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4월호

중년의 벽, 좌절과 도약의 갈림길

  • 안영배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입력2006-11-06 14:4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가전제품을 생산 판매하는 대기업의 상무 A씨. 30대에 이미 능력을 인정받아 이사로 진급, 우리 사회에서 초고속 승진 신화의 주인공으로 꼽히는 인물 중 한 명이다. 현재 마흔세 살. 능력 있는 변호사 아내(40)와 고1, 중3 딸 둘을 두고 단란하게 살았다.

    사회적으로 명예를 얻었고 회사에서 오너의 신임을 두툼히 받고 있어 잘릴 염려도 별로 없다. 이미 상당한 부를 축적한 데다 잘 나가는 아내를 두고 있어서 경제 생활도 여유만만하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어느날 갑자기 ‘중년의 흔들림’이 찾아왔다.

    “도대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회사가 생산한 냉장고 한 대, 텔레비전 한 대 더 판다는 것이 덧없이 느껴진다. 우리 회사가 판매하는 제품이 다른 회사에서 나오지 않는, 그래서 우리가 만들지 않으면 사회가 불편해할 그런 상품도 아니고… 그저 판매실적으로 내 자리를 몇 년 더 보전할 수 있다는 것 외에는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 이것저것 가릴것없이 다 때려치우고 머리 깎고 산에나 들어갔으면 좋겠다. 이제는 도를 닦아 내가 사는 의미를 찾고 싶을 뿐이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원하는 대로 한번도 살아오지 못했다는 생각에 회한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고등학교 시절 미술을 좋아하고 그림을 잘 그려 상도 여러 번 타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 서울의 최고 명문고교를 다니면서 미대에 진학한다는 것은 가족과 주위 사람에게 눈총만 받을 짓이어서 제대로 말도 꺼내보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다. 사회에 진출한 뒤에는 아내의 요구대로 자식들을 잘 키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개미같이 일해왔다. 결국 내 인생인데 내 뜻대로 살지 못했다. 너무 비참하다.”

    이와 같은 A씨의 방황은 지극히 현실적인 아내와 마찰을 빚게 됐다. 아내는 결혼 이후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A씨의 변한 모습에 당황하며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럴수록 A씨는 지독한 고독감을 느끼면서 술로 텅빈 가슴을 달랬다. 그러다가 한 젊은 여자를 만나게 됐다. 그 여인은 전적으로 A씨를 지지해주고 인정해주었다. 그녀를 만나면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받는 듯했다.



    그러나 여자 문제로 A씨와 아내의 관계가 더 나빠지고 말았다. 현재 A씨는 아내와 이혼을 고민하던 중 병원에서 심리 상담치료를 받고 있다. 한 중년 남자의 방황이 가정 해체의 위기까지 초래한 경우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올해 마흔다섯 살의 건축 감리사인 B씨는 전업주부인 아내와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6학년 아들 둘을 두고 있다. 사업 특성상 IMF 체제 때 큰 위기를 맞았으나, 이를 악물고 노력한 끝에 사무실이 정상적으로 굴러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IMF 때는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다른 생각을 할 여력이 없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허탈감에 빠져 일하기가 싫고 아예 직업을 바꾸고 싶은 생각만 가득하다.

    그 역시 ‘중년의 흔들림’을 타게 된 것이다. 어느날 B씨는 아내에게 이런 속마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아내에게 “다 늙어서 철딱서니 없는 말만 한다”는 핀잔만 들었다. 아내는 커가는 아이들에게 돈이 많이 드니 계속 벌어야 한다고 주입하듯 강조했다.

    B씨는 언제까지 아이들을 책임져야 하나 생각하니 가족까지 귀찮아졌다. 아내와 아이들로부터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도 불쑥불쑥 찾아들었다. 그러다 보니 몸에 이상까지 생겼다. 무기력, 두통, 불면, 초조,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이어 성기능 장애까지 찾아왔다. 그런 장애 증상이 B씨를 비관적인 정신 상태로 더 악화시켰다. 보다 못한 아내는 B씨를 이끌고 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 그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불혹 아닌 미혹의 나이40대

    A씨와 B씨는 ‘40대 사춘기’를 심하게 앓고 있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사례다. 과연 40대란 무엇인가? 40대는 이른바 중년(中年)이다. 이 시기의 인간형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동서양에서 언급해왔다. 프랑스의 계몽사상가인 루소(1712~1778년)는 저서 ‘에밀’에서 연령별로 인간을 탐구한 뒤 이렇게 말했다.

    “10세 때는 과자를 즐겨 먹고 20세가 되면 사랑에 눈을 뜨다가 30세가 되면 쾌락에 탐닉한다. 그러다 40세가 되면 야망을 불태우고 50세엔 욕심에 사로잡힌다.”

    40대는 야망과 야심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양의 공자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한층 본질적인 면에서 연령별 인간형을 지적한다.

    “나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세우고(志于學), 30에 주체적으로 자립했다(而立). 40에 이르러서는 미혹되지 않았고(不惑), 50에 천명을 알았다(知天命)….”

    어느 학자는 이를 공자의 역설적인 표현으로 풀이했는데, 이를 테면 40대가 가장 흔들리고 미혹(迷惑)되는 시기이므로 경계하려는 뜻에서 ‘불혹’이라는 말을 썼다는 것이다.

    이렇듯 방황과 흔들림으로 상징되는 ‘불혹의 40대’는 의학적으로 남성 갱년기가 진행되는 시기에 해당한다. 서울 영동세브란스병원 비뇨기과 최형기 교수의 말.

    “주로 42∼52세에 찾아오는 남성 갱년기는 여성 갱년기에 비해 뚜렷하지는 않지만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생산량이 20대의 절반으로 감소돼 골격·근육·피부 등에 노화가 현저하게 나타나며, 발기력 감퇴·성욕저하·피로감·발한·탈모·소화장애 등 전신증상과 현기증·안면홍조·관절통·혈압 상승 등 순환기장애가 나타난다. 또 이로 인해 기억력감퇴·우울·불면·집중력 상실·강박관념·두통·이명 등 신경정신계 증상들도 따른다.”

    최교수는 또 남성 갱년기는 개인의 건강이나 직업 환경에 따라 진행속도나 증상에 차이가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한다. 이를 테면 일반적으로 40대 남성이 발기장애를 겪을 경우 대개 갱년기 증상을 앓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는데, IMF를 겪은 이후 한국의 남성 갱년기 환자 수가 급증한 것도 바로 이런 주위 환경 때문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서울의 한 고등학교 동창회에 매년 참여하고 있는 40대 후반의 회사원 최모 부장은 “동창회에서 만난 친구 중 상당수가 신경성 위염, 과민성 대장염, 만성 두통 따위로 치료받고 있어서 다음 모임은 아예 정신병동에서 하자고 했다”라고 씁쓸히 말했다.

    고려대 심리학과 한성열 교수(50)는 심리적인 측면에서 이 시기의 남자는 내면에 억제돼 있던 여성적인 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정서적이며 의존적으로 변모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당사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가족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 역시 남성의 여성적인 변화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남성의 여성화 현상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중년기란 비교적 안정적이고 변화가 심하지 않은 시기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데다, 어릴 적부터 남성은 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찾아오는 여성적인 면에 대해 심리적 괴리감을 느낀다. 또 남자들은 감정을 다른 사람과 잘 나누지 않기 때문에 이 나이의 다른 남성들도 정도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것이 결국 스트레스로 작용해 심장마비 등 심각한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중년기 남성들은, 청소년기에 심리적인 갈등과 정서적인 혼란을 겪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중년기에 나타나는 심리적 갈등과 정서적 혼란 역시 당연한 것이며 오히려 정상적인 발달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중년은 그야말로 인생에서 ‘제2의 사춘기’이기 때문이다.

    한교수는 또 이 시기는 자신의 삶에서 지금까지 매우 중요하게 여겨온 두 영역, 즉 일과 결혼생활(사랑)에 대해서 재평가하는 시기라고 한다. 일과 결혼생활은 남자가 자신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영역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재평가 과정에 중년 남성들은 사춘기 소년처럼 심리적으로 많은 갈등과 정서적인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중년의 사랑

    특히 중년의 사랑 영역은 영화와 소설,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것처럼 중년기 방황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다. IMF시절 ‘정리 해고’와 ‘살생부’라는 험악한 상황을 힘겹게 넘긴 직장인 C씨(42)의 경우를 보자. 스스로 뛰쳐나오지 못하고 계속 회사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다는 무력감과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문제를 놓고 허탈해하던 C씨는 어느날 갑자기 서른살의 미혼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가 한눈에 반해버린 사랑이었다.

    C씨는 이 나이에도 자신에게 첫사랑과 같은 감성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감격하며 그 여자에게 깊숙이 몰입해갔다. 그 여자를 만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냥 행복했다. 잃어버린 자신의 정체성을 그녀로부터 확인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 활력이 솟았다. 희한하게도 그런 활력과 생기가 시들해진 가정생활에도 도움이 되는 것에 대해 그 자신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아내와 자식에게 애정 표현이 늘었다는 것이다. 다음은 C씨의 고백.

    “나는 그렇게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내와 연애할 때도 애정 표시를 잘 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 자신이 본래부터 황폐한 정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그 여자를 만나 사랑하면서 내면에 숨어 있던 감성을 발견했다. 그녀를 만나면 세상이 달라 보였고 길가의 쓰레기통까지 의미가 부여되면서 아름다웠다. 내가 마치 시인이 된 듯싶었다. 나에게 결혼할 수 있는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진다면 그녀와 결혼하고 싶었다. 그녀 역시 사랑이 깊어지면서 처자식이 딸린 나와 결혼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나는 나의 가정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고생을 함께 해온 아내에 대한 연민, 자식의 장래에 대한 불안감 등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면서도 가족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는 내 이중성에 대해 회의감을 느꼈다. 결국 그녀는 나를 포기했고, 마음에도 없는 남자와 후닥닥 결혼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녀를 떠나보내면서 처음으로 그녀 앞에서 남자의 눈물을 보였다.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 다시 태어나 결혼하자고 하면서 1년간의 열애에 마침표를 찍었다.”

    C씨는 지금도 자신에게 존재의 의미를 부여해준 그녀에게 고마움과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 자신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이전에 보지 못하던 자상한 남편을 보며 즐거워하는 아내와 잘 살고 있다고 말한다.

    고려대 한성열 교수는 C씨의 경우처럼 중년에 나타나는 남자의 바람기는 가정을 깨고 싶어하지는 않으면서 젊은 여성을 만나 자신이 늙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게 일반적인 경향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때 부인과 문제가 있는 남자들은 상황이 심각해진다고 한다.

    중년의 사랑 문제로 가슴앓이가 심각해져 정신과를 찾은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올해 마흔일곱 살의 D씨는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부인과 빚는 불화로 1년 전부터 좌절감에 시달려왔다. 가끔씩 약국에서 안정제를 구입해 복용해왔지만 불면과 불안이 조금씩 심해졌다.

    그러다가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자주 찾아가던 술집 아가씨와 가까워졌다. 그녀는 그의 마음을 털어놓는 유일한 상대가 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에 대한 끌림과 집착이 커져갔다. 20년이라는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상대방 아가씨도 그를 잘 따라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D씨는 평생 처음 자기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났다는 느낌이 들어 그녀를 만날 때마다 이것저것 선물을 주면서 첫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년처럼 들떴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그의 마음은 마치 자신을 필요로 하는 어린 딸을 돌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녀를 책임지기 위해 부인과 이혼하고 싶었지만 장성한 두 딸을 둔 아버지로서 결혼생활을 청산하기는 쉽지 않았다.

    심하게 갈등하던 이씨는 어린 연인과 헤어지기로 단단히 마음먹고 연락을 끊기로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감에 따라 그녀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 죄책감으로 우울증이 점점 심해졌다. 그는 최면치료로 그런 감정을 없애고 기억을 지울 수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 최면치료 전문병원을 찾았다.

    D씨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과거의 기억을 찾아보기 위해 전생퇴행요법을 받았다. 최면상태에서 자신을 조선시대 선비로 기억해낸 D씨는 술집 아가씨가 바로 자신의 외동딸로 등장하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는 그 삶에서 부인이 일찍 죽은 후 홀로 딸을 키우며 외롭게 살다가 그 딸이 출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죽기 전에는 딸을 걱정하였으며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고 했다.

    최면상태에서 이 기억을 떠올린 후 D씨는 그 아가씨에 대한 자신의 집착을 이해하게 되었고, 과도한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무렵 부인과도 좋아져 정상적인 가정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김영우 신경정신과의 최면치료 상담사례).

    정신과 전문의 김영우 박사는 40대 중년기에 접어든 사람이 이성문제로 상담하는 사례가 적지 않고, 전생(前生)의 인연을 찾아냄으로써 연인 관계를 정리하고 모범적인 가정생활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전생의 존재 유무를 떠나서 환자가 연인과 이러저러한 인연임을 인지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상처가 자연스럽게 치료된다는 것이다.

    위의 두 사례는 중년의 사랑을 해피엔드로 마무리지은 ‘아름다운’ 얘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은 이보다 험악하다. 결혼생활에서 흔들리는 중년의 실상은 우리나라 통계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98년 우리나라 이혼은 97년에 비해 3만1000여 건이나 증가한 12만4000여 건으로 집계됐고, 40대 이상 중년 부부의 파경이 38%에 달했다. 특히 전체 이혼자의 남녀 및 연령별 분류에서 40대 중년 남자의 이혼율이 1위(1000명당 24.7명)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40대 이혼이 늘어난 것은 자녀 나이와도 관계가 깊다고 한다. 30대는 자녀 때문에 참고 사는 경우가 많지만 40대는 어느 정도 성장한 자녀가 이해해주리라 믿고 이혼을 결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그만큼 40대가 위험한 시기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최근의 중년 이혼은 IMF 이후 경제 문제가 개입돼 남성이 아내로부터 이혼을 요구받는 것도 한 특징으로 자리잡고 있다.

    정리해고 바람에 실직한 박모씨(44)는 지난해 소설에서나 볼 법한 일을 아내(42)에게서 당했다. 아내는 걸핏하면 “외박한다”며 나가는가 하면, 집으로 전화를 걸어온 남자에게 “나 안 보고 싶어?” 하고 서슴없이 말하기도 했다. 결국 부부는 이혼하고 말았다.

    ‘한국 남성의 전화’ 상담소를 이끌고 있는 이옥 소장은 지난해 남성 1156명의 상담을 받았는데 이혼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40대 남성이 전체 상담자 중 44%(503명)로 1위를 기록했다고 밝힌다. 또 40대 남자의 이혼 고민 사유로는 실직 등의 경제적 무능력 및 그에 따른 아내의 가출이 35%로 압도적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아내의 외도와 부정 문제(25%), 성격 갈등(18%) 순이었다. 이옥 소장의 말.

    “남성의 전화에 고민을 호소하는 남자들은 이혼 등 가정이 파괴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미 이혼을 결심할 정도면 아예 상담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자녀들의 장래와 자신의 사회적 이미지 때문에 어떻게든 가정을 지켜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다. 놀라운 점은 아내의 불륜과 외도를 알고서도 남성 쪽에서 감수하고 가정을 끝까지 유지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직접 상담소를 찾아온 남성들을 만나보면 이 사회에서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인데 ‘내 가정만큼은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다’며 눈물을 흘린다.”

    95년부터 ‘남성의 전화’를 개설, 숱한 남성의 하소연을 들어온 이소장은 정서가 불안한 중년 남자들의 경우 감정을 해소할 줄도 모르고 어디 가서 고민을 토로할 줄도 몰라 커다란 사회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남성들은 특히 부부 사이에 이상이 생길 경우 자존심 때문에 부모 친구에게도 잘 털어놓지 않으며 극단적인 판단으로 자신과 가족을 해치는 등 반사회적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 영화 ‘해피엔드’에서 부정한 아내를 살해한 남편 등이 그런 예일 것이다.

    실제로 중년의 위기를 혹독하게 겪은 후 그 솔직한 얘기를 책(‘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학지사 번역 간행)으로 펴낸 짐 콘웨이 목사는 중년의 위기에 몰린 남자는 사회적인 전문지식과 권력 그리고 자유를 청소년보다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적대감이나 반란은 그와 관계하는 다른 모든 사람에게 지극히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편 중년기에 들어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어하는 일을 찾아가는 사례도 있다. 이것은 직업(일) 영역에서 자신을 재평가한 후 더 늦기 전에 인생을 재설계하는 경우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라

    현재 파키스탄에서 선교사로 전도 활동을 하는 이충우씨(44)가 그런 예다. 대학에서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건축현장을 누볐고, 이후 업종을 전환해 무역업으로 떼돈을 버는 등 돈과 명예를 거머쥐기 위해 30대 청춘을 보낸 이씨는 4년 전 나이 40이 되던 어느날 느닷없이 파키스탄 선교사라는 충격적인 변신을 감행했다.

    “나는 30대에 정말 열심히 일해 성공이 눈앞에 있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나 가슴 한구석이 허전했다. 과연 그것이 진정한 성공인가에 대한 회의감 같은 것이었다. 기독교를 모태신앙으로 가지고 있던 나는 어느날 예배를 보다가 거듭남을 통해 진정한 성공을 구하기로 결심하고 선교사의 길로 나서게 됐다.”

    이씨는 완강하게 반대하는 아내를 고국에 남겨 두고 세속의 모든 것을 버린 채 파키스탄으로 떠났고, 지금은 파키스탄의 빈민촌 사람들을 섬기는 기쁨으로 마음이 항상 뿌듯하다고 한다. 이 일이 세속에서 돈을 왕창 버는 일보다 더 기쁜 일일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는 것이다. 4년여의 세월을 이국에서 보내면서 흙먼지 바람에 어느새 머리가 셌지만 한 줌의 후회도 없다고 한다. 있다면 단 하나 “왜 새 삶의 시작이 이리 늦었는가” 하는 것뿐.

    나이 40에 자신의 직업만으로는 뭔가 빠진 듯싶어 다른 일로 생의 의미를 찾는 사람도 있다. 서울대와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30대 초반에 서울 강남에다 치아교정 전문병원을 세워 지금은 의사 10여 명을 둔 종합치과병원으로 성장시킨 민병진씨(47)가 그 경우. 이른바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엘리트의 전형인 민씨는 7년 전인 92년 불혹에 접어들면서 심한 ‘마흔앓이’를 겪었다.

    “나는 그때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마흔에 오히려 흔들리는 자신을 느꼈다. 20, 30대엔 그야말로 앞뒤 안 보고 내달려 의사로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입지를 마련했지만 나에겐 반대로 그때부터 뭔가 잃어가고 있다는 상실감이 밀려왔다.

    나는 만 40세가 되던 생일날 병원 문을 닫고 가출하듯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여행을 통해 깨달은 게 40~50대는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보고 주체적으로 행할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기라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절망해버리기도 쉽지만 다시 인생을 시작할 절호의 찬스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민씨는 미래엔 평균 수명이 90세까지 올라갈 것을 감안하면 40~50대는 인생의 중심, 즉 황금기에 놓인 세대라고 정의했다. 이후 민씨는 친구들을 규합해 ‘황금세대(골드 제너레이션)’라는 이름을 붙이고 세대 문화운동을 펴나가기로 결심했다.

    “황금세대가 황금빛을 내려면 무언가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 능력의 60%는 일에 쏟아붓고 나머지 40%는 자신을 재충전하는 의미 있는 일에 쓰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처음 그것을 음악에서 찾았다.”

    민씨는 서울대 재학시절 이수만, 윤형주 등과 친분을 나누며 ‘들개들’이란 밴드를 결성해 대학가를 순회했을 만큼 뛰어난 음악적 ‘끼’를 갖고 있었다. 또 보컬 실력도 수준급인 그는 지난해 9월 문화를 사랑하는 40대 모임인 ‘오버 더 레인보(Over The Rainbow)’를 결성,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재즈 음악회를 열었다. 10대와 20대의 요란한 몸부림에 짓눌리고 30대의 당당한 외침에 주눅들어, 향유할 문화의 ‘코드’를 찾지 못한 채 심각한 정체성 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의 중장년들을 격려하고 결집시키는 ‘세대 문화운동’의 첫 단추였다.

    죽을 맛인 475세대

    그리고 그는 음악회에 참석한 700여명의 청중과 더불어 ‘40대 제자리 찾기’를 선언했다. “40대는 한국 고속성장의 주역이지만 그들의 문화나 정신세계를 만들지 못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공동책임이며 지금부터라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게 이 선언의 요지다.

    민씨는 또 40대 이상을 위한 인터넷 웹사이트를 4월 중에 개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40대 이후는 디지털 갭 세대인지라, 40대 이후에 알맞은 건강과 미용 등 재미있는 아이템을 부여해 인터넷에 취미를 붙이고 디지털 마인드를 심어줌으로써 20~30대에 못지않게 21세기를 풍요롭게 맞이하자는 취지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40대 제자리 찾기’ 운동이라도 해야 할 만큼 40대가 주눅들어 있는 게 사실이다. 한국의 40대들은 그 시기에 일반적으로 찾아오는 심리적인 갈등과 정서적인 혼란에 더해 대량실업사태, 낯설기만 한 인터넷이나 벤처산업의 등장 같은 미증유의 사회 개편 속에서 더욱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고 있다. 인터넷 중년 대화방 게시판에 올린 한 40대 남자(대화방 네임 ‘가람’)의 푸념은 이런 현실을 잘 대변한다.

    ‘우리네 40대들은 대다수 서민 대중 누구나가 겪어야 했던 한국의 과도기적 어려움에 시달린 세대라고 생각한다. 나를 예로 들어보면 40대는 순수 한글세대의 원조격이고, 중학교를 시험 치르고 들어간 마지막 세대이며, 조국 근대화가 한창 진행중이고 민주화 투쟁이 활발히 진행중이던 시절에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한 세대가 아닌가 한다. 뿐만 아니라 80년대의 군부 독재시절이 끝나갈 무렵 생활 전선에서 국가경제 부흥을 위하여 젊은 한 몸을 아낌없이 불살랐다. 이제 조금 맘 편해지려는 시점에 이건 또 뭐람. IMF관리 경제체제라는 혹독한 시련을 온 몸으로 맞으면서 근근이 연명해 오는가 싶더니, 이젠 386세대에게 완전히 덜미를 잡혀서 ‘상가집 개’ 신세로 전락하지 않나 하는 조바심을 치게 만드는 세대인 것이다….’

    한국의 40대는 모래시계 세대인 30대가 ‘386세대(30대, 80년대 대학 학번, 60년대생)’로 표현되면서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자, 구세대와 신세대 중간에 어정쩡하게 낀 ‘475세대’라고 자리매김된다. 40대, 70년대 학번, 50년대 생이라는 것이다.

    이 세대는 아버지의 희망이 자신의 꿈이었던 모범생 세대이며, 유신과 긴급조치로 숨을 죽인 채 젊음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체제를 인정하고 이른바 근대화세력의 이데올로기에 순응할 것이냐, 아니면 체제를 거부하고 ‘지하’로 들어갈 것이냐 하는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고민도 해야 했다. 80년 ‘서울의 봄’도 잠깐, 이들은 또 한 번 절망해야 했다. 그래서 변혁을 꿈꾸지만 반란엔 익숙지 못한 세대라고들 한다.

    “한마디로 우리 40대는 못난 시대를 살아야 했다. 50대와 30대는 그래도 조직적으로 저항할 수 있었고 비록 미완성이긴 하지만 변혁에 대한 성공을 체험할 수 있었다. 40대가 386에 밀려 제 색깔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70년대의 가위눌림과 피해의식이 아직도 내면에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학2년 때 긴급조치9호 위반으로 감방살이를 했던 실천문학사 김영현 대표(74학번·55년생)의 말이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40대 부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두려움과 깡마른 가슴으로 긴급조치의 겨울을 보내야 했다. 그 때문인지 우리 세대는 사회와 조직 속에서도 전면에 나서기보다 ‘튀지 않게’ 사는 데 익숙해져 있다. 다른 세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왜소하게 비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 같다.”

    30대의 그늘에 가려 더 이상 ‘젊은 피’ 대접도 못 받고 50대처럼 경제적 기반을 갖춰 안정되지도 못한 ‘샌드위치 세대’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실제 IMF로 인한 대량 실업사태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세대가 40대였다. 그리고 직장에 남은 이들도 20~30대의 인터넷 계층에 치여 위기감을 겪고 있다.

    특히 직급 파괴와 서열 파괴가 진행중인 기업체에 남아 있는 40대가 받는 압박감은 심각할 정도다. 지난해 정기인사에서 이사 승진을 기대했다가 물거품이 된 모 재벌그룹 김모부장(46)은 위로는 나이 어린 상사들과 아래로는 신사고로 무장한 젊은 직원들을 ‘모시느라’ 하루하루가 피곤하다고 털어놓는다.

    “얼마 전 말도 없이 사라진 부하직원을 나무라다가 ‘휴가원을 전자결재로 이미 냈다’는 말에 완전히 왕따당한 기분이었다. 선배 세대들은 경험이 자산이 되었지만 우리가 배운 아날로그 사고는 요즘 디지털 세대를 지시할 수도 교육할 수도 없다. 오히려 세상의 변화에 장애가 되는 것 같은 비참한 기분이 든다.”

    또 다른 재벌회사의 이모이사는 얼마 전 사장이 주재하는 회의에 참석했다가 심한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사장과 30대 직원들이 나누는 인터넷 관련 사업 얘기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장이 인터넷에 언제 그리 박식해졌는지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자신은 말 한번 잘못했다가 찍힐 것 같아 그냥 아는 척 고개만 끄덕거리다 나와야만 했다고 한다.

    이들은 벤처가 주도하는 부의 창출에도 소외되고 있다. 1500여 벤처기업들이 몰려 있는 서울 강남 테헤란로의 주축세대는 20대와 30대들이다. 35세면 테헤란로 벤처밸리에선 환갑에 속한다고 한다. 모그룹 부장 김모씨(45)는 “최근 벤처업체로 옮길까 하고 이곳저곳을 알아보았는데 사장부터 직원들 나이가 보통 20~30대여서 채용된다 해도 버티기가 힘들 것 같아 포기했다”고 말했다.

    직장에서 이리저리 치이는데다 가정생활까지 위기를 맞은 40대 부장도 있다. 모 중견기업에 근무하는 이모씨는 모진 정리해고 태풍에서 살아남은 뒤 지난해 초 지방으로 발령을 받았다. 부인과 아이들을 서울에 둔 채 지방에서 생활하며 한 달에 집에 들르는 횟수가 3~4일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게 6개월을 지내다 보니 아내와 서먹서먹해졌고, 나중에는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는지 갑작스럽게 이혼을 요구당했다. 그는 ‘남성의 전화’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했다. 아내와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지방 생활도 마다하지 않으며 뼈가 빠지게 일하다가 오히려 아내로부터 버림받은 것이 너무 서럽다고 전화기를 부여잡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상황은 40대들에게 계속 악화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경제가 회복기에 접어들었다고는 하지만 40대를 겨냥한 정리해고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근로자 100명 이상 기업 286개사를 상대로 ‘고용관리실태’를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 기업들은 회사 내 과잉인력 세대로 40대(38.7%)를 1순위로 꼽았다. 실제로 올 초 모제약회사는 부차장급 간부사원 20여명을 감축하면서 40대 부장급 사원은 전원 퇴직시키는 ‘40대 대학살극’을 벌였다.

    이처럼 오늘날의 40대는 IMF 이후 갑자기 달라진 ‘대접’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는 세대인 것이다. 능력과 전문성을 중시하는 ‘평생직업’시대로 접어들면서 자칫하면 조직인으로 살아남기조차 힘겨워졌다. 평범한 40대 중년남성들의 회한과 정서를 노래하는 황지우의 시집(‘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이 그대로 이들의 현 상황을 대변한다.

    ‘주민등록번호란을 쓰다가 고개를 든/내가 나이에 당황하고 있을 때(중략)/나는 등뒤에서 누군가, 더 늦기 전에/준비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11월의 나무’ 중에서)

    40대 계층 공동화 현상

    그나마 직장에 남아 있는 40대는 행복한 편이다. IMF체제를 전후해 감원의 집중 타깃이 된 40대들이 오랫동안 일자리를 잃고 정상위치로 복귀하지 못하면서 계층이 공동화(空洞化)하는 새로운 사회문제까지 낳고 있다.

    모 재벌그룹 중견간부로 있다 98년에 명예퇴직을 한 전직 부장 이모씨(47)는 대리점 창업을 회사에서 도와준다는 조건으로 사업을 벌였다가 퇴직금만 날리고 문을 닫았다.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고 있으나 이렇다 할 기술이 없는 그에게 쉽게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요즘엔 주차관리원이나 아파트 경비직을 알아보고 있으나 그것도 신통치 않다.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세 딸의 학비와 생활비 부담 때문에 아내와도 자주 말다툼을 벌인다는 그는 요즘엔 아예 집을 나와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회사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과 대화할 시간도 가지지 못했고, 아내는 아내대로 잔뜩 불만이 쌓여 있어서 가정에서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음을 지금에야 깨달았다고 한다.

    실제로 관리직 이상 임직원들의 재취업 창구 구실을 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 고급인력정보센터 인재풀 관계자는 “40대 재취업 희망자가 가장 많지만 취업은 하늘에 별따기”라고 말한다. 구직자들은 대부분 사무관리직인 데 반해 그나마 있는 구인업체는 40대들에게도 해외마케팅이나 정보통신 전문지식을 요구하고 있어 구인과 구직 사이에 괴리가 크다는 것.

    인력중개회사의 한 헤드헌터는 “요즘 잘 나가는 인력은 디지털 마인드가 돼 있는 30대”이며 “심지어 어떤 회사에서는 45세 이상이면 아예 이력서도 안 받는다”고 전했다.그래서 재기를 노리며 재취업 훈련을 받는 40대 실업자들 사이에는 “우리 직업은 재취업 교육 수강생”이라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가 떠돌고 있다. 인터넷 분야 재취업 교육을 받는 한 수강생은 “교육받는 도중 하나둘 취업해서 나가는 사람은 모두 30대들이고, 강좌가 끝나갈 때쯤이면 교실에는 40대만 남는다”고 했다.

    40대 실업자 중에는 노숙이나 자살 등 극단적 방법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시가 지난해 4~6월까지 조사한 노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40대가 36.2%로 가장 많았고, 통계청이 발표한 ‘98년 사망원인 통계’에는 40대 사망 원인으로 ‘자살’이 처음 포함되기도 했다.

    강원도 태백시 태성대학 정채기 교수(한국남성학연구회장)는 사회에서 성공했다고 하는 중년 남성들도 40대의 흔들림에 자아상실의 위기감을 맛보는데, 실업자들은 그에 더해 생존 문제로 헤매다 보면 자포자기해 도박 마약 등 반사회적이고 비도덕적인 일에 함몰될 위험이 크다고 경고한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이제 본격적으로 ‘남성운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절실한 욕망에 충실하라”

    40대 문제와 관련해 서울대 최성재 교수(사회복지학)는 “경제 성장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한국의 40대들은 눈앞의 업무에 급급했지 재교육 한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했다”며 “사람말고는 팔 것이 없는 우리 사회에서 40대의 퇴출은 국가적 낭비이므로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키운다는 차원에서 정부와 기업은 이들을 위한 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전문가들은 “인체에도 허리가 중요하듯 세대의 허리인 40대가 사장되면 그에 버금가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일하려는 의지가 있고 경험이 있는 이들의 한 번 낙오가 영원한 낙오가 되지 않도록 사회적 완충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여하간 이 땅의 40대는 워낙 빠른 속도로 변화해가는 사회에서 낙오하기가 제일 쉬운 위치에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기회와 도약의 시기이기도 하다는 게 미래산업 정문술 사장(62)의 말이다.

    공무원에서 강제해직된 뒤 실업자 생활을 하다가 40대 늦깎이로 창업, 국내 최고의 벤처 기업을 일으킨 그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중년의 고독훈련’을 강조한다.

    “이제까지 누려운 안정된 생활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주위의 모든 것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오로지 자신의 선택과 판단 아래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먼저 고독과 싸워 이기는 게 전제되어야 한다.”

    한국 IBM에서 경영혁신 실무를 총괄하는 구본형씨(변화경영 전문가) 역시 베스트셀러인 저서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없다는 잘못된 깨달음으로 우리를 몰아간 것은, 우리를 기존 체제에 묶어두고 통제하고 싶어 하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세상이란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일’과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가족을 위해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을 하더라도 직장에서 내몰리고 있다. IMF의 시기이기 때문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인간의 노동이 더 이상 중요한 생산 요소가 아닌 사회로 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기업이 마지막까지 잡아두려고 하는 사람들은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욕망이 그들을 한 길로 달려오게 했고, 결국 스스로를 전문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창조의 힘은 욕망에서 나온다. 욕망은 깊고 깊은 곳에 있다. 자신이 움켜잡을 수 없는 모습으로 숨어 있다. 그것은 단순한 소망이나 충동이 아니다. 너무나 절실해 우리를 행동으로 내모는 그런 것이다. 따라서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욕망을 받아들임으로써 자랑스러운 자아를 발견하게 되고 그때 자신의 삶이 무엇이었는지 말할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성공한 두 기업인의 말은 정신과 의사의 충고로도 들릴 법하다. 실제로 남성 심리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정신과 의사들은 중년의 바람직한 태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젊었을 때(혹은 어릴 때) 꿈꾸던 모습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바로 그 모습이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의 원형(原形)이다. 거기서 마음 깊은 곳의 실체를 명확하게 확인한 다음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가’라는 생각보다는‘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할까’를 느껴보아야 한다. 그러나 절대 피해야 할 점은, 자기 마음의 실체를 보기 전에 현실적인 이유를 들이대는 것이다. 현실적 이유들은 자기 자신과 원형과의 만남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중년에 새로운 꿈이 없는 사람은 절반의 실패를 감수해야 한다. 중년은 ‘깊이 있는 사춘기’이며 ‘인생의 절정’이기 때문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