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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취재|‘정형근 의혹’의 증언자들

“파이프담배 문 정형근이 고문을 지시했다”

  • 김당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파이프담배 문 정형근이 고문을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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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프담배 문 정형근이 나를 고문했다”

심진구씨(39·경기도 안산시 부곡동)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을 둔 가장이다. 그러나 심씨는 지난 13년 동안 노동력을 상실해 아내한테 의존해 힘겹게 살아오고 있다. 86년 안기부에 끌려가 37일 동안 당한 살인적인 고문으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상처 때문이다.

전두환 군사정권의 말기인 86년 12월10일 당시 삼립식품 노동자였던 심씨는 이른바 ‘민족해방 노동자당’ 사건으로 안기부에 불법 연행되어 이듬해 1월15일까지 37일 동안 ‘살인적인 고문’을 당했다.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이 심씨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최악의 인권유린이 시작된 날이다. 더 중요한 것은 1월15일이라는 날짜다. 그날은 바로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한 다음날이다.

“그 당시에는 어디로 끌려갔는지도 몰랐어요. 나중에 말로만 듣던 남산 안기부라는 것을 알았는데, 지하실 방에 들어가자마자 군복으로 갈아입으라고 그러더니 금세 다 벗으래요. 알몸으로 발가벗긴 상태에서 뒤로 손을 젖히고 발을 소돼지처럼 묶더니 수사관 여섯명이 달려들어 아무것도 묻지 않고 무조건 두들겨패는 거예요. 그렇게 몽둥이질로 ‘기 죽이기’를 해 온몸이 늘어지게 혼을 빼놓더니 그때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너 엔엘피디알(NLPDR)이 뭔지 알아?’ ‘모르겠는데요’ 그러면 ‘이 새끼 거짓말하고 있어!’ 하며 사정없이 몽둥이가 날아왔어요. 저는 정말 그때는 NLPDR이 뭔지 몰랐거든요. ‘그러면 민족이 영어로 뭐냐?’ ‘네이션이오’ ‘이 새끼 알면서 모른 척해!’ 그렇게 영어 이니셜 하나가 나올 때마다 맞았어요. 나중에 그러대요. ‘너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은 알지?’ ‘그건 알지요’ ‘그런데 왜 NLPDR은 몰라, 이 새끼야’ 나는 그때 알았어요. 영환이가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을 NLPDR이라고 했다는 걸. 그렇게 써서 뿌렸으면 나한테 한마디 언질이라도 해줬어야지.”

심씨가 말한 영환이는 당시 먼저 잡혀온 김영환군(당시 서울대 공법4 제적)이다. 심씨가 잡혀온 지 두달 뒤인 87년 2월23일 서울지검 공안부가 발표한 이른바 민족해방노동자당 사건의 조직 그림표에는 모두 9명의 이름이 등장한다. 일반인에게는 서울대생들이 주축이 된 구국학생연맹(구학련) 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의 ‘총책’이 바로 ‘강철’ 김영환이었다.



사건 관련자 중 당시 유일한 노동자였던 심씨는 84년 처음 김영환군을 만나 자취를 하면서 김군의 대학동기인 하영옥군 등과 함께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주체사상을 학습하고 노동운동의 진로를 고민했었다. 그러다 86년 김영환씨는 ‘강철 시리즈’로 인해 수배되고, 심씨는 회사를 옮기면서 헤어졌는데 심씨가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작성해 김씨에게 보여주었던 ‘선진적 노동자의 임무’라는 문건(김군은 이 문건을 자신이 작성해 배포한 ‘강철 시리즈’에 ‘백두산’이라는 필명으로 실었었다) 때문에 주체사상과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론을 김씨에게 ‘전파’했다는 이유로 잡혀온 것이었다. 서울대 법대생을 ‘친구’로 둔 대가 치고는 너무 가혹한 것이었다.

86년 12월24일부터 87년 초까지 연말연시라 회식이 잦았던 수사관들은 술을 먹고 들어와 술냄새를 풍기며 고문을 했다. 수갑 채워서 몽둥이로 목 조르기, 목 비틀기… 고문은 끝이 없었다. 군대 가고 싶어 간 것도 아닌데 3년간 하사로 전방 근무한 것 때문에 더 맞았다. 철책 근무 하면서 대학노트 한 장 찢어서 원근법으로 그린 그림이 경기도 안성 본가에서 나오자 수사관들은 ‘월북루트 지도’라며 3년간 전방 근무하면서 제3자를 대동, 이북에 갔다왔다는 식으로 몰아 간첩 올가미를 씌우려 했다.

“수사관들은 자기들끼리 전무니 상무니 실장이니 하는 회사 직함을 썼다. 그런데 들어온 지 닷새쯤 지나 누가 들어오자 실장이라는 키 큰 사람이 갑자기 ‘단장님 오셨습니까’ 하며 정중하게 예를 갖추는 것이었다. 마도로스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문 이 낯선 남자는 내게 다가와 비꼬는 투로 물었다. ‘선진적 노동자의 임무’ 이것 네가 썼다며? 고등학교밖에 안 나온 놈이 이걸 써? 네 뒤에 있는 놈을 대!”

심씨는 뒤에 92년 남한조선노동당 사건 수사발표 때 텔레비전에 나온 정형근 수사국장을 보고 당시 파이프 담배를 물고 들어와 부하들에게 “더 족쳐!”라고 지시했던 수사단장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다시 심씨의 증언이다.

“정형근은 이근안보다 나쁘다”

“정형근 단장이 들어오고 나면 더 가혹한 고문이 가해졌다. 한번은 들어와서 이렇게 말했다. 심진구, 이제 불 때가 되었는데. 여기 들어와 15일이면 다 불어. 여기가 어딘지 알지? 여긴 국회의원도 맞아 나가는 데야. 그래야 고생하는 우리 수사관들도 특진하지. 그러고는 부하들에게 ‘간첩이라고 불 때까지 더 족쳐!’라고 고문을 독려했다. 그중에서 성고문이 제일 치욕적이었다. 손을 뒤로 한 채 목을 젖히고, 심문대 책상 위에 내 성기를 올려 놓고 몽둥이로 쳤다. 10분씩 두 차례에 걸쳐… 차라리 죽는 게 낫지, 한 대만 맞아도 기절초풍할 정도였다. 그들은 좋아하며 히히덕 거리며 즐겼다.”

안기부에서 심씨는 86년 12월10일부터 87년 1월15일까지 37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잠자는 시간 외에는 수사관들로부터 돌아가면서 계속 맞아 피오줌을 흘렸고, 잘 때는 팬티가 붙어 야전침대에 누울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그는 때리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간첩으로 모는 것은 너무 두려웠다고 한다. 정형근이 2~3일에 한번씩 들러 뒷짐진 채로 파이프 담배를 물고 나타나 “심진구! 이제 간첩이라고 불 때가 되었는데”라며 그뒤에 있을 고문을 ‘예고’하곤 했다. 그가 들렀다 간 다음에는 더 강도 높은 고문이 어김없이 가해졌기 때문이다.

“다 정형근이가 들어와서 지시해서 때리거나 고문했으니 그가 이근안보다 더 나쁜 놈이다. 쫄다구는 시키니깐 하는 일이고. 나는 정형근이 보는 앞에서도 당했다. 정형근 자신도 잔혹해서 더 이상 못보고 자리를 떴을 정도다.”

그러다 별안간 대우가 달라졌다. 하루는 “조사받느라고 수고가 많았다”며 “조사받을 때 불편했던 점이 있으면 적어라”고 설문지를 돌렸다. 병 주고 약 주기도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심씨는 지옥 같던 안기부를 떠나 구치소에 와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구치소에 갔더니 재소자 학생들이 “박종철군 살려내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심씨는 ‘간첩’이 아닌 국보법 7조3항 위반(이적표현물 제작 및 배포) 혐의만 인정되어 1심에서 검찰은 징역 5년을 구형했으나 집행유예를 받아 5개월 만에 나왔다.

신동아 2000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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