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4월호

“얼굴 몸매 학벌의 3대 차별을 없애라”

  • 김보선 자유기고가

    입력2006-11-21 13: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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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PD란 말이 있다. 프로듀서가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린다는 뜻이다. 정치 드라마는 고석만, 영상은 황인뢰, 트렌드 드라마는 이진석, 30대 드라마는 이창순, 사극은 김재형…. 방송에 별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이름이다.

    그러나 방송가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PD를 꼽는다면 주철환씨(45)다. 특히 대학생들은 주철환씨에게 방송계의 ‘마이더스 손’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실제로 그는 스타 기질이 다분하다. 우선 히트 프로그램이 많다. ‘퀴즈 아카데미’ ‘우정의 무대’ ‘일요일 일요일 밤에’ ‘MBC 대학가요제’ 등 방송가의 대표적인 히트 오락프로그램이 그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그뿐이 아니다. 그는 PD로는 드물게 무려 7권의 방송관련 책을 내는 등 글쓰기로도 유명하다. 젊은이들의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에 재미있고 읽히기 쉬운 글에 각종 강연의 단골 강사, 거기에 손석희(아나운서)라는 또다른 방송 스타의 매형이라는 집안 조건까지 갖추었으니 유명해지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어쨌든 스타PD라는 말은 그만큼 방송가에서 ‘잘나간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 그가 얼마 전 17년간 갖고 있던 MBC PD라는 직함을 버리고 이화여대 교수(언론영상학부 부교수)로 변신했다. 잘 나가는 PD가 왜 방송을 떠났을까? 단순히 한국적 상황에서 명문대 교수라는 타이틀이 PD라는 직함보다 더 출세한 것이라는 세속적 판단 때문일까? 변신에는 나름대로 명분이 있을 것이다. 그의 변신은 자의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유쾌한 긴장

    교수로 변신한 직후 한국프로듀서연합회보에 기고한 그의 글에 따르면 이화여대로부터 제의를 받고 몇 개월 동안 ‘유쾌한 긴장’을 즐기면서도 MBC를 떠날 마음은 없었다고 한다.



    정식교수로 첫 강의를 시작한 3월3일, 주철환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좀더 ‘영향력’을 갖기 위해 교수로 변신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또 “최고의 PD는 방송사 사장”이라는 말도 했다. 그러나 그 말은 곧 일개 PD로(비록 스타PD라 할지라도) 그가 꿈꾸는 이상을 펼치기에는 현재의 방송 현실이 뭔가 부족하고 잘못됐다는 것을 역설한다.

    교수가 된 그는 약간은 긴장하고 있었다. 강의나 연구에 대한 부담감이 아니라 오락프로그램 PD출신이라는 주위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 대한 부담이다. 인터뷰에 앞서 연구동 앞에서 사진 촬영할 때도 혹 다른 교수들이 여의도에서 연예인들과 놀다오더니 자신이 연예인인 줄 착각하는 것은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지나 않을지 조심스러워했다. 기자를 만난 전날까지만 해도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으로 출근했다고 한다. 양복을 입을 일이 거의 없는 간편한 차림의 PD생활과는 다른, 낯선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연구실에 앉자 다시 즐겁고 편안한 얼굴로 되돌아왔다.

    ―대학에서 첫 강의가 낯설지 않나?

    “강의가 처음은 아니다. 강의를 즐긴다는 생각이라 강의 자체에 대한 부담은 없다. 그동안 공부해오던 분야라서 웬만큼 준비도 돼 있다. 다만 전업교수라는 신분 변화와 주변의 호기심에 대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라 조심스럽다.”

    교수도 배우의 끼 가져야

    주철환 교수는 알고 보면 강의 경력 21년째인 베테랑이다. 78년부터 몇 년동안 모교(서울 동북고)에서 국어교사로 교편을 잡았고 83년부터 87년까지는 고려대 대학원(국문과)을 다니며 교양국어 강사생활도 했다. 97년부터는 고려대, 98년에는 서울예대, 99년에는 중앙대에서 신방과 객원교수로 강의를 했다. 게다가 각종 세미나 초빙강연까지 더하면 대중 앞에 서는 강의에는 이골이 날 만도 하다. 인터뷰 중에도 5분짜리 초미니 강연 의뢰를 받기도 했다.

    ―어느 조사결과를 보니까 대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PD로 꼽혔던데 강의에서도 그만큼 인기를 끌 수 있겠는가?

    “글쎄, 난 강의실의 시청률을 높이자는 주장을 한다. 요즘 중·고등학교 교실에서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학생이 전체의 5분의 1도 채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학생들도 문제지만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강단에 서는 선생님도 무대에 서는 배우처럼 끼를 가져야 한다. 학생들에게 깨달음만 주려고 하지 말고 즐거움도 줘야 한다. 그렇다고 수업을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고 수업 방법을 달리하자는 거다. 가령 물리시간에 힘의 원리를 가르칠 때 인기가수들의 치열한 경쟁과 협력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수업 시청률이 굉장할 거다. 모교에서 국어 강의를 할 때 당시 인기 있던 산울림의 가사를 예로 들어 수업을 한 적이 있는데 옆 반 다른 선생님 눈치를 봐야 할 정도로 학생들이 재미있어했다. 지금도 당시 제자였던 최민수(영화배우)를 만나면 그때 수업이 정말 재미있고 기억에 남는다고 말해 오히려 나를 감동하게 만든다.”

    ―17년 동안 일하던 MBC를 떠나 대학으로 왔는데 고민도 많이 했을 것 같다.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하는가?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학생들이 내 강의에 보이는 열의와 진지함에 놀라고 있다. 그런 학생들 앞에 선다는 것이 참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해피하다.”

    ―결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MBC라는 조직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망설이게 만들었다. 사실 MBC는 내가 지내기에는 말랑말랑한 조직이다. MBC 전체 사원을 통틀어 내가 MBC 직원의 이름을 가장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주위에서도 그건 인정한다. 지하 1층 안내데스크 아가씨부터 1층 구내서점 아저씨, 3층 예능국…그리고 10층까지 모두 이웃이고 친구였다. 그런 조직에서 잘 지내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들과 재미있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별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떠나기로 결심을 하니까 너무 행복했다. 나는 결심을 하기까지가 힘들지 한 번 결정한 후에는 쉽게 포기해버린다. MBC를 떠나는 아쉬움도 크지만 이화여대에 와서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을 생각하니 행복할 수밖에. 젊은이들을 만나는 것도 그렇고 이제껏 보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 보지 못했던 영화나 공연, 눈치보면서 했던 글쓰기 등 말 그대로 ‘시간을 디자인할’ 수 있는 여유도 갖게 됐다. 오히려 MBC라는 조직을 떠남으로써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에 빨리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중에 대한 영향력

    ―왜 옮겼나?

    “두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나에게 프로듀서란 의미는 ‘기쁨의 프로듀서’였다. 그동안 쇼, 코미디, 약간의 교양성을 가미한 오락프로를 만들어왔지만 목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내가 정열을 쏟은 프로를 만들고 난 뒤의 자기만족이나 자아도취다. 내가 만든 프로가 수많은 사람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다. 또 하나는 그런 프로를 시청자에게 보여주며 약간이라도 기쁨을 주는 것이었다. 그동안 나름대로 잘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PD가 아닌 관리자나, 지시나 확인하는 매니저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랫사람들에게는 프로그램 기획을 지시하고, 제대로 했나 확인하고, 윗사람들에게는 시청률이 왜 오르지 않는지, 새 기획이 뭔지 브리핑하고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CP나 편성기획부장(그의 마지막 보직)은 즐거움을 주는 자리가 아니었다. MBC 로고송처럼 ‘기쁨주고 사랑받는’ PD가 되고 싶었는데 차장, 부장, 부국장, 국장 등 차례로 하나씩 올라가면 갈수록 ‘기쁨 주는 PD’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았다.

    또다른 이유는 힘과 권력을 가지고 싶어서였다. 세속적인 권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좀더 많은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갖고 싶었다. PD가 대학교수보다 못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PD 주철환의 말보다는 PD 경험을 가진 대학교수 주철환의 말이 대중을 설득하는 데 더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무엇에 대한 영향력을 말하는가?

    “대중문화에 대한 영향력이다. 나의 가장 큰 관심은 대중문화를 통한 정신세계 고양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일을 하는 데 좀더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교수라는 자리가 무게가 있겠다는 판단을 했다. 내가 하는 말이 듣는 이에게 얼마만큼 파장과 지속력을 가지는지가 중요하다. 대중문화에 대해 PD 주철환이 말하는 것보다 교수 주철환이 하는 말이 더 권위가 있고 설득하는 힘이 있지 않겠는가.”

    ―글쓰기나 수많은 인터뷰, 대중강연도 그런 영향력을 위한 것인가?

    “틀린 말은 아니다. 가끔씩 명성(fame)에 대한 연구를 해보고 싶다. 난 어떤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대중적 인기를 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힘을 갖기 위해서는 이미지 관리를 통해 명성을 쌓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미지관리를 중요하게 여긴다. 글쓰기나 강연은 그런 수단의 하나다.”

    ―이미 스타PD 아닌가?

    “그런데 그 다음이 중요하다. 영향력은 뭔가를 제패하거나 헤게모니를 잡는 그런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설득을 위한 영향력을 말하는 것이다. 말은 설명과 설득 두 가지가 있다. 설명은 이렇게 이해하라는 노골적인 설교와 같다. 그러나 설득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상대방이 스스로 이해하게 만드는 거다. 가령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도 말을 하는 사람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설득해서 그들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 끄집어내도록 하는 거다. 대중문화 수준을 높인다는 목표에서도 마찬가지다. 대중에게 내가 하는 말이 좀더 설득력 있게 들리도록 해야 하는 거다. 지금까지는 대중문화의 전달자인 PD로서 경험적이고 직관적인 설득을 했지만 교수가 된 이제부터는 좀더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설득을 위해 노력해야할 것 같다.”

    ―MBC를 나온 결정적인 이유가 윗사람과다퉈서라는 소문이 있는데?

    “정말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우연과 돌발적인 한순간에 이뤄진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이와여대에서 작년 8월부터 (교수직을) 제의했지만 솔직히 갈 생각이 별로 없었다. 다만 유쾌한 긴장감만 느끼고 있었다. 그 와중에 최종 결정을 앞둔 날 윗사람과 의견대립이 있었다. 다툼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생각을 이야기한 거다. 나는 종종걸음으로 여기저기 뛰어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분은 안정적으로 자리에 앉아 있기를 원했다. 글쓰기나 외부 강연이나 그런 일은 그만두고 본업에 충실하라는 거다. 그분이야 그렇게 이야기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건 내게서 즐거운 부분을 잘라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는 내 명성을 이용하기 위해 그 자리에 앉힌 것도 사실 아닌가.”

    ―17년 동안 PD생활을 하면서 성공한 작품도 많지만 실패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PD로서 이루지 못한 부분도 많을 텐데?

    “가장 아쉬운 점은 야단스럽지 않으면서 흐뭇한 감동을 주고 그러면서도 시청률도 높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난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를 유명하게 만든 ‘퀴즈 아카데미’는 조금은 그런 프로에 접근했다. 당시 32~35살의 정열이 넘치던 때였다. 그러나 이어 만든 ‘TV 청년내각’은 실패했다. 나는 MBC를 떠난 것이지 연출을 그만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직에 몸담았을 때보다 내가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나 재량이 더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학교측도 음대교수가 콘서트를 열고 미대교수가 전시회를 통해 연구결과를 내세우듯 방학중에 논문 대신 좋은 프로를 만들기를 원하고 있다. 교수가 된 지금은 방송사 조직원일 때와는 다른 시각에서 프로를 만들 생각이다. 공중파 방송과 차별되고 명분이 있고 또 시청률도 확보할 수 있는 프로를 기획하겠다.”

    오락프로의 ‘마이더스 손’이라는 주철환 PD가 모든 프로에서 성공한 것은 아니다. 그는 386세대의 정서를 이끄는 ‘마이더스 손’이라고 할 수 있다. “스타 PD라면 팬클럽은 386세대”라고 한다. 386세대와 함께 성장한 인기 PD라는 거다.

    그는 30대 초반의 열정으로 당시 386들이 주인공이던 ‘퀴즈 아카데미’(87.10~90.7)를 연출해 떴다. 그리고 그 대학생들이 군에 있을 때는 ‘우정의 무대’(90.10~91.10)를 히트했고, 그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는 웃음을 주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91.10~93.10, 95.1~ 95.10)를, 이어 젊은 날의 추억을 되새겨 준 ‘MBC 대학가요제’(94~99)를 연출했다.

    의도는 좋았지만 실패했던 ‘TV청년내각’은 그렇다 치더라도 ‘스타 PD 주철환, 기성세대로부터 10대의 가요편식을 부추긴다는 비난(그런 주장이 맞는 것인지는 차치하더라도)을 받고 있는 ‘음악캠프’의 기획자였다는 데에는 조금은 의아해진다. 스타PD의 명성에 걸맞게 뭔가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기대감이 크기 때문일 거다. 더욱이 그는 굉장한 음악 마니아에 전문가다. 방송사에 입사해 조연출로 처음 참여했던 ‘모여라 꿈동산’이나 ‘퀴즈 아카데미’의 주제곡을 그가 직접 작사·작곡할 정도로 음악에 대한 지식도 만만찮은 사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아쉽다.

    ―기획자로 오랫동안 담당했던 ‘음악캠프’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가? 요즘 ‘음악캠프’가 10대의 댄스음악 일색이라는 비난이 많은데?

    “10대 댄스음악 일색이라는 게 과연 그렇게 나쁜 건가? 음악을 듣는 10대에게 어떤 해를 주는가? 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그런 지적을 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으로 나를 설득한 사람은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10대가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 주말 오후에 그들을 위한 놀이터를 제공해주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음악캠프’는 항상 시청률 10~20%대를 유지한다.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얘기다. 나는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최선의 프로를 만들지 못하는 한 시청자에게 결정적인 상처를 주지 않는 프로를 만들면 된다고 생각한다. ‘음악캠프’가 그렇게 결정적인 피해를 준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프로의 생산자와 또다른 생산자(음반제작자 등을 말하는 듯)가 어떤 커넥션을 가지고 의도적인 음악틀기에 나선다면 그건 나쁜 일이고 용서해서는 안될 일이다.”

    ―10대에게 특정 음악을 편식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옛날을 생각해 보자. 70년대 젊은이들은 모두 통기타와 포크송에 열광했다. 60년대에는 이미자 문주란 등에 열광했다. 어느 시대나 주류는 있는 법이다. 요즘 주류는 댄스나 발라드일 뿐이다. 다양성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요즘 댄스음악도 힙합이나 라틴, 최근의 테크노까지 자세히 들어보면 조금씩 다르다.”

    ―그럼 편식이 아니란 말인가?

    “난리를 떨 만큼 우려할 정도가 아니라는 얘기다. 댄스에 열광한다고 해서 나중에 문화를 보는 시각이 왜곡되지는 않을 것이다. 트로트나 포크를 좋아한 기성 세대라고 시각이 왜곡됐는가? 아니다. 기성세대들이 생각하듯 10대 모두가 댄스만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뭉뚱그림의 오류’라는 말을 즐겨 쓴다. 남자들은 어떻다, 여자들은 어떻다, 오락프로 PD들은 어떻다, 전라도 사람·경상도 사람은 어떻다는 식으로 뭉뚱그려 이야기하는 것은 근본적인 모순에 빠진 말들이다.

    댄스음악 일색, 그렇게 나쁜가

    ―그래도 10대를 겨냥한 댄스음악이 90%를 차지하는 것은 문제 아닌가?

    “큰 주류가 댄스일 뿐이다. 트로트, 포크, 팝송에 이어 지금은 댄스 전성기라는 얘기다. 댄스가 우리나라에서 주류가 되기 시작한 게 91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아직 10년도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댄스가 영원한 주류가 될 것인가? 절대 아니다. 또다른 대중문화 영웅이 나타나면 새로운 주류음악이 형성될 것이다. 다만 댄스를 좋아한다고 해서 트로트를 좋아하는 사람을 무시하면 안 된다.”

    ―왜 10대가 댄스음악에 빠진다고 생각하나?

    “10대에게 댄스음악은 두 가지가 맞아 떨어진다. 우선 컴퓨터의 영향이다. 컴퓨터의 등장은 속도가 주는 즐거움을 주었다. 원고지에 글쓰기를 하던 세대에게 기존 음악이 어울리듯이 컴퓨터 자판의 빠른 속도는 댄스의 빠른 리듬과 잘 어울린다. 또 하나는 비주얼의 영향이다. 컬러와 영상에 젖은 세대에게 음악은 단순히 듣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보는 즐거움도 충족시키는 대상이어야 한다. 춤과 어울려지는 댄스곡이 비주얼 욕구에 가장 어울리는 음악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노래는 추억의 일기다.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던 노래를 우연히 들으면 마치 오래된 일기장을 한 장씩 펼치듯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추억을 하나씩 떠올리게 된다. 얼마 전 김건모는 어느 인터뷰에서 “요즘 댄스곡 중에는 10여년이 지난 뒤 추억을 되새길 마음의 노래가 없다”며 이제는 세월이 흐른 뒤에도 가슴에 남는 노래를 불려야 하는 게 자신의 몫이라고 말했다. 사실 요즘 댄스곡들은 트로트와 포크에 익숙한 기성세대에게는 멜로디를 기억하기는커녕 노래방에서 따라 부르기도 힘들 정도다.

    서태지의 ‘환상 속의 그대’

    ―‘아침이슬’ 같은 노래는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386세대의 가슴 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현재의 10대들이 커서 30~40대 기성세대가 됐을 때 과거 그들이 좋아하던 댄스곡을 기억이나 할까?

    “안 남으면 안 남는 대로 크게 걱정할 일도 아니지만 분명 10대에게도 마음 속에 남는 노래는 있다. 댄스곡이 기성세대에게는 귀에 들어오지 않고 따라 부르기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문제를 제기하는 기성세대의 시각일 뿐이다. 막상 좋아하는 10대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쉽게 댄스곡의 가사를 줄줄 왼다. 그런 곡 중에도 좋은 가사나 멜로디는 얼마든지 있다. 서태지의 히트곡 ‘환상 속의 그대’를 생각해 봐라. 이미 10년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유효한 곡이다. 난 지금도 그 노래를 들으면 절로 흥겹고 서태지가 생각나 흥분한다. 요즘 최고 인기가수라는 조성모의 ‘투 헤븐’ 같은 곡도 10대에게 기억에 남는 노래가 될 것이다.”

    ―10대를 보는 기성세대의 우려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닌데?

    “기성세대의 노파심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노파심도 있어야 건전한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다. 단지 ‘뭉뚱그려’ 매도하고 원천봉쇄를 하는 건 나쁘다.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가요는 곧 소멸해버린다. 스스로 충분한 자정작용을 할 수 있는데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화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물론 폭력이나 담배나 마약을 부추기는 그런 자극적인 가사들도 있다. 기성세대가 할 일은 그런 노래들을 규제하는 것이다. 10대를 부추겨서 장사만 하려는 사람들도 문제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고 인기 있을 때는 그들의 단물만 빼먹고 인기가 없으면 언제 봤냐는 식의 사람들이 있다. 인기가 사라진 뒤 방황하는 반짝가수들을 많이 봐왔다. 매니저들이 어린 가수들의 정신성장이나 교육적인 부분에 더 많은 배려를 해주어야 할 것이다.”

    사실 기자는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 쪽이다. 기성세대는 10대의 댄스음악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고 함께 호흡할 수 없는 곡들이어서 세대간에 벽을 쌓게 만든다고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얼마 전 취재를 위해 가수 현미의 소극장 콘서트에 갔을 때 일이다. 2시간 가량의 콘서트가 끝난 뒤 인터뷰를 하기로 돼 있어 꼼짝없이 콘서트를 구경해야 했다. 기자가 태어나기도 전인 60년대 초반의 노래가 무슨 감흥이 있을까 싶어 지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현미의 구수한 입담도 즐거웠지만 제대로 들어보지도 못한, 제목도 생소한 60년대의 노래에서도 충분히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반대로 요즘 노래에 대한 현미의 반응도 기자를 놀라게 했다. 할머니가 된 지 오래인 현미는 콘서트 중간에 최신 테크노댄스곡인 이정현의 ‘와’를 불려제꼈다. 그것은 단순히 아직은 나도 젊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쇼가 아니었다. 현미의 풍부한 성량이 가미된 ‘와’는 이정현이 부른 원곡보다 오히려 맛깔스러웠다. 50대가 대부분인 관객들도 ‘와’에 환호하고 몸을 흔들어댔다. 문제는 세대간 감흥의 차이가 아니라 관심의 차이 아닐까.

    이상만으론 안 된다

    ―일부에서는 PD들이 댄스곡만 틀어주는 것이 편식을 강요하고 다른 음악의 성장을 방해한다고 불만이 많은데?

    “자세히 찾아보면 PD가 댄스만 틀어주는 것도 아니다. 어떤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각 공중파 방송을 보면 국악 프로도 있고 ‘가요무대’처럼 흘러간 노래를 들려주는 시간도 있다. 황금시간대가 아니라고들 하지만 방송사에서는 시청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시청률이 낮다고 무시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위치인 PD의 실험과 도전의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금의 ‘음악캠프’나 다른 가요프로가 최선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나쁜 것만은 아니다. ‘토월회’라는 극단이 있다. 발은 현실이라는 땅에 딛고 있지만 머리로는 항상 이상을 생각한다는 뜻이 있는 이름이다. PD도 마찬가지다. 방송사 직원이라는 현실에 놓여있지만 이상을 항상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몇 년 전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을 연출할 때다. 나름대로 아이디어를 낸다고 파격적으로 30대인 황신혜를 MC로 내세웠다. 첫 출연자로 ‘성공한 두 김혜자’인 가수 패티김(본명 김혜자)과 탤런트 김혜자를 모셨다. 나름대로 성인층도 겨냥한 아이디어였지만 결과는 완전한 실패였다. 시청률이 낮아 얼마 안 가 막을 내렸다. 이상만으로 방송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일선 연출자인 PD와 방송사 윗사람들 사이에 낀 CP는 서로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후배들의 이상과 부딪치는 경우는 없었는가?

    “오히려 일부 젊은 PD 중에 시청률만 의식해 그저 그런 프로를 기획하는 이가 있다. 시청률이 높으면 한쪽으로 쏠리기 때문이다. 물론 후배들의 건의를 위에서 수용하지 못해 없어진 경우도 있다. MBC 예능국에 국악프로를 신설하자는 주장을 계속했던 후배 PD가 있다. 나도 전적으로 동감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가 만들고자 했던 ‘샘이 깊은 물’ 같은 국악 프로는 그냥 있으면 되는 프로다. 다행히 시청률이 높으면 좋고 또 그것을 위해 노력을 해야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없는 일이다. 그러나 ‘샘이 깊은 물’은 얼마 안가 막을 내렸다. 그런 프로에서 왜 시청률을 따지는지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KBS나 교육방송이 상당히 부러울 때가 많았다.”

    ―왜 국악프로가 인기가 없을까?

    “연출자가 국악의 재미를 제대로 끌어내지 못하기도 하지만 시청자도 국악의 재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너를 알고 나서 너를 사랑한 후부터 변해가네~’라는 노랫말이 있다. 마찬가지다. 골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냥 걷기만 하고 가끔씩 채를 휘둘러 대는 골프가 왜 재미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번 골프의 맛을 알면 당구를 처음 배울 때 잠잘 때도 당구대가 눈에 어른거리는 것처럼 골프에만 정신이 팔려 정신없이 빠져든다. 스타크래프트도 같은 경우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국악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국악의 재미를 모르니까 당연히 시청률도 낮은 것이다. 나는 클래식을 들으면 졸지만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만나는 모나리자에는 빠져든다. 내가 모나리자를 알고 그 그림의 배경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언뜻 들으면 그는 현재 가요가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 같지만 그가 ‘별 문제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TV의 오락 프로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10대가 댄스음악을 편식하는 것을 방조한다는 지적은 그가 생각하기에는 상대적으로 지엽적인 문제일 따름이다.

    “H.O.T 나 다른 댄스가수들이 무대에서 립싱크를 하는 걸 두고 가창력이 없다느니, 음악 프로가 10대에 편중되어 있다느니 하고 지적하느라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TV에서 알게 모르게 조장하는 묘한 차별이 10대나 시청자들에게 더 중요한 문제다.”

    ―어떤 차별을 말하는가?

    “못 생기고 뚱뚱하고, 학벌이 별로라거나 가난하다거나 그런 사람들을 은근히 차별하고 무시하는 게 만연해 있다. 오락프로, 토크프로 심지어 시사프로에서도 잘 생기고 날씬하고 일류대 출신이 선(善)이고 나머지는 악이라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을 여과없이 방송하고 있다. 미팅프로에서 못생긴 사람은 왕따당하고 롱다리만 사람 대접 받고, ‘살빼기 작전’ 한다며 뚱뚱한 사람은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장면이 그대로 방영되고 있다. 이런 프로가 시청자들의 무의식에 드러나지 않게 영향을 끼쳐 시청자들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인다. 그런 프로들이 바로 남에게 결정적인 상처를 주는 프로다. 립싱크를 한다고, 가창력이 없는 가수들이 판친다고 화내지 말고 그런 무의식적 차별에 화내야 할 것이다.”

    그럼 그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뭔가. 대답은 간단하다.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그릇된 시청률 경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방송사 고위층의 의지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용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차별 없고 다양한 의식을 담은 프로를 자꾸 만들고 꾸준히 내보내면 된다. 시청률을 자꾸 이야기 하는데 좋은 프로라는 ‘체험 삶의 현장’이나 ‘가족오락관’ ‘열린 음악회’ 등이 처음부터 시청률이 높았던 것은 아니다. 한 6개월 지나니까 시청률이 올라간 것이다. MBC 같으면 금방 없앴을 것이다.”

    ―일선 PD가 깨어 있으면 되지 않겠나?

    “솔직히 PD는 힘이 없다. 만약 새로 ‘음악캠프’를 담당하게 된 젊은 PD가 평소 생각하던 대로 국악을 중간에 삽입하겠다는 의욕을 보였다고 하자. 바로 위의 CP인 나도 동감하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치자. 그러나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당장 국장은 청소년 음악프로에 무슨 국악이냐고 할 것이다. 국장이 동의한다고 해도 전무와 사장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시청률이 올라간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러나 국악이 나오는 순간 시청률은 떨어질 것이다. 그게 현실이다.

    자연다큐멘터리 PD로 유명한 박수용 PD(교육방송)를 보라. 그는 호랑이에 빠져 일년 내내 호랑이 담는 일에만 열중했다. 위에서 동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의 자연다큐를 두고 시청률이 낮다느니 높다느니 하며 따지지는 않는다.”

    그는 자신은 이상을 좇지만 현실을 많이 받아들이는 축에 속한다고 말한다. 완벽해지려다보면 불행해질 뿐이라고 말한다. 회색인이라기보다 현실주의자라는 것이다.

    사실 방송사도 하나의 조직이고 조직원이 윗사람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재작년 드라마 ‘왕초’를 찍을 때 일이다. 당시 연출자는 시대 배경이 되는 일제시대와 6·25 전후를 재현하기 위해 의정부에 대규모 세트를 지었다. 그러나 그 PD는 상사에게 불려가 엄청 혼났다고 한다. 의욕이 앞서 제작비를 너무 많이 쓴 게 문제였다. 사실 당시로서는 대규모 세트였다. 하지만 요즘 MBC 본사 복도에는 ‘왕초’의 세트가 담긴 커다란 사진이 ‘허준’의 세트 사진과 함께 걸려 있다. MBC의 자랑이라는 듯. 이후 그 PD는 기자들에게 “그런 무모한 일을 벌이는 사람도 있어야 다른 PD나 후배들이 편하다”는 말을 했다.

    주철환씨에게는 후배를 위해 일을 저지르는 용기 없었을까? 물론 그에게 도전의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른 차원의 일이지만 그가 87년 오락프로그램 ‘유쾌한 스튜디오’로 데뷔했을 때다. 얼마나 의욕이 넘쳤으면 겁도 없이 초대손님으로 당시 인기 최고였던 강수연을 섭외하려 들었다. 주위에서 모두들 어림없다고 했지만 도전의식인지 오기인지 끝내 강수연에게 전화를 했다. 강수연이 특유의 목소리로 무슨 프로냐고 묻기에 아기자기한 오락프로라고 설명했다. 한참을 조용히 듣고 있던 강수연이 갑자기 하하하 하며 크게 웃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저 그런 거 안 해요” 한마디였다. 또 학생시절 좋아했던 김추자를 섭외하려 했다. 첫 프로에 평소 좋아하던 사람을 초대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김씨는 한시간짜리 단독으로 출연하는 프로가 아니면 하지 않겠다고 했다. 모두 실패했지만 그런 도전의식이 나쁠 수야 없다.

    ―현실만 탓하는 것은 너무 비겁하지 않나?

    “난 진짜 프로듀서는 방송사 사장이라고 생각한다. 사장이 얼마나 프로그램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지휘해 나가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일선 PD가 국악프로를 하자고 말하는 것과 사장이 국악프로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간부회의 시간에 던지는 말 중 어느 것이 더 효과가 있겠는가. 일선 PD의 제안에는 ‘그거 누가 보냐 괜한 전파낭비하지 말라’고 하겠지만 사장이 시키는데 하지 않을 PD는 없을 것이다.”

    ―사장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한국적 현실에서는 PD보다 고위층의 의지가 훨씬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어차피 PD는 방송사에서 월급받는 직원이라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일선 PD는 ‘남에게 결정적 상처’를 주지 않는 프로를 만들면 된다. 그 이상은 사장 몫이다. 사장이 어떤 방송철학과 의지를 가지고 하느냐에 따라 대중문화에 방송이 차지하는 몫이 달라질 것이다. 난 문화관광부 장관보다 오히려 방송사 사장이 대중문화 고양에는 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슬픔·차별을 주지 않는 방송

    ―어떤 방송 철학을 말하는가?

    “다양성의 존중이다. TV를 보며 많은 시간을 보내는 노인층을 위한 프로는 거의 없다. 장애인을 위한 프로도 마찬가지다. 시청률에 얽매이지 않고 시청자의 다양한 욕구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 또 누구에게든 슬픔이나 차별을 주지 않는 방송을 만들겠다는 의지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화여대에서 ‘TV제작실습’과 ‘대중문화 읽기와 쓰기’를 강의한다. 아직은 교수로 완전히 바뀌지 않았는지 기자가 내심 원한 ‘방송과 조직에 대한 통렬한 공격’대신 인터뷰 내내 방송과 PD에 대한 애정의 말을 쏟아냈다.

    그러나 그는 인터뷰 도중 수업에 대해 물어보려고 찾아온 파릇파릇한 신입생들과 재학생들에게 최상의 친절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교수로서 새로운 애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PD가 된 후 개인적으로 가장 기뻤던 일이 뭐냐는 질문에 자신의 우상들과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을 들었다. 고등학생시절 그의 우상은 김민기와 양희은이었다. 고1년생 주철환은 양희은이 가수 데뷔 전 통기타 카페에서 ‘세노야’를 부르는 것을 우연히 들었다. 그는 그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금까지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다음날 친구들에게 천사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가 연출한 ‘일요일 일요일 밤에’ 첫회 초대 손님은 양희은이었다. 지금은 김민기나 양희은과는 형과 동생, 누나와 동생처럼 친하게 지낸다고 한다. 자신의 우상들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이제 ‘교수 주철환’은 새로운 우상들을 만나고 있다. 그가 연출했던 프로에서 항상 놓치지 않으려 했던 ‘젊음’을 아직은 순수하게 간직하고 있는 새내기 대학생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는 행복해 보였다. 봄향기를 가득 담고 그의 연구실 창문 틈으로 살짝 넘어온 햇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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