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이색 리포트

20만원짜리 룸살롱 위스키 원가는 5000원

술에 취하고 세금에 털리고…

  • 허시명·자유기고가

20만원짜리 룸살롱 위스키 원가는 5000원

2/3
올해 우리나라 주세수입 예상액은 2조3415억 원이다. 국세징수 예상액 86조 4740억 원의 2.7%를 차지한다. 예년엔 3.5%쯤 됐으니 좀 줄어드는 셈이다.

주세의 65%는 맥주가 차지한다. 맥주는, 도수는 가장 낮은 4.5도지만 주세율은 가장 높은 115%다. 지난해까지는 주세율이 130%였고, 96년까지는 150%였다. 외국에서는 대체로 ‘고도주(高度酒) 고세율(高稅率)’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 맥주의 주세는 우리보다 낮을 것이다. 맥주의 소비자 가격에서 차지하는 세금의 비율을 비교하면 한국은 51%, 미국은 19%, 독일은 20% 가량 된다. 우리의 맥주 세율이 터무니없이 높아 보인다. 서민들이 애용하는 술이라는 점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내년부터는 100%로 다시 낮춘다고 하지만, 40도 고급 위스키의 주세율이 72%로 하향 조정된 것에 견주면 더욱 그렇다.

현재 맥주시장에서 점유율 50%를 웃도는 하이트맥주(500㎖)의 원가구성을 살펴보자. 출고가격이 998원이다. 그중 제조원가는 363원이다. 여기에 주세 418원, 교육세 125원이 붙어 공장 공급가가 907원이고 여기에 다시 부가세 90원이 붙어 출고가격이 형성된다.

맥주의 제조원가는 출고가격의 36%에 지나지 않는다. 1400원 하는 소매점 가격을 기준으로 삼으면 제조원가는 26%다. 도수가 높지도 않고 고급술도 아닌데 왜 이다지 세금이 높을까. 맥주의 주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내 맥주 역사를 훑어봐야 한다.

일제 식민지 초기에는 맥주가 수입됐다. 그러다 1933년에 조선맥주와 기린맥주 공장이 서울 영등포에 세워지면서 그 이듬해 처음으로 국산 맥주가 출시됐다. 그 시절에 맥주는 고급술에 속했다. 그런 분위기는 70년대까지도 이어졌는데, 사람들은 맥주를 마시려고 ‘비어홀’에 갔다. 당시 맥주는 사교장의 총아로 지금의 위스키와 비슷한 지위를 누렸다. 주세도 수입원료로 만드는 고급술로 간주해 150%의 고세율을 적용했다. 그래서 당연히 소비량도 적었다.



맥주 소비량은 76년까지만도 막걸리의 10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맥주시장이 불붙은 것은 70년대 후반부터. 87년에 막걸리를 아슬아슬하게 추격하더니, 88올림픽 때는 완전히 역전했다. 세계로 눈을 돌린 그 시점에, 농경사회와 노동현장의 벗이던 막걸리는 술판에서 밀려나고 대신 맥주잔이 높이 치켜올려졌다.

맥주는 88년에 주류 출고량 1위로 올라섰지만, 주세 총액은 훨씬 전부터 단연 1위였다. 맥주 주세는 69년에 주세 총액의 40%대로 올라섰고 74년에 50%대, 78년에 60%대로 신장됐다. 90년대에는 70%대를 오르내렸다.

이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맥주 주세를 국세청에서 왜 내리려고 들겠는가. 그렇다고 맥주회사들이 주세를 내려달라고 시위를 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93년까지 OB맥주와 크라운맥주의 독과점적 지위가 보장된 데다, 세금은 높을지라도 매출이 꾸준히 늘어왔고, 게다가 국세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에 주세를 내려달라는 주장을 펼 까닭이 없었던 것이다. 맥주가 대중주로 자리하면서 서민들이 부담하는 세금만 많아진 것이다.

격랑의 맥주시장

매출이 거듭 신장되면서 맥주회사들의 형편은 어떻게 변했을까. 맥주시장은 94년에 진로의 카스맥주가 뛰어들면서 격랑에 휩싸였다. 소주업계를 주름잡던 진로가 소주 유통망을 통해 카스맥주를 공급하자 당시 맥주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던 두산의 OB맥주에서도 경월소주를 인수하면서 맥주와 소주업계의 무차별 경쟁이 벌어졌다. 업소에 냉장고를 무료로 넣어주고, 간판 달아주고, 광고 물량을 크게 늘리면서 맥주 3사 간에 출혈경쟁이 본격화됐다.

그 와중에 조선맥주가 지하 암반수를 부각시킨 하이트맥주를 내놓으면서 맥주시장엔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도저히 OB맥주를 따라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조선맥주가 신병기로 무장해 시장 점유율 1위로 올라선 것이 96년이었다. 그후 두산은 모기업인 OB맥주 지분 50%를 벨기에 인터브루사에 매각하면서 경영권까지 넘기고 말았다. 카스맥주에 과잉 투자한 진로는 그 후유증으로 부도가 나고 법정관리에 들어갔다가 지분 전체를 인터브루사가 경영하는 OB맥주에 넘기게 됐다. 그래서 다시금 한국의 맥주시장은 94년도 이전처럼, 카스맥주를 인수한 OB맥주와 하이트맥주 양사 체제로 재편됐다.

새로운 면허업자가 등장하면서 자율경쟁체제로 들어간 한국의 맥주시장은 이렇듯 한정된 시장에서 지나친 출혈경쟁을 벌인 나머지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허망한 결과였다. 결국 국내 맥주시장의 절반이 ‘외자유치 성공’이라는 요란한 팡파르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외국으로 넘어갔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 맥주 주세를 낮추자고 주장하는 것은 서민들을 위한 일이 될까, 외국기업의 잇속을 차려주는 일이 될까. 혼란스럽다.

맥주에 주도권을 빼앗긴 막걸리가 다시 과거의 기력을 회복하기는 우리 사회가 농경사회로 회귀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해 보인다. 비록 세율 5%라는 특혜를 받고 있긴 하지만. 막걸리는 70년대에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다. 69년에 96만㎘를 출고하다가 70년 들어 100만㎘를 훌쩍 넘어 121만㎘에 이르렀다. 막걸리를 가장 많이 생산한 시기는 74년으로 출고량 168만㎘를 기록했다. 당시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화를 꾀하던 시기였다. 농촌을 떠나온 막노동자들을 달래주던 술이 막걸리였던 것이다. 비록 쌀막걸리가 아닌 밀막걸리였지만, 대중들은 막걸리로 칼칼한 목젖을 적셨다.

그런데 70년대 후반부터 매출량이 완만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막걸리업계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밑에서는 4도 맥주가 용암처럼 꿈틀거렸고, 위에서는 25도 소주가 천하를 호령했다. 사무직 직장인과 여성 음주자가 늘면서 맥주 소비량이 늘고, 도수 높은 소주가 맺힌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세태에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뭔가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상황이었다. 막걸리업자들은 그런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도수를 6도에서 8도로 올리는 비책을 내놨다. 독한 소주와 싱거운 맥주 사이에서 좀더 분명한 차별화 전략을 펴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82년 국세청은 6도로 제한돼 있던 도수를 8도로 조정하도록 허락했다. 그런데 웬걸? 그것이 되레 막걸리업계에 치명상을 입히게 될 줄이야.

막걸리의 슬픈 운명

82년 130만㎘에 이르렀던 막걸리 출고량이 83년에는 85만㎘로 급감했다. 1년 만에 3분의 1이 줄어든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당시 서울에선 지하철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장 인부들은 새참으로 막걸리를 즐겨 마셨다. 그런데 막걸리 도수가 2도 높아지자 인부들이 막걸리에 취해 업무에 곧장 복귀할 수가 없었다. 현장 감독관으로선 일의 능률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안전사고 위험이 더 큰 걱정이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지하철 공사장에서 막걸리를 마시지 말라는 조처를 내렸다. 이런 사정은 다른 사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도 차이로 막걸리가 노동현장에서 격리되고 만 것이다. 소주와 맥주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하고자 했던 막걸리가 오히려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 3년 뒤인 85년에 막걸리가 다시 6도로 돌아섰지만, 이미 꺾인 하향세는 걷잡을 수 없었다. 87년에는 85만3000㎘로 맥주 출고량 85만1000㎘에 쫓기더니, 그 이듬해부터는 4년 연거푸 25만㎘씩 간격이 벌어지면서 나락으로 떨어져내렸다. 위스키시장이 개방된 91년에는 막걸리 출고량이 44만㎘, 맥주는 158만㎘가 됐다. 10년 사이에 처지가 완전히 뒤바뀌고 만 것.

91년에 막걸리 주세율은 10%에서 5%로 하향 조정됐지만, 출고량은 더욱 줄어 98년에는 18만㎘를 기록했다. 우리 역사와 함께 한 전통의 술, 우리나라에만 있는 막걸리가 이방인의 술에 밀려 자리를 내주고 만 것이다. 이것은 단지 우리술의 몰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활 풍속도까지도 바꿔버렸다. 논두렁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대신 커피나 맥주를 시켜먹는 세상이 돼버린 것이다.

막걸리가 주도권을 상실한 것은 산업사회로 옮겨 가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쉬움은 남는다. 가령 82년에 6도에서 8도로 도수를 올릴 때 일률적이 아니라 탄력적으로 도수를 조정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편됐다면 어땠을까. 그 당시는 ‘6도 아니면 8도’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좀더 융통성있는 제안을 할 수 없던 경직된 시기였다. 결국 국세청이 독점한 술 정책이 우리술의 탄력있는 변신을 가로막았던 셈이다.

술의 재료나 맛이나 도수는 소비자의 구미에 맞게 언제든지 변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술이 발전할 수 있고, 새로운 고객을 창출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술은 신고한 대로만 제조해야 한다. 물론 막걸리는 3도 이상으로 빚도록 관련법이 개정돼 얼마간 숨통을 틔웠지만, 시장이 너무 위축된 뒤였기 때문에 사후약방문이 되고 말았다.

내년부터는 막걸리업계도 무한경쟁 시대에 돌입한다. 지금까지 면 단위로 판매구역을 정해 놓고 독점적으로 팔았던 지역제한이 철폐되고, 생수처럼 전국 어디에서든 생주(生酒) 막걸리를 팔 수 있게 된 것. 따라서 조만간 소주나 맥주회사처럼 대형 막걸리회사가 생겨날 것이다.

2/3
허시명·자유기고가
목록 닫기

20만원짜리 룸살롱 위스키 원가는 5000원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