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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논단|美·유럽 언론인의 불꽃 튀는 논쟁

세계화, 기묘하고 멋진 신세계?

세계화, 기묘하고 멋진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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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프리드먼

이그나시오 라모네의 도전적이고 감정이 섞인 반(反)세계화론에도 군데군데 일리는 있다. 이에 대해 나름대로 대꾸해보겠다.

라모네는 냉전이 국제체제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나는 이 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1946년부터 1989년까지 벌어진 모든 일, 예를 들어 항공운송이나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을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냉전이 국제체제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제체제라고 해서 어떤 특정 기간에 일어난 모든 일을 설명할 수는 없다. 국제체제라 함은 다른 무엇보다도 더 많은 나라와 지역의 국내 정치나 국제관계 형성에 영향을 주는 지배적인 사상, 힘의 구조, 그리고 경제 유형이나 법칙의 총합을 말하는 것이다.

냉전은 이런 정의에 꼭맞는 국제체제이며 프랑스는 독특하게도, 양대 진영을 잇는 건설적인 교량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제 이 옛질서가 사라졌으니 프랑스는 오늘날의 세계화 체제 안에서 전과 마찬가지로 독특한 틈새를 찾고 있음에 틀림없다. 냉전 때와 마찬가지로 프랑스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이 새로운 체제와 관련해 자국의 위상을 정리해야 한다. ‘르몽드 디플로마띠끄’의 지면에서 읽을 수 있는 세계화에 대한 강박관념은 프랑스가 실제로 이런 위상 정리에 골몰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햄버거와 코소보



라모네는 내가 “각 민족, 종교, 그리고 인종집단 중에는 … 세계화에 극구 반대하는 집단이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의 졸저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는 다섯 장이나 할애해서 이러한 반대 기류를 서술했다. 이 책의 마지막 바로 전 장은 내가 왜 세계화를 되돌이킬 수 있다고 믿고 있는가를 설명하면서 세계화에 대한 주요 위협 요인으로 아래 다섯 가지를 밝히고 있다.

첫째, 세계화는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한마디로 “너무 힘들게“ 느껴질지 모른다. 둘째, 세계화는 “너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소수의 사람들이 세계 전체의 연결망을 교란할 수 있다. 셋째, 세계화는 사람들의 생활을 “심하게 침해할 수 있다.” 넷째, 세계화는 “너무 많은 이에게 너무 불공평할 수 있다.” 다섯째, 세계화는 “너무나 비인간적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세계화에 대한 나의 접근방식이 월트 디즈니식 환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솔직히 말해 나는 세계화의 부정적 측면에 대해서는 라모네보다 더 많은 사례를 거론할 수 있고, 실제 그렇게 했다. 세계화가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라모네처럼 사람들에게 부여된 새로운 기회를 무시하지는 않았다. 부유한 몇몇을 위한 기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이테크 산업에 종사하는 인도의 방갈로르나, 타이완, 혹은 프랑스의 보르도 지방 혹은 핀란드, 중국의 해안지역, 아이다호주에 있는 근로자들에게 세계화가 어떤 기회를 가져다 주었는지를 물어보라. 그들이야말로 바로 라모네가 성토한 시장의 힘으로부터 막대한 혜택을 입은 사람들이다. 이들 근로자들이 별볼일 없는 사람은 아니잖은가? 인터넷이나 세계화에 힘입은 인권이나 환경관련 비정부기구(NGO)는 또 어떤가. 이들도 별볼일 없는 이들인가? 프랑스의 트럭운전사만 중요한가?

라모네는 내가 “세계화가 통합과 분열이라는 상반되는 두 역학을 이 세계에 강요하고 있음을 파악할 능력이 없는 듯하다”고 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그는 내가 왜 내 책의 제목을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라고 정했다고 생각하는가? 이 제목은 올리브 나무로 대표되는 공동체, 국가, 가족, 종족, 정체성(正體性)이라는 옛 가치와, 이들이 오늘날 상호작용할 수밖에 없는 세계화라는 경제적 압력이라는 갓 태어난 것의 상호작용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렉서스라는 자동차가 이 신생아를 대표한다. 몇 세대를 거쳐온 이 옛 가치들은 세계화와 충돌하기도 하고, 세계화에 기가 죽기도 하고, 세계화를 물리치기도 하고, 혹은 세계화와 균형을 맞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기도 한다.

세계화 체제가 현재로서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이 올리브 나무의 가치관을 압도하고 있다는 나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할 수는 있다. 많은 평론가들은 맥도날드를 먹는 나라들끼리는 서로 싸운 적이 없다는 나의 소견이 빗나간 것임을 코소보의 예를 들어가며 지적했다. 그러나 이 지적 또한 옳지 않다. 코소보는 어느 한 순간은 유일한 예외였지만 결국 나의 법칙을 입증해주었다. 공군력이 어떻게 발칸전쟁을 발발 78일 만에 종지부를 찍었을까? 나토의 공습이 세르비아의 탱크와 병력을 코소보 외곽으로 몰아냈기 때문일까? 결코 아니다. 공군력만으로 종전을 가능하게 한 것은 나토가 현대 유럽식 도시이며 시민 대다수가 유럽과 세계화의 일원으로 통합되기를 바라는 베오그라드의 발전소와 수도시설, 교량, 그리고 경제 인프라를 폭격했기 때문이다.

전쟁에 이긴 것은 베오그라드의 도시계획에서지 코소보의 참호에서가 아니다. 전쟁이 끝나자 베오그라드 시내에서 가장 먼저 정상을 찾은 곳은 맥도날드 매장이었다. 결국 세르비아인들이 원한 것은 햄버거였지 코소보가 아니었던 것이다.

시장은 괴물이 아니다

라모네는 세계화에 맹목적으로 반대하는 프랑스 지성인들이 흔히 빠져드는 덫에 걸렸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처럼 세계화를 혐오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약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세계화를 고수할 각오가 돼 있음을 알고는 경악한다. 미안하지만 라모네 선생, 당신과 프란츠 파농(Franz Fanon: 1925년생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철학자. 북아프리카에서 의료활동중 프랑스·알제리 전쟁이 발발하자 알제리 혁명군을 지지해 이들을 조직하는 데에 일조했다. 폭력적인 흑인인권운동을 비롯해 자신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The Wretched of the Earth)’, 즉 가지지 못한 이들을 위한 운동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 역주)을 존경하는 마음은 굴뚝 같지만,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은 디즈니월드를 가보고 싶어하지 장벽을 보길 바라지 않습니다. 그들은 디즈니의 요술궁전을 원하지 ‘레 미제라블’을 원하지 않습니다. 물어보나마나입니다.

마지막으로, 라모네는 내가 ‘보이지 않는 시장의 손’이 세계화에서 파생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했다는데, 그런 사고방식은 제쳐 놓더라도 도대체 어디서 그런 인용을 할 수 있는지 의아하다. 그 말은 내가 쓴 글에서 인용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나는 내 책의 마지막 장 전체를 할애해 세계화를 ‘민주화’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특히 미국정부가) 경제적 또 정치적으로 해야만 할 일을 거론했다.

오늘날 시장의 힘과 ‘전자 무리’가 강력해진 탓에 이들이 때때로 정부와 경쟁을 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절대적으로 ‘그렇다’다. 하지만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거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단연코 ‘아니다’다. 라모네는 헤지펀드(hedge fund)와 고슴도치(hedgehog)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런 혼동이 어리석을 정도로 시장을 마수(魔獸)처럼 보게 하는 것이다. 라모네는 정부가 시장이라는 괴수 앞에 무력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반론을 편 라모네의 열정에는 감사하지만, 그는 내가 세계화를 분석한 것을 마치 내가 이를 옹호하는 양 오해하고 있다. 주의깊게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겠지만 내 책은 세계화를 찬양하거나 비방하려고 쓴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세상과 그 뼈대가 되는 두드러진 국제체제(내가 개발하지도 않았고 내가 중단할 능력도 없는 기술력에 의해 가동되는 체제)에 대한 보고서다.

라모네는 세계화를 마치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여기며 은연중에 대안을 찾고자 한다. 이것이 그의 주장이다. 나는 세계화를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이 현실을 우선 이해하고, 그런 이해를 통하여 이 현실 속에서 무엇을 활용하고 어떻게 최악의 상황에 대처해 나갈까 살펴보고자 했다. 이것이 나의 주장이다.

라모네에게 털어놓을 것이 하나 있다. 나는 사실 프랑스 편이다. 무자비하고 획일적인 세계화의 물결로부터 프랑스 문화와 생활방식의 독창성과 장점을 잘 보존하기를 희망한다. 미국식 노선과 북한식 노선 사이에서 새로운 노선을 찾을 공간은 틀림없이 있다. 나는 프랑스가 나름의 중도노선을 찾기를 바란다. 하지만 ‘르몽드 디플로마띠끄’의 독자들은 아마도 라모네의 비평보다는 내 책 속에서 그 중도노선을 찾는 방법을 보게 될 것이다.

불행히도 그의 독자들은 내 책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를 프랑스어가 아닌 다른 나라 말로 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 책은 아랍어, 중국어, 독일어, 일본어, 그리고 스페인어로 나올 것이다. 주요 국가들 중에서 미국 출판업자들이 출판 계약을 하고 싶어도 출판사를 찾을 수 없는 유일한 국가가 바로 프랑스다.

[ 빅맥을 먹으라고? ]

이그나시오 라모네

토머스 프리드먼이 “대지의 저주받은 이들은 디즈니월드에 가고 싶어하지 장벽을 보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말하다니 정말 가슴이 뭉클하다. 이는 1789년 파리 시민들이 빵을 요구하며 폭동을 일으켰다는 말을 듣고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하고 헛소리한 마리 앙뜨와네뜨의 말에 버금가는 발언이라고 하겠다.

프리드먼 선생,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행한 1999년판 인간개발보고서를 다시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전 인류의 4분의 1에 달하는 13억명의 인구가 하루에 1달러도 되지 않는 돈으로 연명합니다. 디즈니월드에 간다고 해서 이들이 기분 나쁠 이유는 없겠지만,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이들이 바라는 것은 잘 먹고, 보기 흉하지 않은 집과 의복을 갖고, 더 나은 교육을 받고 일자리를 갖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본능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세계 도처에서 수백만의 사람이(이들의 수는 매일 매일 늘어납니다) 장벽을 치고 폭력에 호소할 각오가 돼 있습니다.

프리드먼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이런 식의 해결책에 대해서는 통탄해 마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현명하게 대처한다면 그런 사태는 결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을 위해서 세계의 부를 극소량만이라도 할당해주면 어디 병 날까? 이 부의 1%만이라도 불우한 형제들을 위해 20년간 꾸준히 배정한다면 끔찍한 고통은 사라질 것이고, 이와 더불어 고질적인 폭력도 자취를 감출 것이다.

이성의 시대에서 시장의 시대로

하지만 프리드먼도 알다시피 세계화는 이런 배려에는 눈멀고 귀먹었다. 세계화는 오히려 사회의 차별, 분열, 그리고 극단화를 악화시키고만 있다. 세계화 이전인 1960년에 세계 인구의 최부유층 20%는 최빈곤층 20%의 30배에 달하는 부를 가졌었다. 그러나 세계화가 극에 달한 1997년에 그 격차는 74배에 달했고, 이는 매일 더 크게 벌어지고만 있다. 인구 6억명을 포함하는 세계 전체 저개발국가들의 국민총생산(GNP)을 모두 합해봐야 세계 최고 갑부 3명의 전재산에도 미치지 못한다. 프리드먼 선생, 당신은 이 6억의 주민이 디즈니월드에 가고 싶은 마음밖에는 없다고 생각하겠지요.

세계화에 부정적인 면모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화가 진행된 지난 15년 동안 세계의 절반인 80여개국에서 1인당 소득이 감소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 있습니다. 소련 공산주의가 붕괴하고 서방세계가 옛 소련 경제를 위해서 자신들의 기적과도 같은 치유책(다시 말해 프리드먼 당신 같은 이들이 말하는 맥도날드 매장 설립 같은 것을 말합니다)을 공언한 이후 2억9000만명의 옛 소련 인구 중 1억5000만명이 빈곤의 나락에 빠졌다는 사실은 어떻게 보십니까? 프리드먼 선생, 당신이 미망(迷妄)에서 벗어나면 세계화가 시대의 말기증세임을 아마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세계화는 (현대의 신기술로 인한) 산업시대의 종말이며 (금융혁명으로 인한) 1차 자본주의 혁명의 종말인 동시에 18세기 철학자들이 정의한 이성(理性)에 의해 작동하는 지성시대의 종말이다. 이성은 근대 정치사상을 낳았고 미국과 프랑스 혁명을 일으켰다. 하지만 국가, 사회, 산업, 민족주의, 사회주의 등 근대 이성이 낳은 거의 모든 것이 큰 변화를 겪어왔다. 정치철학의 관점에서 보아 이 전환은 큰 의미를 갖는다. 고대부터 인류는 신과 이성이라는 세상의 원칙을 바꾸는 양대 요인을 보아왔는데, 이제부터는 시장이 그 지위를 이어 받게 된 것이다.

이제 시장의 승리와 세계화의 득세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면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간에 불가피한 사생결단이 벌어지지 않을까 두렵다. 자본주의는 부와 경제력을 소수 집단의 수중으로 무자비하게 몰아주었다. 여기서 근본적인 의문이 생긴다. 세계 인구의 대다수가 소수 부유층의 지배를 용인하게 하려면 얼마만큼의 부를 재분배해야 할까? 문제는, 프리드먼 선생, 시장은 이런 재분배 기능을 하지 못하리란 것입니다. 세계 모든 곳에서 세계화는 복지국가를 거덜내고 있으니까요.

어찌 할까요? 어떻게 하면 인류의 절반이 폭동을 일으키고 폭력을 선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요? 프리드먼 선생, 당신의 대답은 뻔합니다. 빅맥을 주고 디즈니월드를 구경시켜주면 된다는 것이겠지요.

신동아 2000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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