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비화|북한의 황장엽 망명 보복작전

암호명 모란봉! 김현철을 납치하라

  • 최영재cyj@donga.com

암호명 모란봉! 김현철을 납치하라

3/3
95년 쌀 협상에 김현철씨가 끼어든 사정은 이렇다. 1995년 북한은 식량난에 시달리며 미국과 일본에 식량 지원을 호소했다. 미국과 일본은 한국이 북한에 쌀을 지원하면 미·일도 나설 수 있다고 북한에 통고한 후 남북대화를 건의했다. 당시 북한은 한국정부가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조문사절단을 보내지 않은 것을 빌미로 김영삼 정권하고는 절대로 대화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그러나 북한은 일본 쌀을 지원받기 위해서는 남한 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북한은 여러 가지 궁리를 했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런 때에 권영해 안기부장이 미국과 일본의 비밀 루트를 통해 95년 3월 북한 고위층과 대화 창구를 열었다. 김일성 사망으로 막혔던 남북의 대화창구가 간신히 열리는 순간이었다.

이 루트를 통해 남한은 북한에 ‘(1)대남 비방 방송을 중단하라 (2)게릴라 파견을 중지하고 남북 적십자 회담과 경제회담을 재개하자 (3)대화와 협상을 통해 남북한이 서로 신뢰를 구축하면 남쪽에서 북한에 식량을 지원한다 (4)경제 진출도 할 수 있다’고 제의했다. 이런 대화가 도쿄에서 조용하게 추진되고 있었다.

당시 실무자였던 안기부와 통일원 팀은 협상을 한걸음씩 착실하게 진행해 나갔다. 그런데 6월 들어 북한측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도쿄 협상을 중단하며 베이징에서 만나자고 요구했다. 그 며칠 후 청와대는 베이징 남북 쌀협상을 발표하며 남북 문제와 전혀 관련이 없는 이석채 재정경제원 차관이 베이징 협상 대표로 간다고 발표했다. 도쿄에서 협상을 진행하던 공조직 실무팀은 완전히 배제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후 몇 차례 회담 대표들이 오가면서 결국 남한은 쌀 15만톤을 무상이나 다름없이 제공했다. 또 쌀을 싣고 간 선박이 태극기를 달았다는 이유로 억류당하고 사진을 찍었다는 혐의로 선원이 체포되는 창피를 당하게 된 것이다. 쌀을 주고도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다. 당시 일본은 북한이 돈을 내고 북한 선박을 이용해서 쌀을 수송하게 만들었으며, 쌀도 무상으로 제공하지 않았다. 당시 베이징회담에 참여했던 관계자의 말을 따르면 “베이징 협상은 안기부와 통일원의 도쿄 비밀 회담 정보를 안기부내 현철씨 비밀조직이 빼낸 뒤 현철씨 사조직이 뛰어들어 망쳐놓은 본보기다”라고 말했다.



쌀을 북한에 제공하고도 선원과 선박이 억류당하는 꼴을 본 남한 국민들은 YS 정권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YS는 남북 문제를 안기부와 통일원에서 전담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철씨는 아버지 말을 잘 듣지 않았다. 그 후에도 현철씨 그룹은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 문제에 개입하려고 했다. 하지만 미국과 안기부의 반대로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았다.



미 CIA, 김현철을 감시

당시 현철씨가 주도하는 청와대의 대북 사업을 누구보다 못마땅하게 생각한 그룹은 바로 미국이었다. 미국은 현철씨의 대북 사업을 극도로 경계하며, 정보 요원을 동원해 현철씨 사조직의 대북 사업을 면밀히 감시하고 있었다. 당시 실제로 현철씨 사조직이 모이는 서울시내 사무실에는 청와대의 1급 비밀서류 카피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미국은 그래서 ‘한국정부의 비밀회의 자료가 2시간 후면 야당 총재 손에 들어가고, 3시간 후면 평양에 팩스로 들어간다’며 한국 정부 고위층에 충고하고, 현철씨의 미국 유학을 주선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 CIA와 백악관 국가안보위원회(NSC) 전직 고위 인사들의 증언과 기밀보고서에서 확인되고 있다. 97년 1월 말 미 CIA국장에서 은퇴한 존 도이치(John Deutch)씨는 사표를 내기 며칠 전 상원 비밀청문회에 나가 “남북한 관계는 매우 불투명하다. 남북한의 최고 지도자들은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대화를 원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그는 또 “미국은 한국의 정보기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다. 한국 정보기관은 믿을 수 없으나 정보기관 책임자인 제너럴 권(권영해)은 미국에서 군사교육을 받았으며 크리스천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증언했다.

존 도이치 국장이 의회에서 이런 증언을 한 것은 미국이 YS정권 초기에 김영삼 정권의 대북 정책을 의심했으며, 청와대와 안기부 내에 숨어 있는 김현철계 세력을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김영삼 정권의 대북 정책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된 것은 YS정권이 초기에 “어떠한 우방보다도 민족이 우선한다”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이인모 노인을 평양으로 돌려보내는 등 획기적인 대북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97년 2월12일 베이징의 한국총영사관에 망명한 황장엽 전 북한 로동당 국제담당 비서도 “남한 정부의 중요기관과 권력 핵심부에 친북한 세력이 상당히 자리잡고 있다”고 폭로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의 발언은 김현철씨측의 대북 접촉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런 김현철씨를 평양으로 데려가기 위해 북한이 내세운 인물은 재미동포 김양일씨(金洋一·전 미주 한미식품상 총연합회 회장)와 조지워싱턴대학의 한국계 학자 김아무개 박사로 알려지고 있다. 김양일씨는 이른바 ‘북풍 사건’의 핵심인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이다. 그는 당시 한나라당 정재문의원과 북한 조평통 안병수 부위원장의 접촉을 주선한 인물이기도 하다.

미국 한인식료품연합회 회장이던 그는 1994년 코카콜라 등 미국 기업투자단이 북한을 방문할 때 통역으로 따라간 것을 계기로 대북사업에 뛰어들었다. 그가 직접 북한에 코카콜라를 수출했던 것이다.

이후 김양일씨는 한승수 전 청와대비서실장에게 수시로 북한 관련 정보를 보고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한승수 실장이 주미 대사로 있던 시절 알게 되었다. 김양일씨는 조평통 등 북한측 고위간부와도 접촉하면서 식량지원 같은 남북한 거래를 성사하기 위해 애쓰기도 했다. 94년부터 95년까지 재임한 한승수 비서실장은 후임인 김광일 실장에게 김양일씨를 소개했으며, 김양일씨는 민주계 인사들과 자주 접촉했다. 그는 또 자신이 직접 700만 달러를 투자해서 평양에 라면(국수)공장을 건설할 계획이었다. 이 계획은 ‘시사저널’이 특종보도한 ‘청와대 밀가루 북송 사건’이 터지면서 무산되었다.

김양일씨는 서울에 와서 여러 지인을 만나 현철씨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권영해 부장의 안기부는 그가 현철씨를 평양으로 데려가려는 의도임을 파악하고 있었다. 안기부는 그를 철저하게 감시했고, 현철씨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가로막아서 초청 공작을 무산시켰다.



세 번째 대상 엄기현

북한이 노린 마지막 인물은 문민정부의 숨은 실세 엄기현씨다. 문민정부 당시 ‘서초동 엄회장’으로 불리던 그는 김영삼 전대통령의 경남고 2년 후배로 고교 축구부 때 맺은 인연으로 50년 동안 김전대통령을 도운 인물이다. 그는 YS가 야당 시절, 커피배달 용역업체를 운영하며 금전적인 도움을 주고, 정치자문도 해왔다.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김광일씨가 13대 총선 당시 YS 진영으로 들어가는 데 기여한 사람도 바로 엄씨다.

YS 진영과 그의 관계는 이른바 상도동 가신 출신 중에 엄씨에게 금전적·정신적으로 신세를 지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두터웠다는 소문이다. KBS 독일 특파원 출신으로 YS의 사조직인 민주사회연구소 소장과 청와대 정무비서관(1급), 방송개발원장을 지낸 엄효현씨가 그의 친동생이다.

YS의 평생동지였던 그는 문민정부 당시 갖가지 이권에 개입한 사실이 98년 이후 드러나서 고초를 겪고 있다. 엄씨는 문민정부 초기에 박태준 전 포철회장 이후의 포철체제 수립에 깊이 관여해 포철인사를 좌지우지했다는 비난도 받았다. 또 우학그룹이 한화종금을 인수합병(M·A)할 때 로비자금 3억원을 받고, 94년 부산 민방사업 허가와 관련해 1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98년 구속되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및 추징금 4억5000만원을 선고받은 바 있다.

북한은 황장엽 망명 직후 그를 평양으로 데려가기 위해 조총련계를 이용해 접근했다. 하지만 이도 일본 공안당국 협조로 안기부가 사전에 알아차렸다. 안기부는 일본에서 그를 만나려고 한국에 들어오려던 조총련계 인사의 비자를 거부해서 엄씨의 납치 기도를 막았다.

결국 YS의 친인척을 납치해 황장엽 망명에 복수하려던 북측의 이른바 ‘모란봉 작전’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만약 북한측의 납치 작전 가운데 단 한 건이라도 성공했다면 남북관계는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모란봉 작전을 좌절시킨 일등공신이 바로 DJ 정부 수립을 끝까지 막으려 했던 손충무씨와 권영해씨라는 사실이다.

신동아 2000년 12월호

3/3
최영재cyj@donga.com
목록 닫기

암호명 모란봉! 김현철을 납치하라

댓글 창 닫기

2020/0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