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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독점 인터뷰|제2부 YS 남북회담-국내정치 본격 발언

“차기대통령 적임자 공개 지지하겠다”

YS의 차기대권 구상

  • 대담: 김종심 동아일보 출판국장, 황의봉 신동아 편집장 정리: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차기대통령 적임자 공개 지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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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에 취임하시고 한 2, 3년 지나니까 레임덕이 오기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대통령 5년 단임제에서 실제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얼마나 되던가요?

“나는 현행 헌법이 그렇게 잘된 제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헌법을 바꿔서 (더) 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더 안 했고, 또 내가 재임 중에 직접 개헌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안 했는데, 미국같은 4년 중임제가 옳다고 생각해요. 5년 단임제는 사실 내가 전두환 정권 때 헌법을 다루는 야당 사람들을 불러다가 채택하자고 해서 마련된 제도예요. 이승만은 독재하다가 망했고, 박정희도 선거다운 선거 없이 18년 독재를 했어요. 이러니 우리나라에서는 장기집권은 안되겠다 해서 결국 5년 단임으로 하자, 그건 사실 내가 지독하게 주장한 거예요. 그때 상황으로는 장기집권이라는 말이 최고의 악이었거든. 하여튼 역시 대통령 중임제가 옳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스스로 법 개정할 생煞

―요즘 재임 시절과 관련한 회고록을 쓰고 있으시죠?

“그렇지. 금년에 새로 나와요. 이번에 회고록에도 쓰지만 강택민 주석을 나는 인간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대단히 훌륭한 사람으로 생각해요. 지금 정상 중에서도 연하장을 나한테 제일 일찍 보내요.

내가 이 양반한테 제일 고맙게 생각하는 것이 황장엽서기 사건이 났을 때예요. 지금도 그렇지만 분단 50년 동안 북한의 서기가 우리나라에 망명한 일이 없어요. 지위가 그렇게 높은 사람이 온 일이 없다구요. 그때 상황이 참 복잡하게 돼버렸어요. 북한에서 중요한 사람들이 북경에 가서 협박 비슷하게 하고, 또 하나의 당면 문제가 북한은 기차타고 북경까지 갈 수 있으니까 그쪽 청년들이 가서 우리 대사관을 포위한 겁니다. 황장엽을 내놓아라, 죽인다 살린다 이래 가지고 강택민이 장갑차까지 동원해서 우리 대사관에 경비를 섰습니다.



그때 북한에서 그렇게 했다고 하니까 정부에서는 고민을 하는 겁니다. 외교 채널을 통해서 내놔라, 우리한테 보내라, 이럴 때인데, 이게 얼마나 큰 사건이에요.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안되겠더라고요. 그래서 강택민 주석한테 편지를 썼어요. 정상끼리는 친서를 늘 보내는 게 아닙니다. 대사를 통하거나 그러는데 나는 편지를 띄웠습니다.

내가 강주석을 8번이나 만났습니다. 당신이 나보고 형제간처럼 친하다고 그러는데, 황장엽을 보낸다면 황장엽은 이북에서 총살당하는 거다, 당신이 세계가 보는 가운데 그런 짓을 하면 황장엽이를 죽인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나하고의 관계에 있어서도 형제간처럼 지내자고 해놓고 이렇게 하면 개인적인 관계도 끊어지는 거다, 개인적인 관계가 끊어지면 우리 한국하고 중국하고의 관계도 심각하게 될 것이다,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소식이 없어요.

그래서 장정연 주한 중국대사를 불렀어요. 장대사를 만나가지고 강주석이 나하고 이런 관계인지 당신이 알지 않느냐, 그런데 편지를 했는데 답이 안온다, 내용은 이런 거다, 이럴 수가 있느냐 했더니 장대사가 그날 중에 편지를 하겠다고 해요. 그래서 얼마 지나고 나서 강주석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한국에 직접 보내면 상당히 민감한 문제가 되니까 제3국에 보내면 어떻겠느냐 해요. 미국도 생각해보고, 일본도 생각했는데 일본은 가깝고 좋은데 이북으로 안 보낸다는 보장이 없거든요. 그래서 그때 필리핀으로 제의를 했어요. 지금 외무차관인 반기문이 그 때 안보수석이었는데 내가 그를 내용적으로 대통령 특사로 보냈습니다.

내가 필리핀으로 보낸 건 라모스 대통령이 나하고 아주 친분이 두텁기 때문이에요. 친분이 두텁지 않으면 불가능해요. 그때만 하더라도 전부 비밀로 했는데, 기자회견하고 그만둔 이장춘 대사 있잖아요? 그 사람이 야무진 사람입니다. 그때 필리핀대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장춘씨한테 연락해 가지고 차 번호까지 가렸습니다. 이장춘의 차를 타고 반기문이 라모스를 밤에 만나잖았습니까? 그렇게 내 편지를 전하고, 라모스는 나하고 친구니까 ‘김대통령이 고민하는데 해주겠다’고 하고 받은 겁니다. 반기문이 특사로 갔다는 건 지금까지도 비밀입니다.

중국에는 필리핀으로 하는 게 좋다고 해서, 중국에서 중국 비행기를 타고 필리핀으로 갔습니다. 라모스는 깊은 생각을 안하고 단순히 받아들였지요. 그때부터 필리핀이 난리가 난 거예요. 라모스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죽겠다고 빨리 데려가라는 거예요. 황장엽이 어디 있느냐고 필리핀 야당이 떠들어댄 거지요. 필리핀에는 공산당이 있잖아요, 이북에 동조하는 공산당 세력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이 어째서 필리핀에서 이 사람을 맞느냐 이렇게 된 거예요. 그때 하루에도 몇번씩 그 사태에 대해서 보고를 받는데 죽겠더라고요. 중국은 계속 필리핀에 한달은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이북에 대해서 체면이 선다는 거죠. 그래가지고 KAL기를 보내 싣고 왔는데 황장엽이를 데려오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다음 대통령 선거 때 내 입장 밝힐 것”

―황장엽씨가 귀국하면서 정치적으로 많이 시끄러웠던 게 이른바 황장엽 리스트가 존재하느냐, 거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포함되느냐 하는 거였습니다. 실제로 소문이 돌 만큼 그렇게….

“그 이야기는 안 할래요. 지금도 우리가 황장엽을 이용한다는 건 우습지만 여러가지로 그 사람이 한국에 온 의미를 활용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김대중씨는 황장엽을 완전히 가둬놓고 있잖아요. 왜 망명하게 됐느냐, 이북의 실정은 어떠냐고 조사를 하면서 우리가 많은 것을 알았어요. 황장엽은 김일성과 아주 가까운 사람이었어요. 김일성대학 총장도 했고, 주체사상의 창시자니까. 황장엽이 올 때 미국이 관심이 많았어요. 북한의 제일 중요한 정보통이 온다고 관심이 굉장했어요. 아마 앞으로도 이북의 서기급이 남한에 오는 일은 어려울 거예요.

―이번 총선에서는 초기에는 어느 쪽으로든 의중 표현을 하지 않겠는가 생각했지만 결국은 중립을 지키셨습니다. 선거 후에도 중립을 지키시겠습니까, 아니면 필요한 역할이 있으면 하시겠습니까?

“국회의원 선거는 작은 문제이고 대통령 선거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 선출과 관련해서는 내가 분명한 입장을 표명할 거예요. 시기가 언제가 좋을지 선택해서 나는 누구 지지라고 얘기할 겁니다. 여당 야당을 떠나서 한국의 대통령은 이 사람이 되는 게 제일 좋다고 지지할 겁니다. 그 시기는 너무 빨라서도 안되고 너무 늦어도 안되고, 정치가 돌아가는 현실과 관계없이 얘기할 거예요.”

―그와 관련해 그동안 영남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얘기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꼭 그렇게 이야기하지는 않았는데 그걸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죠. 영남이 크니까 언제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죠. 김대중씨가 싹쓸이하니까 영남 사람들이 이제는 안 되겠다고 하는 것이 사실이거든요. 그건 내 얘기가 아니고 영남 사람들이 그렇다고 봐야 돼요. 그런데 이번 선거가 끝나고 나서는 분위기가 굉장히 달라질 거요. 민주당도 제 멋대로 떠드는 놈이 생길 거고 야당은 엉망일 거고. 기회란 놈은 이마에 꼬리가 달려 있기 때문에 그때 꽉 잡아야 된다니까요. 놓치고 나면 뒤에 꼬리가 없기 때문에 절대 못잡아요.”

―단순히 누가 한국의 대통령으로 바람직하다고 밝히는 부분 뿐만 아니라 정계가 정돈되고 야당이 통합되거나 하는 개편도 대선 과정이라고 보면, 의견을 표명하거나 역할을 하시겠습니까?

“내 입장은 우물우물하거나 그러지 않을 거예요. 언론이 자꾸 날보고 정치를 할 거라고 쓰는데, 내가 회고록을 쓰는 건 인생을 정리한다는 의미로 쓰고 있거든요. 내가, 특히 대통령을 한 사람 아니요. 지금 내가 뭘 또 할 게 있어요. 다만 내가 식물인간이 아닌 다음에야 정치가 뭐가 옳고 김대중씨는 나쁜 사람이다,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어야 되고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또 내가 전직 대통령으로서 쿠데타를 한 사람도 아니고 당당히 200만표 차이로 김대중씨를 이겼던 사람으로서 기회에 따라서 이게 나쁘다, 이게 옳다, 이게 정의다, 하고 말할 수는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가령 아까 카터 얘기가 나왔지만 카터가 이북에 가서 정상회담을 주선하는 건 전직 대통령이 하는 것 아니요? 요전에 NHK에서 보니까 카터가 파나마 운하를 방문했더라고요. 얼마 전에 미국에서 전부 철수할 때. 그때 카터가 완전히 미국을 대표하는 연설을 하더라고요.”

“김대중씨는 희망 없다”

―김대중 대통령도 임기가 반을 넘어가는 시점에 접어들었는데요. 전직 대통령이 되는 과정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겠지요. 전직 대통령으로서 김대중 대통령이 남은 임기를 어떻게 마무리하고 퇴임을 준비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나는 김대중씨는 희망이 없다고 봐요. 이제 무슨 짓을 해도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넜다고 봐요. 절대 수습이 안 되고 불가능해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나는 김대중씨가 잘 되기를 바란 사람이에요. 그런데 내가 퇴임하고 나자 김태정을 통해서 문서로 (환란책임과 관련한) 조사하는 걸 나한테 보냈거든요. 검찰총장이 무슨 권한으로, 대통령이 아무 말 안하는데 조사를 합니까? 내가 5년 동안 검찰총장을 데리고 있어 봤기 때문에 어떻게 하는 건지 김대중씨보다 더 잘 알죠. 김대중씨가 시켰다는 걸 다 알지요. 내가 그때부터 어떻게 나를 조사하느냐, 이런 나쁜 사람이 어디 있느냐, 모든 사람이 올 때마다 김대중은 독재자라고 한 거예요. 야당 파괴하는 자이고 나쁜 사람이다 이거예요. 작년 8월3일에 독재자라는 말을 처음 했는데, 그때 김영삼을, YS를 욕하는 사설을 (신문에서) 계속 썼어요. 지금 내가 말하는 게 틀렸나? 김대중이 독재자지. 지금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김대중이 독재자다, 하는 내 말이 옳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때 신문에서는 야당 파괴하는 것, 내 주변을 조사하는 것을 얘기해도 그건 일체 안 쓰고 밑도 끝도 없이 독재자라고 했다고 하니까, 난데없이 자다 일어나서 누구 욕한 것처럼 되는 거예요.”

―퇴임하기 전에 김대중 당선자와 청와대에서 1주일에 한번씩 만나셨는데 DJ가 약속한 것은 없었습니까?

“약속하고 그런 게 아니라, 내가 그 사람한테 강요한 것도 없어요. 김대중씨가 당선자 입장에서 두달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화요일 아침 9시에 만났는데,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더니 달라졌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 사람이 와 가지고는 이렇게 말해요. ‘보스워즈 대사를 만났더니 앞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제일 중요한 과제는 김영삼 대통령하고 협력하는 겁니다. 이게 제일 중요한 겁니다, 이러더라’는 거예요. 그리고 김대중씨도 ‘미국 대사가 얘기하는 대로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나한테 얘기하는 거예요. 참, 그래서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좀 변했나, 하고 생각했었어요.

그런 일이 있고 난 후에 내가 퇴임하기 직전에 관저에서 저녁을 먹자고 해서 부부간 저녁을 함께 했어요. 이희호씨하고 우리집 사람하고 저녁을 먹는데, 김대중씨가 또 우리 집사람한테 나한테 했던 얘기를 하더란 말입니다. 자기하고 나하고, 두 사람이 협력하는 것이 앞으로 우리나라를 위해서 제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겁니다. 우리 집사람도 그 이야기를 안 잊어버려요, 자기가 강조해서 이야기를 했으니까.

그런데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나한테 얘기해놓고 내 뒷조사나 하고, 국회청문회 나오라고 하고…. 이걸 김대중씨가 결정했지 누가 결정했겠어요. 나보고 청문회에 나오라고, 국회의원 중에 그렇게 말할 사람이 어디 있어요? 내가 나갈 사람도 아니지만. 내가 과거에 박정희, 전두환 하고 어떻게 싸워 왔는데. 자기는 피해다니고 숨어다니고 그랬지만.”

“전두환·노태우와는 평생 안만나”

―앞으로 전두환, 노태우 전대통령과는 평생 어떤 일이 있어도 안 보실 생각이십니까?

“만날 생각이 전혀 없어요.”

―DJ 하고는…

“그것도 말 안 해. 지금 전혀 그런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아요.”

―최근에 즐겨 읽으신 책이나 좋아하게 된 구절이 있으십니까?

“내가 사실은 붓글씨를 잘 못쓰지만 이태백의 시가 참 유명해서 병풍을 하나 쓰려고 합니다. 큰 글씨가 아니고 중간 글씨쯤으로 해서 10폭짜리 병풍에 이태백의 시구를 쓰려고 해요. 그래서 이태백에 관한 책을 보고 있는데 요새 사람 만나랴, 이태백 시집 보랴, 산에 가랴, 회고록 쓰랴, 바빠요.

그 시를 보면 달 이야기, 여자 이야기, 술 이야기, 원숭이 이야기가 나오고, 제일 많이 나오는 게 산과 강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태백이는 중국의 그 넓은 땅에 이 산을 알고 저 산을 다 아는 거예요. 나는 놀랐어요. 내가 산에 다니지만, 산이 얼마나 멋있는가 아는 거예요. 진짜 오묘해요. 풍류가 있는 거예요. 시국에 대한 얘기도 있어요. 시인이면서 2천년 전 당시 중국의 정치에도 굉장히 관심이 있었다고 봐요. 중국의 시인들 중에 두보도 유명하지만 이태백을 능가하는 시인은 중국에도 없고 다른 나라에도 없다고 봐요. 물론 소련의 푸쉬킨도 대단히 유명한 사람이지만.”

―오늘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동아 200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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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김종심 동아일보 출판국장, 황의봉 신동아 편집장 정리: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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