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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샌드위치 세대’ 40대의 흔들림

정신과 의사의 중년남성 관찰기

  • 정혜선 정신과 전문의·마음과 마음 원장

정신과 의사의 중년남성 관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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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간 이런 40대 남성 현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공한 사람이든 그렇지 못한 사람이든 인간사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심리적 동요다. 그런데 왜 40대 남자들은 이런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일까. 남자들은 30대 초반까지는 교육을 받고 직업을 선택하여 실생활의 기반을 다지고 결혼하는 등 삶의 외형적인 틀을 갖추는 준비에 모든 에너지를 투입한다.

그 결과 삶의 외형이 어느 정도 잡힌 사람들은 앞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어디에 쏟을지 몰라 방향을 잃고 정신적인 공황 에 빠지게 된다. 이때 남자들은 일 중심의 가치관을 넘어서 자유로운 내면적 자아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이런 변화는 30대 중반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이러한 중년의 변화는 심리적·생물학적으로도 입증된다. 원래 남성의 몸 속에는 다량의 남성호르몬과 아주 소량의 여성호르몬이 있고, 여성은 그 반대다. 그런데 묘하게도 30대 중반이 지나면서부터 남자에게는 남성 호르몬이 감소하고 여성호르몬이 증가하게 된다. 반대로 여자들은 여성호르몬이 감소하고 남성호르몬이 증가한다.

그 결과 여자는 점점 독립적이고 주도적이게 되며 남자는 예민하고 감성적이게 된다. 그런데 여자들이 독립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은 누구나 긍정적인 발전으로 간주하지만, 남자들이 감성적으로 변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우선 스스로가 자신의 그런 변화를 ‘약해진’ 증거로 보고 감추려고만 한다. 또 아내는 안정된 가정을 이룬 남편이 지금에 와서 흔들리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자 인생에서 40대를 정점으로 이루어지는 감성적인 변화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외형적이고 객관적인 삶에 치우친 그들의 삶에 내면적이고 주관적인 요소가 늘어나면서 한 인간의 삶이 균형을 잡아가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남자들의 외도가 많아지는 것도 따지고 보면 40대 남자들의 감성화와 관련이 깊다. 한 예를 들어보자. 일상생활에서는 좀처럼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가장 솔직하고 발가벗은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으로 정신의학에서는 ‘자유연상’이나 ‘심리극’을 이용하는데, 40대 남자 8명이 마음과 마음을 연결시켜주는 심리극에 참가해 눈을 감고 의자에 앉았다. 실내에는 음악이 낮게 흐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안락한 곳으로 여행을 갑니다. 비행기나 기차, 배를 타고 갈 수도 있고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할 수도 있습니다.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데리고 가도 좋습니다.…다 왔습니다. 이곳에서 마음껏 지내십시오. 세 시간 후에는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음악 속에 푹 파묻힌 듯한 반최면의 상태에서 그들은 마음속 깊이 숨겨놓은 욕구들을 펼쳐보였다. 놀랍게도 8명의 남자중 6명이 이완된 상태의 자유연상에서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떠올렸다. 다른 연령층의 경우 부모나 형제에 대한 억눌렸던 감정들, 혹은 그들과 연관된 어린 시절의 한 때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상상속의 여행을 마치고 난 한 40대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파란 하늘 아래 잔디가 끝없이 펼쳐진 곳으로 갔습니다. 원두막 같은 곳이 있어서 큰 대자로 누워 나긋한 실바람을 즐기며 낮잠도 잤습니다. 누굴 데려갈 수 있다고 해서 처음엔 아내가 떠올랐지만 로맨틱한 분위기에는 어울릴 것 같지 않아서 그만뒀습니다. 나를 편하게 해줄 수 있는 여자가 있다면 세 시간만이라도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40대 중반에 들어선 한 부장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상상에 흠뻑 도취된 듯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어떤 여자와 같이 백사장을 걷고 있었습니다. 아주 매력적이고 조용한 여자인 것 같았습니다. 내가 알던 사람은 아니구요. 그런 느낌의 여자와 같이 이야기를 실컷 하고 왔습니다.”

40대 남자의 바람

연애 때나 결혼 초의 남자들, 또 바람 피우는 아버지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이 있는 남자들은 결혼 후에 외도하는 남자들을 심하다 싶을 정도로 몰아붙인다. 자기는 절대로 그러지 않으리라는 맹세와 함께. 그러나 그것도 40이 되기 전까지의 얘기다.

“우리 나이가 되면 아내 외에 딴 여자를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왜 그런가요?”

그날 8명의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제기한 의문이었다. 그런데 아내들은 남편들이 자신 외에 딴 여자를 생각한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어느 회사에 다니는 서차장(42)은 저녁식사 후 오랜만에 아이들 없이 아내와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TV를 보고 있는데 드라마에서 남녀가 불륜의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가 농담처럼 아내에게 물었다.

“나한테 애인이 생기면 어떡할래?”

남편의 말을 듣고 어이없다는 듯이 0.5초 만에 용수철처럼 튀어나오는 아내의 대답.

“배 나오고 나이 들고 돈도 없는 당신같은 남자를 누가 좋아하기나 한대?”

그는 아내에게 살의를 느낄 만큼 심한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누군가와 밤새워 얘기를 나누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고백하는 40대 남성이 의외로 많다. 자신에게 철이 없다거나 어린애 같다고 비난하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공감하며 얘기를 들어줄 상대를 갈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욕구를 가지고 집으로 들어간 남자들은 거세고 공격적이며 현실적으로 변한 아내를 만날 가능성이 많다. 그럴 때 그들의 마음은 밖으로 치닫게 된다. 물론 이것은 습관적으로 외도를 일삼는 남자들의 바람기를 합리화하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떻든 40대 남자가 외도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들끓는 성욕을 못 이겨 젊은 여자나 찾는 중년의 찝찝함 정도로 매도하지만 그들이 털어놓는 속마음은 바로 그런 것이다. 어쩌면 40대 남자가 겪는 변화의 90% 이상은 ‘감성화’라는 코드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감정 표현이 열등한 남자들

그런데 정작 40대들은 그 시기를 전후해 ‘갑자기’ 찾아온 정서적이고 부드러운 감성의 세계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지 말아야 할 장소에서 느닷없이 성기가 발기될 때처럼 당혹감에 휩싸인다. 그때까지 대부분의 남자들은 감정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표현하는 것인지 등을 제대로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감정기능 발달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남자들은 선천적인 면에서나 후천적인 면에서 여자에 비해 열등하다. 먼저 선천적 측면에서 신경해부학적으로 들여다보면 남자 뇌와 여자 뇌는 조금 다르다.

남자 뇌는 객관적·논리적 추론을 담당하는 피질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데 비해, 여자 뇌는 식욕·성욕·감정의 중추인 변연계가 발달했으며 이를 중심으로 작동한다. 생리적으로 남자는 여자에 비해서 감정을 잘 느낄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후천적인 측면에서도 그렇다. 정신분석가 스톨러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남자의 성이 오히려 제2의 성이라는 이론을 제시한다. 남자의 성은 여자의 성에 비해서 훨씬 불안정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어린 아이가 태어나면 어떤 문화권에서든 아이를 돌보는 일은 여자 몫이다. 엄마든, 유모든, 집단탁아소의 보모든 대부분이 여자다. 그래서 아이들은 생의 초기에 자기를 돌봐주는 여성의 특징(부드럽고 감성적이고 포용적인 면)을 내면화하면서 심리적으로 성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여자아이들은 그런 여성성의 특징들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성장할 수 있지만 남자아이들은 서너 살부터 생각하지도 못한 도전에 직면한다. 지금까지 체득해왔던 여성의 특징들을 다 부정해야만 남자로 대우하겠다는 거대한 사회적 압력에 맞닥뜨린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자들의 마음속에 내재하는 ‘남성다움에 대한 강박관념’, 즉 ‘맨 콤플렉스’의 작동이 그것이다. 이때부터 ‘제대로 된’ 남자가 되기 위해서 사내아이들은 적극적으로 감정을 억누르고 절제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남성은 사회적으로는 대우받는 성일 수는 있지만 심리적인 측면에서 보면 인간의 본질적인 측면(여성성의 특징)을 다 뒤엎은 이후에 생긴 2차적인 성이어서 매우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남자들의 감정기능이 퇴화할 수밖에 없는 후천적 이유다.

그러니 선천적·후천적으로 감정기능이 열등한 남자들은 역으로 40대에 찾아오는 감성을 성장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40대 남자의 흔들림은 내적인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이며, 자신도 알지 못했던 깜짝 놀랄 만한 재(再)성장의 시작이다. 충분히 흔들리면서 감성의 흐름에 몸과 마음을 맡기며 내면의 길을 스스로 찾아낸 남자는 점점 유연하고도 매력적으로 변한다. 말 그대로 ‘절정의 시기’를 맞이하는 것이다.

얼핏 보면 불안정해 보이지만 더할 나위없이 감성적이고 풍요로운 시기. 그게 남자의 40대이며 남자의 삶에 행복을 느낄수 있게 해주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이런 천사의 선물을 악마로 인식하면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되고 만다.

그것은 처음 자전거 배우기에 비유할 수 있다. 초보가 자전거를 배울 때 넘어지려고 하면 반사적으로 핸들을 반대쪽으로 꺾게 된다. 그럴 때마다 귀가 따갑게 듣는 것이 넘어지려는 쪽으로 핸들을 꺾어야만 넘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모순된 말 같지만 실제로 그렇게 해야 넘어지지 않는다.

40대에 감정의 흔들림을 겪는 남자들에게도 이러한 교훈은 요긴하다. 감정 쪽으로 기우는 마음을 억지로 이성 쪽으로 돌리려다 보면 넘어져서 상처만 생기기 때문이다. 결국 40대는 ‘마음의 자전거 타기’를 익혀야 하는 시기다. 중년에 새로운 변화와 흔들림을 느끼는 것은 죄도 수치도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인생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의 나이인 것이다.

신동아 2000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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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선 정신과 전문의·마음과 마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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