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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혁명을 넘어서

  • 피터 F. 드러커

정보혁명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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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는 산업혁명을 기정사실화했고 혁명은 일상생활이 됐다. 산업혁명이 일으킨 붐은 거의 100년이나 지속됐다. 증기기관 기술은 단순히 철도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1880년대와 90년대의 증기 터빈, 철도광(狂)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은 1920년대와 30년대 미국의 웅장한 마지막 세대 증기기관차로 이어졌다.

하지만 증기기관과 제조업 가동의 중심이었던 기술은 더 이상 중추적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됐다. 기술의 원동력은 철도 발명 직후에 등장한 완전히 새로운 산업군으로 옮겨갔는데, 이들 가운데 증기나 증기기관과 관련 있는 산업은 하나도 없었다. 1830년대에 전신기술과 사진술이 먼저 나왔고 곧이어 광학과 농업용 기계가 나왔다. 1830년대에 시작된 새롭고 색다른 비료산업은 순식간에 농업에 변화를 가져왔다. 검역 활동과 백신 접종, 그리고 깨끗한 물 공급, 하수처리를 통한 공중 보건이 주요 성장산업이 됐다. 이로 인해 사상 처음으로 도시가 시골보다 위생상태가 더 좋은 생활공간이 됐다. 이와 동시에 마취제가 처음 개발됐다.

이 새로운 기술들과 함께 현대적인 우편 서비스, 일간 신문, 투자 은행, 그리고 상업 은행 등 새로운 사회제도가 선을 보였다. 몇몇 예를 들었지만, 이들 중 증기기관이나 산업혁명 당시에 널리 사용된 기술과 이렇다 할 관련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들 새로운 산업군과 제도들이 1850년경에는 선진국의 산업 및 경제에 주역이 된 것이다.

이는 현재의 세계를 탄생시킨 첫번째 기술혁명인 인쇄혁명에서 비롯된 일과 아주 비슷한 진전이다. 구텐베르크가 수년간 연구해온 인쇄기와 그에 맞는 활자를 완성한 1455년 이후 50년간 인쇄혁명은 유럽을 휩쓸며 유럽의 경제와 유럽인의 심리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첫 50년 동안 인쇄된 책은 대개 수도사들이 오랜 세월 힘들게 필사해온 종교 관련 소책자나 선현들의 작품이었다. 이 기간에 7000여 종의 책 3만5000권 가량이 출간됐다. 이중 최소한 6700종이 과거부터 전해오던 것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인쇄혁명의 초창기 50년이 전래의 정보나 자료를 점점 싼 값에 얻기 쉽게 해준 것이다.

그런데 구텐베르크 이후 60년이 지나 나온 루터의 독일어판 성경 수천 부가 순식간에, 믿을 수 없는 가격으로 팔려나갔다. 루터의 성경을 매개체로 하여 인쇄기술은 새로운 사회를 탄생시켰다. 인쇄기술이 개신교를 낳고, 이 개신교는 이후 20년 만에 유럽의 절반을 지배하고 있던 가톨릭 교회가 스스로를 개혁하지 않을 수 없도록 몰아붙인 것이다. 루터는 새로운 매체를 이용하여 종교를 개인의 삶과 사회의 중심으로 되돌려놓았다. 또 이로 인해 150년간의 종교개혁, 종교폭동 그리고 종교전쟁의 소용돌이가 유럽을 뒤덮었다.



루터가 기독교 정신을 회복시키려는 목적으로 인쇄술을 사용하던 바로 그때에, 마키아벨리가 ‘군주론’(1513)을 출간했다. 이 책은 유럽에서 성경 구절을 인용하지 않거나 옛 사람의 작품을 참고하지 않은 책으로는 거의 1000여년 만에 처음 나온 책이었다. ‘군주론’은 하룻밤 사이에 16세기의 ‘또 다른 베스트셀러’로, 가장 악명 높고 가장 영향력 있는 책이 됐다. 오늘날 우리가 문학이라 부르는 순수 세속 소설과 과학·역사·정치 그리고 얼마 뒤에는 경제학 관련 책이 잇달아 출간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순수 세속 예술의 새로운 장인 연극이 영국에 출현했다. 예수회, 스페인 보병, 최초의 현대식 해군,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권민족국가 등 새로운 제도도 출현했다. 이처럼 인쇄혁명은 300년 뒤의 산업혁명과 현재 진행중인 정보화혁명이 걸어온 길을 그대로 걸었다.

앞으로 어떤 산업과 제도가 나올지 아직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1520년대에 세속 연극은 물론 세속 문학이 나오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1820년대에는 아무도 전신이나 공중 보건, 혹은 사진을 상상할 수 없었다.

확신은 못 하지만 앞으로 20년 안에 새로운 산업들이 등장할 개연성은 충분하다. 이와 더불어 이 가운데 정보기술, 컴퓨터, 전산처리나 인터넷 업계에서 떠오를 산업은 없으리란 것 또한 거의 확실하다. 이는 역사상의 모든 전례가 암시해주고 있다. 새로운 산업이 빠른 속도로 떠오르고 있음 또한 사실이다. 앞서 말했듯이 생명공학이 이미 우리 주변에 와 있다. 어류양식 또한 마찬가지다.

25년 전만 해도 연어는 진미였다. 큰 모임 후의 식사자리에는 닭고기나 쇠고기가 오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요즘 연어는 일상적인 식품이 돼서 연회에서 선택 메뉴로 골라 먹을 수 있다. 오늘날 식탁에 오르는 대부분의 연어는 바다나 강에서 잡은 것이 아니라 농장에서 사육된다. 송어도 마찬가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많은 어류도 똑같이 사육될 것이 분명하다.

돼지고기가 육류를 대표한다면 가자미는 대표적인 어류다. 이 가자미가 이제 막 바다에서 대량 생산될 단계에 와 있다. 이런 양식업이 유전공학을 통해 다른 새로운 어종의 개발로 이어질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양과 소, 그리고 닭이 가축이되면서 새로운 종이 개발되었듯이 말이다. 아마 수많은 신기술이 25년 전 생명공학이 막 떠오르려던 단계와 같은 시기에 와 있을 것이다.

외환 리스크에 대비하는 보험처럼 탄생을 앞두고 있는 서비스도 있다. 이제 모든 기업이 지구촌 경제의 한 부분이기에, 화재나 홍수와 같은 물리적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서 산업혁명 초창기에 종래의 보험이 등장했듯이, 환 리스크 등에 대비하는 신종 보험이 절실하다. 환 리스크 보험에 필요한 지적 정보는 있지만, 이를 담당하겠다고 나서는 기관은 아직 없다. 앞으로 20년이나 30년 동안 컴퓨터의 등장 이후 수십년간 있었던 것보다 큰 기술의 변화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변화가 산업구조, 경제구조 그리고 사회구조를 바꿀 것이다.

기술적인 면으로 보아 철도의 등장 이후에 떠오른 새로운 산업들은 증기기관이나 산업혁명과는 별로 관련이 없는 업종이었다. 이 신산업들은 산업혁명의 ‘육신의 자손’이 아니라 ‘정신의 자손’이었다. 그것들은 산업혁명과 거기에 속하는 기술들이 창조해낸 의식구조가 있었기 때문에 탄생할 수 있었다. 발명과 혁신을 기꺼이 수용하고, 신상품과 새로운 서비스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환영하는 의식구조였다.

신사 vs 기술자

이 의식구조는 신산업의 등장을 가능하게 한 사회적 가치관을 창조해냈다. 무엇보다 이 의식구조는 ‘기술자(technologist)’ 낳았다. 1793년에 철도와 함께 산업혁명의 주요 발명품인 조면기를 최초로 개발한 미국의 기술자 엘리 휘트니는 사회적·금전적 성공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러나 불과 한 세대 만에 기술자는―당시까지도 자수성가형이었다― 미국 대중의 영웅이 되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금전적인 보상도 받게 됐다.

전신기를 발명한 새뮤얼 모스를 첫 주자라고 한다면, 토머스 에디슨이 가장 빛을 발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의 경우 ‘비즈니스맨’은 오랫동안 사회적 신분이 낮은 이들로 간주됐는데, 대학교육을 받은 엔지니어들은 1830년대와 40년대 들어 ‘전문인’으로 존경받게 되었다.

영국은 1850년대로 접어들자 선진 산업경제로서의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해 먼저 미국에, 다음으로 독일에 뒤처지기 시작했다. 영국이 뒤처진 이유는 경제나 기술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주된 이유는 사회적인 데에 있었다. 경제적으로, 특히 재정적으로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까지 강대국의 지위를 지켰다. 기술적으로도 19세기가 끝날 때까지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었다. 현대 화학산업의 첫 산물인 합성 염료가 영국에서 발명됐고, 증기터빈도 영국에서 나왔다.

하지만 영국 사회는 기술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술자는 ‘신사’가 될 수 없었다. 영국인들은 인도에 최고 수준의 공업계 학교를 세웠지만, 영국에서는 그런 학교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상 영국보다 ‘과학자’를 우대한 나라도 없었다. 19세기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영국은 제임스 맥스웰을 필두로 마이클 패러데이, 어니스트 러더퍼드까지 시종일관 물리학계의 태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기술자들은 줄곧 ‘장사꾼’ 지위에 머물렀다(예를 들어 디킨스는 1853년의 소설 ‘쓸쓸한 집’에서 벼락출세한 제철업자를 노골적으로 경멸한다).

영국은 자본금을 날릴 가능성이 높은 새로운 산업에 투자할 자본과, 또 그럴 마음을 가진 벤처 자본가의 성장에 한발 늦었다. 발자크의 기념비적인 소설 ‘인간희극’에 처음 등장한 벤처 자본가는 프랑스인들이 처음 고안했는데, 미국에서는 J.P. 모건에 의해 제도화됐고 독일과 일본에서도 은행을 통해 제도화했다. 영국은 교역에 자금줄 노릇을 하는 상업은행을 창안하고 발전시켰으면서도, 산업에 자본을 제공하는 기관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 독일인 바르부르크와 그룬펠트가 망명해서 기업은행을 열기 전까지는 등한히 했다.

미국이 영국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21세기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먼저, 사회적으로 의식구조를 뜯어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철도가 등장한 뒤 산업경제의 견인차를 ‘장사꾼’에서 ‘기술자’ 혹은 ‘엔지니어’로 신속하게 바꿔 부른 것처럼 말이다.

지식노동자의 미래

정보혁명은 사실상 지식혁명이다. 자료처리 과정을 정형화한 것은 기계가 아니다. 컴퓨터는 단지 계기가 됐을 뿐이다. 소프트웨어는 지난 수세기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종래의 일을 지식, 특히 체계적인 논리로 분석하여 재조합한 것이다. 요체는 전자공학이 아니라 인식과학이다.

다시 말해, 세계 경제와 새로 부상하는 기술에서 주도권을 견지하려면 전문 지식인의 사회적 지위와 전문 지식인이 지닌 가치관의 사회적 수용이 필요하다. 그들이 옛 인습대로 ‘피고용인’의 신분에 머무르고, 영국이 기술자들을 장사꾼으로 대접한 것처럼 전문 지식인을 대접한다면 미국도 영국과 비슷한 운명을 맞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자본이 부의 주요 원천이 되고, 자금줄을 대는 이가 우두머리가 되는 종래의 의식구조를 그대로 가진 채, 지식 노동자를 계속 피고용인 신분으로 묶어두기 위해서 보너스나 스톡옵션으로 매수하는 양다리 걸치기를 하고 있다. 이런 양다리 걸치기는 신흥산업이 요즘의 인터넷 사업처럼 증시 붐을 탈 때에만 가능하다. 이에 반해 차세대의 기간산업은 종래의 산업들과 마찬가지로 천천히 고통스러운 수고를 들여야만 성장할 것이다.

면방직, 제철, 철도와 같은 산업혁명 초창기의 산업은 발자크의 소설에 나오는 벤처 은행가나 디킨스의 소설에 등장하는 제철업자처럼―몇 년 만에 하인 신분에서 ‘업계의 대표주자’가 된다―하룻밤 사이에 백만장자를 낳는 급성장 산업이었다. 1830년대 이후의 신흥 산업도 백만장자를 낳았다. 하지만 이 당시에는 이미 20년이라는 피땀 나는 노력과 경쟁, 절망과 실패, 그리고 검약하는 생활을 겪어야 백만장자가 될 수 있었다. 앞으로 떠오를 신흥산업도 마찬가지다. 생명공학에서 이미 이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 신흥산업이 의지할 수밖에 없는 지식노동자들을 매수하는 일은 말로는 통하지 않게 될 것이다. 신흥산업의 근간이 되는 지식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이 낳은 결실을 금전적으로 챙기고 싶어할 것이다. 그런데 황금 알은 익는다 해도 더디 여무는 법이다. 이렇게 볼 때 10년 안에 (단기의) ‘주주 지분’을 목표이자 유인으로 제시하고 기업을 꾸려나가는 것은 비생산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이 신흥 지식산업의 성패는 어떤 방식으로 지식노동자의 관심을 끌고, 어떻게 그들을 잡아두고 동기를 부여하는가에 달려 있다. 현재의 방식으로는 지식노동자들의 물질적 욕심을 더 이상 만족시킬 수 없다면, 그들의 가치관을 만족시켜주고 사회적으로 인정해주고 나름의 힘을 실어주는 길밖에 없다. 그들을 하수인이 아니라 동료 이사로, 그리고 피고용인이 아닌 동업자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번역/전상우)

신동아 200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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