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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흔들리는 보수세력

‘보수’는 반격을 노린다

  • 박성원·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보수’는 반격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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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연맹 후신인 자유총연맹은 6·15정상회담 때 이를 지지·환영하는 성명을 내고 같은 취지의 현수막까지 내걸었다’. 사실 이같은 변화는 급작스러운 게 아니다.

자유총연맹은 이미 2년전 양순직총재-남정판(南廷判)사무총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과거의 반공 일변도에서 본질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 수호·발전을 위한 ‘민주시민교육’으로 활동 방향을 재정립하고, ‘투쟁적’인 반공궐기 대신 민주시민교육 강화에 역점을 두어왔다. 민주시민교육센터를 가동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남 사무총장의 설명.

“우리에게 보다 중요한 가치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안보와 함께 민주시민으로서 철학과 소양을 깊이 체득케 하는 것이 무엇보다 긴요하다. 머리띠를 두르고 반공 그 자체를 목표처럼 내걸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남총장은 자유총연맹이 과거 정권 시절 정권 안보에 동원돼 왔지 않느냐는 시선에 대해 “일부 그렇게 볼 소지도 없지 않으나 국가안보를 위한 국론 수렴에 앞장서왔던 것”이라면서 “정상회담 이후 우리가 환영성명을 내면서도 환상적 통일론은 경계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자유총연맹은 본디 반공단체인데 이제 그럴 역할이 없어졌으니 문닫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입방아도 찧는다. 남총장은 “정상회담 이후 한국논단 이도형씨가 내게 와서 인터뷰를 하는데 반공우익의 한 축이 없어졌다는 듯 불만이 얼굴에 가득하더라”고 전했다.



자유총연맹은 보수 일각에서 벌이려 하는 ‘김정일 저지’운동에 대해서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존재확인 차원의 행동에 불과하다”며 불참할 방침이다.

물론 폭력적 행동에 나서지 않는 한 우리사회 한편에서 그런 의사표시는 할 수 있는 것이며 그런 반대 목소리가 우리 정부의 대북협상력을 높여주는 효과도 있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그런 운동은 자칫 화해무드 자체를 반대하는 것으로 흐를 수도 있으므로 신중히 거리를 두겠다는 것이다.

자유총연맹은 오히려 정상회담 이후 “통일환경 변화에 따른 통일준비교육의 새방향’을 주제로 한 대토론회(7월25일)를 열고, 통일교육 교사연수(7/31~8/11)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남북대화정치의 논리를 퍼뜨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말하자면 자유총연맹의 강조점이 반공에서 안보로, 다시 민주와 통일로, 시대에 따른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다.

자유총연맹 기관지 ‘자유공론’ 9월호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굳게 맞잡은 (남북의) 손을 표지 디자인으로 깔고 진보적 지식인으로 분류되는 리영희(李泳禧)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싣고 있다. ‘북한은 남한 극우반공주의자보다는 변하고 있다’는 제목의 이 기사는 “세계 상황에 대한 판단력을 갖추지 못하는 극우 반공주의자들은 시대착오적 지능지체아”라는 ‘과격한’ 표현까지 그대로 싣고 있다. 이에 앞서 7월호에는 ‘남북정상회담―대결에서 화해 시대로’라는 제목의 타이틀 기사와 ‘헌법상 영토조항 탄력 적용 68%, 국가보안법 부분 개정 필요 62%라는 의견이 나온 공법학 교수 여론조사 결과도 싣고 있다

간판 바꾼 반공청년회, 활동마비

불과 3년여전인 97년 3월호에 “탈냉전시대란 한반도에서 어림도 없다”는 안응모(安應模) 당시 발행인의 권두언이 실렸던 것과 견주면, 가히 상전벽해(桑田碧海)다. 보수 일각에서는 이같은 변화를 두고 “본디부터 정부 예산 지원을 받는 관변단체이기 때문에 정권 입맛에 쉽게 맞추어 주는 것”이라고 비꼬기도 한다.

그러나 자유총연맹 시각은 다르다. 한 관계자의 말.

“지금은 다른 민간단체도 정부예산을 지원받는다. 우리가 지원받는 예산액은 과거처럼 수십억도 아니고 줄고 줄어서 이젠 3억원에 불과하다. 그것 같고는 무슨 사업은 커녕 조직유지 조차 어려운 형편이다.

우리가 남북대화 협력을 지지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 북한 개혁개방의 지름길이며 이것이 이루어질 때 폐쇄적 독재적 공산주의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온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충실한 것이다. 50년전 공산주의에 대응하는 방식과 오늘날 방식은 달라야 한다. 사고가 화석화돼서는 곤란하다.”

53년 반공포로 출신들의 모임인 대한반공청년회(회장 손구원)는 아예 6월27일 대의원총회에서 ‘반공’이라는 간판을 떼어내고 ‘통일안보협의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미 대한민국 정부가 중국 등 공산당 집권세력과 수교했고 북한과도 교류협력을 통한 개방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50년대 전쟁기 반공 개념에 머물기보다는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내포하는 ‘통일안보’를 내세우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다.

반공청년회 역시 6월18일 ‘북한개방, 독재중단’을 요구하는 내용으로 제47주년 반공의 날 행사를 계획, 결의문을 준비했으나 역사적인 정상회담 결과가 나옴에 따라 결의문 채택을 포기했다. 이 단체의 안정일 총무국장은 “사실 전쟁 등 과거를 생각하면 마음이야 쉽게 열리지 않지만 시대흐름에 맞춰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반공청년회는 과거 한때 기업체 협찬까지 받아가며 공무원을 상대로 ‘반공집체교육’까지 시킬 정도로 이 사회에서 역할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반공’이라는 개념이 퇴조한 지금은 활동이 거의 마비돼 상근 사무직원도 두기 어려울 정도다. 개별 14개 지회 차원에서 강연회 등으로 명맥을 겨우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북도민들은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에 적극 지지세력으로 바뀌었다. 실향민들은 기본적으로 북한공산정권이 싫어서 월남한 사람들이고 이 때문에 과거 정권 때 반공궐기대회에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남북화해협력 정책의 결실로 이산가족상봉이라는 소원이 조금씩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이북도민회 분위기가 급속히 바뀌어가고 있다.

홍성오 이북도민회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과거 남북관계가 냉랭할 때 이북도민회가 반공에 앞장선 까닭에 우리를 보수로 보는 시각이 강한 것”이라면서 “그러나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정상회담의 의미를 피부로 느끼면서 내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도민회의 한 관계자는 특히 “도민회장이 민주당에 입당하는 등 이북출신 도민회 상층부는 거의 전부가 민주당으로 가버렸다”고 말했다.

홍총장은 “내부에도 물론 남북관계 각론을 싸고 견해차가 적지 않지만 교류협력 외엔 남북문제를 풀 다른 대안이 없다는 데 공감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따라 이북도민회에는 과거엔 반공행사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빠른 시사흐름을 어떻게 따라잡아야 하는지 관계자 강연을 듣는 행사가 많아졌다. 6월20일 장충체육관에서 8천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산가족상봉 등 남북정상회담 합의사항에 대한 환영대회를 열고 황원탁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초청, 남북관계 뒷얘기를 들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북도민회 중앙연합회는 남북화해 협력 무드를 적극 뒷받침하기 위해 새마을운동 중앙회와 함께 북한 농촌에 ‘통일 손수레 보내기 운동’을 적극 전개하고 있다. 10월말까지 각 이북도민회별로 모금 활동을 벌이고 겨울이 오기 전까지 이불 보내기운동도 펼친다는 계획이다. 이북도민회 관계자들은 자유민주민족회의가 벌인다는 ‘김정일 저지’운동은 “명분이 없다”며 참여하지 않을 방침이다. 한 관계자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태극기를 달고 북한에 가서 정상회담을 한 이상 남북이 상호 인정한 것”이라면서 “우리가 김정일을 적극 환영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서울 방문을 막는다면 국제적으로 옹졸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국방부의 ‘변화 따라잡기’

종래 남북 문제에 관한 보수안보주의 최후보루 역할을 해온 정부 부처도 남북화해시대를 관리해나가기 위한 자체변화 폭과 속도를 둘러싸고 고심하고 있다.

먼저 국정원은 임동원 원장이 이례적으로 지난 6월 정상회담장에 공개적으로 얼굴을 드러내고 김정일국방위원장과 깎듯한 악수까지 나누는 데서 받은 충격에서 한동안 헤어나지 못하는 분위기다.

항상 상대방에 대한 의심과 불신을 깔고 ‘음지’에서 활동해야 하는 게 정보맨들이다. 그런데 그같은 정보전 대상인 북한 최고통치권자와 자신들의 수장이 보란 듯이 화해 악수를 나누는 데서 “이러다가 ‘목표상실’ ‘방향감 상실’이라는 정신적 공황에 처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는 게 한 관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이 관계자는 “일부러 차단하지야 않겠지만 대통령 또는 원장의 대북화해 정책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정보나 건의는 올리기가 괜히 조심스러워진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국정원측은 “실제 내부 혼란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한 관계자는 “남북관계 자체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고 있고 새로운 변화에 적응해가는 과정이 과장되다 보면 밖에서는 혼란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면서 “그러나 변화를 읽지 못하면 그건 더 이상 정보기관으로서 생명력이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말하자면 역할을 더 잘하기 위해 다소의 변화가 있었다는 얘기다.

휴전선 155마일에서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는 군 역시 말없는 가운데 변화의 시대에 맞는 정신전력 개발에 부심하고 있다. 당장 경의선 철도복원 사업을 위해 북한의 조선인민군과 우리 병사들이 각각 방어용으로 깔아놓은 지뢰를 대대적으로 제거하고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던 방향으로 선로를 깔아넣는 작업에 나선다는 게 웬지 얼떨떨하다는 표정이다.

군의 한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북한은 아직 적인데 한편으론 화해의 대상인 동포라는 점을 강조하니까 적을 껴안고 있는 형국”이라면서 “무엇보다 장병들의 정신교육 문제가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남북관계가 어떻게 변화하더라도 군의 임무는 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변화된 남북관계에 맞게 정상회담의 성과와 의의에 대한 교육과 함께 정상회담을 힘으로 뒷받침할 수 있도록 군 역할의 중요성을 교육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방부는 주적(主敵)개념과 관련해서 “북한은 여전히 현존하는 위협이며 북한이 대남군사전략 등을 수정하지 않고 있는 시점에서 주적개념의 변경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앞으로 북한의 군사능력 감축, 군사력의 재배치, 대남적화전략 및 노동당 규약 수정 등의 조치로 북한의 실질적인 군사적 위협이 사라질 때 비로소 주적개념 변경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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