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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인터뷰|중년들의 넷맹 탈출기

“재미없는 인생, 인터넷으로 확 바꿨다”

  • 이나리 byeme@donga.com 신영미 drt@chollian.net

“재미없는 인생, 인터넷으로 확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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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50대면 젊은 거지요. 저는 68세에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으니까요.” 올해 73세인 고려대 독문과 박찬기 명예교수. 박 교수가 컴퓨터를 배우겠다고 결심한 것은 68세 되던 해인 95년, 30여 년간 몸담았던 고려대에서 정년 퇴임한 지도 5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막내아들이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습니다. 컴퓨터 잘 만지는 아들을 뒀으니 그거나 배워볼까 싶었는데, 아들이 그러더 군요. 그냥 혼자 하면 된다고요.”

무조건 ‘하면 된다’는 아들의 말에 은근히 자존심이 상하고 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초보자를 위한 학습서도 많이 나와 있다니 나라고 못 할 것 없겠다’는 생각에 서점부터 찾았다. 하지만 막상 내용을 살펴보면 표지에 써놓은 ‘왕초보’, ‘가장 쉬운’이란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국내에는 진짜 초보들이 볼 만한 책이 없다고 결론지은 박 교수는 외국 책들을 뒤적이며 PC를 손에 익히기 시작했다.

아들 말처럼 책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조작 방법은 쉽게 익힐 수 있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어가자니 아무래도 책만으로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도 박 교수는 ‘내 몸에 맞는 학습서’를 찾아 이 책, 저 책 기웃거리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덕분에 PC활용 능력은 일취월장했다.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자 학자 특유의 오기가 발동했다. 초보자용 컴퓨터 학습서를 직접 써보겠다는 생각을 품게 된 것이다.



“사실 제가 컴퓨터에 능통해 책 쓰기를 시작한 건 아니었습니다. 모르는 게 훨씬 더 많지요. 다만, 자동차 운전자가 운전만 할 줄 알면 됐지 자동차 만드는 법까지 알 필요는 없지 않은가, 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컴퓨터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컴퓨터를 잘 활용하기 위해 그 복잡한 전자적 시스템까지 다 이해할 필요는 없겠지요.”

98년 12월, ‘세계에서 가장 쉬운 컴퓨터 입문서’라는 부제를 단 책 (사이언스 북스)가 나왔다. ‘아날로그 세대’들도 혼자서 쉽게 컴퓨터를 배울 수 있도록 짜인 것이 특징.

“이 책은 저와 같은 구세대들도 혼자서 쉽게 컴퓨터를 배울 수 있도록 제가 직접 컴퓨터를 배우면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정리하고 일본과 미국의 입문서도 참고해가며 썼습니다. 컴퓨터 전문가가 아닌, 초보자의 눈높이에서 꼭 배워야 할 것들만 추려 쉽게 풀어쓴 거죠.”

실제로 이 책을 들여다보면 컴퓨터를 켜는 법부터 끄는 법까지, 그야말로 ‘진짜 초보자’를 위한 배려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지난해에는 강남구청과 서초구청에서 컴퓨터 무료 강좌를 열기도 했다. 실제로 컴퓨터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은 어떤 점들을 궁금해하는지 더 잘 알고 싶어서였다.

컴퓨터를 가까이 하게 된 뒤 박교수의 생활은 큰 변화를 겪었다. 지금도 대학원생들을 지도하고 있는만큼 원고를 써야 할 때가 제법 많은데, 컴퓨터를 활용하면 작업이 수월할 뿐 아니라 시간 절약 효과도 커 매우 만족스럽다. 무엇이든 컴퓨터에 기억시켜 놓으면 언제든 꺼내볼 수 있다는 것도 즐거운 일. 1년 전부터는 아예 컴퓨터 게임 ‘프리첼’에 빠져 지낸다. 빌 게이츠라는 컴퓨터 천재가 매일 한다기에 호기심으로 시작한 것이, 이제는 하루이틀만 손을 놓으면 ‘금단현상’이 나타날 정도로 빠뜨릴 수 없는 일과가 돼버렸다.

게임 즐기며 PC학습서도 집필

박교수는 “고희를 넘어선 나이지만 컴퓨터를 배우고 즐기는 데엔 별 무리가 없습니다. 컴퓨터, 그리고 인터넷은 마치 신발이나 모자처럼 인간이 필요해서 만들어진 생활 도구일 뿐입니다. 어렵다고만 생각지 말고 무엇이든 자신에게 꼭 필요하고 좋아하는 기능부터 조금씩 익혀 나가면 머지 않아 PC를 전화기나 TV처럼 다룰 수 있을 겁니다.”

매일 새벽 2시 30분이면 일어나는 박교수는 뒷산에 올라 운동을 한 뒤 바로 논현동 개인 사무실로 향한다. 초등학생용 PC 교재를 집필중이며, 어떤 기종의 컴퓨터에라도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기본 안내서도 쓰고 싶다. 70세가 넘은 나이에 찾아낸 새 인생의 동반자, 컴퓨터. 그로 인해 박교수의 노년은 즐겁고 활기차다.

[ 시와 인터넷의 만남 주도하는 주부 컴도사 ] 김한순, 주부시인

주부 김한순(45) 씨에게 컴퓨터는 남편만큼 가깝고 소중한 존재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면 우선 PC부터 켜는 것이 오랜 습관이다. 전날 밤 들어온 전자우편은 없는지 확인한 후에야 아침식사 준비를 시작한다. 남편과 아이들이 집을 나서면 또 곧바로 모니터 쪽으로 다가앉는다. 이렇게 PC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하루 15시간. 40대 중반의 주부로선 흔치 않은 일임에 분명하다.

주부라고는 하지만 김씨는 91년 ‘월간 문학공간’을 통해 등단한 시인이다. 또 시 전문 사이트 ‘문학의 즐거움(www.poet. or.kr)’을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사업가이기도 하다. ‘문학의 즐거움’에는 현재 140여 명의 시인이 참여하고 있다. 구상, 유안진, 정호승 씨 등 유명 시인들의 수상작이나 출간 시집, 약력, 사진 등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각각의 홈페이지를 통해 전자우편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시인들 중에는 생래적으로 컴퓨터를 싫어하고 거부하는 분이 많아요. 그렇지 않더라도 홈페이지까지 갖추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시인들이 네티즌과 좀더 쉽게 만나고 교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사이트를 개설하게 됐습니다.”

사이트가 문을 연 것은 지난해 1월. 오픈 준비에만 1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 웹 프로그래밍과 홈페이지 제작도 직접 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손이 달려 전문 회사에 맡겼다. 그러나 사이트 운영은 직접 한다. 자연히 하루의 반 이상을 PC 앞에 앉아 보낼 수밖에 없다. 새로 회원으로 가입한 시인들의 프로필, 주요 작품 등을 입력하고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하는 시인들의 홈페이지에 새 작품을 올려준다. 전업주부로 선 분명 힘에 부치는 업무량이 아닐 수 없다. 김씨 자신도 “완벽한 주부가 되겠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시어머님께도 처음엔 ‘돈 벌리는 일도 아닌데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듣곤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뜻깊은 일 한다’시며 집안 대소사가 있을 때도 조금씩 편의를 봐주시곤 합니다.”

남편도 훌륭한 조력자다. 시인들에게 약간의 홈페이지 제작비를 받고는 있지만 워낙 소액이어서 사이트 운영에는 큰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 간혹 남편 월급을 헐어 쓸 때도 없지 않은데 그때마다 씩 웃을 뿐 별 불평이 없다.

김씨가 컴퓨터에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한 건 등단 무렵인 36세 때였다. 시를 쓰기 위해 큰 맘 먹고 PC를 구입한 것. 무릇 시는 흰 원고지에 만년필로 물 흐르듯 써 내려가야 한다고 믿는 이가 적지 않겠지만, 어쩐지 김씨는 또박또박 자판을 두드려 정성껏 쓴 시에 갖가지 장식을 달아 출력해 보는 일이 퍽 즐겁고 재미있었다.

PC를 워드 프로세서로만 사용하다 보니 다른 기능은 뭐가 있는지 조금씩 궁금해졌다. 처음에는 잘못 만져 아예 망가뜨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쉬 접근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래서는 타자기보다 별반 나을 게 없겠다, 많은 돈 들여 산만큼 최대한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용기를 내 마우스를 이쪽저쪽으로 옮겨 봤죠. 결국 두 번이나 고장을 내 애프터서비스를 받아야 했지만 덕분에 컴퓨터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져 버렸 습니다.”

그 얼마 후에는 PC통신이라는 것에 관심이 쏠렸다. 천리안, 하이텔 같은 통신 서비스가 막 시작되던 시점이었다. 역시 무작정 통신에 들어가 보았다. 3주쯤 좌충우돌을 벌이고 나니, PC통신 또한 만만해 보였다.

“PC 두 번은 망가뜨려야 정복”

그러다 유니텔에만 유독 시 관련 서비스가 없음을 발견하게 됐다. 대뜸 유니텔에 전화를 걸었다. 왜 시 관련 사이트가 없느냐고 묻는 김씨에게 직원은 “관심이 있으면 서비스 기획안을 만들어 가져와 보라”고 말했다.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PC통신의 시 사이트를 면밀히 분석한 뒤 거기 새 아이디어를 덧붙여 기획안을 만들었다. 결과는 합격. 이로써 김씨는 유니텔에 ‘시와 시인들’이란 사이트를 운영하게 됐다. 지금 운영중인 인터넷 사이트는 단순정보제공에 그치기 쉬운 PC통신의 맹점을 극복하고, 시인들 각자가 자신의 ‘홈’에 원하는 글을 올릴 수 있게 하기 위해 마련한 사이버 커뮤니티다. 좀더 많은 시인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김씨는 각종 동인 모임에서 설명회를 갖는 등 부지런히 움직였고 그 결과 처음 100명으로 시작했던 사이트엔 현재 140여 명의 시인이 가입해 있다. 외국 거주 시인들의 참여도 두드러진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인터넷의 위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전 컴퓨터를 ‘문화적 장난감’이라고 생각해요. 장난감 갖고 노는 법을 익히듯 재미있게 배워 제 값어치만큼 써먹는 거죠. 만지는 것 자체를 두려워해선 평생 컴퓨터와 친해질 수 없습니다. 망가져도 좋다, 그런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접근해야죠. 하다못해 가계부 정리만 PC로 할 수 있어도 생활이 얼마나 편리해지는데요. 특히 단조로운 일상에 묻혀 삶의 폭이 좁아지기 쉬운 주부들에게 컴퓨터는 세상을 향해 열린 큰 창과 같은 역할을 할 것입니다.”

김씨는 일단 배우기로 작정했다면 주부 자신의 컴퓨터를 갖는 일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남편이나 아이들 컴퓨터를 빌려 쓴다면 망가뜨리 지나 않을까 겁부터 먹게 돼 제대로 손을 댈 수 없다는 설명이다.

신동아 200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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