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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취재|‘정형근 의혹’의 증언자들

“파이프담배 문 정형근이 고문을 지시했다”

  • 김당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파이프담배 문 정형근이 고문을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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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청와대측 참석자 김길홍 당시 정무비서관의 증언이다.

― 87년 박종철 사건 당시 관계기관대책회의 멤버였는가.

“당시 관계기관대책회의는 장관급, 차관급, 실무급 등으로 나뉘었는데 장관급의 경우 관련부처의 장이 소집을 발의하면 안기부장이 소집했다. 장관급 회의는 안기부장이 주재했다. 당시 안기부는 장세동 부장― 이해구 차장 체제였다. 그러나 사정이 있어 장관(부장)이 못나오면 차관급(차장)이 대리 참석하는 게 관행이었다. 나의 경우 장관급대책회의에는 정무수석이 나가야 하지만 정무수석 대신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무대책회의에는 청와대 비서실에서 안 가고 관련부처 실국장급이 나갔던 것으로 안다.”

― 정형근 당시 안기부 수사단장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허허 웃으며) 정형근씨는 실무자로서 참석했다. 정의원은 당시 수사단장이었으니 실국장들이 멤버인 실무대책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알고 있다. 차관급 회의에 안기부에서는 주로 이해구 1차장이 참석했다. 경찰쪽에서는 박처원 치안감은 당사자라서 대책회의 참석이 배제되었던 것 같고 강민창 치안본부장이 참석했다. 검찰에서는 아마 공안부장 등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와 관련 이해구 의원은 자신과 정형근 의원이 당시 했던 역할에 대해 묻자 “지난 일은 말하고 싶지 않다”면서 “정의원 건은 여야 대화와 정치로 풀어야 하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관련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적어도 정형근 단장은 당시 관계기관 실무대책회의에 참석해 안기부 의견을 전달했을 뿐만 아니라 사건을 덮기 위해 검찰 수사팀에 구형량을 낮춰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안기부 대공수사국 정형근 수사단장과 치안본부 박처원 대공수사단장의 관계다. 안검사의 일기에 보면 안상수 검사가 87년 1월16일 상부의 지시로 남산 안기부에 불려가 J단장(정형근 단장)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정형근과 박처원 치안감의 긴밀관계

“만나는 대상이 친구지간이라 해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육중한 대문을 지나 으스스한 집무실에서 기다리던 J단장을 반갑게 만났더니 대뜸 옆방에 치안본부의 박처원 치안감이 와 있다고 귀띔하면서 ‘경찰에서는 고문사실이 없다는데 부검해 보니 어떻더냐’고 물었다. 나는 부검결과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J단장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박처원 치안감이 안기부의 정형근 단장한테 사건의 축소은폐를 요청한 것은 두 사람의 긴밀한 업무 관계로 볼 때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85년 당시 재야 인사 김근태씨(현 국민회의 부총재)를 고문한 이근안 경감의 자수를 계기로 퇴직 후 10억원을 받은 사실이 최근 드러난 박처원 치안감에 대한 검찰 조사에서도 밝혀지고 있지만, 당시 안기부 정형근 단장은 경찰 대공수사단의 김근태씨 고문수사를 배후에서 지휘했음이 드러나고 있다. 당시는 안기부가 막대한 대공정보비와 수사공작비로 경찰(대공수사단)을 주무르던 시절이다.

영등포교도소에 수감중이던 고문 경관 조한경·강진규 두 사람은 87년 3월7일 갑자기 의정부교도소로 이감된다. 죄를 뒤집어쓰게 된 두 사람이 심경에 변화를 일으켜 2월 중순 면회온 유정방 경정에게 ‘양심선언’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박처원 치안감은 이감 다음날 의정부로 부하들을 찾아가 조용히 있으라고 회유했다.

당시 안기부는 경찰 상급자들이 이들을 수시로 찾아가 회유·설득할 수 있는 특별면회를 교도소측에 요청했었다. 그러나 이들의 태도가 완강하자 박처원 치안감은 4월초 조한경·강진규 명의로 가입한 2억원짜리 신탁예금증서를 들고 의정부로 찾아가 회유하기까지 했다.

당시 2차 사건을 수사한 대검 중수부는 이 돈의 출처에 대해 “박치안감이 직접 관리하는 수사공작비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공작비’를 폭로무마용으로 꺼내 쓴 박치안감에게 범인도피죄를 적용했을 뿐 공금횡령죄로 구속하지는 않았다. 당시 2억원이라는 거금은 안기부 공작비였던 것이다.

십수년 한솥밥을 먹은 상급자들이 회유해도 잘 안 되자 안기부 관계자들까지 의정부교도소를 찾아가 이들을 회유하고 은폐를 기도한 사실은 안검사의 일기에도 일부 적시되어 있다.

“4월9일 안기부의 고위 관계자가 직접 나서 피고인들(조한경·강진규)을 만났다는 사실도 듣게 되었다. 아마 안기부측에서는 4·13 호헌조치를 준비하고 있는데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당황해서 직접 뛰어든 것인 듯했다.”

이 ‘안기부 고위 관계자’가 정형근 단장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국정원의 ‘정형근 파일’에는 당시 정형근 단장이 의정부 교도소에 수감중이던 조한경 경위를 직접 찾아가 “두 사람만 관련된 것으로 하고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입을 다물어 달라”면서 금품을 제공해 회유하고 검찰·교도소측에 각종 편의를 제공토록 했다고 기록돼 있다. 당사자(조한경―정형근)로부터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짐작이 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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