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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취재|율산 再起 8857일의 기록

집념의 신선호, 신화는 끝나지 않았다

  • 이나리byeme@donga.com

집념의 신선호, 신화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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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센트럴시티(전 서울종합터미널(주))는 신회장이 갖고 있는 유일한 회사였다. 고속버스 매표 수수료(표 값의 4~7%)와 약간의 상가 임대료, 직영하던 한가람문고 매출액이 수입의 전부. 연간 총 매출액이 30억 원(87년 기준)을 약간 웃도는 빈약한 회사였지만 신회장이 재기를 꿈꿀 수 있는 단 하나의 불씨였다.

출옥 후 칩거하던 신회장은 83년부터 터미널 가건물 2층에 위치한 사장실에 간혹 모습을 비추기 시작했다. 85년부터는 매일 출근했으나 회사 경영 및 대외 교섭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 당시 그의 최대 관심사는 컴퓨터. 사무실에 컴퓨터 한 대를 갖다놓고 독학을 했다. 한 번 시작한 일은 끝장을 보고야 마는 것이 그의 성품. 신회장은 그 성격대로 새 분야에 매달려, 85년쯤에는 신축 건물의 레이아웃을 직접 프로그래밍할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다.

신회장의 성품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대체로 일치한다. 말수 적고 극히 내성적인 성격, 마음 먹은 일은 꼭 해내고 마는 집념과 끈기, 다방면에 걸친 해박한 지식, 과묵한 이미지 뒤에 숨겨져 있는 예인 기질. 사교생활도 거의 하지 않으며, 조용한 곳에 숨어 일에 몰두하길 즐기는, 기업인에 대한 일반의 통념과는 좀 거리가 먼 인물이다. 젊은 시절엔 술·담배도 거의 하지 않았으나, 요즘은 위스키 두 병을 혼자 마실 수 있을 만큼 주량이 늘었다.

율산 출신의 한 법조계 인사는 신회장을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라 평했다. “사업 구상은 파격적이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몽상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걸 실행하는 방식은 매우 실무적이고 현실적이다. 이름뿐인 것, 실제가 아닌 것, 자신의 경험이 아닌 것, 불필요한 요식행위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금호 인수설 후 신회장은 바짝 회사 사정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앞에 나서는 일은 삼갔다. 시간이 나면 터미널 내 서점에 내려가 책을 읽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전형적 ‘야행성 인간’인 신회장은 예나 지금이나 남다른 독서광이다. 분야는 경제·경영·컴퓨터 쪽에 치중해 있다.



겉으로는 조용한 생활이었지만 내부 사정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가장 시급한 것이 건물 신축에 돈을 댈 전주(錢主)를 찾는 일이었다. ‘정부의 허가를 얻고 돈을 끌어들여 새 건물을 짓는다’. 신회장, 그리고 율산이 살 길은 오직 그 하나 뿐이었다. 원금에 이자, 연체료까지 합쳐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이 하루하루 목을 죄어오고 있었다. 건물을 짓지 못하면 돈 벌 길이 없고, 그래서는 빚을 갚을 날 또한 요원할 수밖에 없었다.

율산의 전주 찾기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였다. 은행돈을 빌리면 간단한 일이었지만 막대한 채무에 시달리는 부실기업의 손을 선뜻 잡아줄 은행은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율산은 타 기업을 상대로 합작 건설 방안을 모색했고 그 과정에서 진흥기업, 정우개발, 대우조선공사, 미도파, 대우그룹 등과 잇따른 접촉을 가졌다. 그러나 협상은 번번히 실패로 돌아갔다.

해결의 실마리는 뜻밖의 곳에서 찾아졌다. 롯데백화점에 업계 선두 자리를 빼앗기고 절치부심 중이던 신세계백화점이 강남 요지의 터미널 부지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한쪽은 땅이 필요하고 또 한 쪽은 돈이 필요했던 만큼 협상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호텔신라와 삼성종합건설도 가세키로 했다. 88년 6월29일, 신회장과 삼성그룹은 ‘터미널복합건물 신축에 관한 기본합의’를 맺었다. 그러고도 신회장은 4년 가까운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92년 11월12일, 수도권정비심의위원회에서 율산 측이 제출한 종합터미널 신축계획안이 거의 원안대로 통과됐다. 반포동 호남·영동선 터미널 가건물을 헐고 지하 3층, 지상 16층, 연건평 4만6881평의 백화점·호텔·터미널 복합건물을 짓겠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삼성그룹의 가세가 채권은행단과 정부에 신뢰를 준 것이다. 이태 후인 94년 11월, 관할구청인 서초구청의 건축 허가가 떨어졌다. 같은 해 12월, 드디어 5년 6개월의 ‘대장정’이 시작됐다.

애초 율산은 공사비로 900억~1000억 원이 들 것을 예상했다. 사업비 전액은 신세계백화점과 호텔신라가 임대보증금 선납 형식으로 부담키로 했다. 공사는 삼성종합건설에 맡게 됐다. 그런데 93년으로 예정돼 있던 착공이 한 해 미뤄지면서 몇 가지 큰 변화가 생겼다.

우선 호텔신라와의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제주신라 건설로 자금사정이 좋지 않았던 호텔신라는 율산 쪽에 다양한 부가조건들을 제시했다. 그 중에는 율산이 받아들이기 힘든 것도 있었다. 결국 호텔신라 입주 건은 백지화됐고 신회장은 새로운 파트너를 물색해야 하는 난관에 봉착했다. 다행히 신회장에게는 89년 9월 29일 법인 설립해 놓은 센트럴관광개발(주)이 있었다. 이후 호텔 건설 사업은 센트럴관광개발 쪽에서 주도하게 된다.

굳이 호텔 쪽 법인을 따로 설립한 데는 은행 차입을 쉽게 하려는 의도도 적지 않았다. 센트럴시티에는 해결 못한 율산 부채 1700여억 원(원금 430억원, 이자 1270억원)이 그대로 달려 있었다. 이 상태로 은행 융자를 받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호텔 시공 법인을 분리함으로써 그쪽만이라도 은행 돈을 쉽게 끌어쓸 수 있도록 하려는 고육지책이었다.

한편, 삼성종합건설의 가세도 무산됐다. 역시 서로의 조건이 맞지 않았다. 율산은 공개입찰에 응한 8개 건설사 중 현대건설을 파트너로 선택했다. 계약은 턴키(turn key)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자재 구입부터 감리까지 건축과 관련된 일체를 건설사가 일괄 수주하게 한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막상 시작하고 보니 1000억 원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임대보증금을 선납키로 했던 호텔신라마저 떨어져나간 상태가 아닌가. 부족한 돈, 부족한 사람, 어그러지는 계획들. 공사는 시작부터 난항이었다.

첫 번째 복병은 뜻밖에도 ‘물’이었다. 그 정도 대형 건물을 지으려면 지하수 개발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15억 원이란 돈을 쏟아붓고도 수맥을 찾을 수 없었다. 고심하던 중 가톨릭 신자인 직원 배모씨가 다소 엉뚱한 제안을 했다.

“상도동 성당에 임응승 신부란 분이 계십니다. 추 하나로 수맥을 찾는데요. 그분한테라도 부탁해 보죠.”

이제는 은퇴한 임신부(78)는 그 때 일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귀가 어두워 전화통화가 쉽지 않은 그를 대신해 측근이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배시몬이라는 신도로부터 부탁을 받고 공사 현장에 갔습니다. 오래 헤맬 것도 없이 금방 찾았지요. 지하수맥 하나, 그리고 온천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센트럴시티는 지하수 외에 서울 시내에 두 개밖에 없다는 온천 중 하나를 갖게 됐다.



IMF가 살린 신선호



수맥은 찾았지만 공사 진행은 더디기만 했다. 돈이 부족한만큼 공기(工期) 단축이 절실했던 터미널 측으로서는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설계 변경이 있을 때마다 비용은 나날이 늘어갔다. 뭔가 결단이 필요했다. 96년 8월8일, 신회장은 (주)센트럴건설을 설립했다. 97년, 현대건설은 물러가고 폐허를 방불케 하는 공사현장에는 신선호 회장과 몇 안 되는 직원들만이 남았다.

전쟁이 시작됐다. 한 편에선 돈 구하러, 또 한 편에서는 공기 단축과 비용 절감을 위해 밤낮 없이 뛰었다. 합작투자 할 호텔 사업자도 찾아야 했고 분양 준비도 해야 했다.

공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율산은 빌릴 수 있는 모든 돈을 빌렸다. 기본 자금은 신세계백화점 선납금 560억 원과 지하철 보상금 300억 원 정도. 나머지는 모두 어딘가에서 차입해와야 했다.

기자재는 대부분 리스 회사 것을 썼다. 호텔의 경우 세계 최대 호텔 체인 메리어트가 합작 투자를 제안해 오면서 얼마간 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메리어트가 17.5%, 센트럴관광개발이 82.5%의 지분을 가졌다. 운영은 메리어트에 일임했다. 한빛은행으로부터 융자도 받았다.

이어 추진한 것이 각종 공적 기금 및 자금을 융자받는 것. 지난해에는 반포천 복개 후 4000대 규모의 주차장을 설립하는 조건으로 SOC펀드를 지원 받았다. SOC펀드란 ‘사회간접자본 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에 의거 운영되는 기업 지원책. 기획예산처의 위탁을 받아 신용보증기금에서 운영하는 ‘산업기반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은행 융자 보증을 받게 된다. 센트럴시티는 SOC펀드를 통해 산업은행으로부터 300억 원을 빌릴 수 있었다. SOC펀드 수혜기업으로서의 신용은 다른 은행에서 융자를 받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됐다.

같은 해 메리어트호텔은 문화관광부의 위탁을 받아 산업은행이 운영하는 77억 원의 관광진흥기금을 융자받았다. 열병합시설 건설을 이유로 에너지관리공단으로부터 에너지이용합리화자금 34억 원(센트럴시티 20억 원, 메리어트호텔 14억 원)을 지원받기도 했다.

센트럴시티의 관계자는 “모두 서류 준비가 까다롭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일이라 웬만한 기업에선 쓰려 하지 않는 돈들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나마 빌릴 수 있었던 것도 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당시의 절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신회장과 센트럴시티를 살린 건 역설적이게도 IMF 구제금융 사태였다. 인력 부족과 자금 부족이란 두 가지 난제 해결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 경기 불황으로 실업자가 양산되자 정부는 각 기업에 1인당 매월 50만 원의 임금을 보조하는 조건으로 인턴사원제 실시를 권유했다. 센트럴시티는 즉각 90명의 인턴사원을 채용했다. 월급은 정부지원금에 10만 원을 더 보탠 60만 원. 그런데도 지원자가 몰려들었다.

“대학 갓 졸업한 친구들이 뭘 알겠는가. 가르쳐가며 했다.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도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다들 참 열심히 일했다. 덕분에 회사는 큰 짐을 덜 수 있었다.”

한 임원의 설명이다.

일하게 해달라는 하청업체들도 줄을 이었다. 여기에 신회장의 솔선수범과 직원들의 열정이 보태져 공사는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자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에 웬만한 일은 임직원들이 힘을 모아 자체 해결했다. 회사 로고는 신회장이 직접 디자인했고, 사내 전산망도 신회장과 현재 센트럴시티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군(소장) 출신 컴퓨터 전문가 최석산씨가 진두지휘했다. 호텔 합작 계약서의 경우 메리어트호텔 측은 김·장 법률상담소에 의뢰한 데 비해, 센트럴시티는 율산맨 출신인 정문수 인하대 경제통상학부 교수와 신회장 동생인 신민호 경기대 경제학부 교수가 밤을 새워가며 직접 작성했다.

신회장은 특유의 창의력과 추진력, 치밀함으로 난공사를 주도했다. 크고 뚜렷한 목표를 세워놓고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 한발 한발 앞으로 전진하는 신회장의 스타일을 혹자는 “조용한 리더십”이라고 표현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사람’이란 평을 듣는 그의 주변에 늘 인재(人才)가 모여드는 것은, 이처럼 강한 신뢰와 찬탄을 불러일으키는 특유의 독특한 통솔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메리어트 호텔이 개관한 9월1일은 율산인들에게 참으로 감개무량한 날이었다. ‘반사회적 기업’으로 낙인 찍혀 황무지로 내몰린지 20여년, 마침내 1조800억 원 자산 기업의 주인으로 화려하게 재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눈물겹도록 감격스러운 이 날, 센트럴시티에는 폭죽도, 샴페인도, 환호성도 없었다. 걸어온 길이 너무 벅차, 또 가야 할 길이 아직 멀기에 누구도 긴장 풀고 태평가를 부를 수 없었던 탓이다.

건물 짓는 데 든 비용은 모두 4500억원. 이 중 상당액이 빚으로 남아 있다. 여기에 내년부터 12년간 분할상환하기로 한 율산 빚 1700억 원(일부 상환), 안정적인 수입이 발생할 때까지 필요한 6개월 간의 운전자금까지 합하면 4000여 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산출된다. 채권단 규모가 너무 큰데다 금액이며 거치 기간, 상환 조건이 다른 부채들이 들쭉날쭉 난립해 있는 것도 골치아픈 일. 그래서 요즘 추진 중인 것이 삼성생명·교보생명이 주도하는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다.

몇몇 금융사와 보험회사들이 컨소시엄을 구성, 센트럴시티에 필요한 4000억 원을 마련해 부채와 기업 안정 자금을 한번에 해결해주는 것. 이렇게 되면 센트럴시티로서는 복잡한 채무관계와 자금 부족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컨소시엄 측은 센트럴시티의 현금 흐름을 장악함은 물론, 이후 발생할 거액의 매출액으로 다양한 투자를 실시, 브로커 피(broker fee)를 챙길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어마어마한 딜을 진행할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센트럴시티의 미래가 그만큼 밝기 때문이다. 센트럴시티의 올 하반기 매출 목표는 100억 원, 내년에는 4000억 원을 예상하고 있다. 주 수입원은 메리어트호텔 매출과 신세계백화점을 비롯 각 점포가 내는 임대료. 액수는 각 점포 매출액의 25%정도다. 매출 규모가 큰 신세계백화점만 1.6~1.7%를 지불하게 돼 있다.

센트럴시티 완공 전이나 후나, 신회장의 일상에는 변함이 없다. 아침 10시쯤 출근해 회사 구석구석을 돌아본 뒤, 관리 사무실 한켠에 자리잡은 집무실에서 일에 몰두한다.

몇 달 후에는 30년 가까이 거처해온 논현동 주택을 떠나 새 집으로 이사할 예정이다. 그동안 늘 담보로 묶여 있어 이사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던 집이다. 논현동 집은 센트럴시티를 찾는 외국 귀빈들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로 개조된다.

신회장은 이제, 포승에 묶여 이 악물고 곱씹던 재기의 꿈을 이뤘다고 생각할까. 그를 잘 아는 한 측근은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는 ‘재기’라는 단어조차 불쾌하게 들릴지 모른다. 아직 갈 길이 먼데 무엇을 이루었단 말인가. 그러나 아무리 욕심나는 일이 있더라도 과거와 같은 방식을 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충분히 고통받았고 그 속에서 배울 만큼 배웠다.”

대우자동차가 부도나고, 현대건설이 부도의 위기를 겪는 등 한국 경제가 IMF 직전의 상황으로 돌아간 듯 위태로운 국면이다. 한때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대우그룹은 공중 분해된 채 온데 간데 없고, 프라이드 신화를 낳았던 기아자동차는 이제 일개 계열사로 전락했다. 이 땅에 재벌이 탄생한지 40여년, 이제 재벌은 그 용어에서 풍기는 ‘불순함’만큼이나 우리 경제에 IMF 위기라는 짐을 지우고, 차입경영에 의존해 제 배를 채웠다는 혐의를 뒤집어 쓴채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큰 산불이 나면 50년이 지나야 다시 수풀이 되돌아온다고 한다. 청년 재벌 율산이 재기하는데는 20년이 걸렸다. 그러나 율산은 재벌이 아닌 전문기업으로 우리 곁에 돌아 왔다. 문어발식 계열사 확대와 선단식 기업경영 구조가 얼마나 허무하고 약한 것인지, 율산은 반면교사의 교훈을 한국 경제에 남기고 있다. 율산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2000년이 저물고 있는 오늘, 경제인들은 한번쯤 진지하게 이 화두를 챙겨 보아야 할 것 같다.

신동아 200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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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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