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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연구|엄익준 전국정원차장의 삶과 죽음

‘음지’에서 살다가 ‘양지’에 묻힌 ‘진짜 정보맨’

  • 김당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음지’에서 살다가 ‘양지’에 묻힌 ‘진짜 정보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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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불운처럼 그의 두 번째 행운도 의외였다. 99년 6월 천용택 국정원장 체제가 들어서자 천원장은 정권 인수기에 점찍어 둔 엄익준 전 안기부 3차장을 국정원 2차장(국내 담당)으로 불렀다. 그때 그는 고향인 전주 우석대 초빙교수로 이제 막 시작한 강의에 재미를 붙이려던 참이었다. 50년 만의 정권 교체와 조직적인 선거 개입 전과(前過) 탓에 조직 개편과 ‘인적 청산’을 감수하며 숨죽어 지내던 국정원맨들에게 그의 복귀는 활력을 주었다.

국정원의 경우 원장과 차장 등 수뇌부가 바뀌면 즉시 신임 원·차장을 자택으로 모시러 간다. 가서는 업무 현황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과 자택에 대한 통신 점검 등 제반 보안 조처를 강구한다. 신임 엄익준 차장이 업무를 인수인계받은 전임 신건(辛建) 차장은 그의 전주고 1년 선배이다. 신구(新舊) 차장 교체기에 보좌관을 지낸 편○○ 과장(△△지부)의 말이다.

“경기도 분당 자택으로 그분을 모시러 갔다. 문 열고 들어서자마자 엄차장의 입에서는 업무와 관련된 지시사항들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국정원 업무에 정통한 분이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업무 인수인계 및 현황 브리핑하러 갔다가 브리핑이 필요없는 그야말로 ‘준비된 차장’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 달 모셨는데 정말 상황 판단이 빠른 분이었다. 어떤 문제가 생겨도 그에 대한 대책이 이미 머릿속에 있는 것 같았다.”

정부는 4월26일 엄차장의 사직원을 수리하고 후임에 김은성(金銀星) 대공정책실장을 승진 발령했다. 신임 김은성 차장은 용산고·서울대를 졸업했으며 안기부 대전지부장, 정보학교 교수, 국회 정보위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김대중 정부의 국정원 조직 개편으로 만들어진 대정(對政)실장이라는 자리는 과거 1(분석)·2(수집)국과 서울지부까지 합쳐 놓은 거대 부서다. 김실장의 차장 승진은 엄차장에 이은 내부 발탁 인사라는 점에서 직원들의 환영을 받았다. 인사는 인사권자의 권한이지만 한 번의 불운과 두 번의 행운 그리고 죽음으로 이어진 엄차장의 거취는 직업공무원인 국정원 직원들에게 내부 인사의 차장 승진 전통과 기대를 안겨주었다. 하긴 이제 국정원도 그만한 ‘대접’을 받을 만한 나이가 되었다.

신분 공개할 수 있는 직원은 4명뿐



미 버지니아주에 있는 CIA(중앙정보국) 현관에 들어서면 한쪽 벽면에 새겨진 수많은 이름을 볼 수 있다. 전세계 각처에서 활동하다 순직한 비밀 정보·공작원들의 이름이다. 이들의 죽음은 오직 가족에게만 알려질 뿐이다. 순결한 공작? 그런 공작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칠레 아옌데 좌파 정부 전복, 이란 팔레비 왕조 옹립 같은 CIA의 ‘추악한 비밀 공작’을 수행하다 순직한 직원들이다. 그러나 ‘순결한 공작’이건 ‘추악한 공작’이건 이들의 공통점은 가족들과 직원들의 가슴에 ‘영원한 익명’으로 기억된다는 점이다. 다만 이들의 이름은 CIA 현관에서만 공개될 뿐이다.

비밀공작은 비밀이 지켜질 때 비로소 힘을 갖는다. 비밀공작원의 신분 공개는 상대방의 카운터공작과 외교 분쟁 그리고 전쟁을 낳을 뿐이다. 흔히 ‘간첩’ 하면 우리는 무시무시한 자결용 독약 앰풀이나 요인 암살용 소음기가 부착된 권총을 떠올린다. 수없이 목격한 ‘남파 간첩’이 낳은 학습효과다. ‘북파 간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점에서 엄차장의 개인적 불행은 이름 없이 죽어간 비밀 정보·공작원들에 비하면 ‘행복한 죽음’이다.

그의 개인적 불행은 96년 10월1일 괴한에게 피살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최덕근(崔德根·당시 54세) 영사와 비교해도 ‘행복한 죽음’이다. 두 사람은 닮은 점이 많았다. 배재고·외국어대 러시아어과를 졸업한 최영사도 엄차장과 비슷한 시기에 ROTC 출신 공채로 들어가 죽 해외파트에서 일했다. 그는 순직으로 보국훈장(천수장)을 받고 이사관으로 추서되었다. 최영사의 시신이 안치되어 빈소가 마련된 곳도 삼성의료원 영안실이었다. 또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공개된 비밀이지만 그는 외무부 직원으로 신분을 위장한 안기부 부이사관이었다. 최영사는 피살 당시 북한 공관원들의 마약 밀매 혐의와 평양의 위폐공장 첩보 등 북한 내부의 깊숙한 고급첩보를 다수 입수하고 있었다. 또 최영사는 북한측 고급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이(李)모씨를 정보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등 공작을 벌이려 했다. 그의 양복 안쪽 호주머니에서 발견된 메모지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이와 같은 첩보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최영사 피살사건의 진상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가령 북한의 소행이라면 북한은 그에 상응하는 외교적 대가를 치르거나 얼마 뒤 어디선가 한 북한 외교관의 피살 소식을 접하게 될지도 모른다. 힘에 의한 보복은 이스라엘 모사드를 필두로 모든 첩보·공작기관의 불문율이자 생존방식이다.

당시 안기부 내에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첩보·공작임무를 수행하다 순직했으므로 안기부장(葬)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안기부장(葬)은 주재국에 최영사가 안기부 직원이라는 것을 자인하는 일이기 때문에 외교적으로 불가한 일이었다. 더구나 북한의 범행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마지막 가는 길에 원(院)내에 들렀다 가게 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최영사의 장례식은 삼성의료원 영안실 내 영결식장에서 유족과 ‘외무부 직장 동료’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그의 주검은 30년 동안 봉직한 내곡동 국정원 청사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입구에서 간단히 노제 아닌 노제를 치르고 생가가 있는 경기도 평택시 석정마을에서 노제를 지낸 뒤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국정원의 수천명 직원 중에서 이름과 신분을 공개할 수 있는 사람은 공보관실 직원을 빼고는 고작 4명뿐이다. 원장과 두 차장 그리고 기조실장뿐이다. 나머지 수천명은 본인과 가족이 죽어도 부음(訃音)란에 ‘직업’을 공개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어느 망자(亡者)의 빈소에 국가정보원장이 보낸 조화(弔花)가 있다면 그 망자의 직계가족 중에 국정원 직원이 있다고 짐작할 뿐이다. 익명(匿名)의 숙명이다. 고(故) 엄익준 차장의 ‘직업’도 몇해 전까지는 다른 부하들처럼 ○○문화사 직원이거나 ○○연구소 연구원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죽음과 명예는 이름을 공개할 수 있는 지위(차장)에까지 오른 그의 직업적인 성공 덕분에 세상에 더 많이 알려질 수 있었다.

따라서 그는 부훈이 지향하는 바 그대로 ‘음지’에서 살다가 ‘양지’에 묻혔지만, ‘음지’에서 살다가 ‘음지’에 묻힌 정보맨들이 휠씬 많다는 사실도 함께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신동아 200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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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당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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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지’에서 살다가 ‘양지’에 묻힌 ‘진짜 정보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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