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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보고|산부인과 의사의 인도 밀교 탄트라 체험기

‘요가섹스’를 통한 깨달음의 세계

  • 조현두

‘요가섹스’를 통한 깨달음의 세계

3/3
맛의 충격, 소리의 충격, 종교의 충격, 촉감의 충격…. 인도여행은 충격에서 시작하여 충격으로 끝난다. 이곳에서는 신을 모신 사원이나 기념관, 박물관 등 큰 건물에 들어가려면 꼭 신을 벗어야 한다. 어떤 때는 신발을 벗고 1시간 이상 걸어야 할 때도 있다.

나는 처음에 두꺼운 운동화를 벗고 양말을 벗으니 허옇게 죽어 있는 발을 보고 놀랐다. 물기 있는 잔디밭을 맨발로 걸으니 처음으로 발의 쾌감을 느꼈다. 발은 40년 만에야 해방돼 따스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과 향기로운 풀냄새를 맡으며 아주 기뻐하는 것 같았다. 신을 벗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발과 발가락이 대지와 입맞춤하며 짜릿한 쾌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이틀이 지나자 발은 뚜렷이 핏기가 돌고 햇빛에 그을어 빠알갛게 살아나고 있었다. 발이 해방되어 상쾌하니 몸 전체가 상쾌하다.

가끔 거리나 마을에서 홀랑 벗고 꽃목걸이만 하고 다니는 수행자를 만나는데, 포경수술을 하지 않은 성기(性器)를 축 늘어뜨리고 다니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참되어 보인다.

우리 인간들은 언제부터 물건을 가리기 시작했을까. 기독교 논리에 따르면 태초에 죄를 짓고 난 후부터다. 성경 창세기 3장7절을 보면,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善惡果)를 따먹고는 눈이 밝아져서 갑자기 부끄러움을 느껴 남자는 두 손으로 물건을 가리고 여자는 한 손으로는 음부를, 다른 한손으로 젖가슴을 가렸다고 전한다.

우리의 죄와 가식을 가리는 이 옷들. 그런 면에서 보면 홀랑 벗고 향기나는 꽃만 목에 걸고 다니는 수행승들은 진정 그 영혼이 순수하고 자유로워 보인다.



나는 봄베이에서 현지인들에게 가네스푸리까지 가는 방법을 물어보었다. 그런데 열에 열 명 다 대답이 틀리다. 버스가 있다는 사람, 기차로 가라는 사람, 택시로 가라는 사람, 배를 타고 가라는 사람, 배를 타지 말고 차라리 끝내주는 배(腹)를 타는 곳으로 가자는 사람 등….

교통편은 그렇다 치고 박사가 말한 왈리족은 어떤 족속일지 두렵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무사히 그 마을을 통과할 수 있을까. 부닥쳐보자. 설마 식인종은 아니겠지.

해골로 물 마시는 왈리족

난 그들을 만났다. 그들은 의외로 순박하고 신앙심이 두터웠다. 그들은 해골 바가지로 물을 떠먹었는데 내가 놀라서 물어보았다.

“이 해골(두개골)은 나의 존경하는 스승의 것이오. 이 스승의 해골에 물을 담아 마시면 그분의 영혼과 지혜까지 물 속에 녹아서 내 몸 깊숙이 들어옵니다. 자 당신도 한번 이 해골로 물을 마셔 보시오.”

그들은 기꺼이 나를 안내해 주었다. 마을과 숲을 지나니 또 강이 나왔다. 아니 이 강에 대해선 두바이 박사의 말이 없었는데… 현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이 강을 건너면 당신이 찾아가려는 아슈람이 나옵니다. 하지만 당신을 배로 건네줄 수는 없습니다. 저쪽 피안(彼岸)의 세계와 이쪽 속세(俗世)의 약속이죠. 저쪽으로 가려면 당신은 모든 것을 이곳에 버리고, 모든 인연을 끊고 맨손과 맨몸으로 헤엄쳐 건너야 합니다.”

아니, 그렇게 심한 말을 하다니….

하긴 우리 선조들은 수도승이 되기 위해 어떻게 했는가. 집을 나와 깊은 산속에 있는 스승을 찾아 속세와 인연을 끊는 의미에서 삭발을 했다. 그리고 계율을 지키며 오로지 한 가지 목적인 깨달음을 얻기 위해 평생을 정진하지 않았던가. 인도에서는 이런 깊고 넓은 강이 수도자를 위한 좋은 관문이 돼 왔다. 진정 도(道)에 뜻이 있는 사람만이 목숨을 걸고서 이 강을 건너오라는 뜻일 것이다.

나는 건너가자니 강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크고, 돌아가자니 여기까지 죽을 고생하고 온 것이 너무 아까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번민의 밤을 보냈다.

나는 달마대사와 그 제자 신광의 이야기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달마대사가 중국 하남(河南)의 숭산 소림사의 동굴에서 면벽(面壁)수도를 하고 있을 때 하루는 신광이라는 중이 구도를 하러 찾아와 밤새 눈발 날리는 동굴 밖에서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대사는 며칠이고 상대해주지 않았는데 신광은 예리한 칼로 자신의 한쪽 팔을 잘라 대사 앞에 던지며 “대사님, 구도를 향한 저의 마음은 이와 같습니다” 하고 말했다. 이에 감명받은 달마가 비로소 제자로 받아 주었다고 한다.

구도의 길은 가시나무 위를 걷는 것처럼 괴롭고 힘들며 오랜 끈기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없이 결코 구도의 길에 들어서지 말라는 교훈이 담긴 이야기인 것이다. 신광은 그 뒤 달마를 계승하여 중국 선종의 제2조가 된다.

‘그래 결심했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리라.’

다음날 아침, 나는 왈리족의 전송을 받으며 강을 건넜다. 강물은 따뜻했고 물살도 세지 않았다. 나는 한참 헤엄쳐 가다가 물이 얼마나 깊은지 알아보려고 잠수를 했다. 물 속으로 한참 내려갔지만 강바닥에 닿지 않았다. 물이 혼탁해 물고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헤엄쳐 물을 건너는데, 강 저편에서 몇몇 사람이 나를 지켜보는 것이 보였다. 강을 건너 수행자들을 만나자 난 합장을 했다. 그들도 나에게 합장하고는 나를 아슈람으로 인도해 주었다.

아슈람 건물 밖에는 총을 찬 보안요원 7, 8명이 지키고 있었다. 탈주자를 막기 위함인가, 침입자를 막기 위함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제단 위의 황금 신상

나는 대기실에서 한참 쉬었는데, 저녁 6시에 구루기타(구루에 대한 찬미시간) 의식이 있다고 한다. 이곳 집사에게서 흰 가운을 빌려 입었는데, 누구든지 예배 성소(聖所)에서는 알몸 위에 가운 하나만 걸치게 되어 있었다.

나는 4시쯤 성소에 들어갔는데 안에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다. 제단 위에는 황금으로 빛나는 구루 사라난다의 전신상(全身像)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덩어리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모두 황금이었다. 신상(神像)의 뒤에는 형형색색 찬란한 빛이 바람개비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벽면에는 죽 돌아가며 대스승 사라난다와 수제자인 스승 묵타난다의 사진이 붙어 있었고, 사진 밑에는 교리(敎理) 같은 글들이 적혀 있었다. 나는 그 글을 찬찬히 음미하며 읽었다. 원문과 내 어설픈 번역은 다음과 같다.

▲God and Guru give everything, but man doesn’t know how to take(신과 구루는 모든 것을 주신다. 하지만 인간들은 그것을 받는 방법을 모른다).

▲Guru is neither man, nor God, nor individual. he is just Guru, who destroys darkness and gives light(구루는 인간도 신도 아니다. 그는 단지 구루일 뿐. 그는 어둠을 몰아내고 광명을 주신다).

▲There is no difference between Guru and God. Only God manifests himself in the form of the Guru(신과 구루의 차이는 전혀 없다. 신이 구루의 몸을 빌려 그 자신을 나타내신 것뿐이다).

▲God is in your heart. You lost him in your heart. You will find him only in your heart(신은 네 마음 속에 있다. 너는 신을 네 마음 속에서 잃었다. 너는 단지 네 마음 속에 계신 신을 찾아야 한다).

▲To receive when the Guru gives, to give when the Guru accepts, to live as the Guru’s entirely. These are the marks of devotion to the Guru(구루가 줄 때에는 받기 위해서, 구루가 원할 때는 바치기 위해서, 온전히 구루 같이 살기 위해서. 이것들은 구루에 대한 헌신의 징표이다).

▲To find that Great Ecstasy, we repeat the name of God. The name of God is charged with beauty and energy(최고의 쾌락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신의 이름을 계속 부른다. 아름다움과 정력이 충만한 신의 이름을).

나는 그 글들이 주는 영감(靈感)에 깊이 빠져들어 잠시 나를 잊고 있었는데, 앞문이 열리며 아름다운 선녀(仙女)들이 흰옷을 입고 하늘하늘 들어왔다.

처음에 나는 선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선녀가 아니라 아름다운 서양여자들이 흰 가운을 걸치고 찬송가 같은 책을 들고 줄줄이 들어와 구루 사라난다의 황금신상에 절하며 경배했다.

다른 문으로는 많은 젊은 남자신도들이 들어와 남녀 따로 나뉘어 제단을 보고 앉았다. 파란 눈의 외국인들이 많아 보였다. 이 많은 아름다운 남녀들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저 예쁜 여자들은 탄트라의 제물(祭物)일까. 남녀 신도들은 신의 이름을 부르며 찬미했다.

“하레 함(Hare Ram ; 오 신이여). 하레 크리슈나(Hare Krishna ; 오 크리슈나 신이여).”

그래! 바로 그 신었다. 인도인 항해사 바가바나가 내게 말해준 그 신이다. 향을 피우고 북을 치면서 횃불을 돌린다고 내게 말해주었지.

오후 6시가 되자 조용한 음악이 흐르더니 누군가가 큰 북을 방의 한가운데로 가져왔다. 상체를 벌거벗은 한 미남 서양인이 제단의 황금신상 앞에서 3개짜리 횃불을 돌렸다. 또 햇살에 그을려 아주 건강해 보이는 한 청년이 북을 쳤다. 그 북소리는 마음 속을 울렸고 40년 동안 누워 자던 내 자아(自我)를 깨우는 것 같았다. 조금 있으니 북소리에 맞추어 창문 밖에서 종소리가 들렸는데 그 우렁찬 종소리는 내 자아를 마구 흔들어 깨웠다.

흰 연기가 나는 화톳불을 신도(信徒)들 사이로 돌리고 내 주위에서도 돌렸다. 제단 앞에서 4개짜리 횃불을 돌렸다. 횃불은 더 크게 불타오르고 북소리와 종소리도 점점 빨라졌다. 내 심장도 종소리에 맞추어 고동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황홀한 기쁨을 느끼기 시작했다. 제단 앞에서는 5개짜리 횃불을 계속 돌렸다. 북소리와 종소리도 횃불이 더 크게 불타 오름에 따라 더욱 빨라지고 내 맥박도 점점 빨라졌다.

내 마음 속은 기쁨으로 벅차올랐다. 제단 앞에서 7개의 횃불이 돌아갈 때는 내 가슴 속에는 기쁨이 넘쳐 흘렀고 전신이 그 기쁨으로 경련을 일으켰다.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기쁨의 극치감.

내 옆의 한 신도가 “빛이 보여요” 했다. 정말 제단에서 밝은 빛이 보였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그 흰 빛, 난 그 빛을 보고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우차, 케차차 우차, 우차, 케차차… 신도들의 열광적인 함성도 아스라이 멀어졌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깨어나 보니 많은 신도가 그대로 쓰러져 자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잠들지 않은 한 신도에게 물었다.

“성(性)의식을 치렀나요?”

“아니오. 성의식은 아주 특별한 날에만 합니다. 당신은 엑스터시에 도달하더니 그대로 누워 자버리더군요.”

아마 오전에 강을 건너와 너무 피곤했던 것 같았다.

탄트라의 도량

다음날 나는 간곡히 부탁하여 탄트라의 도량(道場; 도를 수련하는 곳)에 가볼 수 있었다. 여러 도사가 갖가지 방법으로 수련하고 있었다.

난 점점 놀라기 시작했다. 한 도사는 성기(性器)에 천을 감아 몽둥이처럼 만들어 큰 나무에 대고 치고 있었다. 얼마나 세게 치는지 나뭇가지가 마구 흔들렸다. 저것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내가 의과대학생일 때 부산 대신동에서 하숙했는데 그때 옆방에 있는 대학 대표씨름선수가 아침마다 성기에 붕대를 감아 물이 가득 담긴 드럼통을 마치 야구방망이로 치듯이 하면서 성기를 단련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왜 이런 훈련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씨름시합 중에 상대방 선수가 급소인 불알을 치거나 꽉 잡아 순간적으로 힘을 못쓰게 하는 반칙을 가끔 하기 때문에 몸의 다른 부위와 마찬가지로 성기도 단련한다는 것이다.

집사는 나를 큰 스승에게 데려갔다. 나는 그분에게 큰 절을 했다. “저는 먼 동방의 나라 코리아(Korea)에서 스승님의 명성을 듣고 찾아 왔습니다. 영원한 구루시여! 탄트라, 그 놀라운 성력(性力)을 어떻게 수련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간청했다.

그분은 한동안 나를 바라보더니 몸소 수련 비법을 보여 주었다. 나는 너무 놀라 “스, 스승님. 무, 물건이 찌, 찢어지겠습니다” 하고 외쳤다. 하지만 스승은 전혀 힘들어하지 않고 일어났다. 무겁고 큰 벽돌을 4장이나 달고서….

세상에, 나는 이런 수련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독자 여러분은 절대 따라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 구루는 수십년간 수련을 통해 단련된 성기(性器)를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만약 일반인이 따라하다가는 물건이 찢어져 성불구가 될 수도 있다. 여하간 나는 탄트라가 이렇게 어려운 수련인 줄 몰랐다.

나는 아슈람에 묵는 동안 파란 눈의 수많은 외국인을 지켜보면서 인도의 종교가 어떻게 미국과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지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이는 서양인들이 2000여 년이나 자신을 지배해 오던 하나님에 식상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또 서양에서는 신과 인간이 주와 종의 관계로 설정돼 있지만, 인도에서는 인간이 신이자 주인이다. 사람의 몸 내부에는 또 다른 정신적인 실체가 존재하는데 명상과 수련을 통하여 자신 속에 깊숙이 숨어 있는 그 절대적이고 깨끗하고 아름답고 신성한 신(바로 자신의 원래 모습)을 찾는 것을 중요시한다. 이렇게 자신의 본체(위대한 영혼)와 대면하는 것이 곧 깨달음이며 그 깨달음을 통하여 자신도 신과 같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다고 여긴다.

나는 맨발로 추수가 끝난 인도의 대지를 걸었다. 거친 땅에 발바닥이 닿을 때마다 따끔따끔 아팠지만 상쾌한 기쁨을 느꼈고 정신은 더없이 맑아졌다. 나는 대지에 앉아 끝없이 보이는 숲과 평원을 바라보면서 명상에 잠겼다. 나를 낳아주신 대지여! 나를 키워주신 하늘이여! 따스한 대지(大地)를 느끼니 내 마음 깊은 심연에 잠들어 있던 자아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제까지 거짓과 오만과 온갖 허욕으로 가득 찬 껍데기를 자아(自我)는 비웃다 못해 그냥 무시해 버리고 살았다.

대지에서 조용히 명상하니 바람 소리가 들린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 땅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 난 이제 길을 찾았어. 내면세계로 들어가는 좁은 길을 찾은 거야. 그 길 끝에 있는 신성하고 아름다운 자아를 만나기 위해 난 첫 발을 내디딘 거야.

나는 탄트라의 비밀을 찾기 위해 호기심으로 인도를 방문했다. 그런데 인도의 대지를 걷는 순간 그 호기심은 차츰 경외감으로 바뀌었고, 탄트라란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8만6000가지나 되는 수많은 수행 중 하나임을 깨닫았다.

단지 섹스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된다는 환상을 가졌던 나는 탄트라의 어려운 수련과정을 보고나서 포기하고 말았다. 사실 나는 탄트라의 심오한 진리를 만분의 일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함부로 탄트라를 말한 것 같다. 이 점 널리 양해를 구한다.冬

신동아 200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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