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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문화 기행

차도르와 할례의 땅에도 본능은 불타오르고

  • 권삼윤 문명비평가

차도르와 할례의 땅에도 본능은 불타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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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오 여인에게서 어쩐지 억세다는 인상을 받았다면 인도네시아의 발리 여인들에게선 여성의 부드러움이 어떤 것인지를 엿볼 수 있다. 적도 가까운 발리섬은 ‘인류 최후의 낙원’이라는 찬사에 걸맞게 아름답다. 이곳의 여인 또한 자연 못지않게 아름답다.

또한 그들이 신을 모시는 정성은 누구도 따를 수 없을 만큼 극진하다. 그들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런 신실함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발리 여성들은 매일 아침과 점심, 저녁, 하루 세 차례씩 신에게 공양을 드린다. 집안의 가족사당에 모신 조상신뿐 아니라 마을의 사당에 모신 힌두신, 도로의 신, 다리의 신, 나무나 돌의 신, 그리고 벼농사의 신 등 온갖 신에게 정성을 드린다.

우붓이라는 발리의 작은 마을을 찾았을 때 나는 이른 새벽의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어 논둑길을 걸었다. 그때 한 젊은 여인이 야자수잎에 밥을 싸서는 논둑에 올려놓고 향을 피우며 절을 올리고 있었다. 그 광경은 그대로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러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약간 수줍은 듯이 맑게 미소지으며 조금전 공양으로 바쳤던 야자수잎에 싼 밥을 내게 건네주었다. 우붓은 외국인이 많이 찾는 관광지인데도 그녀는 그렇듯 풋풋했다.

신의 땅, 발리섬에 춤이 없을 수 없다. 발리춤 중에도 백미는 화려한 복장과 머리장식, 무표정한 얼굴, 도전적인 눈동자, 미묘한 손놀림으로 보는 이를 사로잡는 바롱댄스. 선을 상징하는 바롱과 악의 상징인 장다의 싸움을 그리는 바롱댄스는 주로 나이 어린 무희들이 추는데, 바투불란, 우붓 등 바롱댄스 공연이 펼쳐지는 곳에선 표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룰 만큼 인기다.

그렇다면 대륙의 중국 여자들은 어떨까. 상하이에서 만난 20대 후반의 친샤오옌(秦小燕)이라는 한족(漢族) 처녀는 “어떤 남자가 최고의 신랑감인가”라는 내 질문에 “물같이 부드러운 남자가 일등 신랑감”이라고 답해 놀라게 했다.



예로부터 중국은 강한 유교 전통 때문에 아내는 남편이 축첩을 해도 묵묵히 받아들여야 했고, 족보도 재산상속권도 없었으며, 한때는 전족이라는 것이 있어 함부로 밖에 나다니지도 못하는 등 온갖 서러움을 안고 살아야 했는데, 어느새 남자는 ‘부드러워야 한다’고 강요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녀는 이런 말도 들려줬다.

중국 여성의 힘

“중국에선 돈이 있어야 하고 지위도 높고 학벌도 좋아야 출세를 합니다. 그중 하나만 없어도 힘들죠. 그러나 이런 조건을 다 갖췄다 해도 여자에게 잘 해주지 않는다거나 감정이 메말라 있다면 낙제지요. 여자에게 소리를 지르는 그런 남자는 정말 구제불능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여자에게 선택당하는 것이 행운이라고 해야 할까. 그녀의 얘기를 듣다 보면 여성해방은 그 진원지인 서양이 아니라 중국에서 먼저 결실을 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에는 6억명의 여성이 살고 있다. 이렇게 많은 중국 여자들은 대부분 일을 해야 한다. ‘일’이란 가사노동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지정해준 직장에서 근무하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은 사회주의 체제의 위세가 옛날 같지 않아 돈을 벌 목적으로 직장에 나가는 경우가 적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것도 따지고 들면 ‘모든 인민은 노동을 해야 한다’는 사회주의 체제의 기본 전제와 맞닿아 있다. 중국 여성은 국가가 정해준 일터에서 일하면서 경제적으로 독립했고, 그리하여 지금은 남성과 대등한 관계가 된 것이다.

베이징에서 만난 30대 후반의 회사원은 아내가 은행에 다닌다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여성의 지위가 높아진 데는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남녀 구별이 있을 수 없다는 지침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혁명 열기가 식어버린 지금은 경제적인 이유가 여성들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제 경우를 말해 볼까요? 제가 버는 돈으로는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가끔 전자제품이라도 하나 들여놓으려면 집사람이 함께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 퇴근 후 직장동료들과 어울려 한잔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죠. 직장일이 끝나는 대로 귀가해서 집안 일을 거들어야 하니까요. 밥도 짓고 빨래도 하고 아이들도 건사해야 합니다. 아내가 힘드니 어떻게 합니까, 도와줘야죠.”

이런 사정은 그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었다. 여행중에 만난 많은 중국 젊은이들도 상황이 비슷했다.

중국 여자들은 정말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베이징에서 가장 길고 넓은 장안로 양쪽으로 난 자전거 전용도로를 헤집고 질주하는 여자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어린 소녀와 아가씨, 주부와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부지런히 페달을 밟아댄다. 자전거를 탄 여성 중엔 바지를 입은 사람도 있고 치마를 입은 사람도 있다. 치렁치렁한 머리도 있고 쇼트커트도 있다. 복장도 가지가지고 스타일 또한 천차만별이지만 그들은 모두 바쁘게 움직인다. 아마도 그것이 오늘의 중국을 움직이게 하는 힘일 것이다.

여성문화를 이야기하면서 화장을 빼놓을 수 없다. 아름다워 보이려고 자신을 가꾸고 치장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자라면 예외가 없었다. 이 분야에선 아프리카 여성들이 선두를 달린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굳이 이집트 박물관의 화장석이나 클레오파트라의 화장술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다. 색색의 물감을 얼굴에 칠하고 팔찌 귀고리 코걸이 등 각종 액세서리를 요란하게 달고 있는 누비아 여인들이나 피라미드로 구경나온 귀부인들의 가녀린 하얀 손등 위에 곱게 그려진 ‘헤나’만 봐도 알 수 있다.

그것도 모자란다면 유행과 예술의 도시 파리로 가보라. 자기 표현에 과감하다는 파리지엔들이 윗눈썹까지 아이섀도로 진하게 칠하고, 젊은 여자들은 그것도 부족해 머리카락을 여러 가락으로 땋아 쭈삣쭈삣한, 아주 야성적인 헤어스타일을 보여준다. 바로 그것이 ‘아프리카 룩’, 다시 말해서 아프리카 여성들의 패션이고 화장법이다.

화장에 숨은 비밀

아프리카는 유럽의 식민지배를 받긴 했으나 문명에 찌든 대륙이 아니어서 구대륙에 새로운 것을 선사할 수 있다. 그래서 모두가 다투어 아프리카 룩을 받아들인다. 머리에 여러 색으로 물을 들이는 우리의 젊은이들 또한 그런 유행에 이미 감염되고 말았으니 우리 또한 아프리카 룩으로부터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나는 현대문명이 아프리카의 것으로 세례받지 않고서는 생명을 유지해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울해하다가도, ‘그래도 아프리카가 있지’ 하며 다시 희망을 찾곤 한다. 아프리카는 그만큼 맑은 샘인 것이다.

그러나 앞에 이야기한 헤나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성행하고 있는 손발 화장술이지만 아프리카가 그 원산지는 아니다. 인도가 고향이다. 인도 여성들은 꽃가루와 나무가루, 그리고 식물성 기름을 한데 섞어 만든 검은색 계통의 안료인 헤나(heana)로 손등과 손바닥, 발등에 식물의 줄기나 잎, 나비 등을 예쁘게 그린다. 헤나는 결혼하기 전 처녀들이 남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하는 것이므로 아름다운 꽃무늬가 주로 선택된다. 그것은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순결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고 처녀라면 누구나 헤나를 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손에 물을 묻히지 않을 정도로 신분이 높고 돈이 많은 집안의 딸이어야만 가능하다. 화장은 이렇듯 신분과 계급을 은근하게 드러낸다. 그것을 일본의 게이샤에게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일본 교토(京都)의 지온지(知恩寺) 부근에는 유곽이 많다. 그래서 화려한 기모노 차림에 하얀 얼굴의 게이샤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워낙 화장이 진해서 그들의 얼굴에선 표정을 읽을 수 없다. 까다로운 손님들을 접대해야 하는 그들의 직업상, 표정을 숨기기 위해 그렇게 화장을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게이샤 화장이라고 하면 ‘하얀 떡칠’과 무표정한 얼굴이 떠오른다. 그건 곧 게이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혼네(本音·속내)와 다테마에(建前·겉표정)를 달리하는 일본인들의 행동양식이 그 속에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게이샤의 화장술은 그런 일본문화의 진수를 알게 모르게 보여주고 있다.

세상의 절반은 아무래도 여성 몫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신동아 2000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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