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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폭발하는 안티사이트

“찍히면 죽는다!”

  • 이나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yeme@donga.com

“찍히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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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인슈’를 운영하는 이는 대구대 보험금융학과에 재학중인 김창수(26) 씨다. 9월 25일 생긴 이 사이트에는 벌써 1만여 명이 다녀갔다. 김씨는 “보험 가입자는 많으나 정보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거대보험회사의 횡포에 맞서 소비자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찾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밝혔다. 사이트 첫 페이지에는 ‘보험회사 운영 자산의 98%는 보험계약자의 돈이다’ ‘보험회사 경영자는 언제든 계약자에 의해 임명될 수 있다’는 등의 ‘보험소비자 주권 선언’이 실려 있다.

‘안티충무로’라는 이색적인 이름의 사이트는 서울 충무로와 퇴계로에 밀집해 있는 애견센터들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이곳에서 장염, 홍역, 파보바이러스 등 치명적 질병을 앓거나 선천성 기형이 있는 애완동물을 유통해 소비자들에게 정신적·물질적 손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 게시판에 속속 피해 사례가 접수되면서 ‘○○애견과 한판!’ ‘○○애견의 사기꾼들을 조심하세요!’ 등 구체적인 경고나 법적 해결 방법을 조언하는 메일들도 폭주 하고 있다.‘노버스’는 말 그대로 버스회사나 기사들의 횡포에 맞서는 소비자 모임. ‘안티관광’ 운영자는 관광학과 대학원생인 정관수 씨다. 잘못된 관광 풍토, 관광학을 비판하고 소비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이트.

반면, 기업 안티사이트를 표방하되 소비자운동이 아닌 노동운동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있다.

‘안티배일도(lightning.prohosting. com/~baeildo)’는 지하철노조 배일도 위원장 이하 중앙집행부에 반대하는 노조원들이 개설한 홈페이지다. 운영자는 ‘배좆도’. 배위원장의 이름을 ‘빌려’ 자신들의 주장을 펴고 있다. 첫 화면에는 ‘안티 배일도 홈페이지는 배일도의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절대로 어용집행부에 대한 비판의 칼을 놓지 않을 것’이라는 요지의 글이 실려 있다.

‘이랜드에 상처 받은 사람들의 모임(www.noland.co.kr)’ ‘안티구몬(www.anti kumon.or.kr)’ 등은 각기 이랜드와 구몬학습 직원으로 일하다 피해를 본 사람들의 모임이다.



‘안티전경련(www.antofki.com)’은 전경련 퇴직자인 최현규(30) 씨와 그 가족들이 꾸려가는 홈페이지. 최씨 측은 “근무 중 과로로 공황장애라는 난치병을 얻었는데도 책임 회피에만 골몰하는 전경련에 항의하기 위해” 사이트를 만들었다고 한다. 사이트 제목 옆에는 ‘사랑해요 우리 재벌 함께 가요 해체의 길로’라는 슬로건이 걸려 있다. 내용 중 ‘전경련 소개’란에는 전경련 조직도가 그려져 있어 그중 특정 인물 이름을 클릭하면 최씨 사건에 대한 당사자의 ‘육성’을 들을 수 있다.

‘안티건설(plant.new21.org)’은 ‘땜쟁이’라는 ID의 운영자가 꾸려 가는 사이트. ‘노동자의 피를 빨아먹는 악덕 건설업주, 부실공사를 부추기는 건설업자와 보따리 장사꾼을 모든 건설현장에서 추방하고자 만들었다’고 한다. ‘인간답지 못한 이들을 이 시대의 건설현장에서 추방시키는 밑거름이 되겠다’는 것이 사이트의 취지다.

“도메인을 싹쓸이하라!”

기업들이라고 해서 확장일로에 있는 사이버 안티 운동을 보고만 있을 리 없다. 삼성물산과 포스코는 법적 대응을 강구하기도 했다.

삼성물산은 ‘안티삼성아파트(spat. ngokoria.org)’를 운영하는 이기봉(40) 씨를 상대로 ‘삼성아파트를 비난하는 홈페이지 게시물을 삭제해 달라’며 서울지법에 비방 등 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이씨는 1993년 삼성아파트를 분양받아 세를 줬지만 실내에 곰팡이가 피는 바람에 97년부터 지난해까지 해마다 보수공사를 받아야 했다. 시공업체인 삼성물산이 자신의 리콜 요구를 거부한 채 하자보수만 계속하자 화가 난 이씨가 안티사이트를 개설한 것. 사이트에는 이씨 집 천장과 벽에 심한 곰팡이가 피어 있는 장면을 찍은 사진은 물론 지금까지 진행된 분쟁 상황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지난 6월 29일, 법원은 삼성물산의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누구나 자신의 주장을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가 있는데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대기업의 영업활동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올림으로써 네티즌 사이에 자유로운 토론의 장을 여는 것을 무조건 금지할 수는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삼성물산이란 거대기업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 한 이름없는 네티즌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반대 사례도 있다. 비슷한 시기, 삼미특수강 해고 노동자들이 만든 ‘안티포스코(antiposco.nodong.net)’ 홈페이지가 포스코 홈페이지의 디자인을 베낀 것이라는 원고 쪽 주장을 부분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게시물 내용을 문제 삼은 것은 아니었으나, 기업 로고 등의 무단사용을 금지함으로써 안티사이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대기업들의 또 다른 대응책은 ‘도메인 싹쓸이’다. ‘antisamsunglife.co.kr’ ‘anti-lg.co.kr’ ‘antisktelecom.co.kr’ 등 자사 안티사이트의 주소가 될 수 있는 도메인들을 선점해 버린 것. 제일제당은 ‘anti-cj’ ‘anti-thecj’ 등 기업관련 외에 ‘antijaehyunlee’ ‘antileejeahyun’ 등 오너인 이재현 부회장 관련 도메인까지 미리 등록해 놓았다.

그러나 역시 ‘안티’를 뜻하는 접두어 ‘no’는 선점하지 못해 현재 ‘nohyundai. co.kr’ ‘nosamsung.co.kr’ ‘nolg.co.kr’ ‘nosk.co.kr’ 등의 안티사이트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삼성의 경우엔 ‘스톱삼성’ ‘아웃삼성’ 등의 사이트도 가동중이다.

외국 사정도 비슷해 요즘 미국에선 기업 이름에 ‘suck, kills, stinks’ 등 영어 욕설을 덧붙인 안티사이트의 폐쇄 문제를 놓고 다국적기업과 시민단체 사이에 연일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논쟁이 벌어질 날이 머지 않은 듯하다.

‘개고기 반대운동본부’의 활약

언론사를 대상으로 한 안티사이트도 있다. ‘안티조선운동’을 표방하고 있는 ‘우리모두(www.urimodu.com)’가 대표적. ‘안티스포츠투데이(www.antistoo.net)’도 가동 중이다.

안티스포츠투데이는 청년대학생신문 ‘새벽이슬’이라는 기독교언론단체가 운영하는 홈페이지다. 그들은 ‘스포츠투데이바로알기운동 설립취지’라는 글에서 “우리는 그 동안 스포츠투데이의 비기독교, 비윤리, 비도덕성을 줄기차게 지적해 왔다”며 “창간 당시 교회 헌금 유용, 비민주적 회사 경영과 불투명성에 대한 사회·언론·시민단체의 문제제기가 있기 전 기독교계 스스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할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사이트 게시판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신도들간의 설전이 어지러이 오가고, 혼란스런 심경을 토론하는 일반 기독교인의 글도 여럿 올라 있다. ‘사진으로 보는 스포츠투데이’란에는 스포츠투데이에 실렸던 선정적 기사 및 광고 사진들이 다수 수록돼 있다.

‘안티경실련(anticcej.com.ne.kr)’은 유일한 안티시민단체 사이트다. 운영자는 20대 중반의 대학생. 그는 전화 인터뷰에서 “의약분업과 관련, 경실련이 보여준 어정쩡한 모습에 실망해 사이트를 만들게 됐다”고 동기를 설명했다. 그러나 꼭 경실련을 타깃으로 한 것은 아니라고. “단체들이 비대해지면서 ‘시민’의 이름을 팔아 잇속을 챙기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았다. 건전한 토론과 비판을 통해 시민단체에서조차 소외되고 있는 진짜 시민의 목소리를 되찾아주고 싶다.”

최근 두발 자유화 논쟁이 벌어지면서 주목받은 것이 ‘사이버 유스’ ‘채널텐’ ‘아이두’ ‘아이헤이트스쿨’ ‘하늘천사’ ‘엔시팔’ 등 이른바 ‘안티스쿨’ 사이트들이다. 이들 중 몇은 ‘두발제한반대서명운동사이트(www.idoo.net/nocut)’를 개설하고 명동·대학로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의 활동으로, 교육부로부터 ‘두발 규제 완화’라는 전리품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아이헤이트스쿨(www.ihate school. co.kr)’ 운영자는 뜻밖에도 고등학생이 아닌 상담학 전공 여성 대학원생이었다. “애초 내가 생각한 것은 잘못된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사이트였지 제도권 교육에 대한 ‘안티’가 아니었다. 욕설이나 인신모독성 글이 올라오면 바로 삭제하는 등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또 그런 조치에 반발하는 학생들도 거의 없다. 앞으로 이 사이트가 학생들간에 건강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

안티사이트 중에는 별난 주제를 담고 있는 것도 많다. ‘안티바나나TV운동본부(www.antibananatv.co.kr)’는 성인인터넷방송국인 바나나TV에 대한 ‘반대운동’을 표방한다. 이들은 머리글을 통해 바나나TV 측에 ‘온라인상에서 회원탈퇴가 가능하도록 메뉴를 구성할 것, 서버 용량을 확대할 것, 서비스에 불만이 있을 경우 환불 받을 수 있게 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모교사랑죽이기(myhome.naver. com/riveruns/index.htm)’는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동창 찾기 사이트 ‘모교사랑’에 딴지를 건다. 그런데 이유가 엉뚱하다. ‘동창회란 곳이 불륜의 장이 되어가는 느낌’이라며 ‘모교사랑 때문에 사랑하는 이를 잃으신 소수의 분들을 위한 공간’임을 천명하고 나선 것. 다시 말해, 모교사랑 사이트를 매개 한 동창모임에서 ‘새 짝’을 만난 연인 또는 배우자로부터 실연당한 사람들의 사이트란 뜻이다. 그래서일까. 게시판에는 ‘모교사랑’ 성토, 이별의 회한 등이 담긴 글들이 많이 올라 있고, 조회수도 높은 편이다.

‘개고기반대운동본부(www.powow. com)’는 제목 그대로 ‘개고기를 먹지 말자’고 주장하는 사이트. ‘똥개들도 사람처럼 공포와 고통을 느낍니다. …소, 돼지도 불쌍합니다. 개까지 식탁에 올리지 마세요. 기억하세요. 매년 변기통으로 내려가는 개가 300만이라는 것을. …우리에게도, 개들에게도 행복추구권이 있습니다.’ 사이트 홈에 띄워져 있는 글이다.

일견 장난스럽게 보이는 이 사이트는, 그러나 열렬한 개고기반대론자들의 손에 의해 다채롭게 꾸며져 있다. ‘개도살갤러리’에는 개를 잡는 ‘처절한’ 현장이 여과 없이 실려 있다. ‘언론모니터’란에는 두 차례에 걸쳐 ‘개고기가 몸에 좋다’는 기사를 실은 모 신문 요리전문기자에 대한 통렬한 비난의 글이 올라 있다. 게시판에 “아셈회의장 앞에서 개고기반대 시위를 벌이자”는 글이 오르자 열띤 호응이 이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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