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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신의 남성탐구

이건희의 집착, 조영남의 오버

  • 정혜신 정신과 여의사

이건희의 집착, 조영남의 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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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요즘 도올 김용옥에 심취한 모양이다. 필자는 김용옥에 대한 그의 얘기를 들으면 ‘아, 저 얘기는 조영남이란 사람이 김용옥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투사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김용옥에 관한 조영남의 얘기는 결국 조영남의 속마음이라는 뜻이다. 그가 말하는 도올의 모습, 도올의 장점이란 결국 그 자신의 모습, 그가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못하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인 것이다.

그는 ‘이자식 저자식 개새끼 소새끼’ 하면서 목핏줄 터지는 도올의 TV강의를 들으며 매번 ‘아, 나의 살아 있는 스승이여!’를 되뇌었다고 한다. 그는 도올을 ‘이 시대의 마지막 스승’으로 모시기로 결정했다고 말한다.

“그의 중국식 검정 복장, 민머리, 일그러지는 얼굴 표정, 핏발 튀는 탁한 목청의 하이톤, 칠판 위를 유창하게 달리는 중국어와 일본어, 영어 단어들. 그가 골라 쓰는 난폭한 어휘, 하버드의 철학박사 학위를 손톱만큼도 의심할 수 없게 하는 방대한 학문세계, 거기서 걸러져 나오는 우리네의 고질적 환부를 향한 예리한 비판과 통렬한 지적 등. 이런 요소들은 내가 좋아하는 사극 ‘왕과 비’를 방불케 한다.”

그는 할 수 있는 최대의 찬사를 도올에게 바친다. 비단 도올뿐이 아니라 조영남은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에 대해서 무한한 애정을 보인다. 조영남은 자신도 ‘자기만의 목소리를 가진 달란트가 많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 그런 희망사항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따라서 그런 사람들이 부당하게 대접받거나 곤경에 처하게 되면 적극적으로 그들을 두둔한다. 그게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투사(projection)’다.



예전에 그는 불법 운전면허 문제로 재판을 받고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탤런트 이승연을 두둔하는 칼럼을 썼다가 심한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그의 두둔 이유를 들어보자.

“불법 면허증 정도는 흔히 있는 일 아니냐. 초범이고 나름대로 방송을 통해서 국민을 위하여 그간 헌신도 했으니 관대히 대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 걸 뭘 꼭 끌어다가 정식 재판까지 치르게 해야 했느냐? 승연아! 어쨌거나 너는 큰일을 해냈다. 국민들에게 운전면허 불법 취득이 그토록 무서운 죄라는 걸 원없이 각성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왜 너한테 시선이 따가운 줄 아니? 네가 너무 이쁘고 똑똑해서 그런 거란다.”

간혹 사람들은 자기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보면 이유를 불문하고 무조건 비호하려는 충동을 느낀다. 그건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욕구와 같다. 도올에 대한 비난에 대해서도 비슷하다.

“노자를 가르치는 사람이 자기 자랑이나 하고 앉았다니. 그런 유치찬란한 구조를 모를 김용옥이 아니다. 짬짬이 자화자찬으로 들리는 대목들은 면밀히 계산된 그만의 풍자이며 해학이다. 멍청한 상대방의 뇌신경을 찌르는 경각의 침술이며 상대방의 침술을 끌어당기는 고도의 테크닉일 뿐이다.”

놀랄 만큼 조영남의 속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는 말이다. 필자가 보기에 도올은 ‘면밀히 계산된 풍자와 해학’의 소유자가 아니다. 노자와 김용옥이라는 단어만 없애면 그건 그대로 조영남 자신을 설명하는 문장이 된다.

사람들한테 ‘오버’한다는 얘기를 들을 만큼 과장된 몸짓과 말투는 조영남의 트레이드 마크다. 30년 넘게 대중 예술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가 유치함의 구조를 모를 리 없다. 예전에 ‘쟈니윤 쇼’에서 보조 MC로 나왔던 그를 기억한다. 턱을 괴고 앉아서 웃다가 옆으로 넘어지고, 게스트가 우스갯소리를 할 때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뼉을 치다가 바닥에 쭈그려 앉기도 했다.

과장된 몸짓과 말투, 조영남의 오버

1994년에는 ‘무의미한 감탄사의 습관적 사용, 불필요한 발어사 및 비표준 발음 문제’로 방송위원회에서 개선 명령을 받기도 했다. 그런 것들은 모두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조영남이란 인물을 표현할 때 쓰는 익숙한 이미지들이다.

그는 자기를 망가뜨려 가면서도 절대 망가지지 않는 사람이다. 못생겼다는 자신의 얼굴이나 두 번의 이혼경력, 히트곡 하나 없는 가수 등의 약점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상대방을 무장해제시킨다. 그쯤 되면 그의 약점은 이미 약점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상품가치를 적절하게 높일 수 있는 도구인 것이다. 그는 열등감을 훌쩍 뛰어넘어서 진화시킨다.

균형감각까지 보태진 풍자와 해학은 김용옥을 능가한다. 이번 4·13총선에 나가려는 개그맨 김형곤에게 보낸 충고의 글을 한번 보자.

‘형곤아! 선배의 마지막 부탁이다. 어디 가서 네 입으로 너 자신을 ‘정치권의 가시 같은 존재’(김형곤은 자신이 정치풍자 개그를 했기에 정치권에 서 자신을 그렇게 본다고 했다)라는 표현을 쓰지 마라. 너무 오버였다. 그쪽도 다 바쁜 사람들이다. 장담하건대 아무도 너를 미워하지 않고 가시같이 여기지도 않는다.’

절묘한 대중감각을 바탕으로 한 풍자와 해학의 백미다. 그런 풍자와 해학을 무기로 그는 각종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일급 칼럼니스트로 활약 중이다. 그의 글은 재미있다. 일단 유명한 사람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는 글의 문맥상 특별한 의미가 없어도 대중이 알 만한 사람들의 실명을 하나하나 거론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그가 누구와 만나서 무엇을 했는지도 금방 알게 된다.

‘내가 멤버들을 소개하면 내 말뜻을 여러분은 금세 알아차릴 것이다. 저쪽 끝자리부터 필립 모리스 담배를 파는 아저씨 민병휘, 국민회의 부총재 정대철, 연극배우 노처녀 정경순, 역시 연극배우이자 전직 환경부장관 손숙, 내 옆으로 조순 전 서울시장의 홍보비서였던 앵커우먼 정미홍, 천하의 국민 아나운서 김동건, 그리고 맨 끝자리에 명지대학 이사장 유영구….’

그가 소개하는 사람들 앞에는 늘 그들의 직책이 길게 따라 붙는다.

‘국민회의 정대철 부총재도 30년 가까이나 형 동생으로 사귀어왔는데 요즘 만날 재판 받으러 다니고, 내 친구 청와대 수석비서관 김한길이도 어쩌구 저쩌구 시비가 분분하다.’

‘내가 친하게 지내는 김연주는 서울 강남에 있는 영동여고의 학생회장 출신.’

그의 속을 다 알 수야 없지만 권력에 접근할 수도 있는 훗날을 위해서 인맥 인프라를 구축하는 차원은 아닌 것 같다는 게 필자의 느낌이다. 그는 인간관계 자체를 즐기면서 사는 것처럼 보인다. 대중은 유명인에 대해선 무조건적인 관심을 보이는데 그는 그런 심리를 자기 글의 상품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삼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점에서 그는 천재다.

자유로운 삶의 심리

연애도 인생도 봄바람처럼 가볍게 생각하는 그는 결혼 두 번, 이혼 두 번에 지금은 자유로운 싱글이다. 이젠 세상의 히트곡처럼 세상의 여자가 온통 그의 연애 대상이 되었다. 그가 두 번째 이혼을 하자 한 개그맨은 “딸 가진 부모님들 조심하십시오. 조영남이 이혼을 했답니다”라며 사람들을 웃겼다.

그는 하늘이 내린 예술적 재능과 비상한 머리를 이용해 자신의 자유로운 삶과 대중의 욕구를 적절하게 충족시키면서 ‘풍요로운 예술가’로 살아간다. 그러한 자유로움의 심리적 근원은 무엇일까.

필자는 ‘내고향 충청도’라는 그의 노래를 참 좋아한다. 조영남은 ‘내고향 충청도’를 TV가 아닌 일반 무대에서 부를 땐 가사를 바꾼다. ‘어머니는 밭에 나가시고, 아버지는 장에 가시고’ 대신에 ‘어머니는 예배당 가시고 아버지는 술집에 가시고’ 로 말이다.

사연은 이렇다.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평생 술독에 빠져 지내던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졌다. 식구들을 예배당으로 내몰고 정작 당신은 장터에서 술에 절어 지내시던 아버지였다. 13년을 발치에 오줌깡통 놓고 사시다 세상을 뜬 아버지지만 그는 아버지가 살아 계셔서 늘 좋았단다 . 고등학교를 서울 누이 집에서 다녔던 그가 방학 때 고향집으로 달려와 “아버지, 저 왔어요” 하면 아버지는 너무 반가워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는데, 그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설렘과 벅찬 감동을 느끼는 모양이다.

이건희 회장의 부자 아버지와는 달리 무능했지만 아들과 정서적인 끈을 놓지 않아서 행복했을 조영남의 아버지. 조영남은 어린 자신에게 화투 ‘육백’을 가르치던 한량기 많던 아버지(사실 그 기질을 그가 물려받기도 했을 것이다)를 조금의 두려움이나 부끄럼없이 지금도 자랑스럽게 회고한다. 어쩌면 그의 당당함이나 거침없는 행동은 이런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비롯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열등감이란 인간이 좌절을 겪었을 때 생기는 감정이다. 인간은 생로병사를 근간으로 좌절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이므로 모든 인간은 근원적으로 열등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린 보통 가진 것이 없을 때 좌절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좌절로 인해서 스스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말하는 게 더 옳을 수도 있다.

몇 년 전에 TV광고를 연출하는 감독에게 재미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CF 감독에게 가장 피가 마르는 순간은 완성된 작품을 가지고 클라이언트 앞에서 시사회를 할 때라고 한다. 시사회장에서 CF를 보는 사람들의 눈빛이나 제스처, 하다못해 기침소리까지에도 민감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감독은 가끔 장난(?)을 친다고 한다. 그 회사의 이름이나 브랜드명을 표시하는 자막을 일부러 약간 삐딱하게 집어넣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시사회장에 있던 열 명 중에 열 명은 그 삐딱한 자막에 신경쓰느라 다른 부분에 제대로 정신을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회사 로고체만 똑바로 하면 좋을 거 같네요.’ 자막을 교체하는 작업은 일도 아니란다.

열등감이 없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누구에게나 조금씩 있는 열등감도 그와 비슷할지 모른다. 문제의 본질과는 별로 상관없는 지엽적인 문제에 발목이 잡혀 에너지를 소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삐뚤어진 자막 때문에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친다면 이것보다 더한 어리석음이 없다. 그러나 열등감에 사로잡히면 모든 것이 그 필터를 통해서만 인식되기 때문에 삶의 태도나 가치관, 대인관계 등이 모두 그 영향권에 놓이게 된다.

열등감이 없는 사람은 없다. 남한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내게는 너무나 심각한 일인 경우가 수도 없이 많기 때문이다. 열등감이란 감정은 마치 변종 아메바처럼 다양하고 예측할 수 없는 모양으로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그런 점에서 이건희와 조영남이 살아 가는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열등감으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실상은 ‘마음의 자막’을 하나 갈아 끼우는 간단한 작업만으로 해소될 수 있는 경우가 참 많다. 그럼에도 당사자는 죽을 듯 괴로워한다. 아마도 그게 우리 삶인 모양이다.

신동아 200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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