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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목적기 라팔, 그 현란한 기술의 세계

프랑스 힘의 원천 첨단 방위산업 현장을 가다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on@donga.com

다목적기 라팔, 그 현란한 기술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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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네크마는 엔진뿐만 아니라 라팔에 들어가는 랜딩기어와 브레이크 시스템도 만들고 있다. 스네크마는 랜딩기어도 교체하기 쉽게 제작했다. 이 회사의 데클레르크 이사는 “한 회사에서 가속기(엔진)와 제동기(랜딩기어 브레이크 시스템)를 만들었기 때문에, 라팔의 가속 및 제동 시스템은 유기적으로 결합되었다. 가속과 제동 시스템을 나눠 개발하지 않고 한 회사에 맡긴 것이 자기 몸무게의 1.45배를 지고 항모를 이함하는 라팔을 만든 근본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1999년 9월 해군용으로 생산된 라팔기는 프랑스의 핵추진 항공모함 ‘샤를 드골’함 이착함 실험을 완료함으로써, 해군기로도 손색없음을 증명했다. 프랑스 해·공군기에 장착되는 엔진은 M88-2다. 그런데 한국 공군의 FX 사업에 참여하는 다쏘항공과 스네크마는 M88-2보다 15% 정도 추력이 센 M88-3 엔진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톰슨-CSF 데테시스가 발전시킨 ‘눈’, 마트라 BAe 다이내믹스의 ‘주먹’, 그리고 스네크마가 개발한 ‘심장’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 책임은 다쏘항공에 부과되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어떻게 꿰느냐에 따라 각각의 구슬이 갖고 있는 가치가 증가하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할 때 ‘글’이나 ‘엑셀’ 프로그램을 사용하듯이, 컴퓨터로 전투기를 설계할 때도 설계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이러한 설계 프로그램의 대표작이 다쏘그룹 소속의 다쏘시스템이 개발한 ‘카티아(CATIA)’다.

다쏘항공은 카티아 덕분에 새로 개발한 부속품을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전투기로서는 경이적으로 14군데에 미사일과 보조 연료탱크를 달 수 있게끔 설계한 것도 카티아 덕분이라고 지적한다. 라팔이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은 조종석이 아주 간단하다는 것이다. 모든 계기판이 디지털로 정리돼 조종석에는 불과 3개의 계기판만 있다. 계기판이 간단할수록 조종사는 전투에 집중할 수가 있다.



전투기 출격률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지로 돌아온 전투기가 새로운 무장을 장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다쏘항공 관계자는 “기지로 돌아온 F-15가 무기를 탑재하는 데 25분 걸리지만, 라팔은 1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재빠른 무기 교체도 카티아 덕분에 가능했다. 이로써 프랑스는 ‘작지만 세고 재빠른 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해군기와 공군기, 그리고 제공기와 전폭기로 쓰일 수 있는 차세대기 개발이라는 꿈을 실현한 것이다.

이제는 다목적이 주류인 시대

타이푼은 유럽 4개국이 공동개발했기 때문에, 4개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제3국으로 기술을 이전할 수 없다. 설사 제3국으로 기술을 이전하는 데 동의한다고 해도, 타이푼 제작에 4개국에서 숱한 업체들이 참여하고 있으므로, 그 과정이 복잡하다. 하지만 라팔은 그리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프랑스 정부는 이미 프랑스 국회로부터 라팔을 해외에서 제작해도 좋다는 동의를 받아놓았다. 프랑스 국회가 라팔의 해외생산에 동의한 것은 라팔의 세계 진출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다목적기를 지향하는 프랑스의 방향 설정이 옳았다는 것은 다른 나라의 선택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제공기와 전폭기를 별도로 개발해오던 미 공군은 10여 년 전부터 제공기인 F-15기는 지상 공격능력을 강화하고, 전폭기인 F-16은 제공능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개량해오고 있다. 2개 기종 운영에 따른 막대한 비용 부담이 원인이었다. 현재 미국은 해군기와 공군기용 전폭기의 통합을 준비하고 있는데, JSF가 그것이다.

JSF는 공군 전폭기인 F-16과 해군 전폭기인 FA-18을 잇는 후속 기종인데, 미국은 하나로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제공기와 전폭기 통합까지는 이루지 못해, 미 공군은 F-15 후속 제공기로 F-22를 개발하고 있으나 미 해군은 후속 제공기 개발을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F-22와 JSF가 개발되면 미 공군은 제공기로 F-22, 전폭기로 JSF를 사용하고, 미 해군은 제공기로 F-14, 전폭기로 JSF를 사용할 전망이다.

다목적성을 지향한 프랑스의 선택은 옳았다. 그러나 방향이 옳다고 해서, 라팔이 세계 최강의 전투기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라팔과 타이푼, 그리고 러시아의 수호이 35는 실전에 참여한 적이 없다. 실전에서는 시험비행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뜻밖의 결점이 발견되기도 하는데, 전투기는 이러한 결점을 고쳐가며 발전하는 것이다. 실전을 통해 결점을 고쳐온 전투기는 ‘올드 패션’인 F-15뿐이다. 실전 경험이 없다는 것은 라팔이 안고 있는 최대의 약점이다.

다목적기를 지향한 팔방미인 라팔과 제공기를 지향해 얼굴만 예쁜 미인이 된 타이푼, F-15, 수호이 35가 미스코리아대회에서 경쟁한다면 누가 우승할 것인가. 신체적 아름다움만을 놓고 경쟁한다면 때에 따라서 팔방미인이 탈락할 수도 있다. FX 사업을 통해 한국 공군이 얻고자 하는 것은 제공기다. 따라서 라팔은 그 현란한 다목적성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제공기 기능을 놓고 3개 기종과 경쟁해야 한다. 과연 팔방미인 라팔이 제공기 분야에서도 최고 미인으로 꼽힐 수 있을 것인가?

프랑스를 벤치마킹하자

기사 초입에서 기자는 전투기 생산 세계 3위 국가인 프랑스를 취재한 데는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이제 그 이유를 설명하기로 한다. 국토와 인구가 적은 프랑스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미국·러시아 혹은 중국과 같은 초강대국이 될 수 없다. 프랑스의 지정학적 조건은, 초강대국을 유기적으로 잇는 중심국가를 지향하라고 암시하고 있다. 프랑스는 열강의 각축장인 유럽을 무대로 중심국가를 실현하는 데 성공했다. 중심국가 프랑스를 실현시켜준 것은 카르티에나 랑콤 같은 명품이 아니라, 첨단무기를 생산하는 방위산업이다.

프랑스의 면적은 통일 한반도(22만㎢)의 2.5배인 55만㎢지만, 인구는 통일 한반도(7000여만 명으로 추정)보다 약간 적은 6000여만 명이다. 이러한 프랑스의 국가 규모는 통일한국을 지향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2차 세계대전의 잿더미 위에서 프랑스가 유럽 중심국가로 변모했다면, 비슷한 규모의 한국도 통일을 쟁취하고 동북아의 중심국가로 발돋움 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인이 영어로 길을 물으면, 꼭 불어로 대답하는 프랑스인. 프랑스인이 외국인을 답답하게 하는 ‘영문불답(英問佛答)’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미래 변화를 예측하고 그에 대한 준비를 착실히 해왔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자부심은 1·2차 대전 초기의 연속 패전이 가져다준 교훈을 잊지 않은 데서 나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 교훈을 잊어버렸다. 민족 자주성과 오기는 다른 것인데 오기를 자주성으로 잘못 인식한 것이다. 프랑스는 미국과 경쟁하면서도 필요하면 협조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러한 프랑스의 선택과 성공은 통일한국을 지향하는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 통일과 중심국가 지향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프랑스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경의선과 TGV]한국에서 시작된 알스톰의 행운

알스톰은 TGV로 불리는 경부고속철도 차량을 납품하는 프랑스 회사다. 알스톰그룹은 자동차그룹이 분할돼 나가기 전의 현대그룹과 비슷해서, 발전과 조선·철도 등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 위주로 편성돼 있다. 이 그룹에서 고속전철 차량이 차지하는 부분은 그리 크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는 알스톰을, 최만석이라는 로비스트를 통해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고속철도 차량 제작을 수주한 회사 정도로만 보고 있다. 알스톰은 대서양 연안에 있는 한적한 도시 라 로셀르 공장에서 한국으로 갈 고속전철 차량을 제작하고 있다.

이러한 알스톰은 철도문제를 중심으로 한국을 보고 있다. 알스톰은 지난 9월 말 시작된 우리의 경의선 연결사업을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한 관계자의 말이다.

“철도만 연결한다고 해서 기차가 마음놓고 달리는 것은 아니다. 철도 시스템이 통일되고 개선돼야만 효과적인 철도 운행이 가능하다. 영국은 철도의 발상지이고, 프랑스는 철도가 최고로 부흥한 나라다. 영국과 프랑스는 도버해협 밑을 뚫어 ‘유로스타’라는 철도를 연결했다. 그런데 프랑스 땅에서는 시속 300㎞대로 달리던 유로스타가 영국 땅으로 들어가면 시속 100㎞대밖에 달리지 못한다. 이유는 영국의 철도 운영 시스템이 낙후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의선도 마찬가지다. 경의선을 고속전철까지 달리게 할 통일철로로 만들려고 한다면 철로만 연결할 것이 아니라 운영 시스템까지도 통일하는 작업을 함께 수행해야 한다. 시스템은 통일하지 않고, 철도라는 하드웨어만 연결하는 것은 진정한 통일이 아니다.”

70년대 중반의 경부고속도로 완공을 계기로 한국은 도로 건설에 매진하고, 철도는 등한시하는 ‘주도종철(主道從鐵)’의 교통 정책을 선택했다. 25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숱한 도로를 개설했음에도, 엄청난 도로 물동량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부산인데, 부산 시내는 배에서 내린 컨테이너를 싣고 고속도로를 타려는 트럭과 부산 시민이 몰고 나온 자동차가 뒤엉켜 교통지옥이 따로 없다. 철도청과 부산시가 일찌감치 배에서 내린 컨테이너를 철도로 수송하는 체제를 선택했다면 이러한 교통지옥은 면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주도종철로 달리는 사이 프랑스는 ‘철도는 화물을, 도로는 사람을’ 수송하는 체제를 선택하는, ‘도철병행(道鐵竝行)’ 체제를 선택했다. 그리고 마침내 꿈의 열차인 TGV를 개발해 도로가 맡고 있던 사람 수송까지도 철도가 떠맡음으로써, ‘주철종도(主鐵從道)’ 시대를 열었다. 이런 이유로 프랑스 고속도로에서는 우리와 같은 교통지옥이 덜 만들어지게 되었다. 프랑스는 철도 르네상스를 여는 데 성공한 것이다.

경의선의 복원을 계기로 통일이 이뤄지면 시베리아 철도를 통해 한국은 유럽과 이어질 것이다. 그때서야 교통정책을 ‘주철종도’로 바꾸면 너무 때가 늦다. 때로는 약간의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낳기도 한다. 독일의 지멘스는 알스톰보다 한발 늦게 고속철도 ICE를 개발했다. 그러나 후발 주자인 관계로 한국·스페인·호주·미국 시장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지멘스는 이제 알스톰에 합병될 처지가 돼버렸다. 철도를 발전시킨 알스톰의 성공은 쉽게 철도를 포기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

알스톰은 TGV가 한국에 진출하면서부터 알스톰이 세계를 제패하는 행운이 시작된 것을 잘 알고 있다. 알스톰이 한국 진출을 계기로 르노 자동차가 한국에 진출했고, 르노 상륙을 계기로 외국 기업들의 리턴이 시작돼 IMF 경제위기에 빠져 있던 한국은 기사회생했다. 다쏘항공을 비롯한 라팔기 제작 참여사들은 알스톰이 창출한 행운이 한국에서 다시 한 번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신동아 200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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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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