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오페라 출연보다 리사이틀이 더 많아진 것 아닙니까?
“확실히 리사이틀이 많아졌어요. 오페라는 몇 년 전만 해도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 만족했는데 이제는 이모저모를 따져보고 출연을 결정해요. 내년에는 오페라 바스티유에서 ‘리골레토’ ‘호프만의 이야기’를 하기로 했는데, 누가 지휘하고 출연진은 누구누구며, 어떤 프로덕션에서 기획하는지 세밀하게 따져본 다음에 계약을 해요.”
─미국과 유럽의 무대가 좀 다르지요?
“미국에서 하는 오페라는 유럽과는 좀 달라요. 미국은 정통이 아니라고 할까, 예컨대 분명히 ‘라보엠’을 부를 목소리가 아닌데도 ‘라보엠’을 부르거든요. 가수의 레퍼토리도 유럽과는 많이 달라요. 그래서 메트 무대에는 서도 유럽으로는 진출하지 못하는 미국 가수들이 많아요. 미국에서 하는 오페라가 단점이 참 많은데, 일단 언어적으로 제대로 정확하게 발음하면서 부르는 가수가 많지 않아요.”
─미국 문화란 게 유럽에서 건너간 건데, 아무래도 유럽보다 훨씬 자본주의화해서 그런가요?
“일단 미국의 음악교육부터 수박 겉핥기라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폭넓게 아는 건 많아요. 레퍼토리가 굉장히 다양한데, 정작 전문분야는 없거든요. 그래서 독일 리트, 프랑스 샹송, 이탈리아 벨칸토를 배우려면 천상 유럽으로 건너와야 해요. 또 정확한 음악해석이 없이 오페라를 마치 쇼처럼 만드는 경우도 많고…. 제 경우엔 내년에 워싱턴과 LA에서 플라시도 도밍고 지휘로 ‘호프만의 이야기’를 하기로 돼 있는데, 도밍고는 음악해석에 철저한 분이라서 별문제는 없을 거라고 봐요.
반면에 한국에서 하는 콘서트는 너무 이벤트성이 강해요. 그러면서도 한국 관객들은 굉장히 보수적이어서 클래식 콘서트라면 어떠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거든요. 근데요, 이건 제 자랑 같지만, 제 경지에 이르면 사실 어떤 것을 하라고 해도 다 잘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번에도 평소에 안 하던 걸 했지요. 제가 자신이 없으면 하겠어요? 그러니까 제 말은, 조수미가 그런 걸 하면 평소에 클래식음악을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조수미라는 개인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나아가 클래식음악을 접하게 되는 길을 터준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대중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나라에서 열리는 성악 리사이틀을 보면 이른바 ‘갈라(gala) 콘서트’라고 해서 레퍼토리가 백화점식으로 구성돼 있지 않습니까? 청중이 좋아할 만한 곡들을 반드시 포함시키지요. 성악가들은 레퍼토리를 구성할 때 어느 나라 무대냐는 점도 고려합니까?
“정통 리트 아벤트에 오는 분들은 웬만큼 음악 수준이 있는 분들이지요. 제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독창회를 해보면 나라마다 청중들 반응이 달라요. 영국의 위그모어홀 같은 정통 리사이틀 홀에서는 절대로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면 안 돼요. 만약에 실수로라도 아리아를 부르면 다음 날 신문에서 엄청 얻어 맞아요. 그런 무대는 바바라 보니처럼 정통적인 리트 가수들이 서지요.
파리에서라면 아무래도 프랑스어 노래를 절반 정도는 넣는 게 좋아요. 문화적 자긍심이 강한 프랑스 사람들이 훨씬 친근하게 받아들이거든요.
반면 미국에서는 너무 아카데믹한 곡보다는 그 가수가 다양한 장르를 얼마나 잘 소화해내느냐를 주로 보는 것 같아요. 아티스트를 그런 식으로 평가하더라구요. 일본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레퍼토리를 선정할 때 정말 신중하게 생각해야 해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에요. 제 경우에는 독창회 할 때마다 레퍼토리 선정하는 데에 보통 2, 3개월이 걸려요. 그때 공부하면서 새로운 레퍼토리를 찾는 거지요. 그런데 제가 한국에서는 아직 정통 리트만으로 리사이틀을 한번도 안 해봤어요. 지난 봄에 LG 아트센터에서 이탈리아 가곡, 독일 가곡, 프랑스 가곡을 맛만 보여드리는 식으로 했을 뿐이에요.”
이탈리아 가곡, 프랑스 샹송, 독일 리트의 차이점
─나라마다 전통 가곡들이 있잖아요. 그 차이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시지요.
“이탈리아 가곡과 프랑스 가곡은 스타일부터가 굉장히 달라요. 이탈리아 가곡에서 ‘아리안티카’라고 하는 16, 17세기 노래를 할 때에는 발성법 자체가 벨칸토 창법과는 조금 달라서 목소리가 깨끗하고 바이브레이션이 없어야 해요. 노래는 보통 ABA 형으로 구성되는데, A에서는 똑같은 음이 나오지만 바리에이션이 나와야 해요. 거기서 얼마나 자기만의 개성을 살리느냐에 따라서 바로크 음악을 잘하는지 평가해요.
18, 19세기 가곡에서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레가토와 아질리티예요. 레가토는 숨을 쉬지 않고 음을 길게 처리하는 것, 아질리티는 스케일이나 고음 영역의 테크닉 같은 것인데, 이 두 가지 면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레퍼토리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해요.
반면에 프랑스 샹송에서는 무엇보다 발음이 가장 중요해요. 이탈리아 가곡은 사실 이탈리아 말을 잘 몰라도 상당히 정확하게 부를 수 있거든요. 그런데 프랑스 가곡은 그렇지가 않아요. 제가 개인적으로도 힘들게 생각하는 게 프랑스 가곡인데, 일단 스타일 면에서 감성적이고 로맨틱하면서 동시에 완벽한 발음을 하기가 가장 어려워요. 프랑스에서 20년을 살았다는 사람도 프랑스어가 갖는 미묘한 뉘앙스를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아직 프랑스 가곡집을 못 내고 있다는 것 아닙니까?(웃음)
아무튼 외국인이 프랑스 가곡, 예컨대 포레나 뒤파르크를 부르면 모든 게 다 드러나요. 미국인은 프랑스 가곡을 하면 안돼요. 그건 살인적인 행위니까(웃음). 저처럼 귀가 발달하고 프랑스어를 하는 사람도 녹음해보면 실수가 너무 많거든요. 그런 건 음악성만으로는 감춰지지 않아요. 그래서 프랑스 가곡은 앞으로 영원히 기피할지도 몰라요(웃음).
제가 조금 자신있다고 할 만한 게 독일 리트인데, 한국 팬들도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같은 테너는 익숙하잖아요? 제 경우에는 오스트리아에서 독일어를 했고, 한국에서도 공부했기 때문에 언어 문제는 거의 없는 편이지만, 그래도 문제는 있어요. 예컨대 괴테나 하이네 같은 사람들이 쓴 시의 감흥과 깊이를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경험 같은 것, 그건 나름대로 노력해도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바로 그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조수미란 가수가 나오지 않았나요?
“맞아요. 저는 그걸 극복할 수 있는 센스를 갖고 태어났어요. 그런데 해보니까 그런 센스만 갖고는 안 되더라는 거지요. 예컨대 바바라 보니를 보세요. 그분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그분이 부르는 독일 리트는 정말 완벽해요. 우선 독일어가 완벽하고, 독일 문화나 시에 대한 지식은 정말 대단해요. 그래서 이분이 하는 노래는 듣기에 전혀 무리가 없고 기가 막혀요.”
─지금 활동하고 있는 세계적인 가수들 중에서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안드레아 보첼리를 좋아해요. 맹인이면서도 그 사람이 살아가는 걸 보면 참 대단한 것 같아요.”
─혹자는 안드레아 보첼리가 부르는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 너무 가볍지 않으냐고 비판도 하더군요.
“그 사람은 클래식이다, 팝이다, 이런 걸 따지기에는 이미 너무 커버렸어요. 세계적인 슈퍼스타이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세계에서 몇 억이 되는지 모르잖아요? 그 많은 사람들이 단순하게 보첼리가 맹인이라서 동정심 때문에 좋아하겠어요? 그건 아니라고 봐요. 세계적으로 4500만장의 앨범을 팔았다는 건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는 거예요.
제가 그 사람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비록 사물을 보지는 못하지만 삶 자체에 대한 행복감이 충만한 사람이고, 오로지 음악에만 매달리는 사람이에요. 테너 공부가 부족하다는 것을 본인도 알지만 공부는 또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요. 이런 끊임없는 추구는 정말 본받을 만해요. 그래서 클래식 음악 이전에 인간적으로 존경스럽고, 참 인상적인 사람이에요.”
주빈 메타의 자필 음악해설
─최근 어디선가 조수미씨와 정명훈씨, 그리고 보첼리가 소주와 김치찌개를 즐겼다는 얘기를 본 것 같은데….
“그건 지난 5월 일본 공연 때 얘기예요. 셋 다 먹는 것 좋아하고 셋 다 소탈해요. 정명훈씨도 이제 음악적인 거인이 됐지만, 사실 무대 위에서나 거인이지 밖에서는 평범하고 심플한 분이거든요. 그래서 저도 겸손한 사람이 되려고 제 자신을 많이 채찍질해요.”
─그게 쉽지는 않지요?
“명예 때문에…. 주변에 보면 하늘에 붕 떠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렇게 자만해지는 마음을 어떻게 다잡습니까?
“저는 선천적으로 완벽주의자예요. 무얼 하든 굉장히 세심해요. 음악은 물론이고요. 연주여행을 다닐 때에도 무대와 관련된 것이라면 아무리 많아도 죄다 직접 들고 다녀요. 콘서트 때에도 음악 외적인 것도 모두 신경을 써요. 사실 어제 리사이틀도 본공연에 앞서 무대에 가봤더니 제가 생각했던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전체 구성에서부터 곡의 순서, 앙코르 곡의 순서, 2부는 어떻게 하고, 전체 구성을 제가 다시 짜고 프로그램도 확인하고…. 제 자신은 물론이고 저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아요. 이게 조수미 독창회지 다른 게 아니잖아요? 그래도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니까 공중에 붕붕 떠 다니는 걸 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온갖 데에 신경을 써서 콘서트를 하고 나면 좀 허탈해지지 않습니까?
“오늘 아침에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이 뭔지 아세요? 어제 방송국에서 녹화한 공연실황 테이프를 보고 다시 찍자고 방송국에 전화했어요. 두 차례 공연 중 방송용으로 어제 것을 녹화했는데, 영 마음에 안 들더라구요. 물론 방송국도 돈들고 힘들겠지만, 많은 사람이 볼 텐데 가급적이면 완벽하게 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어떤 일이 하나 끝나면 그건 일단 접어두고 다음 것을 생각해요. 허탈할 틈이 없는 거지요.”
─조수미씨의 그런 면은 선천적인 재능에다가 카라얀 같은 거장들을 접하면서 후천적으로 습득한 부분도 있겠지요?
“그렇겠지요. 카라얀 같은 거장들과는 단 5분을 얘기해도 거기서 받는 임프레션이 대단해요. 저는 10년 동안 공부해온 것을 단 5분에 받았다는 얘기를 하곤 해요. 그런 대가들을 옆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저에게 왔을 때, 저는 나름대로 준비가 된 상태에서 그분들이 주는 가르침을 받았어요. 어떤 일이 닥칠 때 준비한다는 게 아니라, 항상 사전에 준비된 상태로 살아온 거지요. 저는 내일 당장 오페라를 하자는 제안이 들어와도 할 자신이 있어요. 그만큼의 준비는 언제나 돼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조수미씨가 만난 음악 대가들 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분이라면 아무래도 카라얀을 꼽겠지요?
“물론 카라얀이 첫째고, 그 다음은 주빈 메타예요. 그분의 음악적 정열은 참 대단해요. 제가 그분 연주회에 종종 가거든요. 그러면 그분은 연주회 프로그램을 해설하는 내용을 당신이 직접 써서 팩스로 보내주시곤 해요. ‘내일 연주할 심포니는 어떤 점에 주의를 기울여서 들어야 한다, 나는 그 곡을 이렇게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말이지요.”
─최고의 팬 서비스로군요.
“그렇지요. 저를 그 정도로 올려주신 데에 감격했구요.”
─주빈 메타 이외에 조수미씨와 가깝게 지내는 다른 분도 있습니까?
“사실 음악인들끼리는 서로에 대해서 음악적인 존경심이 없으면 인간관계조차 맺기가 힘들어요. 일단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 ‘저 사람이 왜 저렇게 할까’ 하는 의혹이 생기면 다른 부분도 함께 나누기가 어려워지거든요. 제가 신인 시절에는 일단 경력을 쌓는 게 중요하니까 지휘자 말에 고분고분 따랐지만 참 힘들 때가 많았어요. 저도 음악적인 부분은 양보하지 못하는 성격이니까. 그래서인지 음악인으로 가깝게 지내는 친구는 많지 않은 편이에요.”
─마지막으로 클래식의 세계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한마디, 예컨대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가 권하는 방법 같은 것….
“제가 클래식 음악을 접해보지 않은 분들에게 해드리고 싶은 말은 ‘인간은 길들여지는 동물’이라는 거예요.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명언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일단은 클래식음악을 들어보셔야 해요. 처음엔 물론 지겹고 힘들더라도 조금만 참고 계속 들어보세요. 자신을 클래식 음악에 길들이는 거지요.
클래식 음악은 대중음악 같은 인스턴트가 아니에요. 그래서 클래식음악에 친숙해지려면 길들어야 하고, 그렇게 길들면 반드시 그만한 보답이 있어요. 어느 순간부터 감동을 받게 되고, 미지의 문이 열리면서 이제까지 보던 것과는 다른 빛깔의 세상을 보시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먼저 클래식음악에 자기 자신을 길들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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