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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설

완월동 아름이의 노래

  • 신장현 소설가

완월동 아름이의 노래

3/5
언니를 찍어서 외출을 신청한 놈은 나중에야 알았지만 어디라고 하면 알 만한 재벌 회장의 손자였대. 외제 승용차에 기사가 딸려 언니를 데려갈 때, 우리는 기적을 보는 것 같아 모두 넋을 놓았어. 언니가 저런 행운의 주인공이 되다니. 히파리 말로는 외출에 대한 선불로 100만원짜리 수표 두 장을 턱 내줬다나. 나 역시 그때는 눈이 뒤집힐 정도였어. 뒷골들한테 전화질까지 했는데 통화도 안 되지, 하다하다 찍꼬빨까지 기다려도 새벽 세 시가 넘도록 똥개 하나 안 잡혔어.

정말 부아가 치밀고 속에서 훨훨 천불이 나던데. 공연히 일어섰다 앉았다 화장실에 들락거리고 물을 마셨다가 커피를 마셨다가 루주도 빨강 칠했다가 파랑 칠했다가 온갖 쇼를 다 하는 거야. 마치 언니가 눈에 콩깍지 씌운 내 손님을 빼앗아 갔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 이런 되잖은 밥그릇 싸움도 스트레스라면 스트레슬까. 아무튼 우린 언니가 물씬 남자의 진을 빼고 어떤 표정으로 돌아올까 목이 빠지게 기다렸어. 그런데 나간 지 채 두 시간도 못 돼 경찰에서 들이닥쳐 주인을 찾고 난리였어.

언니가 그 작자 이마를 맥주병으로 깠다는 거야. 들어보니 기가 막히더라고. 언니가 간 곳은 해운대 달맞이 고개에 있는 별장이었는데 정말 으리으리하고 호화스럽기 이를 데 없었대. 거기 거실로 가니 이상하게 헬렐레 하는 애송이 하나가 더 있었는데 다짜고짜 둘이 덤벼들어 미친개 수작을 벌이기 시작했다는 거지. 뽕을 한 게 틀림없을 거야. 세상에! 경찰서에서 본 언니 옷은 갈기갈기 찢겼고 온몸이 타박상과 피로 얼룩져 있었어. 나는 그때, 강간이란 게 뭔지 알았다고 할까?

창녀에게 강간이라니? 입때껏 몰랐던 폭력이란 게 뭔지 알았다고 할까. 철장에 갇혀 나를 쳐다보던 언니의 눈이 뭘 말하는지…. 가슴 서늘했고, 나는 이 세상의 또 다른 구경꾼이라는 혐의를 떨쳐낼 수 없었어. 그런 사건으로 유치장에서 가까스로 풀려나온 뒤 언니는 한 달을 넘게 일을 못하고 넋을 놓은 채 실의에 잠겨 있었지.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들에게 받은 모욕이나 폭력이 문제가 아냐. 나도 어렴풋이 짐작하지만 그건, 실의란 거. 내가 일껏 고생고생 해봐야 세상엔 바랄 게 없다는….

그러니 남기남이 구세주 같지 않겠어? 아니, 그때 남기남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언니는 마지막 화려한 불꽃마저 피울 수 없었겠지. 뭐냐면, 남기남 그 남잔 정말 뱃사람의 순정을 가진 진국이었으니까.



뱃사람들은 바다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지 확실히 통이 크고 생각하는 게 단순해서 좋아. 여자에 굶주렸다고 해서 이런 데 여자를 막 대하진 않으니까. 내가 얘기 안 했어? 밑이 찢어지는 건 참아도 속이 찢어지는 아픔이 얼마나 처절한지. 적어도 이 바닥에선 배운 놈일수록 더하다는 게 틀림없는 얘기지. 아는 건 많아서 말 많지, 체면 때문에 사람들 앞에선 못 하는 오만가지 요구는 다 하지, 그러고도 돈 낼 땐 썩은 젓갈 냄새보다 더한 냄새가 풍기니까. 그런 데 비해 그때 남기남은 분명 퉁퉁한 명태 같은 남자였어.

의지가지없던 몸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언니의 수완이 그랬는지 남기남은 언니와 한 달을 넘게 이곳에서 살다시피 하고 다시 배를 타러 나가며 덜컥 적금 통장을 맡겼어. 물론 다음에 올 때 이곳을 빠져나가 결혼을 하자는 묵계가 있었겠지. 놀랍게도 통장은 두 달 뒤에 만기가 되는 1억원짜리였어. 명태가 아닌 왕봉태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럴까. 그만큼 대단한 위인이었지만….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때까지도 없었지.

나 역시 사고가 터질 때까지 전혀 알 수 없었던 일이야.

언니는 그 남자가 떠난 한참 뒤 내게 5부짜리 다이아몬드를 보여주었어. 남기남이 다음에 돌아오면 여길 빠져나가 결혼하자고 했다는 비밀을…. 도저히 혼자 간직하기 어려웠겠지. 세상에, 그 엄청나게 비싼 반지를 언니가 샀다니.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탐나는 보석이란 건 또 몰랐지. 언니 얼굴은 모처럼 보름달덩이처럼 보였고 자신에 차 있는 듯 했어. 남몰래 뒷골을 엮어넣었을 때, 누가 빼앗을까 경계하는 듯 표독한 모습이랄까. 나는 언니가 부질없는 꿈을 꾸고 있구나, 생각하며 그 다이아몬드가 깨지지 않길 진정으로 바랐지. 그리고 그 남자가 불현듯 돌아와 언니와 함께 이곳을 떠난다 해도 서운치 않겠다고…. 비록 같이 나가자는 약속을 어긴다 하더라도 진정 언니의 행복을 기원할 일 아닌가.

남기남? 우리 형부, 참 좋은 사람이지. 불쌍하고. 웃기고.

실은 그 사람, 언니 애인이었던 남자였어. 처음 언니한테 왔을 때 사각 팬티를 입었는데 글쎄, 물건이 얼마나 큰지 성기가 밖으로 나온 상태였대. 그래서 언니가 물었대. “어머, 아찌, 그거 다 넣으려고?” 하니까 대답이 “그럼, 남기남?” 하드래. 그래서 남기남이 된 거야. 형부는 섹스할 때 그게 다 안 들어가는 걸 알고 손수건으로 반을 딱 묶어. 그러면 거기 걸려서 다 안 들어가지. 나도 그 사람이 언니와 눈이 맞기 전에 어쩌다 한 번 받았는데 힘은 없지만 물에 띵띵 불은 개불이 꿈틀거리는 거 같았어.

듣고 있어, 오빠? 아까 하던 얘기 마저 해달라고? 언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냐고? 바로 그 형부가 맡기고 간 통장이 화근이었지. 사람도 싫지 않은데다 그만큼 큰돈을 생전에 어떻게 만져보겠어. 질 나쁜 애라면 아마 그 돈으로 제 빚도 탕감하고 어쩌면 당장이라도 여길 빠져나갈 궁리를 했겠지. 하지만 언니는 만기로 찾을 수 있는 돈을 그대로 은행에 놔두고 전전긍긍했던 거야.

모든 꿈을 날린 노름판

오히려 멀쩡한 통장에서 돈이 샐까, 누가 건드리진 않을까, 기다리던 주인은 잊고 있지나 않을까, 돌아와선 돈을 불려놓지 않았다고 욕이나 먹지 않을까, 자신과 같은 여자가 과연 결혼을 할 수 있을까…. 별별 걱정으로 노이로제에 걸리다시피 하고 이윽고 입맛까지 잃기까지 우습더라고. 나는 언니가 어느 때부턴가 손님 받는 일조차 심드렁해하며 손톱을 물어뜯거나 눈썹을 뗐다 붙였다 하는 걸 훔쳐보며 같이 불안에 떨었어.

아니나 다를까. 계산 날이면 주인언니며 이모한테 그렇게 칭찬을 듣고 나랑 매상 경쟁을 하던 언니가 한 달 600도 못 올려 바가지로 욕지거릴 먹으며 아등바등거리는 처지가 되대. 미스방에 앉아 있는 언닌 서리맞은 고사리 모양 온몸에서 힘이 다 빠져보였어. 결국 이 집에서 아름이가 정상에 오르며 주인언니 방을 차지하게 된 게 그 즈음이었지. 이러단 나까지 시들하고 같이 결딴날지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에 한동안 난 언니의 행태를 못 본 척하고 쌀쌀하게 굴기도 했지.

그렇게 남남이 되나보다 하던, 몇 달 동안 글쎄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지 뭐야. 어떻게 돈 냄새를 맡았는지 포주들이 언니를 꾀어 노름판에 끌어들였고, 슬금슬금 놓았다 댕겼다 톱질을 하다 대번에 목을 따버린 거야.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개잡것들이지. 그 판이 어떤 덴 줄 알아? 10억 20억은 우습게 돌아가는 데야. 아가씨 하나가 하루 50만원씩 번다고 하고 10명씩만 해도 포주는 못해도 200만원, 한 달이면 6000만원을 그냥 받아먹는 판 아냐.

오죽하면 부산에서도 요 아래 충무동 은행에 돈이 제일 많다고 할까. 그런데 언니가 끼여들었다니…. 언니가 눈이 뒤집혀서 미스방에 나타나지 않는 걸 알았을 땐 이미 게임이 끝나갈 때였어. 사람이 아니라 한여름에 썩어 문드러지는 송장덩이 같더라고.

그리고 완월동이 뒤집어져라 무슨 난리가 있었는지, 그래도 모진 게 목숨이라고 언니가 어떻게 밥벌이를 시작했는지 떠올리기도 싫어. 내가 그 뒷수습을 하며 수발을 다 들어줬대서가 아냐. 언니와 세웠던 목표가 물거품이 됐다거나 혼자 이뤄나가야 할 무엇이 두려워서도 아냐. 어쩌면 언니가 이겨내지 못한 그 마지막 정점의 한 순간의 모순이 주삿바늘처럼 바로 내 정수리 위에서 대롱거리고 있다는 불쾌감. 더러운, 수치스러운, 정말 개떡 같은 팔자를 알았기 때문이랄까. 이 바닥 년들의 숙명이란 거.휴∼힘드네. 언니 얘기를 하자니 속에 가스가 가득 차는 것 같아서. 남기남은 차라리 바다에서 죽었어야 했던 거야. 아마 언니란 년은 그렇게 빌고 빌었을지도 모르지. 남기남이 몇 달 뒤 돌아와서 언니에게 당한 일은, 너무 끔찍하고, 정말 그랬을까 지금도 의심나는 대목이니까.

언니는 술에 취해 들어온 남기남에게 화대를 요구했던 거지. 사연을 모르는, 아니, 알면서 모른 척한 건지 히파리는 언니의 그런 짓거릴 당연하게 생각하고 남기남을 대구 내쫓았고, 행패를 부리고 길길이 날뛰던 남기남과 한바탕 붙기까지 했지. 그리고 칼부림까지 나고, 삼촌들이 나서고…. 이 바닥에선 닳고닳은 레퍼토리가 펼쳐졌던 셈이지.

그게 어떻게 수습됐는지는 또 그렇고 그런 얘기야. 다 뻔한 인생들이니까. 남자는 다시 배를 타겠다고 떠났다, 그러고 몇 달 안 돼 돌아와선 여자에게 목돈을 건네주고, 또 떠나고, 그러다 나중엔 진짜 화대까지 주면서 매달리더라는. 그런 한 해 전에 먼바다로 아주 떠나는 줄 알았지. 영영 안 돌아올 거라고들 믿었어. 나는 그 점에서 형부를 진짜 남자라고 생각하고, 그래… 만약 언니와 먼저 만난 처지가 아니었다면, 내가 거둬주고 싶은. 애고…오빠, 자는 거야? 역시 이런 추월색 얘길 하는 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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