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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과 앙드레김, 유아독존의 로맨티스트

김종필과 앙드레김, 유아독존의 로맨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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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은 조선시대 영조(英祖) 이래 가장 오랫동안 권력의 핵심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언제나 양지만을 좇아 변신하는 권력형 인간이라고 한다. 그런데 필자는 오히려 김종필이 권력욕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에게선 권력 그 자체가 1차적인 목적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두 가지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첫번째 남편과 사별한 여자가 있다. 남편이 남긴 약간의 재산을 그녀는 자식들에게 넘겨주지 않는다. 돈이 있어야 자식들이 자기를 무시하지 않을 것이며 노후도 보장될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기제로 돈을 활용하는 것이다.

중앙정보부를 창설한 김종필은 중정부장을 그만둔 다음 날부터 검은 지프에게 미행당한 두려운 경험을 가지고 있다. 권력에서 멀어질 때 곧 닥쳐올 뿌리깊은 공포상황 때문에 그는 악착같이 권력 주변에서 맴돌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두 번째, 재벌이었던 선친에게서 충분한 재산을 물려받은 기업인 아들이 있었다. 그는 예술적 소양이 뛰어나서 음반회사도 하고 문화 잡지를 발행하기도 하며 육영사업 등을 벌인다. 그는 영리를 추구하는 사업가라기보다 오히려 문화예술인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에게 사업이란 자신이 원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어주는 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김종필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김종필에게 권력이란 김종필이란 한 개인이 추구하는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삶을 실현시켜 주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김종필이 자신있게 내놓을 만한 정치적 업적은 별로 없다. 그렇지만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이용해서 운정(雲庭) 김종필이 문화계에 끼친 공로는 만만치 않다. 또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그는 개인적인 삶의 즐거움이나 윤택함도 동시에 챙겼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삶을 살기 위한 한 방편으로 그가 정치를 이용했다면 과장된 해석일까.

그는 박정희 정권하에서 역임한 4년6개월간의 총리 시절에 대해서 거의 의미를 두지 않는다. 국무총리라는 게 대단한 자리가 아니라 대통령이 임명하면 아무나 되는 자리라고까지 폄하한다.

그런데 아무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던 김대중 정권하의 파워총리로서 재임한 1년 6개월의 기간에도 그가 뭔가를 했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집권 여당의 대표를 한번에 사퇴시키고 장관 임명과정에서도 자신의 정치적 지분을 요구하고 관철시키는 파워를 가졌지만, 국정 현안에 대해 어떤 중요한 발언을 하거나 결단을 내렸다는 얘기는 전혀 없다.

자신의 개인적 삶을 즐기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절이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힘은 좋은데 일은 안하는 머슴’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왔을까. 그에게는 애초부터 특정한 자리가 주는 무게나 의미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직접적으로 그와 관련된 1차 집단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9선 국회의원의 신분으로 4·13 총선 후 거의 6개월 동안 골프만 치러 다니면서도 늘 당당할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보통 사람들이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을 하는 것이나 JP가 골프를 치는 것이 무엇이 다른가”라고 자민련 총재대행이 했다는 말과 “왜 유독 우리집 양반이 골프치는 것만 그렇게 비난하느냐. 박세리나 박지은이 골프치는 것은 국위선양이라고 하면서”라고 그의 부인이 했다는 말은 평소 김종필의 생각을 잘 대변해주는 듯하다. 구분이 없다는 건 확실히 무서운 일이다.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고약한 사람이로고’하는 김종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고약하다’는 건 김종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욕이란다. 그렇다면 내친김에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하고 끝을 맺자.

61년 10월에 김종필은 정보부장의 자격으로 대만의 건국기념일인 쌍십절 행사에 참석한다. 그때 장개석 총통이 35세의 이 혁명아(革命兒)에게 했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혁명을 해본 노인으로서 충고를 한마디 할까 합니다. 혁명을 한 사람은 대개 불행해집니다. 혁명을 한 사람은 하루에 한 번씩 자신을 혁명하지 않으면 안 되니 이게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김종필은 다른 혁명동지들처럼 불행해지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그가 애송하는 시구처럼 아직도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몇 마일의 길이 남아 있다’면 그 동안만이라도 장총통의 충고처럼 하루에 한 번씩은 자신을 혁명할 수 있어야 되는 게 아닐까. 칠십 중반의 노인에게 터무니없는 요구라고 느껴진다면 몇 마일의 길을 더 가지 않고 책을 보면서 쉬거나 편안하게 잠을 청하면 될 일이다.

앙드레김만 보면 웃는 이유

얼마 전 부산영화제에 관련된 TV 프로그램 중에서 재미있는 장면을 보았다. 리포터가 부산영화제 현장에서 만난 스타들의 축하메시지를 보여주었는데, 영화배우 강수연·진희경·문성근 등의 축하메시지가 나오고 있었다. 그들 다음에 앙드레김이 화면 가득 나타났다.

그의 얼굴이 나타나자마자 스튜디오에 앉아 있던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가 아무런 멘트도 하지 않은 상태였고 특별히 전과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랬다. 그 장면이 필자에겐 인상깊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왜 앙드레김을 보는 순간 즐거운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렇게 웃음을 터뜨리는 걸까.

이 대목에서 필자는 작년 8월의 옷로비 청문회를 떠올렸다. 앙드레김이 “이 땅을 떠나고 싶을 만큼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는 사건이었음에도 청문회장에 나온 그를 묘사한 대부분의 신문기사들은 지나치게 감각적이었다. 그가 어떤 옷을 입고 나왔는지, 어떻게 화장을 했고, 어떤 식으로 말을 했으며, 어떻게 웃었는지를 상세하게 전해주었다. 그게 대중들의 주된 관심사일 거라는 나름의 계산된 편집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일반인들이 그 사건을 보는 시각도 그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필자는 앙드레김에 대한 관련 자료들을 보면서 그가 섬뜩할 만큼 치열한 장인정신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고집하고 있는 예술가 중의 하나라고 믿게 되었다. 그는 또 실생활에서 믿기지 않을 만큼 진지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를 보면서 웃음을 터뜨리거나 실없이 희화화(戱畵化)하는 일에 대단한 흥미를 보인다.

이런 현상은 단지 그의 독특한 스타일이나 말투만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인간 앙드레김의 내면세계를 정교하게 살펴보는 작업이 선행된 다음에야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문제일 것이다.

비단 그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겠지만 어떤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할 수 있다. 패션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앙드레김의 패션철학이나 작품세계가 주된 관심사겠고, 야망을 불태우는 젊은 친구들은 그의 성공 스토리에 촉각을 곤두세울 것이며, 여성잡지를 뒤적거리는 어떤 여성은 그가 유명 연예인들과 맺고 있는 폭넓은 교우관계나 그가 말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에 더 마음이 끌릴 것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앙드레김의 독특한 성향이 그의 치열한 직업의식이나 뛰어난 예술적 감각과 어떤 식으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 문제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우리들에게 일이란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동감있게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앙드레김이기 때문이다.

국민디자이너, 패션대사(大使), 남성디자이너 1호, 올림픽디자이너 등등 앙드레김에겐 별칭이 많다. 그의 작품이 가진 대중성이나 개인적 선호도를 별개로 한다면, 우리나라 패션 분야에서 가장 지명도가 높은 브랜드는 ‘앙드레김’이라는 자연인의 이름일 것이다.

82년 전 세계 패션을 주도하는 패션강국 이탈리아 대통령은 앙드레김에게 문화공로 훈장을 수여했다. 97년엔 패션디자이너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대통령 문화훈장을 받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지난 88년 서울올림픽에서의 기념패션쇼 이후 이번 시드니올림픽까지 연거푸 4차례나 올림픽무대에 서왔는데,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등 각국마다 내로라하는 유명 디자이너가 많지만 올림픽 행사에 초청받기는 그가 유일하단다. 올림픽디자이너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경력이다. 샌프란시스코시는 99년 11월 6일을 ‘앙드레김의 날’로 선포했다. 해외에서 패션외교사절이라고 할 만큼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그의 위상을 보여주는 놀랄 만한 사건이다.

오해와 편견들

그럼에도 국내에선 작품활동 이외의 터무니없는 루머와 오해로 마음에 상처를 받는 일이 너무 많다는 게 앙드레김의 고백이다.

“남자가 만든 옷이라고 입지 않으면 어떡하니?”

여자 옷을 만들겠다고 나선 아들이 걱정스러워 그의 부친이 했다는 말이다. 그게 40여 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 일부의 남자들은 그런 편견의 잔재를 드러낸다. 때로는 자신의 옷을 ‘작품’이라고 표현하는 그의 태도에 코웃음을 치기도 한다. 더 나아가 ‘국민디자이너’라고까지 하는 그의 명성에 비추어 지나치게 대중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그에 대한 앙드레김의 패션철학은 확고하다. 그는 자신의 옷을 상품으로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말한다. 오페라나 발레, 연극과 같은 예술 장르에서 감동을 느끼듯 패션 의상도 충분히 감동을 자아내는 창작예술이라는 것이다. 패션으로 새로운 예술적 장르를 개척해왔다고 자부하는 사람의 말답다. 실제 그의 옷은 거리에서 볼 수는 없지만 유명스타들에게 입혀져 많은 사람에게 보여진다. 꼭 자신이 입을 수 있어야 ‘그게 바로 옷’이란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겐 갑갑한 말일 수도 있다. ‘의상에는 꿈과 환상이 있어야 한다’는 앙드레김의 지론과는 사이클이 맞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오해나 편견의 대부분은 이러한 직업적 특수성(?)보다는 그의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이나 성향에서 시작된다. 간단하게 한번 살펴보자.

60대 중반이 넘은 앙드레김은 아직도 미혼이다. 젖먹이 때 입양한 아들을 직접 기저귀를 갈아가며 키웠고, 요즘에도 아침마다 대학생 아들이 입고 나갈 옷을 3세트씩 침대 위에 놓아주는 지극한 모성성을 발휘한다. 아들을 향한 그의 애정 혹은 집착은 유명하다. 그런 면에서 앙드레김은 인간의 감각적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인터뷰 사진을 위해 시작했다는 그의 화장술도 구설수에 오른다. 정성껏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짙은 마스카라와 그리 진하지 않은 립스틱을 섬세하게 바르는 그의 메이컵은 여장(女裝)이라는 평가까지 받는다.

그는 날마다 아침 5시에 일어나 국내외 14개 신문을 정독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해외 패션쇼가 없는 경우 그는 대부분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7시까지 그의 의상실에서 작품구상과 제작에 매달린다. 자신의 직업에 지나치리만큼 엄격한 사람이라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 스케줄엔 변동이 없다. 저녁에는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87개 나라 대사관에서의 중요기념일 리셉션에 참가하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바쁘다. 또 국내에서 열리는 음악회 무용 연극 콘서트 등을 즐겨 관람하며, 그 나머지 시간에는 주로 TV를 본다.

그는 안하는 게 많다. 술과 담배, 커피는 물론이고 골프도 치지 않고 헬스클럽도 다니지 않는다. 포커나 고스톱을 해본 적도 없고 노래방을 가본 적도 없다. 또래의 친구도 없다. 5남매 중 넷째지만 부모형제가 모두 세상을 떠나서 명절 때는 꼼짝없이 아들과 둘이서만 지내야 한다. 그에게는 문화적 풍성함과 일상적 가난함이 공존한다.

흰색이나 청결에 대한 그의 집착은 거의 결벽증 수준이다. 손님이 앉을 자리에는 미리 향수를 뿌리고 대화 중에는 10분마다 한번씩 크리넥스로 입가를 닦는다. 스탠드나 필통 같은 물건들이 놓여 있던 자리에서 10cm 이상 어긋나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또 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알려진 흰색 옷을 그는 하루에 세 번씩 갈아입는다. 만나는 사람은 많은데 집중해 일하다 보면 땀이 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25년 전부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흰색 옷만 입는다. 얼핏 보기엔 늘 똑같은 옷처럼 보이는데 디자인이나 소재가 조금씩 다르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이런 옷이 한 30벌쯤 된단다. 맨날 똑같은 양복만 입고 다니는 부호의 옷장에 거의 구별이 안 가는 양복들이 100벌쯤 있다는 에피소드를 연상케 한다. 그런 성향은 그의 작품활동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그는 일부 사람들로부터 언제나 똑같은 옷만 만든다는 비난을 받는다. 그의 대답을 들어보자.

“제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담기 때문에 제가 만드는 작품 역시 언제나 통일된 느낌을 주겠죠. 하지만 늘 똑같은 옷만 만들면 누가 제 옷을 사러 오겠습니까?”

디테일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실제로 그는 디테일을 대단히 중시하는 사람이다. 그의 작품마다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는 꼼꼼한 자수 문장(刺繡紋章)은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낸다. 디테일하게 수를 놓아 옷감을 디자인하는 게 큰 즐거움이라는 그의 말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다. 디테일 중시, 완벽주의, 반듯함, 결벽증, 도덕주의자는 정신의학적으로 보면 하나의 뿌리에서 나타난 여러 잎새들이다. 앙드레김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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