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특별기획|문화예술흥행사 3인의 신선한 발상

문화는 돈이다

문화는 돈이다

3/3
99년 초 푸에르토리코 출신 가수 리키 마틴을 세계 무대에 내놓아 재미를 본 소니뮤직이 밀레니엄의 글로벌 마켓을 겨냥해 내놓은 두 번째 상품은 아시아계다. 99년 마이클 잭슨의 서울 공연에 참가해 우리에게도 친숙한 대만 출신 가수 코코 리가 그 주인공. 노래 춤 외모의 3박자를 갖춘 그는 대만인 부모 아래 홍콩에서 태어나고 미국에서 자라 영어도 능숙하다. 국제적인 상품이 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두루 갖춘 것이다. 그의 이런 조건은 꼭 한 가지씩 핸디캡을 가지고 있어 아시아 시장조차 제대로 진출하지 못하는 우리 가수들과 비교해볼 때 강점임에 분명하다.

세계 5대 메이저 음반사의 지원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첫 아시아권 가수가 된 그는 분명 신데렐라다. 국내 가요계 관계자들은 코코 리 같은 가수가 탄생하지 않는 것에 대해 국내 가수들의 한계를 지적한다. 가창력 외모 춤 언어 가운데 꼭 한 가지씩은 핸디캡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렇다면 기획자에게로 눈을 돌리면 어떨까. 소니뮤직은 11월 초 전세계 기자들을 홍콩의 고급 호텔로 불러들여 화려한 시범공연을 열었다. 여기에 쏟아부은 돈은 수십만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품을 만들겠다는 분명한 의지의 표현이다. 코코 리도 “무엇보다 역량 있는 매니저와 멋진 팀을 이루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자본, 상품, 그리고 안목 있는 기획자….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홍사종 :방금 이선생님이 우리 문화유통망이 취약하다고 지적하셨는데 저 역시 동감하며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이나 유럽시장의 프로모터와 비교하면 규모도 훨씬 영세하고. 이런 부분을 국가가 지원해준다면 우리 문화가 훨씬 경쟁력 있는 상품이 되겠지요.

이수만 :우리의 문화가 가장 많이 논의되고 표출되는 것은 TV를 통해서입니다. 극장보다 TV를 통해 영화를 보는 인원이 더 많지 않습니까. 따라서 우리가 진정 문화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TV에 관심을 가져야 해요.



유인택 :이수만 선생께서는 가요 쪽에 소홀한 것 아니냐고 했는데, 저는 공연예술 분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자체의 노력없이 정부 당국자에게 그저 손을 벌리거나 알아서 해주려니 하는, 그런 자세를 오히려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홍사종 :유선생 말씀은 문화관광부 예산과 관련이 있는 얘기인데, 제가 있는 정동극장이 문화관광부의 산하단체이다 보니 예산편성에 대해서는 제가 잘 알아요. 문광부는 순수문화를 도로, 교량, 항만과 같은 인프라로 보는 거예요. 그래서 새해 예산은 창조적 예술활동을 위한 여건을 조성하고 창작여건을 개선하는 데 238억원이 책정됐습니다. 다리는 그 자체로 부가가치가 없지요. 다리를 통해 트럭이 왔다갔다 함으로써 부가가치가 나오잖아요. 마찬가지로 가수들도 어떻게 보면 순수음악에서 뿌리를 두고 오늘날 서태지, H.O.T 같은 대중가수가 나오게 된 거죠.

먼저 순수예술 분야 내부에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건 옳은 지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예술은 그것이 순수예술이기 때문에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이 바탕 위에서 산업이 될 만한 다양한 예술, 예를 들어서 H.O.T가 나오고 디자인, 패션이 발전할 수 있는 거죠.

유인택 :제가 왜 그 얘기를 꺼냈는지 자세히 설명할게요. 저도 80년대 내내 연극이나 무용 등을 기획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변하지 않는 것은 아직도 연극이나 무용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단발성 작품에 대해 정부의 지원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관객은 공짜로 채우고 말입니다. 경쟁력이란 진보와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인데, 연극계나 무용계는 현실에 안주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연극은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한다고 하고, 무용은 학연으로 나뉘어 세력 다툼하고. 이런 부분에 대한 반성 없이 지원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IMF 이후 모든 것이 침체됐으나 그나마 영화 분야만 지원을 받았다는 세간의 평가도 있더군요. 하지만 이런 이면에는 1988년 미국영화 직배 반대 투쟁 이후 우리 영화계는 근 10년간 계속 한국영화의 근본적 발전을 위해 고민한 영화인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획자 혼자서는 해결 못 한다

홍사종 :정부도 그런 내용을 알고 있다고 봅니다. 정부가 순수문화예술에 대해서 투자하는 것은 유통분야라든가 인프라 구축 측면이나 하드웨어에 대한 투자지, 예술단체에 대한 무차별 지원의 방향은 아닙니다. 유선생이 지적하신 연극계의 상황에 대해서는 동감이에요.

사실 우리나라의 공연예술계가 아주 취약해요. 지금까지 순수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배고파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도 한 이유이지요. 그런데 제가 우리 직원들한테도 그렇고 연극인들을 만나면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장사로부터 멀어지는 순간 관객과도 멀어진다’고 말입니다. 자발적인 유통을 통해서 소비를 촉진시켜야만 예술과 문화가 자꾸 확대 재생산되는 것이고, 저변도 확대됩니다. 극장뿐만 아니라 연극단체의 경영수지가 좋아져야 문화 창달이라는 공적인 이익과 가치추구도 더불어 부합할 수 있지 않겠어요. 이 점에서 저는 순수예술에 몸담고 있는 분들이 대중문화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이수만 :일단 경쟁력을 가진 다음에 정부에 손벌리라는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렇다면 다음 문제는 경쟁력 있는 물건, 경쟁력 있는 가수나 영화배우, 영화를 어떤 유통망을 통해서 내보내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겠죠. 사실 이건 기획자 혼자의 힘만으로는 안 됩니다. 정부에서 지원해줘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겁니다. 제 이야긴 그렇다고 정부가 문화상품유통공사 같은 것을 만들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홍사종 :우리 공연예술시장이 취약한 점은 경쟁력 있는 문화상품이 많지 않다는 겁니다. 이는 공연단체들이 작품을 일과성으로 만들 뿐 고정 레퍼토리화 하지 않았고, 또 수요자를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정부 지원만 바라는 관행들이 축적된 결과입니다. 경쟁력이 없으면 문화가 상품화되지 않는 것이고, 문화가 상품화되지 않으면 관객이 없어지고, 국내 관객이 없으면 외국 시장에 나가서도 관객이 없는 거예요. 뉴욕시는 관광 수입의 23%를 브로드웨이 극장가에서 벌어들이고 있어요. 그 액수가 대략 2조700억원입니다. 이는 극장도 관광자원화하고 산업화하면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만약 우리에게 그런 상품이 있다면 대학로가 얼마든지 브로드웨이 같은 명소가 되겠죠.

이수만:상대방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나부터 자신감을 가져야 해요. 이를 위해서라도 다양한 시도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여기서는 그냥 있다가 나가서 해보라고. 도대체 해보지 않고 뭐가 어떤지 어떻게 압니까. 제가 아쉽게 생각하는 건 우리의 전반적인 풍토가 아직도 닫힌 문을 열지 않으려고 한다는 겁니다. 일례로 KBS가 H.O.T에게 노랗게 머리 물들이고 나오지 말라고 해요. 어른들 심기 사납다고. 그런데 청소년들은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오빠들은 머리 검게 물들이고 KBS 나가지 말라고 합니다.

제 이야기의 초점은 머리색깔이 아닙니다. 문화 상품을 만드는 기반이 튼튼해야 해외진출 등 여러 가지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움직일 여지를 달라는 겁니다. 가뜩이나 유통구조가 왜곡돼 있는 상태에서 내수기반은 ‘길보드’ 불법복제품이 잡아 먹고, 각종 규제와 검열이 설쳐대면 어느 세월에 경쟁력이 생기겠어요.

홍사종 :문화계 전반을 누르고 있는 규제와 각종 법률의 정비가 문화예산 1% 확보보다 더 중요하죠.

문화향유의 기회를 넓혀야

유인택 :외교관이나 정치인, 경제인들도 21세기에는 문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몇 년 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는 영화가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그곳의 우리 외교관들은 ‘하필이면 왜 이런 영화를 가지고 왔냐’고 타박을 하더군요. 못살고 못먹던 시절을 다룬 운동권 영화가 어떻게 한국을 대표한다고 내보내냐고요. 고상하고 아름다운 것만 자랑스러운 문화가 되나요?

이수만 :그런 일이 있었군요. 1년 전쯤 베이징의 제안이 있어 H.O.T가 2000년 1월 5일에 그곳으로 가 공연할 예정인데, 아주 협조가 잘 됐어요. 대사관에서는 자동차도 내주고 저녁에 만찬도 해주기로 했지요. 문광부에서도 미리 연락해 필요한 것 없느냐고 관심을 보여줘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이렇게 대우받으며 외국 갔다오면 애국자돼서 돌아와요. 내 나라가 자랑스러운 거죠.

유인택 :그리고 또 하나, 좋은 기량을 가진 예술인들이 공연을 하려고 해도 장소가 없습니다. 이럴 때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인식을 바꿔 문화예술회관을 개방하고 자치단체의 문화비로 공연을 하면 어떨까요. 지금 지방의 문화예술회관은 번드르르하게 잘 지어놓고도 소프트웨어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구민대회용으로밖에 기능을 못 하고 있어요. 이런 곳을 활용해 지자체가 공연을 유치하고 콘서트를 열고 영화를 상영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자치단체에서 한 영화를 100만원에 살 경우에 이런 곳이 100곳이 있다면 1억원입니다. 그러면 어렵게 돈을 투자해서 소프트웨어를 만든 문화예술 생산자도 도움이 되고 국민들도 문화향유의 기회를 넓힐 수 있어 좋지 않겠어요.

홍사종 :시장을 개발해 나가는 데 그런 방법도 좋겠네요. 사실 우리 시장이 취약한 건 어렸을 때부터 예술에 대한 체험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물질적 가치를 최고로 치는 사회에서 살아온 탓에 나이 들어 문화 생활을 하려니까 익숙해지기가 어려워요. 어렸을 때부터 생활 속에서 가까운 구민회관이라든가 예술회관 같은데서 영화를 보고 대중 가수와 만나고 연극을 만난다면 이들이 커서 소비자가 될 것 아닙니까. 꿈도 키우고, 실질적인 구매자도 되고, 결과적으로 문화시장을 받쳐주는 활력이 되지 않겠어요.

신동아 2000년 1월호

3/3
목록 닫기

문화는 돈이다

댓글 창 닫기

2021/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