 했다. 무상스님은 1년 동안 그곳에서 헌신한 뒤 예일대 법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약자를 보호하고 도울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우선 법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을 공부하면서 그는 더 큰 의문에 사로잡히게 된다. 막상 대학에 들어가 법을 공부하니 법이란 것이 약자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통제하는 방편에 불과하다고 느낀 것이다. 법을 공부하는 것이 정의나 진리의 삶과는 거리가 먼, 힘과 엘리트주의를 구현하는 것에 불과함을 깨달은 그는 삶과 진리와 정의에 대해 교수님들, 지식인들을 쫓아다니며 물었지만 어느 누구로부터도 만족할 만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1975년 예일대학에 법문을 하러온 숭산 스님을 만난 것이다. 그때 일을 떠올릴 때면 무상 스님은 항상 이렇게 얘기한다.

“큰스님의 법문을 들은 그날 밤, 나는 소크라테스가 환생한 게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졌다. 큰스님 가르침방식은 완전히 소크라테스의 문답식었다. 그의 언어는 죽은 언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언어였다. 누구도 나에게 그런 답을 주지 못했다.”

무상 스님은 그 다음날로 큰스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의 부모는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백만장자였건만 그는 하버드와 예일이라는, 인생의 성공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보증서를 모두 팽개치고 스님이 되었던 것이다.

세 번째 소개할 스님은 대봉 스님. 지금 숭산 스님이 짓고 있는 계룡산 국제선원의 선원장으로 내정된 스님이다.

따뜻하고 인자한 미소가 인상적이다. 원래 ‘도문’이라는 법명을 받았는데 지난 여름 숭산 큰스님으로부터 법을 전해받아 ‘대봉’이라는 새로운 법명을 받았다.

본래 유태인으로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난 그는 베트남 전쟁세대다.

대학 다닐 때 국방성 앞에서 반전 데모를 했다. 매번 50여만명이 모이는 대규모 시위였는데 시위대 지도부였던 대봉 스님은 지도부 안에서 드러나는 의견차이와 질시에 큰 실망을 느꼈다. 서로 헐뜯고 싸우고 도대체 이 사람들이 누구와 싸우기 위해 모였는지 한심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평화를 외치지만 정작 외치는 사람들의 마음속엔 평화가 없었던 것이다. 극도의 좌절과 환멸이 그를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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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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