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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술문화 기행

데킬라는 목구멍으로, 코냑은 콧구멍으로

  • 권삼윤 문명비평가

데킬라는 목구멍으로, 코냑은 콧구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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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칵테일은 이름도 제각각이다. 맨해튼, 싱가포르 슬링, 뉴욕, 로스트 레일, 마가리타, 핑크 레이디, 위스키 샤워, 스크루 드라이버, 키스 오브 파이어 등 우리 귀에도 익은 것들에서 보듯 칵테일 이름 짓기에는 어떤 원칙도 없다. 자신의 취향에 맞춰 레시피(recipe)를 만들고 적당한 이름을 골라 붙이면 되니까.

그래서일까. 세상에는 1만 가지나 되는 칵테일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 아무리 베테랑 바텐더라도 레시피는 고사하고 그 이름을 모두 외우는 것도 무리다. 그렇지만 바텐더는 자신이 만드는 레시피만은 그 유래를 알고 있을 것이므로 이름에 얽힌 에피소드를 들으며 칵테일을 즐긴다면 아름다운 추억을 남길 수 있으리라.

칵테일이란 위스키 브랜디 진 럼 보드카 데킬라 등의 알코올음료를 베이스로, 다른 술이나 탄산음료·향료·시럽·과일즙 등의 부재료를 섞어 만든 혼합주를 일컫는다. 여러 가지 술을 섞어 마셨다가 다음날 아침 고통을 당해본 사람이라면 ‘혼합’이란 말에 진저리를 칠 수도 있겠지만, 칵테일은 섞음으로써 최고의 맛과 최상의 느낌에 이르게 하는 것이므로 그저 이 술 저 술을 아무렇게나 뒤섞어 마시는 것과는 다르다. 여러 종류를 섞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맛·향기·색 세 가지 요소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휘젓기(stir)보다는 흔드는(shake) 방법을 택한다. 그래야 부드러운 맛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불빛이 희미한 실내에서 바텐더가 손님을 상대로 손을 높이 세워 셰이커를 흔들어대는 칵테일 쇼를 보는 것만으로도 칵테일 바를 찾은 발걸음에 대한 보상은 충분하다. 바텐더는 맛과 향기, 유연한 몸놀림으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켜 우리의 미감을 자연스레 한 단계 끌어올려 주는 ‘섞음(mixology)의 예술가’인 것이다.

“최초의 인간이 포도나무를 심고 있었다. 그때 악마가 양 사자 돼지 원숭이를 끌고 그곳으로 왔다. 그리고는 모두 죽여 그 피를 밑거름이 되게 나무 아래로 흘려넣었다. 그 후 나무는 자라 포도를 맺었고, 이것으로 포도주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포도주를 처음 마시기 시작할 때는 양처럼 온순하고,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난폭하고 사나워진다. 그보다 좀더 마시면 돼지처럼 추하고 더러워진다. 아주 많이 마시면 원숭이처럼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며 허둥댄다. 술은 악마가 인간에게 내린 선물이다.”



유대인의 성전 ‘탈무드’에 나오는 술의 기원에 관한 대목이다. 과음에 대한 경고 같기도 하고, 포도주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됐음을 말해주는 일화라고도 볼 수 있다.

인류 문명이 처음 시작됐다고 하는 기원전 3000년경에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이미 포도주를 마셨다. 이보다 얼마쯤 후대에 쓰인 함무라비 법전에는 맥주에 관한 기록도 있다. 그러므로 인류의 문명사는 술과 함께 시작됐다고 해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사람은 곡물과 과일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으니 그것들이 풍부한 곳에서 술과 문명이 태어난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술과 혁명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문명이 태어났고 포도주와 맥주가 처음으로 만들어졌으며, 10세기경에는 증류주를 발명해 ‘알코올’이란 생소한 용어를 세계 각지에 퍼뜨린 서아시아 땅에서는 지금 술을 맛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슬람 경전인 ‘코란’이 금주를 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코올이 들어 있지 않은 맥주는 더러 구할 수 있지만, 그것도 반드시 지정된 술집 안에서만 마셔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어 사람들이 모이는 공개된 장소나 집안, 호텔 방 같은 곳에서는 마실 수 없다.

이라크를 여행하던 어느 날, 더위 탓인지 갑자기 차가운 맥주 생각이 간절했다. 서방국가들로부터 경제제재를 받고 있어 먹을 것도 부족한 나라에 설마 맥주가 있으랴 생각했지만, 헛걸음하는 셈치고 가게에 들어갔더니 놀랍게도 맥주를 팔고 있었다. 하도 오랜만에 보는 것이라 반가운 마음에 얼른 집어들었다. 그런데 셈을 치르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주인이 갑자기 무어라고 하면서 문을 가로막는 게 아닌가. 영문을 몰라 안내인에게 상황을 설명해 달라고 하자 “여기에서 마셔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유능한’ 안내인 덕분에 호텔 방으로 맥주를 가져가 마셨다. 그리고는 약속대로 다음날 아침에 빈 병을 가게주인에게 돌려줬다.

외국인들이 주로 묵는 고급호텔에선 알코올이 든 술을 팔기도 한다. 관광산업 진흥과 외화벌이 차원에서인 것 같았다. 그러나 이슬람혁명을 추진하고 있는 이란에서는 이것마저 금지하고 있었다. 혁명 이전에 미국식으로 붙여진 호텔 이름까지 모두 이슬람 이름으로 바꿨을 정도이니 술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석유 수출로 흥청거렸던 혁명 이전의 샤 왕정 시대엔 최고급 위스키와 와인을 세계 어느 부자나라 부럽지 않게 마셨던 경험이 있는지라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하는 이란사람들은 외국인인 나를 보자 “위스키 있나요? 값은 후하게 쳐줄 테니 내게 파시오”라며 접근했다. 내가 “미안하지만 없다”고 하면 입맛만 다시다 돌아서곤 했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도 안타까웠다.

유럽이나 미국을 여행하다 부닥치는 어려움 중의 하나는 레스토랑에서 웨이터가 다가와 식사를 주문 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무얼 마시겠습니까” 하며 생글생글 웃으며 물어오는 순간이다. 곤혹스런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 같으면 공짜로 나오는 맹물을 꽤 비싼 돈을 주고 마셔야 하느냐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설령 돈이 있어 와인의 세계로 들어가 보고 싶어도 와인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으니 망설이게 된다는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남의 문화를 알고 존중해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모두가 노력해야 될 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누구나 모든 것을 척척 해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세세한 지식을 익히려 하기보다는 남을 이해하려는 자세를 갖는 것이 더 바람직하리라. 사실 와인의 세계는 너무나 깊고 오묘하기에 평소 그 세계에 빠져 사는 사람들도 헤매기가 일쑤인데, 비(非)와인 문화권 출신이 좀 모른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와인은 ‘느림의 술’

와인에는 와인 문화권의 종교와 역사·식생활 등 그쪽 사람들의 삶 전체가 녹아 있다. 유대인들이 이집트를 떠나오면서 그곳에 두고 온 고급 와인을 못내 아쉬워했다는 구약의 기록을 비롯해 예수가 “빵은 내 살이요, 포도주는 내 피니라”라고 했다는 신약의 ‘최후의 만찬’ 대목,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에 관한 그리스 신화, 중세 수도원의 포도원 역사, 보르도와 부르고뉴가 프랑스 최고의 와인 산지라는 사실, 유럽 각지의 포도주 축제, 16∼17세기에 유리병과 코르크 마개를 사용하면서 와인이 대중화됐다는 얘기, 코냑 샴페인 브랜디는 모두 와인의 변형이라는 상식, 빈 교외의 그린찡 마을에서 10월이 되면 가게 앞에 생솔가지를 걸어두고 ‘호이리게(햇포도주)’가 들어왔음을 알리는 풍습, 육류에는 적포도주가, 생선요리에는 백포도주가 어울린다는 서양식사 매너론 등 와인에 관한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다만 와인은 음식과 함께 마신다는 것과 ‘느림의 술’이라는 것쯤은 기억해 두는 게 좋다. 이것을 모르고는 와인을 제대로 즐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적포도주는 육류와 곁들여 마시는 게 좋다는 사실에서 와인은 음식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코스에 따라 와인을 달리함으로써 먼저 먹은 음식의 뒷맛을 깨끗이 가시게 하고 새로 나온 음식의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포도를 재배하고 그것을 와인으로 만드는 과정에도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만, 음식과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포도주는 아주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마셔야 한다.

와인을 굳이 느림의 술이라고 강조하는 것이 이런 실용적인 고려 때문만은 아니다. 진짜 이유는 포도가 자라는 땅에 있다. 와인은 물 대신 마시는 술이라 할 수 있다. 와인이 생산되는 지역은 대개 물이 좋지 않거나 귀한 편이다. 포도는 그런 척박한 땅 속 깊이 뿌리를 박고 물을 끌어올려 열매를 맺는데, 인간은 그렇게 자란 포도로 술을 담그는 것이다.

와인은 오직 포도의 즙만으로 만든다. 다른 술에는 물이 들어가지만 와인은 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귀하기도 하거니와 질도 그리 좋지 않은 물을 왜 쓰겠는가. 1kg의 포도는 750mℓ짜리 와인 한 병이 된다. 지중해 연안의 와인 문화권 사람들은 포도나무가 만든 ‘물’을 이렇게 와인이란 형태로 섭취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식사할 때 물을 마시는 것처럼 와인을 마신다. 그러니 그들이 1년에 마시는 와인 양이 어느 정도이겠으며, 알코올 섭취량은 또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도 이 지역에선 취해서 비틀거리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한꺼번에 ‘집중적’으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분산’해서 마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와인은 느림의 술이다.

와인은 최후의 만찬에서 보듯이 종교와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중세시대 수도원 운동의 중심지였던 프랑스의 부르고뉴(영어로는 ‘버건디’) 지방은 수도사들의 노력으로 좋은 포도주를 생산했는데, 이제는 이런 전통에 기업적·예술적 노력이 보태져 세계의 고급 와인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프랑스의 와인산업은 첨단산업만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산업도 하기에 따라 고부가가치산업이 될 수 있음을 실증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 무엇보다 엄격함이 요구된다. 포도주가 물을 대신할 목적으로 태어난 것이어서 그런지 와인 맛은 포도가 자란 토양과 깊은 관련이 있다. 같은 포도밭이라도 그 위치에 따라 포도주 맛이 다르다. 따라서 토양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포도가 자라는 토양을 최적 상태로 유지하려면 엄청난 노력을 투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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