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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인터뷰

“예수를 다시 못박으려 하는가”

장로 출교한 여의도순복음교회 당회장 조용기 목사

  • 안기석·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 안영배·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예수를 다시 못박으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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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오랫동안 조목사와 서명을 주도한 장로들간에 갈등의 불씨는 내연하고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은 교회외적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나 교회 운영과 관련해서 서로 다른 생각이 점차 확산되어 갔던 것이고 이번 건의문 사건을 통해 폭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만.

“요사이 사회가 그렇게 변화했습니다. 지금 이걸 주도하는 사람들이 모두 97∼98년에 장로가 된 사람들입니다. 소위 말하는 신세대 장로입니다. 최근 마치 여당인 민주당에서 신세대 의원들이 들고 일어난 것처럼 말이지요.”

조목사는 이 말을 해놓고 자신도 재미있는 비유였든지 허허 웃었다. 앞에서 격앙된 목소리로 이야기할 때와는 달리 상당히 기분이 누그러진 것 같았다. 정치 얘기가 나온 김에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김영삼 전대통령과 차남인 현철씨의 관계를 한번 꺼내 보았다.

―김영삼 대통령이 재임 말기에 카리스마가 흔들리게 되자 주위에서 들고나온 것이 아들 문제였습니다. 혹시 목사님도 카리스마가 흔들려 주변에서 아들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아닙니까.



“그건 너무 억지 비교입니다. 목회자가 무슨 권력의 자리도 아니고, 또 김영삼 전대통령의 아들과 내 아들은 경우가 다르지요. 우리 아들이 교회 일에 관여한 것도 아니고, 국민일보에 와서 2년간 구조조정하고 떠난 게 전부입니다. 국민일보 사장 자리에 있다 보니까 이런저런 얘기가 나왔겠지요.

말이 난 김에 김영삼 대통령 시절의 얘기를 해보지요. 알다시피 그때 그 아들이 나라를 다스리다시피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너무 답답해 청와대에 들어가 김영삼 대통령에게 아들을 직접 체포하라고 말했어요. 그러면서 중국 고사를 예로 들었어요. 옛날 중국의 어떤 왕이 사회정의를 세우기 위해 자신의 눈알과 왕자의 눈알을 하나씩 뽑은 얘기입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김영삼 대통령에게 당신의 눈알을 하나 뽑고, 현철이 눈알을 하나 뽑으세요 하고 말했습니다. 현철이의 눈알을 하나 뽑는 것은 대통령이 현철이를 직접 체포하는 일이고, 대통령의 눈알 하나를 뽑는 것은 당시 김대중 야당총재와 타협하고 대화하는 일이었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아들을 잡아넣으면 국민이 동정하지만 검찰이 잡아넣으면 국민이 동정하지 않아요. 그때 그 이야기를 하고 나서는 대통령한테 밉보였던지 한동안 청와대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물론 김영삼 대통령으로서는 가슴 아플 일이었지만, 당시 목사 이외에는 누가 그런 말을 하겠습니까.”

목사 아들 보다는 사회인으로 봐야

―장남 희준씨가 젊은 나이에 신문사 사장이 되고 회장도 되고 하니까 주위에서 반발심 같은 것이 작용하지 않았나요?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내 아들보고 왜 사장이 되고 회장이 되었느냐 하는 말은 안 나와요. 전반적으로 우리 교인들은 나와 우리 가족을 사랑합니다. 순복음교회의 노인 장로들은 우리 아들이 주일학교에 나올 때부터 자식처럼 키워와서 지금도 아들에게는 말을 놓아요. 자기 아들처럼 사랑하지요. 그리고 우리 아이가 신앙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잘 되기를 기도해주고 있어요.”

―인터넷에 안티스투라고 해서, ‘스포츠투데이’의 선정성을 반대하는 사이트가 있는데요. 그걸 본 적이 있습니까.

“나도 봤어요. 나는 집에 들어가 시간만 있으면 인터넷을 열어놓고 여러가지를 섭렵합니다. 그런데 안티스투에 글을 올린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어요. 내 아들이 하는 사업을 국민일보의 연장 혹은 교회의 연장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미 아들은 사회로 돌아간 사회인일 뿐입니다. 국민일보의 대표도 아니고, 교회의 대표도 아닙니다. 사회에 나가 사업하는 일반인을, 단지 옛날에 그런 일을 했다는 이유로 그 그림자를 가지고 비난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봅니다. 마치 법적으로 이혼해 이미 헤어진 사람보고, 여보 당신 하면서 찾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또 사회에 나가 언론 매체를 발행하면서 교회처럼 늘 거룩한 사업을 한다고 할 경우 사회 사람들이 받아줍니까. 왜 선교지처럼 만들지 않느냐고 하는 것은 웃기는 소리입니다. 동아일보나 조선일보 보고 왜 교회식으로 신문을 안 만드느냐 따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안티스투에 올라온 비난은 희준씨가 목사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목사님 같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성격도 있는 것 같은데요.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개성이 있고 개인생활이 있어요. 자식이 내 밑에서 자랄 동안에는 내가 뭐라도 할 수 있지만, 내 밑을 떠났을 때는 내 마음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머리가 크면 독립 인격체로 떠나 버려요. 이미 장성한 아들의 인생을 아버지라고 해서 지배하지 못합니다. 다만 내가 원하는 것은 우리 아들이 나처럼 신앙을 잘 가지는 것이고, 또 하나님을 잘 믿도록 기도해줄 따름이지요. 스포츠투데이는 교회와 상관없는 독립적인 기업입니다. 아들도 사회에서 밥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논리적으로 보면 목사님 말이 맞는데, 돌아가는 분위기는 그리 간단치 않은 것 같습니다. 목사님이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로 주목받고 있는 상황에, 그 아들이 만드는 스포츠신문이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선정적인 점도 있으니까 정서적으로 부딪치는 것 같은데요.

“그렇게 공격을 할 수 있겠지요. 일반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모두가 좋다고 박수를 치는 일은 없으니까요. 오해나 비난을 감수하고 나가야지요.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니까. 사실 목사나 장로 아들 중에는 하나님 안 믿고 완전히 세상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나 장로 아들에게 너무나 많은 정신적 부담을 주니까요. 예를 들어 빌리 그레이엄 목사 아들은 완전히 타락했다가 돌아왔잖습니까. 머리 기르고, 오토바이 타고, 마리화나 피우고 하다가 결국 나이 40이 넘어서 회개하고서는 아버지 후계자로 들어섰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주위 사람들이 아들에게 목사인 아버지 대를 이으라고 격려합니다. 목사가 대를 잇지 못하면 얼마나 못났기에 제 자식 하나를 교역자로 못 키우나 할 정도예요.”

―목사님은 왜 목회하는 아들을 키우지 못했습니까.

“그것도 내 마음대로 못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의 마음속에 사명감을 주어야 하지요. 우리 집사람이 아버지가 목사니까 아들들 보고도 목사가 되라고 하도 강요하니까, 미국에서 신학대학까지 나온 둘째아들도 목사 안 합니다. 지금 벤처기업하고 있어요. 또 아이들이 하는 말도 맞아요. ‘아버지가 일하는 곳에 우리가 들어가서 일을 하다가 실수라도 하면 아버지 일생에 욕을 먹이는 짓이다, 아버지 일은 아버지 대에서 끝내고 우리 일은 우리대로 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너희들이 잘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아들들이 내 부담을 덜어준 것이지요.”

아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

―장남 희준씨는 교회 분위기에 부담이 돼서 방황도 상당히 많이 했지요?

“그랬습니다. 교회 장로들이나 누구든지 아들을 만나면 ‘너는 목사 돼라’ 하니까 큰 부담을 가졌어요. 또 학교 다닐 때도 굉장히 많이 얻어맞으면서 자랐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사소한 장난이라도 하면 괜찮은데, 우리 아들이 하면 ‘너는 목사 아들이 왜 이래’ 하면서 선생이 때렸지요. 큰아들이 서울대에 다닐 때도 많이 맞았습니다. 그때 학생운동이 한참 격렬했는데, 운동권 학생들이 보수적이고 통일반대분자인 목사 아들이라고 해서 우리 아이를 끌고가 얼마나 많이 때렸던지, 하루는 눈이 다 돌아갔어요. 집에 돌아와서는 아버지 때문에 매일 끌려가 매를 맞았으니 학교 안 다니겠다고 드러누웠어요. 운동권 학생들이 데모할 때도 우리 아들을 맨 앞에 세우고 그랬어요.

내가 아들을 살펴보니까 정신 상태도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아들을 미국으로 빼돌렸어요. 그때 학생운동은 정말 무서웠어요. 우리 집에도 계속해서 ‘너하고 자식을 볼모로 잡아서 죽여버리겠다. 네가 보수적인 설교를 계속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 전화가 오구요. 그래서 나는 한동안 집에도 못 가고 교회에서 자고 깨고 했었습니다.”

―안티스투에 큰아들의 이혼 경력에 대한 비난의 글도 올라오는데 그런 마음의 상처와 관련이 있습니까?

“장남이 정신적으로 불안정했어요. 그래서 첫번째 결혼에 실패했고, 두번째는 내가 소개해서 일본에 있는 의사 딸과 맺어주었지요. 큰아들은 조국에서 너무 많이 얻어 맞아서 한국인에 대한 불안공포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안 살겠다 해서 일본에 거주하면서 일본 시민권을 얻으려고 했는데, 그것만은 내가 하지 못하게 말렸습니다. 이런 상처가 완전히 치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 의사 딸과 결혼시켰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아들을 데리고 프랑스 파리에 가서 선교집회를 할 때였는데, 일본의 아들 집으로 전화하니까 며느리가 전화를 안받고 친정으로 해도 전화가 안돼요. 참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일본으로 돌아갔는데, 느닷없이 보험회사에서 아들 명의의 자동차 사고처리에 대한 통지서가 날아 왔어요. 자동차사고 날짜가 우리 아들이 파리에 있던 시기여서 자동차를 탄 적이 없어요. 그래서 조사해보니까 며느리가 결혼 전의 남자 애인과 차를 타고 온천장에 갔다가 사고를 낸 거였어요. 나는 아들에게 용서하고 살아야지 어떻게 하겠느냐 말해서 아들도 용서해 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며느리 아버지가 와서는 ‘일본에서는 이런 일이 보통이다. 뭔 이런 일로 법석을 떠느냐’ 하면서 딸을 데리고 가겠다는 겁니다. 결국 아들은 두 번 이혼했지요. 그래서 지금은 결혼 공포증에 걸려서 결혼을 겁냅니다. 우리 아들은 두가지 큰 마음의 상처가 있어요. 하나는 조국에 대한 상처고, 또 하나는 결혼에 대한 공포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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