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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100명의 DJ 정권 평가

‘유식한 대통령’이 연출한 ‘무능한 정치’

  • 육성철sixman@donga.com

‘유식한 대통령’이 연출한 ‘무능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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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사회 각 분야에 대한 전면적 개혁을 표방했다. 하지만 개혁작업은 도처에서 암초를 만났다. 개혁 실패의 원인에 대해 김기원 방송대 교수(경제학)는 개혁주체의 미결집과 개혁전술의 오류를 지적했다. 또한 전병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불완전한 인적 청산작업이 국정의 난맥을 가져왔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전연구위원의 말.

“개혁은 기존 시스템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던 세력을 청산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개혁의 칼날이 기득권 세력을 향하지 못하고, 개혁대상이 오히려 개혁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대중 정권은 많은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시스템은 바뀌지 않는다. 개혁대상을 청산하지 않는 개혁은 국민으로부터 정당성을 얻지 못한다. 그 결과 DJ정권은 이해집단의 논리를 차단하지 못했다.”

동국대 이철기 교수(국제관계학)도 과거 청산의 실패가 임기 후반으로 가면서 김대중 정권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집권 초기에 과감하게 과거를 청산하고 개혁정책을 밀어붙였어야 했다. 그러나 DJ가 YS보다도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는 사이에 영남의 반DJ정서를 업은 수구 기득권 세력들과 수구 언론의 반격, 기회주의적 관료들의 무능과 보신주의가 합쳐지면서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편 세종연구소 이종석 연구위원은 “김대중 정부가 국정운영 능력과 시민사회의 사회적 협약 능력을 넘어서는 무리한 과제를 설정한 것이 개혁실패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런 주장과는 다른 측면에서 김대중 정부의 개혁의지가 애초부터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 성공회대 사회문화연구소 조현연 연구원은 개혁실패의 원인으로 ‘철학의 빈곤’과 ‘의지의 부재’ 등을 꼽았으며,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전재호 객원연구위원도 김대통령의 의지부족을 지적했다. 전교수는 한 예로 김대중 정부가 인권법을 만들기로 해놓고 입법과정에 힘을 실어주지 않은 점을 거론했다.

김대중 정부가 개혁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국민의 신뢰 회복이 절실하다. 최근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폭발 직전이라는 점에서 개혁 가능성을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많은 지식인들은 해답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개혁대상을 보호하는 개혁

전병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개혁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개혁 대상자와 개혁 때문에 발생하는 억울한 피해자를 구분해야 한다”는 논지를 폈다. 전연구위원의 주장.

“기존 시스템을 변경하는 데는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든다. 개혁은 자칫하면 기존 시스템에서 기득권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현재 진행중인 김대중 정부의 개혁은 문제가 있다. 개혁대상자에게는 보호의 룰을, 개혁피해자에게는 시장의 룰을 적용하고 있다. 개혁대상과 억울한 피해자를 구분할 때만 개혁의 총체적 정당성과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숙명여대 박재창 교수(행정학)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엄정한 개혁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교수는 “단순히 정치적 필요에 의해 사정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부정부패 추방을 위해 일생을 걸었다는 느낌을 국민들에게 심어줘야 한다. 책임의 소재를 명확히 묻고 이를 끝까지 추적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정책브레인으로 불리는 유승민 여의도연구소장은 “권력주변부터 척결해야 한다. 대통령 친인척, 동교동계의 대대적 사정이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의 냉소만 살 것이다”고 말했다. 이강천 동우캐피탈 대표이사도 친인척의 부정부패 척결과 가신그룹 배제 등을 주장했다.

한편 김대중정부에서 2년여 동안 농림부장관을 지낸 김성훈 중앙대 교수(농경제학)는 무엇보다 언론개혁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언론개혁을 단행하고 정치개혁과 정계개편을 해야 4대 부문 개혁이 본궤도에 오를 수 있다. 언론개혁 없는 경제개혁 및 사회정의 구현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언론·노동(노조)·정치 귀족의 발호와 지방토착 세력의 준동, 그리고 지방자치제의 낭비를 방지해야 한다.”

비전없는 인기영합주의의 대가

김대중 정부의 개혁이 실패한 원인을 비전 부재에서 찾는 지식인도 상당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지낸 이각범 정보통신대 교수는 “DJ정부는 비전이 결여된 채 출발했다. IMF의 원인은 외환관리의 일시적 잘못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구조적 결함인데, 구조개혁을 할 생각은 않고 외환만 쌓으면 만사가 해결될 것으로 착각했다. 한마디로 나라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이 없었다”고 말했다.

한신대 이일영 교수(경제학)도 국가경영을 위한 장기전략의 부재를 지적했다. 이교수는 “일차적으로는 정치권 전체의 책임이지만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고 심층적으로 책임있는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는 오피니언리더 그룹, 지식인 그룹이 허약하다. 이것은 어떤 집권세력이 등장해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김대중 정권의 비전 부재에 관한 해결방안으로 김형구 부산경제연구소장은 “부문별 전문가를 최대한 활용하고 폭넓은 여론을 수렴하여 장기적 계획을 수립하고 체계적이고 단계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경북대 김진웅 교수(역사과)는 정부의 임기응변식 국정운영을 비판한 뒤 “지금부터라도 청사진을 국민에게 제시하면서 이해를 구하고 소신있게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학자들은 비전 부재와 비슷한 맥락에서 리더십과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부산대 경제학과 임정덕 교수는 “김대통령이 누구에게나 잘하겠다는 대중영합적 자세만 견지하고 있어서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위기에 필요한 것은 확고한 리더십이다”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국정홍보에 비중을 두었다. 취임 초기엔 ‘국민과의 대화’에 출연, 각종 정책을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이것을 두고 일부에서는 대통령이 지나치게 인기에 집착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성균관대 김일영 교수(정치외교학)는 김대통령을 ‘대중추수주의자(populist)’로 규정하고, 그것이 국정의 혼란을 가져왔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교수의 말.

“그는 어느 누구로부터도 욕을 먹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는 선택이며, 선택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비용을 치르기 무서워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도자가 아니다. DJ는 비판이 두려워 선택을 과감하게 못한다. 그러다 보니 구조조정도 못하고 실업자 구제도 못한다. 선택은 정치의 몫이고, 비용을 줄이는 것은 정책의 몫이다. DJ는 정치와 정책을 혼동하고 있는데, 가장 큰 요인이 그가 ‘populist’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세명대 고숙희 교수(행정학)도 “모든 정책은 반드시 얻는 자와 잃는 자를 만드는데 이 과정에서 희생이 필요한 집단이 발생할 수 있다. 이때 그들을 설득하기보다 무조건 끌어안으려고 하면 모든 사람들을 불만족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유승민 여의도연구소장도 ‘대중추수주의(populism)’의 문제점을 거론했다. 유소장은 “대중주의는 늘 대중으로부터 배신을 당하는 운명이다. 현 정권은 당장의 인기만 추구하다가 낭패를 보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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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철six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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