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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목적기 라팔, 그 현란한 기술의 세계

프랑스 힘의 원천 첨단 방위산업 현장을 가다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on@donga.com

다목적기 라팔, 그 현란한 기술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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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리스는 군사 첩보위성보다 더 효과적이다. 군사 첩보위성은 일정한 궤도를 돌기 때문에, 천문학적 지식만 있다면, 이 위성이 접근하는 시간을 알아낼 수 있다. 적국이 군사 첩보위성이 접근하는 시간에 군사 행동을 중지한다면, 군사 첩보위성 운영국은 적국의 군사 행동을 까맣게 모를 수도 있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미군은 그들이 원하는 시간에 불쑥 적 상공으로 날아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U-2 정찰기를 운용해오고 있다. U-2기는 지대공 미사일이 도달할 수 없는 고공에서 적국을 촬영한다.

자유자재로 적국 영공에 들어가 정찰할 수 있는 U-2기 수준의 정찰기를 갖는 것은 세계 모든 나라의 꿈인데, 현재 한국은 U-2 수준의 첩보기를 도입하기 위해 린다김 사건으로 유명해진 백두/금강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백두/금강 정찰기는 적의 지대공 미사일을 피할 수 있을 만큼의 고공비행이 불가능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사리스를 장착한 라팔도 U-2기처럼 고공비행을 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라팔은 공중전을 펼치는 전투기이므로 유사시 적 미사일을 피할 수 있는 각종 전자전 장비를 갖추고 있다. ‘디코이’라는 허수아비를 떨어뜨려 적 미사일을 엉뚱한 곳으로 유인하고, 적 레이더에 전자파를 쏴 탐지를 방해할 수도 있다. 이러한 장비들을 ‘스펙트라(SPECTRA)’라고 하는데, 스펙트라 덕분에 사리스를 장착한 라팔은 비교적 안전하게 적진을 정찰할 수가 있다. 사리스 개발로 라팔은, 제공기를 넘어 정찰기로 쓰일 수 있는 ‘눈’까지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라팔은 제공기나 전투기처럼 싸울 수 있는 ‘주먹(미사일)’도 갖게 됐는가? 이에 대한 답변을 듣기 위해서는 ‘마트라 BAe 다이내믹스’사를 방문해야 했다. 이 회사의 보안 시스템도 톰슨-CSF 데테시스 못지않게 까다로웠다. 이 회사의 아라공 이사는 “한국 기자로서 당신이 처음 방문했다”는 말로 기자를 맞았다. 그래도 톰슨-CSF 데테시스는 두 군데 쇼룸을 공개했으나, 마트라 BAe 다이내믹스는 브리핑 룸에서 모든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회사 관계자는 “특급 보안시설이라 그렇다”며 양해를 구했다.

이 회사 이름에 BAe가 붙어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BAe는 라팔의 최대 라이벌인 타이푼 개발을 주도해오고 있는 영국의 항공기 제작회사 이름이다. BAe는 전세계 제트 훈련기 시장을 석권한 ‘호크’와 수직 이착륙기의 대명사인 ‘해리어’, 영국 공군의 전폭기로 명성을 날린 ‘토네이도’ 등을 제작해왔다. 이중에도 호크와 해리어는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아, 세계 최강 미국도 동급 기종의 개발을 포기하고, 공동개발 형식으로 호크와 해리어를 구입, 사용해오고 있다.



사거리 600㎞의 크루즈 미사일

최근 BAe 시스템스로 이름을 바꾼 이 회사는 미국의 항공방산 그룹인 록히드 마틴의 자회사인 AES를 인수해, 세계 최대의 방산 그룹이 되었다. 이러한 회사의 로고가 프랑스의 대표적인 미사일 제작회사 이름에서 발견되니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기업간 합병과 매수가 자유로운 서구 자본주의 특성에 있었다. 한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프랑스와 영국은 백년전쟁을 벌인 숙적이지만, 1·2차 대전 때는 한편이 되었다. 이처럼 경쟁과 협력이 반복되어온 것이 유럽의 역사다. 경쟁과 협력이 반복되는 것 자체가 또 인생이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필요할 때는 적과도 적극적으로 동침하고, 반대로 맞서야 할 때는 친구일지라도 확실히 맞설 수 있는 ‘자주성’이다. 프랑스의 미사일 제작회사가 영국의 항공기 제작사와 합종연횡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현실’이다.”

마트라(Matra)는 원래 프랑스의 미사일 제작사다. 그런데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영국의 BAe와 공동투자해 ‘마트라 BAe 다이내믹스’를 만들어 영국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확보하게 되었다. 최근 마트라 그룹은 마트라 BAe 다이내믹스와 기타 유럽 국가의 미사일 제작사를 합병해 ‘뉴 MBD(NEW Matra BAe Dynamics)’를 만들려 하고 있다.

마트라 BAe 다이내믹스의 생산품 중에 가장 주목할 것은 프랑스 공군에서는 ‘스칼프(SCALP) EG’, 영국 공군에서는 ‘스톰 섀도(Storm Shadow)’로 불리는 크루즈 미사일이었다. 공교롭게도 한국 공군의 FX 사업에 참여한 프랑스와 영국 등 유럽 4개국은 “한국이 우리 전투기를 선택해준다면 ‘스칼프 EG’ 혹은 ‘스톰 섀도’로 불리는 크루즈 미사일을 달 수 있게 해주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사실은 기자가 주간동아 250호(9월7일자)를 통해 처음 보도했는데, 스칼프 EG/스톰 섀도 크루즈 미사일의 최고 순항거리는 무려 600㎞다.

스칼프의 개발이 완료된 것은 99년 5월이었다. 현재 한국은 미국과 교환한 ‘미사일 양해 서한’ 때문에 순항거리가 180㎞를 넘는 미사일은 보유하지 못한다. 따라서 FX 사업을 계기로 스칼프를 도입한다면, 이 서한은 무력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점 때문에 기자는 “과연 마트라 BAe 다이내믹스가 한국에 스칼프 EG를 제공할 수 있겠는가?”부터 물었다. 아라공 이사는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매우 정확한 답변을 해주었다.

“프랑스는 300㎞ 이상을 비행하는 미사일의 수출을 금지하는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가입 국가다. 따라서 600㎞를 비행하는 스칼프 EG는 공급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가 제공하는 것은 300㎞짜리 스칼프 EG가 될 전망이다.”

라팔의 작전 반경은 1800㎞다. 1800㎞를 날아간 라팔이 다시 300㎞를 비행하는 크루즈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라팔의 공격 반경은 무려 2100㎞로 넓어지는 셈이다. 작전 반경 2100㎞를 공격할 수 있는 공군력을 가진다면, 한국은 재통일을 방해하는 웬만한 위협은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이푼은 스칼프 EG를 한 발 장착하는 데 비해, 라팔은 두 발을 장착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라팔이 전폭기가 되는 데 필요한 ‘강력한 주먹’을 확보했다는 뜻이 된다.

이어 살펴볼 것은 라팔이 제공기 구실을 할 수 있는 ‘주먹’을 가졌는가의 문제다. 이에 대해 마트라 BAe 다이내믹스측은 98년 6월 개발완료한 ‘미카(MICA)’ 공대공 미사일을 들고 나왔다. 지금까지 제공기는 세 종류의 공대공 무기를 장착했다. 원거리에 있는 적기를 요격하는 공대공 미사일, 중간거리까지 침투한 적기를 요격하는 공대공 미사일, 그리고 가장 가까운 거리에 파고든 적기를 요격하는 기관포가 그것이다.

이 세 무기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원거리를 공격하는 제공기가 되기도 하고, 근거리를 요격하는 제공기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조합이 실전 상황에 맞지 않으면 아군기는 위험해진다. 즉 적기는 원거리 공격무기를 달고 나왔는데 아군기는 기관포만 탑재하고 있다든가, 반대로 적기는 최근접으로 접근했는데 아군기는 원거리 공격무기만 탑재하고 있다면 아군기는 적기의 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공중전 상황에 대처하려면, 제공기에 탑재된 무기는 원·중·근거리 겸용이어야 한다. 이를 실현한 공대공 미사일이 ‘미카’다.

원·중·근거리 겸용 무기를 개발했더라도 이를 많이 달 수 있어야 유리하다. 많이 달기 위해서는 미카의 크기가 작고 가벼워야 하는데, 마트라 BAe 다이내믹스는 이것도 현실화했다. 다쏘항공은 라팔 외부에 보조 연료탱크와 각종 미사일을 달 수 있는 포인트를 전투기로서는 경이적인 14군데나 설정했다. 라팔이 순수 제공기 구실을 할 때는 최대 14기의 미카를 장착할 수 있는 것이다.

공중급유기능 추가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세고 빠른 주먹만큼이나, 긴 ‘리치’가 있어야 한다. 리치를 늘리기 위해서는 미사일의 사거리뿐만 아니라 전투기의 작전 반경도 늘려야 한다. 라팔의 순수 무게는 10t이다. 여기에 연료와 각종 무기를 장착하면 그 무게가 24.5t으로 늘어난다. 10t짜리 전투기가 자기 몸무게의 1.45배나 되는 짐을 지고 이륙해, 시속 1200㎞대로 비행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연료를 소비한다. 라팔의 경우 내부연료의 15% 정도가 소진된다. 아무리 우수한 전투기라도 연료가 부족하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를 풀기 위해 주요 국가들은 공중급유기를 운용하는데 공중급유기는 매우 비싸,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 중 하나인 일본조차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다쏘항공은 전투기 사이에는 한번도 실현된 적이 없는 전투기끼리의 공중급유 능력을 개발했다. 보조 연료탱크만 단 라팔이 먼저 떠 있다가, 완전 무장한 라팔이 이륙해 항속비행에 들어가면 제 몸의 연료를 빼내 공중급유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라팔의 리치는 현저히 길어졌다.

셋째로 살펴볼 것은 과연 라팔이 공군기와 해군기의 기능을 겸하게 되었는가다. 해군기는 30노트(시속 55㎞ 정도)로 기동하는 항공모함에서 이착함한다. 달리는 활주로(항모)에 이착함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정밀성이 필요하다. 항공모함의 활주로는 지상 활주로에 비해 훨씬 짧은데 짧은 활주로에서 이함하기 위해서는 전투기의 엔진이 매우 강력해야 한다. 그리고 짧은 활주로에서 착함하기 위해서는 착륙용 바퀴가 달린 랜딩기어 부분이 매우 견고해야 한다.

해군기는 항모라는 좁은 공간에서 운용되므로 연료를 주입하거나, 무기를 달고 부품을 교체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짧아야 한다. 요즘 한국 공군은 최우수 전투조종사를 선발해 ‘탑건(Top Gun)’이라는 칭호를 주고 있다. 그러나 탑건 제도를 처음 도입한 미국은, 공군기가 아니라 해군기 조종사에서 탑건을 선발한다. 이유는 해군기 조종사들이 훨씬 악조건에서 작전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해군기가 갖고 있는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라팔은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극복했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심장’에 해당하는 엔진인데, 엔진의 추력이 작으면 해군기는 탄생할 수 없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현재 자기 몸무게 대비 1.45배나 되는 큰 비율의 짐을 지고 이륙할 수 있는 ‘에너자이저’ 전투기는 라팔뿐이다. 이러한 기적은 프랑스의 국영 엔진 제작사인 ‘스네크마(snecma)’가 90년 2월 M88 엔진을 개발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스네크마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아리안 로켓을 쏘아올린 로켓엔진도 제작하는 유럽 최대 엔진 제작사다. 파리에서 승용차로 2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스네크마 공장에는 여러 종류의 항공기 엔진이 제작되고 있었다. 여기에는 아에로스파시알이 생산하는 민항기 ‘에어버스’에 장착되는 엔진도 있었다.

적잖은 사람들은 전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능이라고 알고 있는데, 성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출격률’이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전투기라도 기지에 돌아온 후 연료를 주입하거나 새 무기를 장착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 이는 실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엔진과 주요 부속품은 교체하기 쉽게 만들어져야 한다. 스네크마는 “F-15가 엔진을 교체하는 데는 147분 걸리지만 라팔은 불과 60분 만에 교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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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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