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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정권 핵심 실세가 회고하는 문민정부 5년(中)

  • 송문홍songmh@donga.com

YS정권 핵심 실세가 회고하는 문민정부 5년(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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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 적을 만든 대통령 부자의 비극 ‥‥‥‥‥‥‥‥‥‥‥‥‥‥‥‥‥‥‥‥‥‥‥‥‥‥‥‥‥‥‥‥‥‥‥‥‥‥‥‥‥‥‥‥‥‥‥‥

제가 비서실장이 되던 시기가 대통령의 권위가 약화되기 시작하던 때입니다. 거기에다 우리 나라의 주력 수출종목인 반도체 가격이 국제시장에서 내려가고 세계적으로 경제 사이클이 호경기에서 불경기로 들어서던 때입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경제적으로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경제성장도 94∼95년에 8%가 넘었고, 물가도 연 5% 이상 오르지 않았고, 대체로 경제가 안정된 상태였지만, 앞으로 경제가 나빠질 가능성에 대비해서 전반적으로 국면 전환을 위해서 인사를 단행해야 하겠다, 해서 95년 12월 말에 청와대 비서실장과 총리를 바꿨습니다. 그래서 제가 세 번째 비서실장이 된 겁니다.

비서실장이 되기 열흘 전쯤에 대통령이 저를 불렀어요. 당시 제가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을 잘하고 있는데, 그 석 달 전에 송파갑구에 국회의원을 하라고 보냈거든요. 당시 지방자치 선거에서 우리가 야당에 져서 15대 선거는 이겨야 하겠는데, 그러려면 수도권에서 바람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니까 ‘김광일, 너는 부산에서라면 어디든 당선되겠지만 수도권에서 바람을 일으켜라’ 이렇게 된 겁니다.

사실 제가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갔던 것은 3당 통합 때 김영삼 대통령을 따라가지 않은 심리적인 부담 때문이었습니다. 3당 합당 당시에 군정종식을 하겠다, 야당을 하겠다고 해서 표를 얻은 사람이 군인 정치하는 사람들과 한덩어리가 된다면 나는 찬성할 수 없다, 이렇게 됐거든요. 김영삼 대통령은 그때 “내가 거기 가서 조무라기 노릇하려는 게 아니고, 호랑이를 잡아서 대통령이 되려고 한다”고 하면서 저를 설득했지만, 저는 가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도 김영삼 대통령은 계속 저를 챙겼습니다. 제게 다른 목적이 있어서 당신을 따라가지 않은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래서 그 후, 그분이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이기고, 대통령이 되어서 개혁정책을 하는데, 저는 ‘야, 잘한다’ 싶었어요. 그렇다면 3당 통합에서 잃었던 정통성을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음으로써 다시 회복했고, 이렇게 차질없이 개혁정책을 진행하는 것으로서 대통령의 실효성도 확보된 것이다, 그러면 이런 역사적인 개혁과업에 나도 필요하면 참여하겠다, 이랬던 건데, 대통령이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을 제게 맡겼고, 다시 비서실장이 된 겁니다.



“YS가 창문 밖 내다볼 때 조심하라”

대통령 비서실장은 국정전반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모든 사안을 균형 감각이 있게 처리해야 합니다. 지역, 시간, 공간, 계급 이런 것을 두루두루 파악해야 되는데 저는 어쨌든 입법, 사법, 행정을 다 거쳐본 사람입니다. 행정기관의 어디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봤고, 국회의원도 해보고, 사법부에서도 판사·변호사를 20∼30년 했으니까…. 가장 중요한 건 순발력입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어떻게 순발력있게 대처하느냐, 이런 저런 면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저를 선택한 게 아닌가 합니다.

그때 제가 한 가지 조건을 달았어요. 저한테 맡기신 이상 전폭적인 신뢰를 주셔야 합니다, 저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나 저에 대해 나쁜 소문이 들려서 잘라야 되겠다 싶거든 저에게 먼저 확인을 해주십시오, 이랬습니다. 당시 김영삼 정부에서 장관들이 잘려서 나갈 때는 차 타고 가다가 들었다는 일이 많았거든요. 기용할 때도 전격적으로 기용하고, 그만두게 할 때도 전격적으로 그만두게 하는 부분이 있었으니까. 그런 방식에는 장단점이 있지만, 어쨌든 제게는 한 열흘 전에 말씀해주셨으니까 그나마 준비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제가 비서실장을 맡고 나서 박관용씨가 김영삼 대통령의 스타일에 대해서 조언을 해줬습니다. 제가 대통령의 옛날 스타일은 알지만 대통령이 된 뒤의 스타일은 모르거든요. 박관용씨 말이, 당신을 임명한 것은 장악력과 추진력 때문일 거요, 이러더라고요. 그분이 저에게 한 가지 코치한 것이, 김영삼 대통령은 일도 많이 하지만 일도 잘 저지른다, 실수를 한다는 말이지요. 특히 일이 잘 되어간다 싶을 때 혼자서 결정하는 수가 있으니까 비서실장은 그걸 잘 살펴야 한다는 겁니다. 특히 창문 밖을 심각하게 내다보고 무슨 생각에 빠져 있거든 무슨 일이 터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라, 이럽디다.

제가 아직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의 직무에 대해서는 다 말하지 못합니다. 김영삼 대통령께서 돌아가시고 난 뒤에 회고록에나 쓸 만한 일이 많아요. 제가 모셨던 분이고, 지금도 계속 관계를 갖고 있는데 그분에 대해서 나쁜 말을 할 수 없잖아요? 여러분은 그런 점이 있다는 걸 아시고 제 말에서 그 뜻을 파악하셔야 합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또 당신이 뜻밖의 정책을 결정할 때 사전에 참모들과 장관들이 대책회의를 열어서 그 정책의 옳고 그름을 연구해서 올리면 그걸 100% 받아들이는 분입니다. 그게 그분의 장점입니다. 그러니까 참모들은 어떤 정책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미리 다 짚어봐야 하는 겁니다. 대통령이 그걸 놓고서 함께 앉아서 검토하도록 해드려야 합니다. 대통령이 클린턴과 직통전화도 하고, 해야 할 일이 많은데 그 많은 국정을 혼자서 다 챙길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모든 문제는 비서실장이 처리해야 하는데, 비서실장 머리가 터져 나가는 거예요. 저는 임기 동안 그렇게 하려고 애썼습니다. 김영삼 대통령께서도 저희가 건의하면 받아들이고 해서 제가 있던 96년 한 해 동안은 별다른 정책적인 실패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김현철은 희생양”

제가 비서실장이 되면서 한 가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대통령이 실질적인 일에 전력할 수 있도록 형식적인 일은 좀 빼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대통령은 새해에 각 부처에 연두순시를 나갑니다. 각 시도도 방문하는데, 그게 두 달 정도 걸립니다. 그러면 각 부처에서는 대통령 보고자료 만드느라고 한 달 내내 매달립니다. 지방에서도 그렇습니다. 국정감사 때문에 행정부가 업무를 제대로 못 하다가, 국회가 끝나면 대통령 연두순시 준비하느라고 또 공백과 손실이 막심해요. 제가 이걸 건의하니까 대통령께서도 느끼고 계셨던지 바로 응락하셨어요.

그리고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주재하는 행사가 많았어요. 그때마다 밥을 줘야 하는데, 예컨대 어느 기관을 상대로 한 행사라면 유관 방계기관이나 민간인까지 수백 명을 부르곤 했어요. 이게 다 권위주의 시절에 대통령이 폼잡는 거였거든. 그런 게 그때까지도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었어요. 이것도 대통령께 건의했더니 꼭 필요한 사람만 참석하게 축소하라고 했습니다.

다음으로 얘기할 것이 인사권에 대한 문제입니다. 대통령께서는 장관급 인선은 비밀주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거의 독자적으로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이해해줘야 할 부분이 있는 게, 집권당에서 대통령이 되기는 됐지만 3당 통합으로 올라갔기 때문에 권력의 중추부에 정보가 없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 탈당 이후에 김영삼 대통령에게 정부의 중요한 정보가 안 왔어요. 청와대에는 쓸 만한 인재들 명부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대부분 권위주의 시절에 맞는 사람들이었거든요. 그러니까 김영삼 대통령이 개혁을 하려는데 정부자료를 믿을 수가 없는 겁니다. 자기 주변, 민주계에서 사람을 구하려고 하면 뻔합니다. 충성심이나 투쟁력은 있어도 우수한 두뇌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공백을 아들이 채운 겁니다. 저는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김현철 군에 대한 평가도 언젠가는 바로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에게는 공과가 있습니다. 아들은 고대 사학과를 나왔지만 정치 성향이 굉장히 강합니다. 아버지가 야당에서 그렇게 고생하지 않았더라면 벌써 선거에 나가서 독자적으로 정치를 했든지 국회의원을 했을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아들이 아버지를 도와 87년 대선을 치르면서 보니까 이건 주먹구구식이거든요.

김현철씨는 야당에 여론조사 제도를 도입한 사람입니다. 중앙여론조사소를 만들어서 소장을 했어요. 후보자를 선정하는 데에 그 자료를 가지고 해보니까 신기하게 들어맞잖아요. 그래서 아들을 신뢰하게 되고, 아들이 건의하는 여러 가지 현대적인 정치기법을 수용하게 된 겁니다.

물론 김현철씨는 아버지가 대통령이 됐을 때 기용할 수 있는 젊고 참신한 두뇌를 나름대로 많이 골랐습니다. 아버지가 정부 자료도 못 믿고, 측근 인물 중에 쓸 만한 사람을 별로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아들이 이러저러한 과학적인 자료를 가지고 얘기하면 많이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일이 그렇게 시작된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비극이 된 것은, 그렇게 해서 10명 중에 한 명이 발탁되잖아요. 그리고 아들을 통하면 직효라는 것이 주변에 알려지자 모두들 아들에게 줄을 서다가 한 명은 되고 아홉 명이 안 되면 그 아홉 명이 적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다음에 그 한 명도 중간에 말없이 잘리면 또 적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김현철씨는 아버지를 위해서 희생양이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현철에게 집중된 원성들

그러다 보니까 97년에 들어가 한보사태가 터지고부터는 모든 원성이 김현철씨에게 다 돌아갔습니다. 사실 김현철이라는 이름 자체는 워낙 음지에 숨어서 일을 했기 때문에 96년까지는 신문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잠복해 있다가 소문이 소문을 낳으면서, 현철이가 국정을 좌지우지한다더라, 돈도 억수로 많을 것 아니냐, 소통령이라고 하더라, 이러던 판에 한보사태가 터지니까 대통령께서 일본에 갔다가 오시면서 그 얘기를 듣고는 ‘엄정하게 조사해서 처리하라’고 지시했어요.

저는 그런 일에서도 철저합니다. 우물우물하지 않아요. 비서실장이 민정수석에게 조사해보라고 넘기면, 민정수석은 검찰이나 사직동팀에 조사를 지시합니다. 사직동팀은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겁니다. 대통령 측근이나 가족이 무슨 부정을 저지르는 경우 조사해보면 금방 나옵니다.

제가 재직할 때 이양호 국방장관 뇌물문제를 조사했습니다. 조사하는 중에 이양호씨가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서 전달해달라고 저에게 갖고 왔어요. ‘나는 하늘을 우러러 죄가 없습니다. 기독교 장로로서 하나님께 맹세합니다.’ 이렇게 써갖고 왔어요. 그리고 그 다음날인가 다 자백했어요. 즉각 구속이었지요.

장학로가 제2 부속실장일 때, 제2 부속실장은 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영부인 치다꺼리하는 자리인데, 야당 시절에는 같이 돌아다니면서 투쟁도 했는데, 청와대에 들어와서 1급 비서관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권력은 잡은 것 같은데 찾아오는 손님은 하나도 없거든. 옛날 상도동 시절에는 사람들이 장학로를 통해야만 대통령을 만나기 쉽고 그랬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장학로를 불러서 ‘대통령에게 얘기 좀 해주라’ ‘만나게 해주라’ 이러면서 용돈 주고, 이렇게 돈 좀 먹은 게 드러났잖아요.

대통령이 보기에 인간적인 입장에서는 돌봐주고 싶겠지요. 그런데 어른이 돈을 안 받겠다고 했으면 아랫사람도 받지 말아야지. 아랫사람이 받아먹으면 그 욕이 어른에게 다 가잖아요. 그래서 구속해라, 그리고 오해 살 소지가 있으니까 청와대에서는 면회도 함부로 가지 마라, 그래서 그 사람이 외롭게 옥살이를 하다가 나왔습니다.

아무튼 97년 한보사태가 터지고 김현철 문제가 터져서 모든 화살이 김현철에게 쏠리자 김현철씨는 자기는 한보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왜 검찰에 조사받으러 가야 하느냐, 그 화살이 전부 저에게 오는 겁니다. 그래도 저는 조사를 받게 했어요. 실제로 저는 97년 2월에 비서실장을 그만두고 밖에 나와 있다가 3개월 만에 다시 불러서 정치특보로 갔습니다.

저는 김현철씨와는 무관하게 비서실장이 된 사람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 친구가 저를 추천한 게 아니냐고 했는데, 그게 아닙니다. 나중에 6개월 이상 지나서 제가 비서실을 확고하게 꾸려가니까 김현철씨가 그 뒤부터 저에게 허심탄회하게 의논을 했어요. 저도 그 사람에게, 차라리 나한테 얘기해라, 그러면 우리가 한 차례 걸러가면서 일을 하면 공조직이 일한 게 된다, 이런 얘기도 했습니다.

김현철씨가 한보 집안 아들과 만나서 한두 차례 술자리를 했는지는 몰라도 나중에 조사해보니까 직접적으로는 관계된 게 없다고 나왔어요. 그랬더니 언론이 깃털론을 제기하면서 ‘몸통은 왜 그대로 두느냐’고 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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