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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추문’은 짧고 시민운동은 영원하다

  • 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처장

‘장원 추문’은 짧고 시민운동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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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시민단체를 포함한 자선단체에 회비를 내고 기부금을 내면 모두 면세혜택을 준다. 그것이 국세청 법전이다. IRC501(c)(3)는 바로 그 근거조항이다. 이 조항을 모르는 미국시민은 간첩이다.

대부분의 시민은 어느 시민단체에든 회비와 후원금을 내고 세금을 감면받는다. 세금으로 내느니 좋은 일을 하는 시민단체에 회비로 내는 사람들이 많다. 상속세로 모두 뺏기고 마느니 오히려 자신의 재산을 공익을 위해 뛰는 시민단체에 몽땅 내놓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만큼 세금은 줄어들지만 그것은 공익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로 가서 더욱 유용하게 쓰이는 원리를 이 나라는 터득하고 있다. 세상의 공의를 지켜낼 수 있도록 국가가 세금제도를 정비하여 보장하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편요금을 반까지 할인해주고 있다. 스스로 광고비용을 대 광고할 여력이 없는 시민단체들에 퍼블릭 엑세스를 제공해 공짜로 자신의 활동을 소개하는 방송시간을 제공한다. 어느 지역이고 퍼블릭 엑세스 채널이 없는 곳이 없다. 인권과 환경, 소비자와 장애인, 여성과 소수민족 등의 이슈가 이런 채널을 통해 여론화하고 보편화한다. 이러한 국가적 지원과 국민적 참여를 통해 시민단체는 튼튼해지고 공의가 세상을 지배한다.

이런 전제하에서 미국은 시민단체들에 철저한 도덕성을 요구한다. 확실한 혜택과 특혜를 주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다. 아무것도 주지 않고 아무런 보호도 해주지 않으면서 단지 책임만 묻고 의무만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래도 희망은 시민단체



뉴욕검찰청에는 15명의 검사로 구성된 자선부(Charity Board)가 시민단체들의 모금과 사용의 적정성을 감시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재정보고서를 제출할 의무가 있으며 이 재정보고서는 국세청 직원들과 검사들에 의해 꼼꼼하게 검증 된다. 미국 최고의 모금단체인 유나이티드웨이 회장은 자신이 모금한 공금 중 일부를 자신의 애인과 함께 여행을 하는 데 사용했다는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라고 한다. 이렇게 미국사회는 시민단체에 대해 도덕성을 물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지 않은가.

장원씨 사건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가 할 일이 사라지거나 줄어들 수는 없고 21세기는 여전히 NGO의 시대가 될 수밖에 없다. 참여민주주의가 지배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 공직자를 선출해서 공무를 위임하는 것으로 민주주의는 완성될 수 없다. 그것은 초보적 단계에 불과하다. 성숙한 민주주의는 의식화된 시민들이 공공적 사안에 대해 직접 참여하고 개입하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한 여론의 힘은 결국 시민단체를 통해 구체화된다. 시민단체의 매개 없는 시민은 모래알에 불과하다. 그 구슬을 꿰는 실이 바로 시민단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시민단체의 숫자와 그 회원 수와 그 활성도에 따라 성숙도를 측정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라. 미국과 유럽에 시민단체가 얼마나 많은지. 미국의 경우 이미 100만개의 시민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보라. 북한에 시민단체가 있는가. 러시아에 몇 개의 시민단체가 있는가. 아니면 우리 자신을 보자. 유신독재와 5·6공 시대에 시민단체가 활동할 수 있었는가. 그때는 결사의 자유가 철저하게 억압당하던 시기다. 권력이 모든 민중을 지배하고 어떤 비판의 여지를 주려 하지 않았다. 오직 독재자의 결정만 있을 뿐 시민의 개입과 참여, 여론이 힘을 발휘할 공간이 없었다.

시민단체가 이 땅에서 특별히 중요한 이유가 있다. 한 사회의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결정과정에 참여하는 루트는 다양하다. 행정·사법기관과 기업, 노동조합, 언론 등이 이러한 의사결정 과정의 참여자들이다. 그러나 기업은 자신의 이윤 추구라는 목적이 분명하고 행정기관은 감시와 모니터의 대상이 된다. 노동조합은사회개혁과 변화에 중요한 인자임은 분명하나 때로는 공익과 배치되어 계급 이기주의에 빠질 경우도 있다.

오늘의 언론이 언제나 사회적 약자를 옹호하고 사회의 진보를 위해 노력하며 정의의 편에 서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언론은 스스로가 하나의 권력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것이 바로 시민단체들이다. 시민단체가 모조리 사라진다면 이 땅은 금방 암흑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정의가 실종되어 강자의 수렵장이 될 것이며 부패의 악취가 진동할 것이다. 심판기능과 파수기능은 사라져 불의가 판치고 부조리가 난무할 것이다. 이런 세상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시민단체는 여전히 우리의 희망이다. 우리가 소중히 가꿔야 할 사회적 실체다. 작은 소망을 모아내야 할 곳이다. 말만으로는 돌멩이 하나 움직일 수 없는 법이다. 작은 실천들이 모이고 참여가 이루어질수록 공익은 더욱 신장될 것이 분명하다. 간사 몇 명이 모여 피케팅을 한다고 해서 힘있는 기관들이 꿈쩍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런 꿈을 가지고 있다. 미국 워싱턴의 링컨 기념관 앞에 100만명이 모여 평등권을 외치는 것, 아버지의 모임을 여는 것, 총기규제를 요구하는 부모들의 시위가 벌어지는 것을 부러워하는 게 아니라, 우리도 여의도공원이나 남산공원에 10만명이 모여 부패방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피케팅을 하고, 사회복지예산을 GDP의 5%로 증액하라고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정치개혁법을 빨리 제정하라고 다그치는 시민들의 행렬을 꿈꾼다. 정말이지 나는 밤마다 꿈꾼다. 시민단체 문 앞에 회원가입을 위해 길게 늘어선 사람들을. 불난 집처럼 회원가입 신청전화가 이어지는 날을.

NGO의 길 - 시지푸스의 운명

어느 방송사 간부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방송에서 뜨면 영락없이 마음이 붕 뜬다고. 국민들에게 얼굴이 널리 알려진 MC, 앵커, 탤런트, 유명인사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본연의 임무를 떠나 정치권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생기는 것도 이런 연유라고. 시민운동가들 가운데에도 언론에 얼굴 내기를 즐겨하는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떤 기자회견이나 모임에 언제나 앞줄에, 그것도 가운데 앉기를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걸 보며 걱정이 앞섰다. 시민운동은 공익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언론에 등장할 가능성이 극히 높다. 기자들의 취재대상이 되기 마련이며 때로는 기자회견을 자청하기도 한다. 어쩌면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이 언론을 제대로 활용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매명을 위한 얼굴 내밀기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런 사람이 헌신과 희생을 끝없이 요구하는 시민단체에서 고난의 길을 계속 걸으리라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한번 시민운동에 종사했다고 끝까지 시민운동을 지켜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민운동으로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 개인적 목적으로 그 얼굴을 이용한다면 국민들의 배신감은 막을 길이 없을 것이다.

시민단체 활동가나 지도자들이 성인일 수는 없다. 그들도 속세의 인간들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보통의 시민들보다 높은 도덕성과 희생정신을 요구하는 것은 이들이 차지하는 위치 때문이다. 시민단체와 그 활동가들은 사회정의를 부르짖고 사회불의를 꾸짖는다. 그런 사람이 다른 시민들과 똑같이 타락하고 부패한다면 그것은 용납하기 어려운 것이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받는 것도 없이 의무만 강요당하기 마련이다. 한편으로 억울한 일이지만 또 한편 생각하면 그것은 스스로 선택한 길이 아닌가. 시민운동가의 길, 특히 한국에서의 시민운동은 가시밭길, 바로 그것이다.

비온 뒤에 땅은 더욱 굳게 마련이다. 장원씨 사건으로 시련을 겪은 시민단체들이 좌절만 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더욱 힘차게 본분을 다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처음 장원씨 사건이 터졌을 때 참담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담담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시민단체에 들어 있는 거품을 빼고 더욱 차분하게 일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나친 기대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였다. 이제 다시 홀가분하게 출발선에 섰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미국의 유명한 인권법학자이자 변호사협회장을 지낸 셰스텍이라는 분이 있다. 이 사람은 어느 논문에서 ‘NGO의 길은 시지푸스의 운명과 같다’고 지적하였다. 산 정상까지 바위를 밀고 올라갔다가 굴러떨어지면 다시 끝없이 밀어올려야 하는 시지푸스의 운명이 NGO의 그것과 영락없이 닮았다는 것이다.

그렇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빛볼 날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언제나 음지에서 겸허한 마음으로 사회정의와 시대정신에 복무해야 한다. 빛도 이름도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바로 시민단체 활동가들이다. 오늘도 이들은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다.冬

신동아 200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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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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