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과 분당 모두 주민들의 학력수준이 높은 편이고 경제적 여유가 있어 자녀 교육 열기가 매우 높다. 게다가 두 곳 모두 고교 비평준화 지역이라 중학교 때부터 성적 경쟁이 치열한 편. 교육계에서는 일산에서는 백석고등학교를, 분당에서는 서현고등학교를 지역 명문고로 지목한다. 두 학교를 비교해보자.
먼저 일산 백석고등학교(교장·이은협). 24학급에 1050명이 공부하는 백석고 학부모들의 학력은 서울 명문고의 학부모 수준을 능가한다. 백석고가 집계한 자료에 의하면 대학원 졸업자만 전체 학부모의 18.4%이고, 대학 졸업자는 61.6%, 고등학교 졸업 학력은 19.5%를 차지한다. 소득수준으로 보면 월 300만원 이상의 고소득층이 8.7%, 250만~300만원의 중간 소득층은 81.2%를 차지한다. 그리고 월 250만원 이하의 소득층이 10.1%다.
중학교 때부터 치열한 입시경쟁을 거친 백석고교생들은 2000학년도에 3학년 학생 396명 가운데 무려 96.7%(383명)가 대학에 진학했다. 2000학년도 명문대 진학 상황을 보면 서울대에 24명, 고려대 41명, 연세대 56명, 이화여대에 58명이 진학했다. 99학년도에는 4개 명문대에 모두 104명이 진학했다(서울대 16명, 고려대 22명, 연세대 24명, 이화여대 42명).
이번에는 분당 신도시 중심지에 있는 서현고등학교(교장·이철재)를 살펴보자. 서현고는 30학급에 1511명의 학생수를 가지고 있다. 서현고측이 밝힌 바에 의하면 학부모 학력 수준은 아버지의 경우 대졸 이상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고, 어머니도 대졸자가 70%에 이를 정도로 고학력이다.
학부모들도 공무원, 대기업체 임원, 대학교수, 음악과 미술 계통의 예술인 등 관리직·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이 절반을 넘는다. 서현고측은 서현고 학부모들의 소득수준을 조사하지는 않았지만 중산층 이상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서현고 학생들은 2000학년도 서울 지역 4년제 대학 합격자가 전체의 98%에 이를 정도로 놀랄 만한 학력을 과시했다. 서현고측은 입시 경쟁을 유발할 수 있다며 명문대 진학상황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2000학년도에 서울대에 29명, 고려대 103명, 연세대 99명, 이화여대에 90명이 진학했다.
서현고 학생들의 뛰어난 실력은 각종 경시대회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99년 10월 한국일보 주최 전국 학력 경시대회(전국 200여 고교 참가)에서 단체상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고, 99년 11월에는 교육부와 한국외국어대 공동주최 ‘전국 중고교 외국어학력 경시대회’에서 금상을 받기도 했다. 올해도 대한수학회가 주최한 한국수학 올림피아드에서 3위를 차지한 바 있다. 서현고의 한 교사는 “전국 우수고교 진학담당팀이 매년 우리 학교의 ‘비법’을 배우기 위해 방문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입시경쟁 때문에 신도시 떠나
그러나 분당과 일산 모두 고교 비평준화 지역이기 때문에 생기는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한다. 이들 지역은 초등학교부터 과외가 성행해 이른바 ‘학원 천국’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교육부가 조사한 ‘99년 과외비 실태조사’에 의하면 분당, 일산 등 신도시 학생들은 무려 73.3%가 과외 교육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서울의 강남 서초 등 8학군 지역의 61%보다 높은 수치로 신도시가 ‘과외 열풍지역’임을 여실히 증명했다.
또 명문고를 다니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 사이에 위화감이 조성되는 등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분당소프트 21’이 지난해 4월 분당 주민 32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바에 의하면 분당주민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로 66.67%가 자녀 교육을 우선 순위로 꼽았다.
분당구 탑마을에 사는 주부 이혜원씨는 “분당의 과외 문제는 매우 심각한 상태에 있다. 생활수준이 평균인 가정에서 한달 과외비로 적게 잡아 초등학생이 20만원, 중고생은 30만원 정도 지출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씨는 주부들은 고교 평준화를 바라는데, 왜 안되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 한다. 일산에 살다가 자녀 교육 문제로 서울로 다시 빠져나온 주부 김모씨(45·여·서울시 은평구)의 말.
“딸 아이가 중3이 되면서 고민이 됐다. 일산에서는 백석고 같은 몇몇 명문고 이외의 학교는 학교 취급도 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래서 내 아이가 명문고에 진학하지 못할 경우 평생 열등감을 갖고 살아갈 것 같았다. 일류학교에 진학한다 하더라도 고교 3년간 성적 스트레스에 시달릴 것을 생각하니 차라리 서울로 이사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김씨는 아이 교육 문제를 빼고는 깨끗한 환경과 교통 등 일산의 생활여건이 마음에 들었다고 아쉬워한다.
분당과 일산, 어디가 더 살기 좋은가
일산과 분당 주민들은 고교 비평준화지역이라는 특수성을 빼고는 대체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해서 만족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분당과 일산 중 어느 곳이 더 살기 좋은 곳일까?
이와 관련해 지난해 3월 국토연구원은 신도시 건설 10주년을 맞아 분당, 일산 등 수도권 5개 신도시와 서울시, 인천시, 경기도내 14개 도시 주민 2450명을 대상으로 ‘수도권 신도시주민 주거만족도’ 조사를 벌인 바 있다.
조사 결과 5개 신도시 주민 중 분당 주민들이 주거환경에 가장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6개 분야 주거 만족도(편리성, 건강성, 쾌적성, 안전성, 경제성, 공동체감)를 5점 만점으로 잡았을 때 분당은 3.82를 기록해 1위를 했고, 뒤를 이어 평촌, 산본, 일산, 중동 순으로 나타났다.
국토연구원의 주민만족도 조사에서 4위를 차지한 일산은, 그러나 수도권 지역 주민들이 가장 살고 싶은 곳으로 꼽히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문화일보’가 서울·인천 및 경기도 23개 시 등 수도권 25개 도시 주민을 대상으로 ‘살고 싶은 지역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고양·일산이 1위를 차지했고, 그 다음으로 성남·분당이 꼽혔던 것.
일산에서 7년째 살고 있는 김종원씨(50·일산구 주엽동)의 일산 예찬론를 들어보자.
“일산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곳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원과 문화센터 등 편의시설이 잘돼 있고 학교 시설도 훌륭하다. 탁 트인 호수공원의 상쾌한 환경과 맑은 공기는 무엇보다도 일산 사람들의 자랑거리다. 요즘 들어서는 남북정상회담이 잘돼 일산이 더 뜨지 않을까 기대감을 갖는 일산 사람도 많다. 고속도로로 곧장 진입이 가능한 분당에 비해서 지방에 일을 보러가는 것이 편치 않다는 점이 일산의 약점이었는데, 북한과 교류가 활발해져 남북 왕래가 가능하면 일산의 주가가 더 오르지 않겠는가. 그래서 ‘점심은 개성 가서 먹자’는 농담도 주민들간에 오간다.”
그러나 김씨는 입주 초기에 비해 요즘은 오피스텔, 빌딩 등이 많이 들어서서 갑갑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으며, 계속되는 개발로 교통대란도 우려된다고 말한다. 김씨는 도시계획을 담당하는 관계자들이 개발만 중시하지 일산을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부족한 것같다고 비판했다.
아무튼 일산 사람들은 일산의 최대 자랑거리로 호수공원과 추억의 백마촌(일명 풍동 애니골) 등을 내세운다.
96년 5월 개장한 동양 최대의 인공호수(9만1000평)를 품고 있는 호수공원(31만3000평)은 얼마전 꽃박람회 전시장으로 이용돼 80만명이 다녀간 곳이다. 평소에도 하루 3000여 명이 이용하고 주말이면 1만여 명이 찾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공원에는 4.7km의 자전거길과 7.5km의 산책로가 조성돼 있어 자연과 함께 하려는 시민들로 늘 붐빈다. 주민들은 공원수(일산 55개, 분당 102개)는 분당이 훨씬 많겠지만 호수 공원 하나로 수적 열세를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는다고 말한다. 이제 호수공원은 일산 사람뿐만 서울과 수도권 사람들에게도 낯익은 휴식공간으로 각인될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일산신도시 동쪽 끝에 위치한 추억의 먹거리촌 ‘풍동 애니골’도 빼놓을 수 없다. 백마역 주막촌이 신도시 개발로 철거됐다가 93년 ‘화사랑’을 선두로 카페와 주점이 들어서기 시작해 명소로 자리잡은 이곳은 연인들의 데이트와 가족나들이에 최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일산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보육시설(487개)를 갖추고 있어 맞벌이 부부들에게는 더 없는 ‘낙원’으로 꼽히기도 한다.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두고 맞벌이를 하고 있는 박순희씨(39·여·교사)는 일산은 ‘초등학생의 천국’이라고 평한다. “차도와 확실히 구별되는 넓은 땅 위에서 자동차 사고를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자전거나 롤러블레이드를 탈 수 있고, 나무 숲 아래에서 곤충을 잡는 등 아이들의 정서 함양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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