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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한국의 기인·괴짜 10인 열전

주역 성경 넘나드는 道人목사 김흥호

  • 김홍근

주역 성경 넘나드는 道人목사 김흥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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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황해도 서흥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김흥호는 철이 들면서부터 ‘나는 진정으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하는 화두를 품었다. 평양고보에 다니다 방학이 되어 본가가 있던 고향 대동강 두로도(豆老島)에 돌아오면 마을 교회에서는 14살에 불과한 그를 평양고보생 인텔리라 하여 설교를 시켰다. 독립지도자로 활동하다 3년의 옥고를 치르고 김흥호가 10살 때 고문 후유증으로 돌아가신 부친을 대신해 당신이 세운 교회의 강단에 섰던 것이다.

어린 나이에 대중에게 설교를 하는 진땀나는 경험을 한 김흥호는 그 뒤 틈날 때마다 당시 평양과 서울의 교회에 다니면서 유명 목사들의 설교를 기록하였다. 방학 때 고향에 돌아가 강단에 서기 위해서였다. 이후 평양 남사현 교회에서 이윤영, 이완식, 홍기주, 홍기횡, 최근필 목사, 조만식 장로 등의 설교를 열심히 듣고 도산 안창호 선생의 연설 ‘나가자!’를 듣고 깊이 감동받기도 하였다. 어린 나이에 남들 앞에서 설교를 하면서 그는 내심 무척 괴로워한다. ‘진정한 믿음’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흥호의 기독교 신앙은 변증법적으로 세 차례의 굴곡을 겪는다. 먼저 10대 후반에는 당시 식민지 체제하에서 의기소침해진 한국인들을 고무하기 위해 크게 유행하던 부흥회에 열심히 참여하였다. 그 후 20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에 다니면서 무교회주의자들의 성경 강의를 듣고 신앙적으로 새로 눈뜨게 된다. 그는 무교회주의자 선생들의 전집을 탐독하면서 기존 부흥회식 기독교, 즉 ‘유(有)교회적 입장’에서 양심에 따른 지성적인 신앙을 강조하는 ‘무(無)교회적 입장’으로 옮긴다. 이 입장은 후에 다석 유영모를 만나면서 유와 무를 변증법적으로 지양한 ‘가온(中)교회적 입장’으로 승화된다. 그는 다석을 만나고서야 비로소 어릴 때부터 품어온 문제인 ‘십자가와 부활을 믿을 수 있는가’를 풀게 된 것이다. 인생의 문제는 해답이 있어서 풀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성숙해져서 문제 자체가 문제 되지 않을 때 비로소 풀린다.

광복 후 귀국한 그는 1947년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하한다. 생면부지의 서울에서 갖은 고생을 하던 그는 정인보 선생을 찾아가 선생의 소개로 국학대학에서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주제 강연을 한 후 철학개론 교수로 채용된다. 당시 나이 많은 학생 중에는 ‘주역’을 줄줄 외는 사람도 있고 해서 동양철학을 배워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먼저 정인보 선생에게서 양명학을 배운 뒤, 이광수를 찾아간다. 춘원은 정주 오산학교 교사로 있을 때, 고당 조만식 후임으로 오산학교 교장으로 온 유영모를 알게 되었는데, 그를 ‘시계 같은 분’으로 부르며 외경하고 있었다(당시 함석헌은 4학년생이었다). 춘원은 김흥호에게 다석을 추천했고, 정인보 선생도 다석에게 찾아가라고 권했다.

1948년 봄 김흥호는 처음으로 유영모의 성경 강의에 참석하였다. 그는 첫날 이런 질문을 하였다. “하나, 둘, 셋이 무엇입니까?” (후에 이 삼재(三才)사상은 김흥호의 ‘동양적 기독교 이해’에 핵심을 이룬다.) 김흥호는 다석에게서 무서운 힘을 느꼈다. 말씀엔 인격의 무게가 실려 가슴으로 바로바로 육박해 들어왔다. 다름아닌 지행합일을 실천하는 힘이었다. 김흥호가 본 다석은 한 번 앉으면 몇 시간이고 정좌를 하고, 평생 걸어만 다녔으며, 하루 한 끼만 먹는 참사람(眞人)이었다. 다석(多夕)이란 호에는 하루 세 끼를 저녁에 합쳐 먹는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겨울 아침, 바다에 뛰어들다



김흥호가 파악한 다석의 실천(道)은 ‘一坐 一仁 一食 一言’의 ‘하루살이’이다. 즉 새벽에는 일어나 꿇어앉아 공부하고, 낮에는 열심히 농사짓고 제자를 가르치며, 저녁에는 하루 한 끼 식사를 하며, 밤에는 죽음처럼 깊은 잠에 빠지는 것이다. 아침은 ‘봄’이요 따라서 꿇어앉아 동서의 고전을 ‘보며’, 낮은 ‘여름’이요 따라서 열심히 ‘열음질(농사)’을 하고, 저녁은 ‘가을’이요 따라서 겸허하게 ‘갈무리(추수, 즉 식사)’를 하고, 밤은 ‘겨울’이요 따라서 깊은 잠에 빠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다석은 하루를 곧 일생처럼 살았다. 밤마다 십자가에 달리고, 아침마다 부활했다. 그는 그의 정신일기(多夕日誌)에 하루하루를 셈하여 기록하였다. 그에게 있어 ‘오늘’은 언제나 ‘오!(감탄사) 늘(영원)’이었다.

김흥호는 스승이 실천해 보인 그 길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걸어갔다. 심지어 새벽에 냉수마찰을 하는 스승을 본받으면서도 또한 지지 않기 위해, 제자는 피란지 부산과 제주도의 바닷가에서 겨울에 아침마다 바다에 뛰어들었다. 진정 특별한 사제관계였다.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도인(道人)의 삶이라면, 김흥호의 삶은 바로 그 전범이라 할 수 있다. 김흥호는 훗날 다석의 도를 자신의 것으로 체화(體化)한 후 이렇게 요약하였다.

一食晝夜通 一言生死通

一坐天地通 一仁有無通

김흥호는 다석을 따라 다닌 지 3년 만인 어느 날 북한산 구기동 계곡 폭포가 있는 곳에서 요한복음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에 대한 다석의 설명을 듣고 귀가 뚫리는 경험을 한다. 그 후 다석은 본인이 67세 되는 날 세상을 떠난다고 선언했다. 스승의 말을 철석같이 믿던 김흥호는 그 다음날 스승의 장례를 치르려고 댁으로 찾아가던 도중에 길에서 다석을 만났다. 그 순간 김흥호는 세상을 떠난 것은 다석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 후 심신이 지극히 쇠진해 있던 김흥호는 어머님의 간절한 권유로 결혼을 생각한다. 그러나 다석은 한사코 제자의 결혼을 반대하였다. 너무나 병약하던 김흥호는 오로지 쉬고 싶어 스승에게 알리지도 않고 결혼한다. 이때 그는 신촌에 있던 천막교회를 인수받아 대신교회를 세운다.

그러나 결혼을 했어도 생각은 끊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공부를 시작하여 ‘주역’에 몰두했다. 매일 한 괘씩 종이 위에 그려놓고 종일 들여다보다가 35살 되던 해 3월17일 오전 깨달음을 얻는다. 평소 다석은 한국인이 신약성경을 이해하려면 유대인의 구약뿐 아니라 동양의 고전도 함께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승의 가르침대로 동양의 유불선(儒佛仙) 삼교와 서양에서 유입된 기독교의 근본 오의(奧義)를 회통한 후 그 견처(見處)를 다음과 같은 오도송(悟道頌)으로 남겼다.

斷斷無爲自然聲 자신을 텅 비웠을 때 자연과 하늘의 소리를 듣는다

卽心如龜兎成佛 마음의 본체를 깨치면 만물이 부처다

三位復活靈一體 부활한 정신에 성부 성자 성신이 하나의 영으로 빛난다

天圓地方中庸仁 하늘과 땅의 진리는 인간에게서 구현된다 (한글 번역은 필자)

김흥호도 이날부터 일식(一食)에 들어갔다. 그리고 석 달 뒤 ‘대학’을 우리말로 옮겼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스승을 찾아가 보여드렸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중용’을 우리말로 옮겨 스승에게 보였다. 그때 마침 다석의 집에는 훈민정음을 연구하던 이정호 전 대전대 총장이 찾아와 있었다. 김흥호는 다석이 이정호 교수에게 자신이 번역한 ‘대학’을 보이며 “이 글은 공자께서 번역하셔도 이 이상은 할 수 없을 것 같군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는 김흥호를 향해 “이것은 김군이 쓰기는 하였지만 김군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리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후 호를 지어주었다.

이후 김흥호는 연세대, 이화여대에서 종교철학을 강의하면서 유, 불, 선, 기독교의 주요 경전을 3년간씩 총 12년 동안 읽어나갔다. 1963년 44세 되던 해, 미국으로 교환교수 겸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2년 뒤, 동 대학에서 종교사학 석사학위를 받는 한편 웨슬리 감리교 신학대학에서 전 미국 감리교단의 비숍(감독)이며 한국 감리교 명예감독이었던 레인즈 목사로부터 목사안수를 받고 미국 인디애나주 감리교회의 정목사로 등록된다.

1970년대에는 난곡 김응섭 선생에게서 서예를 배웠으며 1984년 65세로 이화여대에서 정년 퇴직을 한다. 그해 영국으로 가서 재영국 한인교회 담임목사가 되었으며 이듬해 귀국, 감리교신학대 종교철학과 교수로 초빙되어 지금까지 강의를 계속하고 있다. 1996년 이화여대에서 명예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30여년 전부터 지금까지 매주 일요일 오전 9시부터 2시간 동안 동양고전과 성경을 강의하고 있다. 최근에는 법화경과 신약성경을 강의하고 있다. 첫 시간에 동양고전을 공부하고 둘째 시간에 성경을 읽으면, 성경 내용이 동양적 정서로 쉽게 이해되는 것이다. 그 동안 강의해온 동양고전은 왕양명의 ‘전습록’ ‘주역’ ‘다석일지’ ‘도덕경’ 등으로 제자들이 구술한 것으로 솔출판사에서 전 30권 분량의 ‘김흥호 전집’으로 발간중이다(현재 6권 발간). ‘견성(見性)한 목사’ 김흥호가 남긴 말은 21세기의 본격적인 종교 교류시대에 지침이 될 것이다.

신동아 200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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