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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조작은 있었다”

96년 판문점 북풍사건 ‘청와대 보고서’

  • 조성식 mairso2@donga.com

“북풍조작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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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약 2주 동안의 수소문 끝에 문제의 통화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영관장교 C씨를 만날 수 있었다. 96년 4월 판문점 사태가 일어났을 때 C씨는 지휘통제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유종하 외교안보수석과 김동신 합참작전본부장이 통화한 사실과 김작전본부장의 복명복창, 김작전본부장의 지시사항을 전달하던 신상길 준장의 고함을 기억했다.

뿐만 아니라 상황이 종료되던 시점인 4월8일 20시30분께 김작전본부장이 유수석과 통화한 후 “청와대에서 여론이 15% 이상 좋아졌다고 한다”고 말한 것도 기억했다. 그는 또 김작전본부장의 얘기가 끝난 다음 영관장교 D씨가 “여론이 30% 이상 좋아졌을 텐데 청와대에서 잘못 파악한 것 같다”라며 “총선 승리합시다”라고 박수를 유도한 사실, 몇몇 장교가 따라서 박수친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당시 군 수뇌부가 안 하던 짓을 했다”며 “우리는 (그런 짓을) 안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또한 판문점에서 무력시위를 벌인 북한군의 무장병력 수가 과장됐다고 말했다.

기자는 C씨의 증언을 확보한 후 유종하씨에게 이에 대한 확인을 요청했다. 그러나 유씨는 여전히 당시 김동신 합참작전본부장과의 통화사실을 부인했다. 그는 “외교안보수석으로서 합참의장과 통화할 수는 있지만 군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작전본부장과 통화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말엔 일리가 있다. 김남국씨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유씨가 합참 상황실로 전화해 찾았던 사람은 김동진 합참의장이었다. 그런데 합참의장이 상황실에 없자 김동신 작전본부장과 연결됐다는 것이다. 이 사실에 대한 확인을 거듭 요구하자 유씨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기억나지 않는다”며 한 발 물러섰다.

96년 4월5일 국방부회의에서 처음 워치콘 격상을 지시한 이양호 당시 국방부장관은 북풍의 실체를 밝히는 데 꼭 필요한 중요한 증인이다. 그러나 이 전장관은 때마침 발생한 린다 김 사건 탓인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집전화와 휴대폰에 몇 차례 메시지를 남겼으나 끝내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또 한 명의 중요한 증인은 뒷날 국방부장관이 된 김동진 당시 합참의장. 96년 4월6일 합참 지휘통제실에서 대책회의를 주재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20여명의 장성 및 영관장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남국 당시 전략정보과장을 “정보판단을 잘못했다”며 질책한 사실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매일 오전 합참회의를 열었지만 그것(판문점 상황) 때문에 별도의 대책회의를 열지는 않았다는 것. 그는 또 “어떻게 지휘관이 의도적으로 적 상태에 대한 평가를 왜곡·과장할 수 있겠느냐”며 “김씨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며 이제와서 왜 그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김씨를 비난했다.



기억을 잘 못하기는 유정갑 당시 합참정보본부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부하장교들에게 워치콘 격상 공문을 작성, 주한미군측에 전달하도록 지시한 일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양호 당시 국방부장관이 기자들을 군사통제구역인 합참 지하 벙커(지휘통제실)에 데리고 들어갔던 일은 기억해냈다.

청와대보고서엔 북풍사건 관련자들의 당시 행적은 드러나 있지만 김남국씨의 기자회견 직후 불거진 ‘날짜 논쟁’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이 없다. 그렇지만 ‘날짜 논쟁’은 북풍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국방부는 김남국씨의 기자회견 후에도 “북풍은 없었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날짜 늦춰 홍보 극대화?

김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군의 96년 판문점 무력시위 날짜에 대해 “실제로는 4월4∼6일 발생했으나 청와대와 국방부가 총선을 앞두고 홍보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날짜를 실제보다 하루씩 늦춰 발표했다”고 폭로했다. 날짜를 하루씩 늦추는 것과 홍보효과 극대화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북한군이 처음 무력시위를 벌인 4월4일 국방부는 이에 대해 아무런 브리핑도 하지 않았다. 합참 상황실에서 이를 대수롭지 않게 판단한 탓이다. 그래서 4월5일자 신문엔 북한군 도발에 관한 기사가 전혀 실리지 않았다. 거기다 그해엔 신문의 날인 4월7일이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4월6일자 신문이 발행되지 않았다. 여당쪽에서 보면 선거에 엄청난 호재가 될 일이 이틀 동안 신문에 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대국민 홍보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판문점 상황을 하루씩 늦춰 발표할 필요가 있었다.

북한군은 총 사흘간 시위를 벌였는데, 시위 날짜를 하루씩 늦추면서 언론 브리핑 횟수를 늘릴 명분이 생겼고 주말을 넘겨 월요일인 8일자 신문에까지 판문점 상황을 보도하게 만들 수 있었다.”

김씨의 주장대로 당시 신문들을 살펴보면 4월6일엔 휴간했고 일요일인 4월7일자부터 북한군의 무력시위사태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국방부 발표대로라도 북한군은 7일 이후 더 이상 무력시위를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총선 전날인 10일까지 북한군의 ‘엄청난’ 위협과 국군의 ‘단호한’ 대응태세를 연일 특집으로 보도했다.

국방부가 기자간담회에서 공개한 정보상황일지엔 북한군의 판문점 무력시위가 발생한 기간이 96년 4월5∼7일까지로 기록돼 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상황일지 조작 의혹을 제기한다. 과연 어느 쪽이 거짓말을 하는 걸까. 국방부가 당시의 일지를 조작했으리라고 믿기지 않는 만큼이나 김씨의 주장이 틀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적지 않은 까닭이다.

그의 일기 내용은 매우 구체적이다. 일기에 따르면 96년 4월5일 아침 그를 포함한 합참정보본부 소속 장교 10여명은 정보참모부 차장인 박현진 소장의 주도로 OO비행장 부근에서 골프 모임을 가졌다. 식목일이라 당직자를 빼곤 휴무였기 때문이다.

오전 6시께 필드에 나갔는데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박소장의 휴대폰이 울렸다. 정보본부 소속 징후경보실 상황장교가 간밤의 상황을 보고하는 전화였다.

통화를 마친 후 박소장은 당시 전략정보과장이던 김남국 대령과 징후경보과장 정양 대령을 불렀다. 상황장교가 박소장에게 보고한 바에 따르면 전날인 4월4일 18시부터 약 1시간반 동안 판문점 북측 지역에서 1개 중대 규모의 북한군이 트럭을 타고 무력시위를 벌였다는 것. 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약 3분 동안 토의했는데 과거 비슷한 사례에 비춰 특별한 군사적 위협은 없을 것으로 판단, 박소장은 운동을 계속했다.

다만 김대령과 정대령은 상황 판단과 보고서 작성을 위해 골프를 취소하고 출근했다.

일기 내용대로라면 북한군이 처음 무력시위를 벌인 날짜가 4월4일이라는 김씨의 주장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나 박현진씨(중장 예편)는 당시 상황에 대해 묻자 “몇 년 전 일이라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운동을 했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할 뿐이다”며 입을 다물었다.

증언자들

일기보다 더 김씨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예비역 장교 2명의 증언이다. 예비역 소령인 김규열씨. 96년 4월 판문점 사태가 벌어졌을 때 김규열 소령은 합참 징후경보과에서 상황장교로 근무하고 있었다. 상황장교들은 3교대로 근무했는데 4월5일 근무자가 바로 김소령이었다는 것. 그는 지난 5월3일 기자와 만나 “그날(96년 4월5일) 아침 전임자와 교대할 때 전임자로부터 ‘어젯밤 북한군이 (판문점에) 들어왔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또 한 명의 증언자는 역시 예비역 소령인 윤길상씨. 97년 10월 전역한 윤씨는 북한군의 판문점 도발이 있었던 96년 4월 1사단 정보처 소속의 정보항공장교였다. 지난 5월4일 확인한 그의 증언은 국방부 발표를 완전히 뒤집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는 매우 확신에 찬 표정으로 “북한군은 틀림없이 4월4일에 처음 무력시위를 벌였으며 국방부 발표는 잘못된 것”이라고 단언했다. 4월4일 자신이 사단 일직사령으로 근무하며 야간에 JSA(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연락장교(중위)로부터 북한군 도발 상황을 보고 받았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는 곧바로 사단본부에 이를 보고함과 동시에 군단 군사령부 합참(징후경보과)에 상황발생을 알리는 팩스를 보냈다고 했다.

윤씨는 “4년 전 일인데 날짜를 착각했을 가능성은 없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95년 10월 임진강에 침투한 무장공비 2명 중 1명이 도주한 사건 이후 사단장 지시로 휴무일엔 반드시 중령급이, 토요일이나 휴무일 바로 전날은 소령급 장교가 사단 일직사령을 서게 돼 있었다. 4월5일은 식목일로 휴무일 아니었나. 국방부 발표대로라면 내가 4월5일에 근무했다는 얘긴데 규정에 맞지 않게 일직근무를 한 경우는 한 번도 없다. 죽었다 깨어나도 4월4일이다. 상황일지는 조작할 수도 있다. 당시 보고계통상에 있었던 각 부대의 상황일지와 당일 근무한 장교들의 진술 및 필적을 대조해 확인해보면 진실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윤씨의 증언은 김남국씨의 기자회견 이후 이제껏 진행된 ‘날짜 논쟁’을 단숨에 잠재울 만큼 위력적이다. 아마도 그런 증언이 현역장교로부터 나왔다면 그 폭발력은 훨씬 컸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한 대로(?) 취재과정에 접촉한 현역장교들의 기억력은 예비역에 비해 떨어졌다. 당시 합참 지휘통제실에서 근무했던 영관장교 Y씨, 징후경보과에 근무했던 영관장교 K씨 등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잘 모른다”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현역장교의 증언을 확보한 것은 지난 5월8일. 당시 합참 합동작전과 소속으로 상황실에 근무했던 영관장교 K씨가 그 주인공으로 그는 워치콘 격상 날짜에 대해 묻자 “첫째날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대답했다. 첫째날이란 물론 북한군이 처음 무력시위를 벌인 날을 뜻한다. 이어 그는 “첫째날이 언제였냐”는 물음에 “4월4일”이라고 명확히 답변했다. 국방부 발표를 뒤엎는 새로운 증언이 현역장교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북한군의 최초 무력시위 발생 시각에 대해선 “4일밤 12시가 다 돼 보고 받았다”며 김남국씨나 윤길상씨와는 다르게 말했다. 그렇지만 윤씨의 증언, 곧 당시 1사단의 상황전파시각(18시30분∼20시30분)을 들이대며 다시 묻자 “1사단의 보고시각은 그럴 수 있지만 우리는 분석하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라고 말해 상황발생시각이 밤 12시 이전임을 인정했다.

그동안 이 문제에 관한 현역장교의 증언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당시 합참 징후경보과 징후분석장교로 근무했던 김대영 중령은 지난해 이 사건에 대한 청와대 조사 과정에 김남국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언을 했다. 그렇지만 그의 증언은 주로 워치콘 상황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현역장교인 K씨의 증언은 북한군의 무력시위에 관한 ‘날짜 논쟁’에 쐐기를 박을 만한 것이다.

또 하나의 ‘날짜 논쟁’은 대북 정보감시태세인 워치콘 격상 시점에 관한 것. 워치콘 변경은 한국군이 맘대로 할 수 없다. 주한미군과의 협의를 거쳐 한미연합사령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김남국씨에 따르면 당시 국방부는 이런 절차를 무시한 채 4월5일 오후 일방적으로 워치콘 격상 결정을 발표했다. 그런 다음 미군측을 끈질기게 설득해 4월7일에 사후합의를 이끌어냈고 이를 근거로 공식문서에 워치콘 격상날짜를 4월5일로 소급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역시 관련 문서를 내세우며 반박했다. 국방부는 김씨가 기자회견을 한 직후 일부 언론에 당시 워치콘 격상과 관련한 연합사 문서 및 팩스를 보여줬다. 당시 연합사 문서엔 ‘96년 4월5일 대북정보감시태세인 워치콘을 3에서 2로 변경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문서에 나타난 워치콘 변경시각은 ‘Z(런던 타임) 050900’. 우리 시간으로 환산하면 5일 오후 6시가 된다. 국방부에 따르면 주무부서인 합참 징후경보과가 연합사로부터 이 내용을 팩스로 받아본 시각은 5일 오후 6시32분이라고 한다.

그러나 국방부의 발표내용엔 앞뒤가 맞지 않는 점이 많다. 첫째 의문점은 국방부의 성급한 발표. 당시 언론보도(96년 4월7일자 일간지)를 보면 워치콘 2가 발효된 것은 4월5일 오후 6시25분이다. 이번에 국방부가 내놓은 당시 합참 상황일지에 적힌 워치콘 격상 시각도 이와 같다. 그런데 당시 국방부 정책실장 박용옥 소장은 그날 오후 3시쯤 언론 브리핑을 통해 워치콘 격상조치를 미리 발표했다. 4월5일에 워치콘이 격상됐다는 국방부 주장이 맞다 치더라도 연합사 승인 시점보다 무려 3시간여나 앞서 발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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