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연속기획|세계 석학들이 보는 새 밀레니엄·마지막회

“나는 궁금하다, 고로 탐구한다”

세계적인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

  • 글·김운찬 대구 효성가톨릭대학교 이탈리아어학과 교수

“나는 궁금하다, 고로 탐구한다”

3/3
다 보스(Davos)에서 열린 ‘세계경제 포럼’에 대해서는 지난주에 지안루이지 멜레가(Gianluigi Melega)가 이미 이야기했는데, 아마도 그는 모든 회의와 토론에 참여했던 모양이다(많은 토론이 동시에 진행되었는데도 말이다). 그에 비해서 나는 이 포럼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몇몇 원탁 모임에 몰두해 있었기 때문인데, 그것들은 모두 윤리적·사회적 성격의 모임이었고, 따라서 나는 거물급 인사들과의 만남과 충돌 사이에 빠져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토론 속에서, 그리고 외부에서 항의하는 사람들의 논쟁 속에서 모든 사람이 세계화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 세계화가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모든 분야에서 전지구적인 교환의 그물이 존재하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생각에는 사실로 나타난 세계화와 가치로 보는 세계화를 구별하는 것이 유용하리라고 생각한다. 사실로 나타난 세계화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몇몇 형태의 세계화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는 의미다. 반면 가치로 보는 세계화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그러한 사실과 미래의 계획이 좋은지 또는 나쁜지 물어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가치로 보는 세계화가 나쁜 것이라면, 기존 사실에 대한 방대한 비교작업을 시작함으로써 그것을 수정·반대하거나 또는 그 방향을 바꿀 수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갈릴레이 시대 이후 과학은 세계화 과정에 따라 발전했으며, 그 때문에 세계의 모든 과학자들은 점진적으로 동일한 언어로 정보를 교환하게 됐다(그것은 학문적 라틴어 또는 수학적 언어인데, 세계는 바로 그 문자들로 쓰였다). 최근 들어 항공운송 시스템의 세계화는 여행을 좀더 안전하게 만들었고, 덕분에 예전에 비해서 비행기 추락사고는 한결 줄어들었다.

지구의 절반을 오염시킨 샐러드



인터넷은 바로 세계화 과정의 일부분을 이룬다(비록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변태 성욕까지 세계화하고 있지만). 가령 어느 고립된 아프리카 병원의 의사는 어려운 문제에 대해 온라인으로 호소할 수 있으며, 전자우편을 통해 세계의 대규모 병원들로부터 충고나 구체적인 도움까지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런 유형의 세계화는 본질적으로 긍정적이라고 말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렇다면 언어적 및 문화적 세계화는 긍정적인가? 아니다. 그것은 지구의 불행이 될 것이다. 지구적 접촉들의 측면에서 보면 다양한 문화의 정체성을 보존하려고 싸울 필요가 있다.

언어와 문화의 세계화는 멈출 수 없는 사실인가? 부분적으로 그렇다. 하지만 모든 예상과는 반대로 인터넷의 여러 가능성 중 하나가 부각되고 있는데, 인터넷은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알게 해준다는 점이 그것이다. 물론 현재 우리는 영어를 잡종의 언어로 세계화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수많은 언어 및 수많은 세계관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경제의 세계화. 그것은 다보스의 고안인가, 아니면 시애틀의 고안인가. 내 기억으로는 몇 해 전 벱페 그릴로(Beppe Gri llo)는, 샐러드 잎사귀 서너 개를 평온하게 먹고 있던 순진한 환경론자들에게, 그 샐러드는 바로 홍콩에서 온 것이며 화물선과 비행기·컨테이너를 이용하여 그의 고향 제노바까지 오는 과정에서 이미 지구의 절반을 오염시켰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나는 또 다른 사실도 기억하는데, 세계 여러 기구의 설득과 비난 덕분에 몇몇 회사는 이제 비용을 줄이기 위하여 연소자 노동력을 착취하는 나라에 신발이나 양말의 생산을 의뢰하지 않게 됐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지금으로서는 별것 아니지만, 하나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그런 사실을 상기하고 추상적인 문제가 아닌 구체적인 문제들에 개입하는 것, 그것은 형이상학이 아니라 바로 정치학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다보스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이러한 원칙에는 동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잘 알다시피 어떤 사람이 미사에 참석한다고 해서 그 다음날 곧바로 착한 그리스도교인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해커의 미덕 ]

최근 인터넷에서 일어난 지구적 사건들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잘 알다시피 기술이 고도화할수록 더욱 더 범죄의 대상이 된다. 조종실에 압력 조절장치도 없는 프로펠러 비행기 안에서는 납치범을 처리하기가 쉬웠다. 창문을 열고 범인을 아래로 내던지면 그만이었다. 반면 대륙간 제트 비행기에서는 위협용 가짜 권총을 가진 미치광이도 모든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문제는 오히려 기술 발전의 가속화다. 라이트 형제가 최초의 비행을 시도한 이후 수십 년이 지난 다음에야 블레리오, 폰 리히토펜, 바라카, 린드버그, 발보 등이 비행수단의 점진적인 완성에 적응할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운전하는 자동차는, 예전에 내가 면허증을 딸 때 탔던 낡은 구식 자동차는 꿈조차 꿀 수 없던 장치를 갖추고 있다. 만약 그 당시 지금의 내 자동차로 운전을 시작했다면, 나는 벌써 어느 구석에 처박혔을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나의 자동차들과 함께 성장했고, 조금씩 그 역량에 적응할 수 있었다.

기술발전에 적응하기

하지만 컴퓨터의 경우에는 내가 기계장치와 프로그램의 모든 가능성을 때맞추어 배우기도 전에 벌써 새로운 기계와 더욱 복잡한 프로그램이 시장에 나온다. 심지어 아마도 나에게는 충분할 나의 낡은 컴퓨터로 그냥 밀고나가야 할지 결정조차 할 수 없다. 나에게 꼭 필요한 몇 가지 개선된 기능들이 벌써 새로운 컴퓨터에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속도는 무엇보다도 상업적 요구에 기인한다(산업은 우리가 그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지라도,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구입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것은 어느 연구자가 더욱 강력한 프로세서를 개발하는 것을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에서도 기인한다. 휴대전화와 녹음기, 그리고 모든 종류의 디지털 장치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만약 자동차가 두 달에 한 번씩 효율성을 개선한다면, 우리 몸의 반사기능으로는 때맞추어 거기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 다행히도 자동차는 너무 비싸고 고속도로도 지금 그대로다. 그런데 컴퓨터는 더욱더 값이 낮아지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고속도로에는 제한속도가 없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이전의 컴퓨터로 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을 미처 이해하기도 전에 새로운 컴퓨터가 나온다. 이러한 드라마는 단지 일반 사용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FBI 요원, 은행, 심지어 미 국방성까지 포함하여 정보 통신의 흐름을 통제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도 해당된다.

자기 컴퓨터의 새로운 가능성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하루 24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해커, 그는 일종의 은둔자다. 하루의 일과를 온통 (전자적) 명상에만 할애하는 사막의 은둔자다. 여러분은 클린턴 대통령의 메시지 안에 침입했던 자의 얼굴을 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그런 모습이다. 뚱뚱하고 당황해하고, 오로지 컴퓨터 화면 앞에서만 성장하여 제대로 발육하지 못한 모습이다.

그들은 억제할 수 없는 리듬으로 발전하는 기술 혁신의 유일한 총체적 전문가가 됨으로써 컴퓨터와 통신망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해할 시간은 갖고 있지만, 새로운 철학을 형성하고 긍정적인 적용방법들을 연구할 시간은 없다. 그래서 자신들의 비인간적 역량이 허용하는, 유일하게 즉각적인 행위, 즉 전세계 시스템의 항로 이탈·방해·무력화에만 몰두하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 그들 중 상당수는 자신이 ‘시애틀 정신’에 따라 행동한다고 믿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시스템의 훌륭한 협조자가 되고 만다. 왜냐하면 그들을 무력화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최대한 신속하게 더욱 더 혁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의 악마적 순환고리로, 그 안에서 저항자는 자신이 파괴한다고 믿는 것을 오히려 강화한다.冬

신동아 2000년 6월호

3/3
글·김운찬 대구 효성가톨릭대학교 이탈리아어학과 교수
목록 닫기

“나는 궁금하다, 고로 탐구한다”

댓글 창 닫기

2021/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