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추적취재|최순영-김태정 ‘옷전쟁’ 1년

“마녀사냥은 있었다”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마녀사냥은 있었다”

2/3
김태정씨 주변에 따르면 98년 6월께 한동안 연락이 뜸하던 박씨가 느닷없이 김씨의 검찰총장 집무실로 찾아왔다. 그는 신동아그룹 부회장 명함을 내밀었다. 당시 서울지검 특수1부는 기자실에 엠바고(보도통제)를 요청해놓은 상태에서 신동아그룹의 경영부실과 최순영 회장의 개인비리 혐의를 추적하고 있었다. 최회장은 이미 두 번이나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은 터였다.

김씨의 한 측근에 따르면 그날 김씨는 박씨가 신동아 명함을 내밀자 표정이 바뀌었다고 한다. “당신이 언제부터 신동아를 잘 알았냐”고 면박을 주며 “당장 집어치워라. 저의가 뻔하다”고 소리를 질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동안 나를 얼마나 팔았냐”고 모욕을 줬다. 김씨 측근에 따르면 박씨는 이때부터 김씨에 대해 반감을 품었다고 한다. 그가 99년 12월1일 대검 기자실에 들러 “문건 공개는 김태정과 박주선을 겨냥한 것이었다”고 털어놓은 데는 바로 그런 사정이 있다는 것.

이 측근에 따르면 그후 김씨는 박씨를 의도적으로 멀리했다고 한다. 김씨측에 따르면 전엔 집무실에서 몇 차례 만났지만 박씨가 ‘그쪽 사람’이 된 걸 알고는 전화가 와도 잘 받지 않고 면담 신청도 번번이 거절했다는 것. 박씨가 다시 전화를 걸어온 것은 옷사건에 대한 사직동팀 내사가 벌어질 즈음. 김씨측은 박씨가 폭로광고 계획 등 최회장 쪽의 움직임을 알려주는 척하며 은근히 협박을 했다고 주장한다. 김씨가 구속된 후 부인 연씨와 변호인 임운희 변호사는 신동아의 협박 사실을 폭로했다. 하지만 신동아측은 협박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피의자 주제에 검찰총장을 협박할 상황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입 닫고 있으라’고 협박 당했다”고 주장한다.

98년 12월 언론보도에 따르면 최회장은 해가 바뀌기 전 사법처리될 전망이었다. 검찰의 수사유보 명분은 신동아측이 약속한 외자유치가 계속 늦춰지고 시민단체의 최회장 고발 등으로 점차 힘을 잃고 있었다. 12월23일 MBC는 검찰 고위층의 언급이라며 최회장의 연내 구속방침을 보도했다. 이에 대해 이형자씨는 99년 5월25일 언론사에 돌린 진정서를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

“그날 저녁 MBC 뉴스에 ‘최회장을 구속수사하겠다’고 또 내보냈습니다… 총장 부인의 옷값을 치르지 않자 이러한 협박과 불이익을 당한다고 느꼈습니다.”



바로 그 시기에 연씨와 관련된 유언비어가 돌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른바 사직동팀 최초보고서에 담긴 ‘검찰총장 부인 관련 유언비어’에 따르면 연씨는 ▲98년 12월 앙드레김 의상실에서 옷 두 벌을 2200만원에 맞췄다. ▲그후 라스포사 의상실에서 밍크코트를 3500만원에 맞췄다. ▲대금은 일행 중 1명이 지불키로 했다. 또한 라스포사 사장 정일순씨는 ▲김총장 부인이 옷대금을 지불할 사람으로 지명해준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옷값 3500만원을 달라고 했다. ▲상대방이 “나는 앙드레김 의상실 옷값만 책임지기로 했을 뿐 라스포사 옷값은 낼 수 없다”고 하자 ▲김총장 부인에게 “옷값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문의했다. ▲말썽이 날 것을 우려한 김총장 부인이 라스포사 옷값 3500만원을 지불했다.

위 유언비어 중 연씨가 관련된 부분은 대부분 과장되거나 사실관계가 왜곡된 것으로 드러났다. 2200만원에 옷을 맞춘 적도 없으며 특히 3500만원짜리 밍크코트를 산 사람은 연씨가 아닌 이형자씨였다. 그러나 이런 내용의 유언비어는 이씨가 원장으로 있는 횃불선교원을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고 기독교 인맥을 통해 영부인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김씨가 박시언씨를 검찰총장 집무실에서 다시 만난 것은 99년 2월 하순. 그에 앞서 최회장은 2월11일 구속된 상태였다.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에 따르면 김씨는 박주선 당시 청와대 법무비서관에게 전화를 걸어 옷사건 내사 종결 여부를 확인한 후 내사보고서를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피내사자로서 조사 결과가 궁금하다. 더구나 이 일을 5대 일간지에 광고하겠다는 협박까지 당하고 있으니 보고서를 보내주면 이형자에게 내 처가 결백하다는 사정을 해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박주선씨가 보고서를 보내주자 김씨는 박시언씨에게 전화를 걸어 집무실로 오게 했다. “회개하라.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도 않으냐.” 박씨에게 보고서를 내던지며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청와대 사직동팀에서 조사한 결과야. 이형자에게 쓸 데 없는 짓 말라고 전해달라. 앞으로 계속 협박한다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 이날 그가 박씨에게 건네준 옷사건 내사보고서는 10개월 후 김씨의 목을 죄는 올가미가 됐다. 이에 대해 김씨의 측근은 “당시 김총장이 흥분해 분별력을 잃은 게 화근이었다”고 말한다.

최회장의 외화도피 혐의를 수사했던 검찰의 한 간부는 “당시 수사를 강행했다면 이토록 나라를 시끄럽게 만든 옷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 간부는 또 “당시 수사팀은 신동아측의 10억달러 외자유치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봤다”며 “그때 수뇌부에서 제대로 판단했더라면…” 하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박순용 당시 서울지검장(현 검찰총장)은 수사팀을 불러 직접 수사유보 지시를 내렸다. 명분은 신동아측의 외자유치 협상. 위 검찰 간부는 “수사 욕심은 있었지만 당시 경제상황 때문에 그 명분에는 누구도 맞설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에 덧붙여 “일부 언론 보도와는 달리 수뇌부와 수사팀 간 의견 대립이 있었던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검찰 주변에선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이 수사팀을 직접 불러 “기업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최회장 비자금이나 사생활을 너무 파헤치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소문도 있다.

수사유보 결정이 검찰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른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한 가지 확인되는 것은 박시언씨가 최회장 구명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수사팀도 박씨의 움직임을 간파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위 검찰 간부는 “박시언이라는 사람이 움직이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의 로비로 수사가 유보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P씨를 잡았다”

박시언씨는 여권 실세들과 친한 것을 굳이 감추려 들지 않았다. 반면 이름이 오르내리는 정치인들은 펄쩍 뛰고 있다. 하나같이 국민회의쪽 사람들이다. 이와 관련, 관심을 끄는 것은 정일순씨의 발언. 정씨는 특검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지난 11월16일 법원 영장실질심사에서 다음과 같은 취지의 얘기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형자씨가 내게 ‘박시언을 영입해 P씨를 잡았다. 정치권 로비에 100억원이 들었다. 이제 걱정 없다’고 하기에 내가 ‘잘 됐다’고 말해줬다.”

P씨는 박시언씨의 로비의혹에 관련돼 이름이 오르내리는 여권 실세다. 정씨 발언의 진위는 확인하기 어렵다. 신동아측이 정치권 로비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검찰의 수사유보 결정과 신동아의 정치권 로비는 어떤 함수관계가 있을까. 수사유보를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신동아의 외자유치 협상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라는 게 검찰 주변의 지배적 시각이다. 플러스 알파가 있었다는 것. 그것은 물론 신동아 수사에 대한 정치권의 압력을 뜻한다.

김태정씨는 99년 11월24일 특검에 출두하면서 ‘김태정의 고백’이라는 자료를 통해 “검찰총장으로서 최회장의 외화도피 사건을 보고받은 후 여러 경로를 통해 최회장의 선처를 바라는 말들이 있었다”고 말해 이른바 외압설을 처음 제기했다. 그는 그러나 외압 주체에 대해선 “아직 밝힐 단계가 아니다”라고 입을 다물었다.

김씨가 이처럼 운만 뗀 데 대해 검찰 주변에선 자신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만들 경우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경고의 메시지’로 보는 시각이 유력하다. 수감된 김씨를 면회하고 있는 임운희 변호사에 따르면 김씨는 더 이상은 얘기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 임변호사는 “몸이 갇힌 상태에서 전선 확대를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이 신동아의 정치권 로비에 대해 전면수사를 펼칠 의지가 있다면 외압설의 실체가 드러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검찰의 수사의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옷사건이 김씨 구속으로 사실상 마무리된 데다 섣불리 건드릴 경우 총선을 앞둔 여권에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신동아에 대한 보복수사로 비칠 수 있다는 점도 수사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김태정씨는 신동아 수사 당시 사석에서 “신동아 수사는 내가 혼자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외자 유치를 하겠다는데 검찰이 재를 뿌릴 순 없지 않으냐”고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또 구속되기 직전엔 “‘정책결정 과정’에 원칙대로 최회장을 구속하자고 고집해 관철시킨 사람은 나와 박주선뿐이었다”는 말도 했다. 그의 말은 박시언씨의 발언, 곧 “최종보고서 공개는 김태정과 박주선을 겨냥한 것이었다. 두 사람의 사법처리는 대한생명 회생의 시작이다”는 얘기와 맞아떨어진다. 신동아측이 김태정씨와 박주선씨를 최회장 구속의 원흉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동아측은 두 사람이 ‘강경파’라는 얘기를 누구에게 들었을까. 신동아측에 그런 언질을 준 사람이 바로 외압의 주체일 가능성이 높다.

“김태정 때문에 안 된다”

한 가지 단서는 김씨의 얘기 중 ‘정책결정 과정’이라는 표현이다. 재벌에 대한 검찰수사 결정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의 고위급 인사는 그리 많지 않다. 정일순씨의 증언도 시사하는 바 크다. 정씨에 따르면 이형자씨는 여러 차례 ‘김태정의 낙마’를 언급했다고 한다. 또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즉 어떤 날엔 “이제 다 됐다”며 희망 섞인 얘기를 하다가도 또 다른 날엔 “김태정 때문에 안 된다”고 말했다는 것.

이씨에게 정치권 및 검찰의 동향을 귀띔해준 사람은 박시언씨로 보인다. 그렇다면 박씨에게 그런 얘기를 해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얘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어쨌든 신동사 수사를 유보하고 최회장 사법처리를 미룬 것은 김태정씨의 아킬레스건이 됐다. 그러잖아도 검찰 안팎에서 ‘정치 검사’라는 비난에 시달리던 터였다. 시민단체와 언론은 검찰과 정치권 또는 재벌회장과 검찰총수의 유착의혹을 제기했다. 99년 1월말에 일어난 ‘심재륜 항명파동’은 젊은 검사들의 피를 끓게 만들었다. 2월2일 검찰 개혁 방안을 두고 평검사들과 검찰 수뇌부의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그 자리에서 한 평검사가 최회장 사법처리 유보결정에 대해 ‘정치권 및 재벌과의 유착’이라며 강하게 비판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태정씨는 99년 9월초 옷로비 청문회가 끝난 후 사석에서 최회장 사법처리 유보에 대해 “나도 기독교인인데 내 손으로 장로를 구속하고 싶진 않았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또 “지금 와선 ‘속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쪽에서 계속 ‘곧 외자유치가 되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해왔다”고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억울할 만도 하다. 정치권 외압 여부를 떠나 신동아의 외자유치를 위해 수사 보류를 지시하긴 했지만 나중엔 원칙대로 사법처리를 했는데도 온갖 의혹과 비난을 혼자 뒤집어썼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회장 구속시기에 대해선 검찰 안팎에서 여전히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 사정과 관련한 편파수사 시비, 항명파동에 이은 소장 검사들의 검찰 개혁 요구, 시민단체의 퇴진 압력 등으로 검찰총장 취임 후 최악의 상황을 맞았던 김씨가 ‘국면 돌파’를 위해 최회장을 전격구속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매우 그럴 듯한 시나리오이긴 하지만 이는 외자유치 명분으로 사법처리가 유보됐다는 점을 놓친 측면이 있다. 그보다는 최고위층과의 교감으로 결정됐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 단서는 옷사건에 대한 사직동팀의 최종보고서. 박주선씨가 김대통령에게 이 보고서를 올린 것은 99년 2월10일. 최회장이 구속되기 하루 전이었다. 사직동팀 최종보고서엔 다음의 ‘건의사항’이 있었다.

“내 손으로 장로를…”

‘최순영 회장 사건은 미화 1억6500만 달러의 재산 해외도피, 수출금융 1억8500만달러의 편취행위로서 사안이 중대한 점, 공범인 사장 김종은이 구속된 점, 사건처리를 둘러싼 유언비어가 광범위하게 유포돼 있는 점 등을 종합하건대 최순영의 구속으로 사건의 신속한 종결이 바람직하다고 사료됩니다’.

이런 점에 비춰 최회장 사법처리는 당시 검찰총장이던 김씨가 주도하긴 했지만 독자적인 결정은 아닐 개연성이 높다. 이와 관련,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증언이 있다. 김씨 측근은 최근 “김총장이 99년 들어서도 최회장의 사법처리를 결정하지 못하고 미적거린 것은 옷사건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다”고 귀띔했다. 그에 따르면 김씨는 자신의 아내와 관련된 음해성 소문이 도는 걸 알았으며 그 와중에 최씨를 구속하면 ‘보복’이라는 오해를 살까봐 사법처리를 자꾸 늦추게 됐다고 한다. 말하자면 사직동팀의 내사결과 아내의 ‘누명’이 벗겨지자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어졌다는 것. 검찰총수에 대한 ‘협박용’이었던 옷사건이 재벌회장에게 부메랑으로 날아간 셈이다.

김씨는 언젠가 사석에서 옷사건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그는 옷사건과 최회장 구속의 연관성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그럼. 화가 나 구속해버렸지. 누구라도 안 그렇겠나. 명색 기독교 장로라는 사람이 자기 살겠다고 어떻게 그리 남을 모함할 수 있나. 외자유치한다는 거짓말로 시간이나 벌려 들고.”

최회장 구속 결정에 김씨 개인의 감정도 작용했음을 보여주는 얘기다.

99년 12월3일 김씨는 집에서 한 원로목사의 기도를 받았다. 바로 CCC(한국대학생선교회) 명예총재로서 한국 기독교계의 정신적 지주인 김준곤 목사였다. 김목사는, 최회장의 동서로 기독교계의 최회장 구명 로비에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하용조 목사의 신앙적 은사이기도 하다. 김목사는 김씨의 머리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했다. “옷사건은 하나님이 한국 기독교계의 교만과 타락을 꾸짖고 깨우치게 하려고….” 김씨 부부는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다음날 김씨는 구속됐다. 그가 구속된 후 신동아 수사에 관여했던 검찰의 한 간부는 이렇게 탄식했다.

“이제 무서워서 재벌 수사 못한다. 막대한 자금과 조직을 가진 재벌이 보복하려 들면 어느 검사가 배겨날 수 있겠나.”

2/3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목록 닫기

“마녀사냥은 있었다”

댓글 창 닫기

2021/05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