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은호 회장은 궁리 끝에 작업장 곳곳에 기도실을 따로 만들어 직공들이 교대로 기도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승회장의 현지화 노력은 신입사원들의 채용과 수련과정에도 잘 나타난다. 현지인들과 의사소통이 중요한만큼 코린도에는 한국외국어대 인니-말레이어과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신입사원들은 사무직일지라도 일정기간 현장 근무 경험을 쌓아야 한다. 생산현장에서 현지인들과 맞부딪치는 것 이상으로 현지화의 효율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사건은 곳곳에서 터졌다. 결근을 밥먹듯이 하고 작업시간에도 말썽만 부리는 한 현지인을 노동청 지부를 통해 절차를 거쳐 해고한 적이 있었다. 해고 통지를 한 다음 날 아침, 노무를 담당하는 한국인 총무가 일찌감치 출근해 서류를 뒤적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뒷목 근처가 서늘하더란다. 돌아보니 해고당한 그 인도네시아 남자가 나무 자르는 톱을 가지고 자신의 뒷목을 ‘썰고’ 있더라는 것. 피투성이가 된 총무는 황급히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제 중견 사원이 된 이 사람은 흉터 때문에 무더위에도 뒷머리를 기르고 다닌다.
현재 코린도는 250여 명의 한국인 직원과 2만 명이 넘는 현지인을 고용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인 직원들은 그 나라로 귀화하지 않는 한 주기적으로 비자를 연장해야 한다.
인도네시아 노동청이나 상공부에서는 되도록 현지인들의 고용기회를 늘리기 위해 한국인 직원들의 비자연장에 대단히 까다롭다. 기술을 인도네시아인에게 빨리 이전해주고 한국인들은 본국으로 돌려보내라는 것이다. 승회장이 코린도의 한국인 직원들에게 인도네시아의 생활문화를 터득하여 그들과 원만하게 지내라고 채근하는 것이 ‘현지화’를 위한 것이라면, 인도네시아 정부가 코린도 같은 외국기업에 요구하는 것은 ‘현지인화’다.
그런데 문제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요구대로 현지인화를 하고 싶어도 그것이 쉽지 않다.
“제지공장에 대졸 출신 현지인 셋을 고용한 적이 있어요. 그 친구들을 초기에 현장에 투입했더니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다 나가버렸어요. 나는 펜대 굴리면서 사무 보기 위해 회사에 들어왔지 고등학교 졸업자들하고 기름때 묻히면서 일하러 들어온 게 아니라는 거지요. 나중에 공장장이 되더라도 현장을 알아야 직공들을 관리할 수 있을 것 아니냐, 한국에서 일류 대학인 서울농대 출신도 처음에는 현장에 가서 일하지 않느냐. 이런 식으로 아무리 설득해도 안 들어먹습디다.”
20억 달러를 200달러로
그래서 비자연장 시기가 되면 코린도측과 노동청 관리 사이에 한바탕 설전이 벌어진다. 노동청 관리는 “왜 우리 나라 사람에게 기술이전 안 시키고 한국인을 계속 눌러 있게 만드느냐”고 시비를 걸고, 코린도측은 “아니, 임업과 나온 사람이 산판에는 들어가보지도 않고 사무실에서 펜대만 잡겠다니 그걸 어디다 쓰겠느냐”고 항변한다.
인도네시아 동부의 이리안자야에도 코린도의 합판공장이 있는데, 그곳 주민 대부분이 기독교도다. 이곳은 문명의 손길이 거의 미치지 않아 ‘어떤 곳에 출근한다’는 개념이 없다. 월급을 받은 다음날이면 상당수 직공이 결근해버린다. 돈이 생겼기 때문에 먹고 마시고 논 다음에, 돈이 떨어지면 나가서 일하면 될 것 아니냐는 식이다.
또한 이들은 동티모르의 영향을 받아서 자치독립을 요구하며 ‘투쟁’을 하고 있어, 승 회장은 현지 합판공장에 투자를 늘리고 싶어도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처음 우리 합판공장이 이리안자야에 들어섰을 때 그곳 독립군 사령관이라는 사람이 회사로 찾아와서 돈을 내라는 겁니다. 얼마를 주면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20억 달러를 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20억 달러는 너무 많으니 200달러로 깎아달라니까 두말없이 그렇게 하자고 해요.”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2조 몇천억원을 요구했다가 이십 몇 만원으로 깎아 준 것이다. 그만큼 돈에 대한 인식도, 수(數)에 대한 개념도 없는 사람들이다.
코린도의 합판공장 인근 주민들은 공장이 있는 일대를 ‘코린도 타운’이라 부른다. 집 한 채 없던 외진 곳에 합판공장을 지어서 현지 직공들을 채용하면, 그 직공의 가족들이 모두 공장 부근으로 몰려와 집을 짓고 거대한 마을을 형성한다. 땅값을 내지 않고 자유로이 집을 짓고 살 수 있으니 한국 사람에게는 부러운 광경이다. 코린도에서는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서 학교도 지어주고 교회도 짓는다. 물론 아이들을 가르칠 교사도 회사에서 채용하고 월급도 코린도측에서 지급한다. 승 회장의 철저한 현지화 노력의 일환이다.
승은호 회장이 인도네시아에 코린도를 설립할 때 한국으로부터 한 푼의 시드머니(종자돈)도 내간 게 없으니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는 그에게 “당신과 코린도가 한국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느냐?”고 따질 수 없다.
그런데 그는 “한국정부는 한국의 사업가들로 하여금 여건이 맞는 외국에 나가서 사업을 하도록 적극 권장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코린도에 원자재를 수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회사가 코린도 서울 지사에 있는 ‘코린교역’이다. 이 회사가 한국의 원자재를 인도네시아로 수출한 액수가 연간 5000여만 달러에 이른다. 96년도에는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과 함께 ‘수출의 탑’을 받기도 했다. 그러니까 인도네시아의 코린도는 한국으로부터 원자재를 수입하고, 한국에 있는 코린도 계열의 코린교역에서는 모기업에 수출하는 형식이다.
인도네시아에 나가 있는 한국인 코린도 직원의 급여는 대졸 신입의 경우 월 3000여 달러. 세금은 회사에서 별도로 내주고, 의료비도 회사에서 지원한다. 가족이 한국에 있는 경우 대부분 한국으로 송금되니 그렇게 벌어들이는 돈도 적지 않다.
나무 벤 후 의무 조림해야
이제 좀더 대국적인 견지에서 문제점을 따져볼 차례다.
―환경문제는 어느 대륙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전지구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원목을 베어내서 인도네시아의 열대우림을 망가뜨리는 셈이니, 그런 점에서 원목을 생산하고 가공하는 사업을 하시는 분으로서 해명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벌목을 한다니까 산을 아예 다 깎아내는 것으로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쓸모 있는 나무만 베어내고 또 베어낸 자리에는 의무 조림을 하게 돼 있습니다. 물론 어떤 원목회사들은 눈속임으로 대강 심고 마는데 우리 코린도는 철저합니다. 그리고, 이건 학자들의 조사로 이미 밝혀진 내용인데, 수령이 오래된 나무는 새로 심어서 자라나는 나무에 비해 산소배출량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승 회장은 그 정도로는 만족할 만한 대답이 아니다 싶었는지 코린도가 대대적으로 펼치는 조림사업을 소개했다. 별도 회사가 진행해오고 있는 이 조림사업은, 나무 벤 자리에 의무조림하는 것과는 별도로, 중부 칼리만탄 지역의 9만㏊를 허가받아 유카리투스라는 개량 씨앗을 뿌렸다. 식물이 금방금방 자라는 열대성 기후 지역이라 2년 전에 심은 나무가 벌써 10∼15m로 자랐다는 것이다. 이제 머잖아 조림목으로 합판공장의 자재를 댈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더불어 조림업자에게는 나무 한 그루가 배출할 수 있는 산소량을 계산하여 환경기여기금을 받을 수 있는 국제협약이 준비되고 있다고 소개한다.
그는 11년째 인도네시아의 한인회 회장직을 ‘장기집권’하고 있다. 회장 선거하는 날이면 그는 회의장에 나가지도 않는다는데 교민들이 자꾸 그를 천거하는 바람에 교민회장직을 연임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는 2만여 명의 교민이 살고 있는데, 일본과 중국을 제외하고는 아시아에서 한국사람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나라다.
승은호 회장이 교민사회에서 쓰고 있는 감투 중에는 한인상공회의소 소장도 있다. 코린도와 승회장은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해보겠다고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는 안내창구나 마찬가지다. 자카르타의 코린도 본사에는 인도네시아의 각종 경제관련 법률이나 세법 규정들이 바뀔 때마다 한글로 번역해서 고국에 보내주고, 한국의 그것들을 받아서 인도네시아 교민들에게 전해주는 일을 전담하는 직원이 있다.
“우리 코린도는 인도네시아에 진출해 있는 한국기업들에 현지 사정에 밝은 인재를 공급해주는 논산훈련소입니다.”
승 회장의 얘기다. 처음 진출해서 사업을 벌이는 기업은 현지경험을 쌓은 직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때문에 코린도 직원을 뽑아가는데, 승회장도 협조차원에서 그들을 붙잡지 않는다.
인도네시아에서 코린도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케 해준 사건이 있었다. 인도네시아에는 연간 300만t을 생산하는 국영 제철소가 있었는데, 인도네시아 정부는 외국의 제철회사와 합작으로 제2제철소 건설을 추진했다. 합작 파트너가 되기 위한 경쟁은 치열했다. 일본의 신일본제철과 오스트레일리아의 BHT 등 세계 굴지의 제철회사들이 눈독을 들였고, 한국의 포항제철도 경쟁대열에 뛰어들었다. 애당초 포항제철은 가망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는데, 승은호 회장이 수하르토 당시 대통령의 측근 실세를 만난 후 판세가 역전되어 포항제철로 낙찰되었다.
결국 건설공사 중에 IMF라는 복병을 만나 현재는 지지부진한 상태지만, 앞의 사례는 코린도와 승은호 회장 같은 선구적인 기업과 기업가가 현지에 버티고 있는 것이 후속진출을 꾀하는 업체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증명하는 사례라 하겠다.
승은호 회장이 즐겨 부르는 노래는 인도네시아 민요 ‘붕가왕 솔로’와 ‘할로할로 반둥’이다. 현지 인사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그 노래를 부르면 인도네시아의 고관대작들이 기립박수를 보낸다고 한다. 그의 이런 현지화 노력이야말로 코린도 성공에 가장 중요한 열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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