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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대특집|역사의 대전환, 남북화해시대

‘김정일 쇼크’ 은둔자에서 슈퍼스타로

  • 신동아 특별취재반

‘김정일 쇼크’ 은둔자에서 슈퍼스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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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또 다른 특징은 자신이 힘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을 상대방에게 ‘확실히’ 전달한다는 것이다. 이는 제왕학 수업의 결과일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 과정에서 그는 남북간의 상호비방 금지 등을 그 자리에서 군 관계자에게 해결하라고 지시했다.

94년 6월 북한을 방문한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김일성과 두 차례 선상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을 김정일이 뒤에서 조정했다. 회담 중 카터가 미군 유해 송환을 언급하자 김일성이 즉답을 유보했다. 김정일은 그때 선실 바깥에 있던 김성애(김일성 후처)를 들여보내 카터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다고 귀띔해 주었고, 김일성은 유해 송환을 결정했다.

카터는 이를 눈치챘는지 김정일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김정일은 이를 적당히 둘러대고 거절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버지 앞에서 나서지 않는다는 점과,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힘을 가진 인물’임을 미국에 알린 것이다.

다만 이번에 확인됐듯이 그의 말은 빠르고 다변적이다. 방금 했던 말로 다시 돌아가 수정 보완하기도 하고, 상대방의 말허리를 자르고 자기 말을 끼워 넣기도 한다. 때로는 목소리의 톤이 갑작스럽게 올라가기도 한다. 이 때문에 그의 말을 그대로 글로 옮겨놓으면 정연한 문어체 문장으로는 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논리정연한 논객의 소질은 갖고 있지 못하다고 보면 된다. 논객으로서의 자질이 뛰어난 김대중 대통령과 대비되는 측면이다.

그는 문장보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한다. 이 때문에 김정일의 통역관들은 애를 먹는다. 통역관들은 일차적으로는 ‘문장’을 틀림없이 전달하는 기능을 가진 사람들이다. 반면 메시지는 함축된 뜻과 말하는 사람의 순간의 표정까지도 ‘통역’해내야 한다. 이는 김정일을 잘 모르고서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중국 소식통들에 의하면 이번 장쩌민과의 정상회담에서도 중국측 통역관들은 김정일이 빠르고 많은 말들을 일시에 쏟아놓는 바람에 진땀을 흘렸다고 한다. 현명한 통역관이라면 그의 말들을 죄다 통역할 것이 아니라,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통역하는 데 더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이번에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에서 말을 많이 아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손님으로서 주인에 대한 예절일 것이다. 다만 김정일이 서울에 답방해서 김대통령처럼 ‘예절’을 지킬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의 다변적이고 거침없는 스타일을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보는 것이 좀더 정확할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의 주요 특징 중 하나가 형식주의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항영접 때 김정일이 입고 온 점퍼를 놓고 말이 있었지만, 자신이 늘 입는 대로 입는다는 식, 즉 ‘형식’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사실과 자신이 소탈하다는 점,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계속 ‘혁명전사’로 보이고 싶어하는 뜻이 혼재돼 있었을 수도 있다.

김정일이 대외적으로 정장을 하고 나타난 것은 자신의 50회 생일인 지난 92년 2월16일 때 딱 한번이다. 그는 주로 점퍼가 아니면 인민복, 야전 점퍼 등을 입고 나타난다. 점퍼는 ‘혁명하던’ 때 입던 옷이다. 김정일은 자신을 혁명전사로 보이고 싶어한다. 아울러 점퍼는 소박해 보인다. 김일성도 김정일의 소박한 모습을 칭찬한 적이 있디.

김정일의 ‘원 샷’ 술문화

김대중 대통령과 남북공동선언문에 서명한 후 김정일은 건배를 제의하면서, 자신이 가장 먼저 ‘원 샷’으로 술을 들이키는 장면이 TV에 보도되었다. 김정일은 “남한 언론에서 김위원장은 역시 술을 잘 한다고 썼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술에 관한 한 김정일은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다음은 김정일과 술에 얽힌 비화들이다.

80년대 들어 북한군은 군 현대화 사업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남한이 지속적으로 군 현대화 사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군 현대화 사업은 소련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정일은 84년 10월 당 정치국 회의에서 85년 8월15일 해방 40돌을 맞아 소련 태평양 함대를 북한에 초청할 것을 제안하여 이 안을 통과시켰다.

8월14일 소련 태평양 함대 제1 총부사령관이 포함된 소련군사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했다. 군사대표단장은 당시 소련군 수뇌부에 속해 있던 페트로브 소련국방성 제1차관보(원수)였고, 극동군 관구 야조프 사령관이 동행했다. 북한군으로서는 오랜만에 찾아오는 귀빈이었다.

대표단 일행은 원산에 있는 김정일의 특각(초대소)으로 안내됐다. 이날 저녁 김정일이 주재하는 만찬이 열렸다. 음식과 술이 차려지고 만찬이 막 시작되려 하자, 페트로브 단장이 점잖게 인사말을 하기 위해 일어서려고 했다. 그때 김정일이 페트로브의 어깨를 탁 치며 말했다.

“장군이 쩨쩨하게 연설은 무슨…자, 술이나 마십시다. 길게 이야기할 게 뭐 있습니까? 우리는 작은 나라이고, 소련은 대국 아니요? 당신네들 지난번 조국해방전쟁(6·25전쟁) 때도 우리를 도와주었지 않았소. 그러니 이번 우리 군 현대화 사업도 좀 도와주시오.”

이날 밤 연회에서 신장 190cm의 거구 페트로브 단장은 김정일의 술 공세에 완전히 인사불성이 됐다.

해마다 12월이면 해외공관장 희의가 평양에서 열린다. 해외 파견 대사, 총영사들이 모여 1년간 각 공관의 사업상태, 김일성 부자의 교시 진행상황 등을 보고하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비판하는 자리다. 회의기간이 길어지면 몇 주 동안 계속된다. 긴 회의가 끝날 무렵이면 김정일이 주재하는 ‘1호 연회’가 개최된다.

통상 당의 수반이 참석하는 연회는 참석자들이 먼저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가 김정일이 나타나면 박수를 치고, 김정일이 자리에 앉으면 다같이 자리에 앉고 연회가 시작된다.

그러나 ‘오프닝 세레모니’가 평소와 다를 때도 있다. 김정일과 외교부장, 부부장 등이 먼저 연회장에 들어가고 대사들은 이름을 호명하면 한 명씩 들어가는 것이다. 호명된 대사가 연회장에 들어가면 테이블에 크고 둥그런 크리스털 잔이 놓여져 있다. 담긴 술은 프랑스산 코냑, 양은 300cc 정도. 대사는 잔을 들고 김정일에게 다가가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만수무강을 축원합니다”라고 인사하면, 김정일이 잔을 부딪치며 “고맙소” 한다. 그 다음 순서는 대사가 원 샷에 술을 들이키는 것. 이것이 김정일이 주재하는 연회의 ‘입주식’이다. 김정일의 원 샷은 오래 전부터 해온 그의 전매특허인 셈이다. 그는 ‘주량이 도량’이라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다음은 황장엽씨의 회고록에 등장한 술과 관련한 에피소드다. 하루는 김정일이 오랜만에 황비서를 술자리에 불렀다. 황비서는 북한에서도 ‘도덕 교과서’로 불린 인물로, 술 담배와는 아예 거리가 멀었다. 한창 연희가 무르익는데, 김정일이 황비서에게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황비서가 술을 한잔 쭉 마시는 걸 보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소.”

그러자 동료들이 황비서의 양쪽에 달라붙어 강제로 술을 먹이려고 했다. 황비서는 입을 꼭 다물고 동료들이 붓는 술을 입에 넣지 않았다. 그 바람에 술이 흘러 옷이 젖고 말았다. 동료들이 질려서 물러가자 이번에는 김정일의 친여동생 김경희(당 경공업부장 역임)가 나섰다. 김경희는 김일성대 총장시절 황비서의 제자다. 황비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녀가 무안해하지 않도록 조금 마시는 척했다. 그러자 그걸 본 김정일이 직접 나섰다.

“그만들 두시오. 내가 책임지고 마시게 할테니.”

김정일은 자기 자리에 있는 술병을 들어 따라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버티려면 끝까지 버텨야지, 경희가 먹인다고 드시면 됩니까?”

황비서는 하는 수 없이 눈을 질끈 감고 입에 털어 넣었다. 놀랍게도 그 술은 맹물이었다. 그 자리에서 김정일이 맹물을 마시고 있다는 걸 아는 간부는 아무도 없었다. 김정일은 잦은 비밀 연회 등으로 술을 마시지 말라는 의사의 권고를 몇차례 들었다.

여동생을 끔찍히 아끼는 오빠

김정일은 생모 김정숙에게서 태어난 하나뿐인 친여동생 김경희를 끔찍히 생각해왔다. 김경희는 오빠 덕분에 권력의 온실에 오래 있을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북한에서 가장 힘있는 부서인 중앙당 조직부 제1부부장 장성택이다. 조직비서와 조직부장은 총비서 김정일이 겸직하고 있다. 장성택이 말하자면 실질적인 2인자인 셈이다.

장성택은 김일성 종합대학 시절 김경희와 연애했다. 잘 생기고, 술 잘 먹고, 잘 노는 장성택에게 김경희가 푹 빠진 것이다. 이들의 연애는 단번에 소문이 났다. 이 때문에 김일성이 장성택이 사윗감으로 괜찮은 인물인지 알아보라고 지시를 내렸다. 당 간부들이 여러 차례 조사를 해본 결과 성실하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김일성에게 ‘아니올시다’로 보고했다.

김일성은 둘 사이를 떼놓을 겸 장성택을 원산경제대학으로 내려보냈다. 이렇게 되자 김경희는 밥도 먹지 않고 난리를 피웠다. 김일성의 눈치를 봐가며 이들 둘 사이를 다시 원상 회복해준 사람이 김정일과 계모 김성애였다.

장성택도 김정일에 의해 ‘혁명화’를 당한 적이 있다. ‘혁명화’는 당성과 혁명성이 약한 사람에게 일정기간 육체노동으로 정신단련을 시키는 일종의 귀양살이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는 혁명화의 방법으로 충성을 받아내기도 한다. 전 인민무력부장 최광(사망)은 12년간 혁명화를 한 적이 있다.

아무튼 결혼 후 열심히 일하지 않고 술을 즐긴 장성택을 보다 못한 김경희가 오빠에게 ‘혁명화’를 건의했는데, 이를 김정일이 받아들인 것이다. 장성택은 강선제강소에서 혁명화를 한 다음 다시 평양으로 불려 올려져 ‘청년 및 3대혁명 소조’ 지도부장과 89년에 열린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 준비사업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김일성 김정일의 신임을 얻었다.

북한에는 퍼스트 레이디 개념이 없고, 따로 역할이 정해진 것도 없다. 이유는 옛날 서구 부르주아 상류사회의 잔재를 흉내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 우리는 이희호 여사가 동행했으나, 김정일의 공식부인 김영숙은 나타나지 않았다. 납북됐다가 탈출한 영화배우 최은희는 김정일로부터 김영숙을 소개받은 적이 있다. 김정일은 최은희에게 자기 부인을 이렇게 소개했다.

“우리 마누라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여편네란 그저 애 키우고 살림이나 잘 하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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