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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추문’은 짧고 시민운동은 영원하다

  • 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처장

‘장원 추문’은 짧고 시민운동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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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씨 사건과 관련하여 이제 시민단체 지도자와 활동가들도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시민단체의 위상이 높아지고 상당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니 이미 공인이나 다름없는 시민단체 지도자들이 검증을 받고 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정치인을 포함하여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비판적 기능을 행사하는 시민단체가 정작 스스로 검증하는 장치는 없지 않으냐는 반문도 있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주장에 일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시민단체에 대한 아무런 규제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안방에서 부부가 ‘행복한 가정 만들기 전국연합’을 만들어도, 두세 이웃이 모여 ‘쓰레기 분리수거 전국운동본부’를 만들어도 시민단체가 된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아래서는 사회단체가 합법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인가를 받거나 등록해야 했지만 지금은 ‘사회단체등록에 관한 법률’조차 폐지되어 등록이나 신고 없이도 얼마든지 단체로 존립하고 활동을 할 수 있다. 결사의 자유를 향유하게 된 것이다. 최근 ‘비영리단체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행정자치부 프로젝트에 응모하려면 비영리단체 등록을 해야 하지만 그것을 무시한다고 단체로서 활동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결성된 시민단체가 회원을 모으고 회비를 징수해 어떤 활동을 벌이는가도 거의 제한받지 않는다. 물론 기부를 함부로 받는 것은 ‘기부금품모집 금지법’ 위반이 될 수도 있고 기부받은 돈을 사생활이나 엉뚱한 곳에 함부로 쓰는 것은 횡령이 되지만 말이다. 얼마 전에는 소비자운동의 지도자들이 소비자대상을 수여하면서 특정업체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은 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시민단체는 상대적으로 비교적 마음껏 자유를 누렸다. 정부조차 군사독재하에서의 탄압에 대한 보상 때문인지 시민단체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었다. 행정기관은 시민단체의 활동에 개입하기를 꺼렸다. 시민단체의 위상이 커져 함부로 개입했다가는 민간단체를 탄압한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시민단체끼리 서로를 견제하기도 쉽지 않다. 전국적인 네트워크나 시민단체연합체가 있어 내부통제를 가하는 경우도 없다. 이런 상황에는 언제든 소수의 시민단체나 그 지도자의 실수 또는 고의적 범죄가 생겨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의 NGO붐을 타고 우후죽순 시민단체를 표방하며 간판을 건 단체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들 시민단체의 성향과 그 지도자의 경력, 그 활동의 순수성이 충분히 검증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들 가운데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시민운동판에 뛰어든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처음부터 사기적 목적으로 시민운동을 벌이고 공익을 팔아 회비와 기부금을 모아 사복을 채우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장원씨 사건은 지도자 개인의 도덕성 문제였지만 시민운동을 빙자한 대중적 사기행위가 조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원씨 사건은 하나의 시작에 불과할지 모른다.

매일 검증받는 시민단체

그렇다고 시민단체와 그 지도자를 검증하는 다른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에 대해 인사청문회를 개최할 수도 없고 국회의 동의를 받아 취임하게 할 수도 없다. 이것이 시민운동가가 법률에 규정된 공직자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장원씨 사건을 계기로 시민단체의 윤리강령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실제로 몇몇 단체에서는 그런 강령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윤리강령이 있다면 자신을 한번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윤리강령을 만든다고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갖춰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시민단체 지도자들의 도덕성은 결국 그 자신과 그 조직에 달려 있다. 높은 도덕성, 엄정한 정치적 중립성은 누가 가져다주거나 강제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개인의 결단과 조직적 문화와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필자가 소속된 참여연대의 경우,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관에 어떤 임원도 당적을 가질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 성향이 있거나 공명심이 높은 인물은 가능하면 주요 임원직에서 배제하고자 노력해왔다. 그 결과 참여연대에서 일하다 정부 고위직이나 국회의원 후보로 나간 사람을 아직은 찾아볼 수 없다. 어떤 단체의 경우 이 정부 아래에서만 십수명의 임원들이 장·차관급으로 나간 것을 보면 비교할 만한 일이다. 이와 같이 도덕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는 것은 비상한 자기노력에 달려 있다.

그뿐만 아니라 최소한이나마 국가기관의 견제와 언론과 여론의 견제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민단체는 매일같이 일거수일투족을 견제·감시·검증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민단체는 바로 국민의 신뢰에 의해서만 존립하고 유지된다. 만약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리면 그 단체는 존립 근거를 잃고 만다. 과거 특정단체의 구성원이나 단체 지도자의 잘못 때문에 위상이 급락하고 회원이 대거 이탈한 사례가 여러 번 있지 않았는가.

생각해보라. 국회의원은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이상 국회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다. 행정기관의 장이 감옥을 갔다고 그 기관이 문을 닫는 법은 없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다르다. 장원씨의 성추행혐의 사실이 알려지자 그가 소속한 녹색연합은 물론이고 다른 시민단체들까지 위기에 봉착해 거의 회복불능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국민의 신뢰를 기반으로 해서만 존속할 수 있는 시민단체에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시민단체에는 존립근거와 활동을 보장하는 어떤 법적인 장치도 없다. 재벌과 같은 금력도 없다. 적어도 국민의 신뢰를 잃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시민단체는 없다.

“국민 여러분, 잘 먹고 잘 사십시오”

시민단체의 검증은 일상적으로 시민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회원과 그들이 내는 회비를 늘리기 위해서는 높은 도덕성을 유지하고 국민에게 호감을 주는 사업을 벌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 그런데 느닷없이 장원씨 사건이나 경실련 테이프사건 같은 것이 터지면 그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우리 국민들만큼 엄혹한 사람들이 어디 있는가. 백 번 잘하다가 한 번 실수하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특히 시민단체들에는 더욱 그렇다. 시민단체는 이러한 시민의식에 의해 매일같이 준열하게 검증받고 있는 것이다.

사실 시민단체를 검증하려 한다면 먼저 시민단체에 그만한 혜택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국민만큼 염치없는 국민도 없다. 무임승차의식과 공짜와 이기적인 생각들이 팽배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시민단체는 환경운동연합이다. 그러나 그 회원 숫자는 7만명에 불과하고 실제로 회비를 내는 사람은 이보다 훨씬 적다. 미국의 그린피스 회원은 200만명이 넘는다. 수년 동안 공권력과 싸우고 농성과 밤샘을 밥먹듯 하며 아름다운 동강을 지켜내고 새만금간척사업을 중단시키고, 백두대간을 보호하는 일을 한 단체에 우리는 그토록 인색했다.

미국의 경우 웬만한 시민단체는 수십만명의 회원을 자랑한다. 참여연대가 그동안 국민들에게 돌려드린 돈이 줄잡아 10조원이 넘는다

핸드폰 사용자에게 매년 1만2000원씩 전파사용료라는 이름의 근거 없는 준조세를 납부하게 하는 데 대해 소송까지 제기하여 내지 않도록 만들었다. 2500만대가 넘게 보급된 핸드폰을 생각해 보라. 국민들은 참여연대가 없었다면 몇십년 동안 전파사용료를 내야 했을 것이다. 의약품의 과잉계상을 따져 금년부터 1조원을 인하하도록 만든 것도 중요한 성과였다. 우리 사회 최초의 사회안전망이라고 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제정도 참여연대가 조문부터 성안해 만든 데서 비롯되었다.

그뿐인가. 변호사·회계사 등 고소득 자영업자에 대한 부가세 부과운동, 의보통합과 의약분업, 국민연금개혁운동, 부패방지법 제정운동, 판공비 공개운동, 작은권리찾기운동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일들을 해냈다. 그러나 회원은 겨우 9000명. 그것이 오늘날 대표적인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 수준이다.

환경운동연합과 참여연대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수많은 환경운동, 소비자운동, 여성운동, 인권운동… 이 모든 공익적 시민운동이 국민들의 무관심과 지원부족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술집에서, 택시 안에서, 안방에서 소리 높여 정치현실을 비판하고 사회모순에 절망하면서도 그 현실을 개혁하고 모순을 해결하려는 시민단체의 실천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회원이 없고 회비가 없는데 시민단체가 제대로 움직일 리 만무하다.

그러다가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았다는 것만으로 목소리를 높여 비판한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이슬을 먹고 살라는 말인가. 물론 정부나 기업의 지원을 받지 않는 게 좋다. 참여연대는 받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들이 한푼 두푼 성금을 내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뿐 아니다. 장원씨 사건처럼 무슨 문제가 생기면 모든 시민운동을 도매금으로 비난한다. 시민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마치 무슨 자랑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집 마당은 쓸지언정 동네 골목길은 쓸지 않는다. 바람이 불면 골목길의 쓰레기가 금방 자기 집 대문 앞도 더럽힐 게 자명한데도 그것이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여긴다. 이 근시안과 이기주의는 공동체에 대한 무관심을 상징한다. 자기 딸의 안전을 위해 정거장까지 마중 나가는 부모가 성폭력 방지와 예방을 위해 운동하는 단체에는 냉담하다. 자신의 딸과 아내, 여동생을 위해 평생 그렇게 따라다니며 보호해줄 작정인가.

오히려 한국여성의 인권은 독일사람들이 보호한다. 독일의 재단에서 매맞는 아내를 보호하는 ‘여성의 전화’에, 그리고 성폭행 추방운동을 벌이고 있는 성폭력상담소에, 그리고 여성운동을 총람하는 여성단체연합에 매년 1억원씩을 기부해왔다. 이제 OECD에까지 가입한 한국에 대해서는 그 지원이 끊어지고 있다. 성폭행에 대한 신고를 꺼리는 사회풍토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강간율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때로 나는 상상한다. 이토록 절망적으로 무심한 국민들에게 이런 성명을 내고 참여연대의 문을 닫고 시민운동을 그만두는 상상 말이다. “국민 여러분! 저희들은 최선을 다해 이 땅에 부패를 물리치고 정의를 세워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정말이지 힘들었습니다. 국민들의 침묵과 무관심에 저희들은 절망했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문을 닫습니다. 국민 여러분, 잘 먹고 잘 사십시오.” 이런 상상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열심히 최선을 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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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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