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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홍욱희의 새천년 세상읽기

新과학 논쟁 좀더 치열하게 붙어라

  • 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소장·환경학박사

新과학 논쟁 좀더 치열하게 붙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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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신과학 운동가들이 신과학을 차용고 남용하는 과정에 일부에서는 신과학적 개념과 의사과학적 또는 반과학적 개념들을 혼동하기도 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기(氣)와 기공(氣功), 수맥탐사, 공간에너지, 영구기관, 물질이동, 심령치료, 각종 무속행위, 풍수와 같이 그동안 현대 과학의 영역 바깥에 머물던 분야를 신과학에 포함하는가 하면(이런 신과학을 B형 신과학이라고 하자), 또 어떤 사람은 환경 보전, 생명 사상, 여성 운동 등에 연관시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과학으로 신과학을 말하기도 했다.

1980년대 이후 서구에서 신과학은 이처럼 한편으로는 혼란스러운 과학의 한 사조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과학계를 자극해서 과학계가 새로운 탐구의 영역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견인차 구실을 하면서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그렇지만 서구 과학계가 A형 신과학에 대해서 처음부터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과학사가들은 외견상으로는 가장 진보적인 것처럼 보이는 과학계에서조차 기존 학설이나 이론에 도전하는 새로운 주장들은 외면받기 일쑤라는 점을 곧잘 지적하는데, 신과학 이론 대부분이 처음에는 그런 싸늘한 대접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투철한 합리성과 논리성을 바탕으로 하는 서구 과학계가 이런 중요한 이론들을 홀대했던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시스템 이론, 공생진화설, 가이아 이론, 비평형열역학, 카오스 등 무수히 많은 신과학 이론이 점차 과학계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서구 과학계가 중국 한의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지도 이미 오래이며, 그동안 외면해왔던 대체의학에 대해서 최근에는 미국 정부가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런 사실들은 향후 신과학의 발전에 커다란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1970년대 말엽에 신과학 개념이 처음 소개됐다. 우리 나라에 신과학을 처음 소개한 사람은 당시 신과학의 국내 보급을 위해서 직접 범양사출판부를 설립했던 고(故) 이성범(李成範) 범양사 회장으로 이분의 주도하에 저명한 국내 과학자들이 다수 참여해서 신과학 운동에 불을 지폈다.



범양사출판부를 중심으로 한 신과학 운동은 앞에서 설명한 A형 신과학을 국내 학계에 보급했으며, 서구에서 전개됐던 시민운동 차원의 신과학 운동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이성범 회장이 막대한 사재를 출연하면서까지 신과학을 국내에 보급하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자신이 지극한 휴머니스트였던 이회장은 환원주의에 치우쳐 발전해온 현대 과학이 인간성을 피폐하게 하고 환경오염을 부추겨서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할 수도 있다는 우려와, 그런 절박한 상황인데도 국내 과학계가 이런 문제점을 별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당혹감을 지인들에게 자주 피력하곤 했는데, 이런 조바심이 노구를 신과학 운동에 뛰어들게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1978년 설립 이래 지금까지 범양사출판부는 신과학 이론을 소개하는 단행본을 꾸준히 발간하고 있으며 1992년부터는 ‘과학사상’이라는 계간지를 내고 있다. 필자도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과학사상’은 일부 비판자들이 공격하는 것처럼 신과학 보급을 위한 잡지가 아니라 현대과학의 올바른 이해와 그 합리적인 발전 방향을 꾀하고자 노력하는 과학교양지다. 다만 이런 편집 방침에 따라서 과학의 논리성과 합리성을 견지하는 글이라면 신과학에 대한 기사도 게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정신과학학회와 그 비판자들

80년대가 지나고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나라에서도 신과학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고조되기 시작했다. 그 동안 범양사출판부가 독점하다시피 출판하던 신과학 관련 서적들이 여러 출판사에서 발간되기 시작했고 사회적으로는 시민단체의 활성화와 함께 과거 60, 70년대에 서구 사회를 휩쓸었던 기(氣), 요가, 단학, 명상 등의 심신수련법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또 소위 UFO, 사후세계, 영매, 텔레파시와 염력 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면서 이와 관련한 서적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런 B형 신과학의 범람은 이 분야 전문출판사인 정신세계사를 국내 굴지의 출판사로 성장하게 했다.

과학계에서는 이런 사회적 시류에 편승해서 일단의 연구자들에 의해 1994년에 한국정신과학학회라는 학술단체가 설립됐다. 그들은 자신들의 학회설립 취지를 “인간과 자연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정신능력과 자연현상 가운데에는 기존 과학에서 무시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능력과 현상들이 있다. … 한국정신과학학회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와 깨달음을 바탕으로 서양의 기계론적 사고체계에서 벗어나 동양의 전체론적 사고체계 아래 ① 기존 과학이 설명할 수 없었던 다양한 정신현상과 자연현상을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과학적 패러다임의 창출과 ②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신과학 기술의 개발 및 ③ 인간에 내재하는 무한한 잠재능력을 개발하여 인류사회에 응용할 수 있는 새로운 과학을 창출한다”라고 명시했다.

한국정신과학학회는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① 전통사상 연구 ② 생체 기과학 연구 ③ 시공간 기과학 연구 ④ 잠재능력 연구 등을 수행하는 것을 임무로 삼고, B형 신과학 연구의 본산임을 자처하고 있다. 특히 이 학회 이사인 방건웅 박사는 1997년에 ‘신과학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저서를 발간한 바 있는데, 이 책에서 그는 물에 정보가 각인된다는 이론, 원적외선의 치료 효과, 영구기관, 맹물로 가는 무공해 자동차, 중력제어장치 등 현대 과학에서 인정하지 않는 내용들을 무수히 인용하면서 그것들을 신과학의 업적으로 포장했다. 한국정신과학학회와 방건웅 박사의 주장에 따른다면 그들이 지칭하는 신과학은 분명히 B형 신과학으로 이는 범양사출판부를 통해 소개되는 A형 신과학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정신과학학회는 나날이 그 세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그래서 급기야 1997년에는 과학기술부의 지원으로 자신들이 주장하는 신과학 분야의 연구 확대를 위한 연구기획과제를 수행하기에 이르렀고, 1998년부터는 정치권과 연계해서 소위 ‘정신과학진흥육성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법안의 발의자로 무려 19명이나 되는 국회의원들이 나섰다고 한다.

신과학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나 우려의 글들은 한국정신과학학회가 발족한 이후 간간이 있어왔지만, 본격적인 비판은 숙명여대 교수를 퇴임한 강건일 박사가 1998년에 ‘신과학은 없다’라는 저서를 발간한 데에서 비롯됐다. 강박사는 1999년에도 ‘신과학 바로 알기’라는 저서를 내 한국정신과학학회에서 다루는 신과학을 온갖 마술·초정상 현상의 쓰레기 과학으로 비판했다. 초정상 현상이란 텔레파시, 기치료, 염력, 피라미드 파워 등 과학적으로 그 실재가 입증되지 않았거나 존재가 부정된 현상들을 말한다.

강박사의 저서들에는 범양사출판부에서 발간한 신과학 관련 저서들과 계간 ‘과학사상’을 비판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특히 저자는 ‘과학사상’을 반과학적인 신과학 논리를 교묘하게 포장해서 국내에 전파시키는 못된 잡지로 치부하고 있는 듯한데, 이는 A형 신과학과 B형 신과학을 구분하지 않고 무차별 공격하고자 하는 의도 때문인 듯하다. 과학평론가인 이인식씨도 최근 강박사와 비슷한 관점에서 신과학을 공격하는 글을 모 잡지에 실은 바 있다.

신과학 논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최근 벌어지고 있는 신과학 관련 논쟁은 그것을 지지하는 쪽이나 부정하는 쪽이나 모두 논문과 저서를 통해서 자신의 주장을 당당하게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그동안 이런 유의 공개적인 논쟁이 별로 없었던 과학계에서는 놀라운 일로 치부될 만하다. 그렇지만 이런 식의 논쟁이 우리에게 아직 익숙하지 않았으니만큼 이 논쟁에서도 혼란스러운 점들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먼저, 신과학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강건일 박사의 주장에서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가 부족함을 여러 군데에서 발견할 수 있다. 후작인 ‘신과학 바로 알기’에서는 그 전작에 해당하는 ‘신과학은 없다’에 비교해서 훨씬 더 세련된 논리를 폈지만, 이 책의 상당 부분에서는 여전히 저자가 과연 신과학을 부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신과학 자체를 설명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없을 정도로 저자의 주장과 다루는 주제에 대한 설명이 중첩돼 있다. 만약 “한국정신과학학회에서 다루는 신과학은 반과학과 의사과학에 다름아니다”라는 신랄한 비판이 기재된 이 책의 맨 뒷장을 제외하고 본다면 ‘신과학 바로 알기’는 제목 그대로 신과학에 대한 해설서로 사용될 수도 있음직하다.

둘째, 자신들이 수행하고 있는 신과학 연구에 대해서 그동안 두 차례의 단행본을 통해 혹독한 비판에 시달렸던 한국정신과학학회라면 지금쯤 이에 대한 반박을 해야 할 터인데, 아직은 그런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강박사의 지적에 따르면 정신과학학회에는 무려 210명의 박사급 과학자들이 가입해 있다고 한다. 만약 이른 시일 내에 그들 중 누군가가 강박사의 비판에 대해 설득력 있는 반론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한국정신과학학회는 해체되어 마땅하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학문에 대해서 그것이 반과학이자 의사과학이라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정도의 매도를 감수한다는 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자의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는 어느 한쪽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적어도 과학계의 한 집단이 다른 편으로부터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혹평을 들었다면 마땅히 반론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논쟁이 없는 사회라면, 아니 과학계라면 발전을 기대할 수 없지 않겠는가.

셋째, 그동안의 신과학 논쟁에서는 우리 나라의 여느 논쟁과 마찬가지로 논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서 엄격한 경계를 설정하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크다. A형 신과학적 지식의 보급에 힘써왔던 범양사출판부의 저서들이나 계간 ‘과학사상’의 취지는 명백하다. 그 동안 환원주의적 사고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물질적 풍요를 가져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반대 급부로 인간성의 쇠퇴와 환경오염을 부추겼던 현대 과학을 반성하고 현대 과학이 나아갈 대안으로 전일주의적 관점에서 얻어진 새로운 과학이론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것이 그 소임의 전부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범양사출판부 쪽에서 주장하는 신과학은 현대 과학의 범주 속에 귀속된다. 다시 말해서 ‘현대과학이 무시하고 있거나 인정하지 않고 있는 자연계의 능력과 현상들’에 대한 연구를 주장하는 정신과학학회 쪽의 신과학과는 전혀 그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 양 진영의 신과학 개념이 이렇게 다른데도 신과학 공격의 기수를 자처하는 강건일 박사나 기타 비판자들이 양자를 구분하지 않고 한데 묶어서 비판을 가하고 있는 점은 안타깝기조차 하다.

결론적으로, 최근 진행되고 있는 신과학을 둘러싼 과학계의 논쟁은 그 자체가 좋은 논쟁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격렬성과 진지성을 충분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 과학자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관심을 갖고 지켜볼 만하다. 필자는 이런 논쟁을 통해서만이 우리 과학계는 물론 우리 사회 전체도 건전한 토론문화를 배양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사족 한마디를 덧붙이자. 우리 과학계의 실정에 박사학위를 소지한 과학자 210명이 가입한 학회라면 결코 작은 집단이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과학자들이 우리 과학계가 반과학으로 그토록 부정하고 있는 B형 신과학 - 그들은 정신과학이니 기과학이니 하는 용어로 부르지만 - 을 굳이 연구하고자 별도로 모임을 결성할 만큼, 그렇게 우리 과학계가 한가로울까? 과학계가 그만큼 한가로운지 아니면 그 과학자들이 한가로운지 한번 물어볼 일이다.

신동아 200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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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소장·환경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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