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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샌드위치 세대’ 40대의 흔들림

중년의 벽, 좌절과 도약의 갈림길

  • 안영배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중년의 벽, 좌절과 도약의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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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직급 파괴와 서열 파괴가 진행중인 기업체에 남아 있는 40대가 받는 압박감은 심각할 정도다. 지난해 정기인사에서 이사 승진을 기대했다가 물거품이 된 모 재벌그룹 김모부장(46)은 위로는 나이 어린 상사들과 아래로는 신사고로 무장한 젊은 직원들을 ‘모시느라’ 하루하루가 피곤하다고 털어놓는다.

“얼마 전 말도 없이 사라진 부하직원을 나무라다가 ‘휴가원을 전자결재로 이미 냈다’는 말에 완전히 왕따당한 기분이었다. 선배 세대들은 경험이 자산이 되었지만 우리가 배운 아날로그 사고는 요즘 디지털 세대를 지시할 수도 교육할 수도 없다. 오히려 세상의 변화에 장애가 되는 것 같은 비참한 기분이 든다.”

또 다른 재벌회사의 이모이사는 얼마 전 사장이 주재하는 회의에 참석했다가 심한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사장과 30대 직원들이 나누는 인터넷 관련 사업 얘기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장이 인터넷에 언제 그리 박식해졌는지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자신은 말 한번 잘못했다가 찍힐 것 같아 그냥 아는 척 고개만 끄덕거리다 나와야만 했다고 한다.

이들은 벤처가 주도하는 부의 창출에도 소외되고 있다. 1500여 벤처기업들이 몰려 있는 서울 강남 테헤란로의 주축세대는 20대와 30대들이다. 35세면 테헤란로 벤처밸리에선 환갑에 속한다고 한다. 모그룹 부장 김모씨(45)는 “최근 벤처업체로 옮길까 하고 이곳저곳을 알아보았는데 사장부터 직원들 나이가 보통 20~30대여서 채용된다 해도 버티기가 힘들 것 같아 포기했다”고 말했다.

직장에서 이리저리 치이는데다 가정생활까지 위기를 맞은 40대 부장도 있다. 모 중견기업에 근무하는 이모씨는 모진 정리해고 태풍에서 살아남은 뒤 지난해 초 지방으로 발령을 받았다. 부인과 아이들을 서울에 둔 채 지방에서 생활하며 한 달에 집에 들르는 횟수가 3~4일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게 6개월을 지내다 보니 아내와 서먹서먹해졌고, 나중에는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는지 갑작스럽게 이혼을 요구당했다. 그는 ‘남성의 전화’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했다. 아내와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지방 생활도 마다하지 않으며 뼈가 빠지게 일하다가 오히려 아내로부터 버림받은 것이 너무 서럽다고 전화기를 부여잡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상황은 40대들에게 계속 악화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경제가 회복기에 접어들었다고는 하지만 40대를 겨냥한 정리해고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근로자 100명 이상 기업 286개사를 상대로 ‘고용관리실태’를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 기업들은 회사 내 과잉인력 세대로 40대(38.7%)를 1순위로 꼽았다. 실제로 올 초 모제약회사는 부차장급 간부사원 20여명을 감축하면서 40대 부장급 사원은 전원 퇴직시키는 ‘40대 대학살극’을 벌였다.

이처럼 오늘날의 40대는 IMF 이후 갑자기 달라진 ‘대접’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는 세대인 것이다. 능력과 전문성을 중시하는 ‘평생직업’시대로 접어들면서 자칫하면 조직인으로 살아남기조차 힘겨워졌다. 평범한 40대 중년남성들의 회한과 정서를 노래하는 황지우의 시집(‘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이 그대로 이들의 현 상황을 대변한다.

‘주민등록번호란을 쓰다가 고개를 든/내가 나이에 당황하고 있을 때(중략)/나는 등뒤에서 누군가, 더 늦기 전에/준비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11월의 나무’ 중에서)

40대 계층 공동화 현상

그나마 직장에 남아 있는 40대는 행복한 편이다. IMF체제를 전후해 감원의 집중 타깃이 된 40대들이 오랫동안 일자리를 잃고 정상위치로 복귀하지 못하면서 계층이 공동화(空洞化)하는 새로운 사회문제까지 낳고 있다.

모 재벌그룹 중견간부로 있다 98년에 명예퇴직을 한 전직 부장 이모씨(47)는 대리점 창업을 회사에서 도와준다는 조건으로 사업을 벌였다가 퇴직금만 날리고 문을 닫았다.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고 있으나 이렇다 할 기술이 없는 그에게 쉽게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요즘엔 주차관리원이나 아파트 경비직을 알아보고 있으나 그것도 신통치 않다.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세 딸의 학비와 생활비 부담 때문에 아내와도 자주 말다툼을 벌인다는 그는 요즘엔 아예 집을 나와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회사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과 대화할 시간도 가지지 못했고, 아내는 아내대로 잔뜩 불만이 쌓여 있어서 가정에서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음을 지금에야 깨달았다고 한다.

실제로 관리직 이상 임직원들의 재취업 창구 구실을 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 고급인력정보센터 인재풀 관계자는 “40대 재취업 희망자가 가장 많지만 취업은 하늘에 별따기”라고 말한다. 구직자들은 대부분 사무관리직인 데 반해 그나마 있는 구인업체는 40대들에게도 해외마케팅이나 정보통신 전문지식을 요구하고 있어 구인과 구직 사이에 괴리가 크다는 것.

인력중개회사의 한 헤드헌터는 “요즘 잘 나가는 인력은 디지털 마인드가 돼 있는 30대”이며 “심지어 어떤 회사에서는 45세 이상이면 아예 이력서도 안 받는다”고 전했다.그래서 재기를 노리며 재취업 훈련을 받는 40대 실업자들 사이에는 “우리 직업은 재취업 교육 수강생”이라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가 떠돌고 있다. 인터넷 분야 재취업 교육을 받는 한 수강생은 “교육받는 도중 하나둘 취업해서 나가는 사람은 모두 30대들이고, 강좌가 끝나갈 때쯤이면 교실에는 40대만 남는다”고 했다.

40대 실업자 중에는 노숙이나 자살 등 극단적 방법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시가 지난해 4~6월까지 조사한 노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40대가 36.2%로 가장 많았고, 통계청이 발표한 ‘98년 사망원인 통계’에는 40대 사망 원인으로 ‘자살’이 처음 포함되기도 했다.

강원도 태백시 태성대학 정채기 교수(한국남성학연구회장)는 사회에서 성공했다고 하는 중년 남성들도 40대의 흔들림에 자아상실의 위기감을 맛보는데, 실업자들은 그에 더해 생존 문제로 헤매다 보면 자포자기해 도박 마약 등 반사회적이고 비도덕적인 일에 함몰될 위험이 크다고 경고한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이제 본격적으로 ‘남성운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절실한 욕망에 충실하라”

40대 문제와 관련해 서울대 최성재 교수(사회복지학)는 “경제 성장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한국의 40대들은 눈앞의 업무에 급급했지 재교육 한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했다”며 “사람말고는 팔 것이 없는 우리 사회에서 40대의 퇴출은 국가적 낭비이므로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키운다는 차원에서 정부와 기업은 이들을 위한 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전문가들은 “인체에도 허리가 중요하듯 세대의 허리인 40대가 사장되면 그에 버금가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일하려는 의지가 있고 경험이 있는 이들의 한 번 낙오가 영원한 낙오가 되지 않도록 사회적 완충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여하간 이 땅의 40대는 워낙 빠른 속도로 변화해가는 사회에서 낙오하기가 제일 쉬운 위치에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기회와 도약의 시기이기도 하다는 게 미래산업 정문술 사장(62)의 말이다.

공무원에서 강제해직된 뒤 실업자 생활을 하다가 40대 늦깎이로 창업, 국내 최고의 벤처 기업을 일으킨 그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중년의 고독훈련’을 강조한다.

“이제까지 누려운 안정된 생활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주위의 모든 것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오로지 자신의 선택과 판단 아래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먼저 고독과 싸워 이기는 게 전제되어야 한다.”

한국 IBM에서 경영혁신 실무를 총괄하는 구본형씨(변화경영 전문가) 역시 베스트셀러인 저서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없다는 잘못된 깨달음으로 우리를 몰아간 것은, 우리를 기존 체제에 묶어두고 통제하고 싶어 하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세상이란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일’과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가족을 위해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을 하더라도 직장에서 내몰리고 있다. IMF의 시기이기 때문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인간의 노동이 더 이상 중요한 생산 요소가 아닌 사회로 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기업이 마지막까지 잡아두려고 하는 사람들은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욕망이 그들을 한 길로 달려오게 했고, 결국 스스로를 전문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창조의 힘은 욕망에서 나온다. 욕망은 깊고 깊은 곳에 있다. 자신이 움켜잡을 수 없는 모습으로 숨어 있다. 그것은 단순한 소망이나 충동이 아니다. 너무나 절실해 우리를 행동으로 내모는 그런 것이다. 따라서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욕망을 받아들임으로써 자랑스러운 자아를 발견하게 되고 그때 자신의 삶이 무엇이었는지 말할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성공한 두 기업인의 말은 정신과 의사의 충고로도 들릴 법하다. 실제로 남성 심리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정신과 의사들은 중년의 바람직한 태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젊었을 때(혹은 어릴 때) 꿈꾸던 모습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바로 그 모습이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의 원형(原形)이다. 거기서 마음 깊은 곳의 실체를 명확하게 확인한 다음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가’라는 생각보다는‘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할까’를 느껴보아야 한다. 그러나 절대 피해야 할 점은, 자기 마음의 실체를 보기 전에 현실적인 이유를 들이대는 것이다. 현실적 이유들은 자기 자신과 원형과의 만남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중년에 새로운 꿈이 없는 사람은 절반의 실패를 감수해야 한다. 중년은 ‘깊이 있는 사춘기’이며 ‘인생의 절정’이기 때문이다.”

신동아 2000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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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배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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