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2월호

돌아온 구세대, 진로를 우향우로 돌려라

부시정권을 움직이는 사람들

  • 최영재 cyj@donga.com

    입력2005-05-04 1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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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시 행정부가 1월20일 출범했다. 취임식은 20일이지만 18일 밤부터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는 촛불 행사가 성대하게 열렸다. 미국 정부는 이번 취임식을 전후한 행사비로 3천만 달러라는 막대한 금액을 지출했다. 이 가운데 국고에서 지원되는 금액은 1천만 달러뿐이었다. 나머지 2천만 달러는 대통령취임축하위원회에서 취임식 입장권 등을 팔아 충당했다. 사실 미 대통령 취임식 파티는 초청장이라는 개념이 없다. 초청장으로 알려진 것은 미 의회가 공식 교류 관계가 있는 세계 각국 의원들에게 보내는 소량뿐이다. 한국 국회의 ‘한·미의원친선협의회’소속 의원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래서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줄이어 워싱턴에 간 한국 정치인들은 대부분 일반인과 같이 돈을 지불해야 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 취임식에 돈을 내고 참석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심지어 대통령이 백악관에 들어갈 때 주위에서 손을 흔드는 사람들도 한국처럼 관(官)에서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내야만 앞줄에 설 수 있다. 취임식 파티 입장권은 등급에 따라 최저 250달러에서 최고 1만 달러까지 가격이 다르다. 정·부통령 당선자 내외와 악수라도 한번 할 수 있는 자리는 1인당 1만달러를 내는 자리와, 텍사스주·플로리다주·캘리포니아주 등 4개주가 주최한 파티뿐이다. 1만 달러를 내면서 저녁 한끼를 먹을 재력을 가진 사람은 미국에서도 할리우드 배우와 재벌뿐이니, 한국에서 날아간 정치인들은 먼 발치에서 박수만 치다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한국 정치인들이 기를 쓰고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려는 의도는 무엇인가. 부시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이 세계정치뿐만 아니라 한반도까지 쥐락펴락하니, 대통령이 안 되면 참모진 얼굴이라도 한번 봐야 하기 때문이다.

    꼬마 부시와 거물 참모들

    그렇다면 한국 정치인들이 그토록 만나고 싶어하는 부시 행정부의 실세들과 막후의 싱크탱크들은 어떻게 포진되어 있을까? 무엇보다 한반도 정책을 좌우할 인사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취임식을 앞두고 미국의 한 신문은 코흘리개 꼬마인 부시 주위를 거대한 참모들이 둘러싸고 있는 광경을 만화란에 내보냈다. 부시 대통령과 참모들의 성격을 묘사한 만화로 당선자 부시는 신출내기지만, 주위의 인맥은 모두 거물이라는 뜻이다. 부시 행정부를 움직이는 ‘거물’들은 크게 다음과 같은 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과 주변 인물들, 두 번째는 짐 베이커 전 국무장관(부시 2세 대통령선거본부장)과 인맥, 레이건 전 대통령과 그 인맥, 그리고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인맥이다. 심지어 포드 전 대통령 사람까지 거슬러올라간다. 이 거물들은 모두 구세대라서 신선미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지만 노련미는 최고다.

    부시 신행정부가 임명한 내각을 평가해보면 선거 때 말썽이 많았던 것을 보완하기 위해 일단 국민화합형 인사를 한 흔적이 엿보인다. 먼저 콜린 파월(Colin Powell) 국무장관 지명자와 로드 페이지(Rod Paige) 교육장관 지명자 등 흑인이 2명 눈에 띈다. 흑인 장관을 2명이나 임명한 것은 역대 최초다. 히스패닉계도 차베스 노동, 멜 마르티네스 주택장관 지명자 등 2명이었다가 차베스 지명자가 중도하차하면서 한 명으로 줄었다.

    아시아계도 1명 있다. 민주당 영입 케이스인 미네타 교통장관 지명자인데, 190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온 일본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이민 2세다. 아랍계도 1명 있다. 레바논계인 스펜서 에이브러햄 에너지 장관 지명자다. 여성장관도 처음에는 크리스티 휘트먼(Christie Whitman) 환경처, 앤 비너먼(Ann Veneman) 농무, 게일 노튼(Gale Norton) 내무, 린다 차베스 노동장관 지명자 등 모두 4명이었다. 이중 차베스 노동장관 지명자는 휘말려 중도하차했다.

    각료급인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로버트 죌릭(Robert B Zoellick)이 지명되었다. 역시 각료급인 CIA 국장은 따로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민주당 출신의 조지 테닛(George Tenet) 국장을 그대로 유임할 가능성이 크다. FBI 국장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새 행정부 출범시 각료를 따로 발표하지 않으면, 대부분 1년 정도 유임하는 경우였다.

    주요각료 펜타곤 출신이 장악

    부시 행정부 내각의 인종 분포는 역대 어느 행정부보다도 다양성 면에서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한결같이 보수색이 짙은 인사들이다. 이 인사들의 보수색이 너무 짙다보니 상원 인준을 받을 때 실패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가령 법무장관으로 지명된 존 에시크로프트(John Ashcroft)는 강력한 낙태 반대론자로 여성과 젊은층의 반발을 크게 사고 있다. 또 그는 연방판사에 흑인판사 로니 화이트(Ronnie White)를 임명하는데 반대한 기록도 있어 흑인 민권 단체에서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상은 겉으로 드러나는 인사들이다. 하지만 보다 구체적인 정책을 예상하기 위해서는 공화당 행정부 깊숙이 들어가 있는 싱크탱크를 살펴야 한다. 부시 신행정부의 싱크탱크는 헤리티지재단(Heritage Foundation), AEI(American Enterprise Institution), 국가안보협의회(NSC), Asia Council Peace And Studies 등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서도 한국이 주목해야 할 단체는 ‘Asia Council Peace And Studies’다. 이 단체는 매달 ‘Washington Report And Analysis’라는 두꺼운 보고서를 펴내는데, 여기서 한반도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또 헤리티지 재단은 미 보수주의의 진앙지를 자부하면서 공화당 정책의 젖줄을 쥐고 있다. 이 싱크탱크의 연구원들은 거의 매일 부시의 정권인수팀이나 각료 지명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취임 후에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내각 인선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미국 외교정책을 사실상 좌우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펜타곤 출신들이 장악했다는 점이다. 국가안전보장회의 정회원은 대통령, 부통령, 국무장관, 국방장관인데, 딕 체니 부통령, 콜린 파월 국무장관, 럼스펠트 국방장관 등 펜타곤 출신이 3명이나 된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당시 딕 체니는 국방장관이었고, 콜린 파월은 합참의장이었다. 럼스펠트는 포드 행정부 당시 국방장관이었다. 미국의 외교정책을 좌우하는 주요 포스트에 펜타곤 출신이 포진했다는 것은 세계 각국 입장에서 여간 껄끄러운 일이 아니다.

    새로 출범하는 부시 행정부는 벌써부터 펜타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1월 둘째주 초, 부시와 딕 체니는 당선자 자격으로 펜타곤을 방문했다. 펜타곤은 전통적으로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경향이 더욱 심해졌다. 부시 당선자측이 군인들의 봉급을 대폭 인상했기 때문이다.

    인상폭이 사병의 경우 월 750달러가 올랐다. 이렇게 펜타곤의 사기를 잔뜩 올린 뒤 부시·체니 당선자들은 펜타곤을 방문해서 육·해·공·해병대 장성들에게 업무보고와 충성맹세를 받았다. 그 자리에서 그들은 국가미사일방어계획(NMD)과 전구미사일방어계획(TMD)을 추진할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다.

    부시 신 행정부의 대통령 공약 사항에는 세금을 감면하겠다는 조항이 들어있었다. 그렇다면 군인들의 봉급을 인상하는 재원은 어디서 나올까? 부시 행정부측의 대안은 부정부패가 창궐하는 러시아 같은 나라에 지원하는 금액을 과감히 끊어버리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세계 주요국과의 관계를 대결 기조로 몰고 갈 가능성이 크다. 물론 미국의 외교정책이 완전히 뒤바뀌지는 않겠지만 곁가지는 바뀔 것이 분명하다.

    또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신임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된 콘돌리사 라이스 박사(46)다. 국가안보보좌관이라는 직급은 국무장관이나 국방장관보다 아래다. 이 자리는 외교안보담당부서간의 조정역을 맡고 있다. 그러나 그 진정한 힘은 매일 대통령과 얼굴을 맞대고 중요한 외교 현안을 논의하고 조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원래 유럽전문가였던 그녀도 미국의 강력한 안보태세를 강조하는 보수주의자다.

    이 가운데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는 부시 행정부의 한반도 인맥과, 한반도문제를 보는 시각이다. 먼저 한반도 전문가 인맥. 이 인맥은 자연스럽게 차기 주한 미국대사 후보자로 연결된다. 부시 당선자의 인맥 가운데 한반도 문제를 아는 최측근은 아버지 부시의 사람인 해군 4성장군 출신 다니엘 머피(Daniel. J, Murphy)다. 그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레이건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할 때, 부시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인물이다. 머피는 원스타였을 때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보좌관을 하면서 한반도 문제를 연구한 경력이 있고, 평양을 두 번 방문하기도 했다. 머피 전 제독과 부시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부시가 해군 파이로트였던 시절 맺어졌다. 당시 부시 전대통령은 중위였고, 머피는 영관급 장교였다.

    이후 부시가 대위로 예편할 때 머피는 이미 제독이 되어 있었다. 머피는 70년대 초 조지 부시가 CIA 국장을 할 때 그의 비서실장을 했다. 이후 그는 줄곧 조지 부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조지 부시가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을 때 그는 바깥에서 선거본부장을 맡았다. 당선된 뒤에는 정부 외곽에서 중국과 한반도 문제에 깊숙이 개입했다. 평양을 두 번 방문한 것은 이 때문이다.

    두 번째로 들 수 있는 인물은 앤드류 앤티파스(Andrew F, Antippas)다. 그는 다니엘 머피가 해군 대장 재임시 그의 보좌관을 한 인물로, 다니엘의 측근이자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인맥으로 볼 수 있다. 그는 1992년∼96년까지 주한미국대사관에서 총영사를 4년 동안 역임한 경력이 있다. 앤드류 앤티파스 또한 평양을 방문한 경력이 있다.

    또 다른 인물은 제임스 줌왈트(James Zumwalt Junior) 제독이다. 해군 투스타 출신인 그는 한국을 수십 차례 방문한 경력이 있다. 주한미국대사보다는 국무부나 국방부에 들어가서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가능성이 크다. 부시 당선자의 한반도 인맥 중에 이처럼 해군 출신이 많은 것은 아버지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해군 파이로트 출신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회담 내용이 궁금하다

    또 주한 미국 대사로 거론되는 인물은 헤리티지재단의 에드윈 퓰러(Edwin Fuller) 박사다. 퓰러 박사는 레이건 대통령 당시 미국 국내 문제 보좌관과, 세금개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경력이 있다. 워싱턴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부시 당선자의 외교안보팀이 그에게 어떤 보직을 원하느냐고 질문하니, 외국 대사를 원한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사 임기가 다한 한국과 일본의 미국대사관에 부임할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사람은 아시아태평양정책연구소의 더글러스 폴(Douglas A Pall) 소장이다. 그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당시 국가안보위원회(NSC) 아시아 담당 보좌관을 지낸 경력이 있다. 폴 소장은 한반도 정책 강경파다. 2000년 3월 미 하원에서 페리보고서에 대한 청문회가 열렸을 때, 그는 “클린턴의 대한반도 정책과 페리보고서는 매우 회의적이고 엉터리며, 혼선을 빚고 있다”고 강력히 비판한 바 있다.

    그리고 꼽을 수 있는 인물이 찰스 카트만 한반도 평화회담 특사, 토마스 허바드 전 국무부 동아태담당 부차관보, 스티븐 솔라즈 전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동아태소위 위원장 등이다.

    한국 언론에 많이 보도된 리처드 앨런(Richard Allen)이 부임할 가능성도 있다. 앨런 연구소장인 그는 레이건 대통령 초기에 안보보좌관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80년대 초 레이건과 전두환을 만나도록 하고, 당시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중이던 DJ를 미국으로 망명시키는 데 막후 조정역을 한 당사자다. 말하자면 DJ를 풀어주는 대가로 레이건 대통령 취임식에 전두환 대통령이 참석할 수 있도록 주선한 것이다.

    다음은 한반도 문제를 보는 시각이다. 워싱턴 소식통에 따르면 부시 당선자의 외교안보팀이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6·15 남북정상회담 당시 평양 순안비행장에 도착한 DJ와 김정일이 자동차 안에서 40분동안 벌인 회담 내용이다. 미국은 두 정상의 대화 내용을 세 가지 정도로 보고 있는데 그 중 두 가지는 이미 풀었다는 것이다. 그 첫째는 김정일 위원장이 DJ에게 한 부탁이다. 이 부탁은 DJ가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을 주선해달라는 것이었는데, 무산되었다. 두 번째는 일본의 모리 총리가 평양을 방문하도록 노력하자는 것이었는데, 이 또한 성사되지 않고 있다. 클린턴과 모리 총리의 방북은 둘 다 공화당 반대로 수포로 돌아갔다. 공화당이 이를 반대하고 나선 것은 북한의 미사일과 핵위협을 확실하게 제거하기 전에는 방문할 수 없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미국은 자동차 회담의 마지막 논의를 주한미군 문제로 보고 있다. 따라서 부시 당선자의 외교안보팀은 김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할 때 주한미군과 관련해서 중대 발표를 할 것으로 보고있다.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이 불발된 이후 대북 문제를 다루는 주도권은 부시 진영으로 넘어갔다. 부시 행정부에서 새롭게 등용된 국무부, 국방부의 최고위급은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군사안보 전문가들이다. 리처드 아미티지, 폴 월포위츠(국방부 부장관 지명), 제임스 켈리, 로버트 메닝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민주당 집권 8년 동안 대학과 연구소, 의회 등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연구와 분석을 계속했다. 그래서 때로는 외회보고를 통해, 때로는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하여 끊임없이 민주당의 외교정책을 문제삼았다.

    부시 행정부의 대한반도 정책은 아마 2∼3개월 뒤면 구체적으로 나올 것이다. 이는 아마 김대중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할 즈음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방문과 관련해서 DJ는 연두기자회견에서 3월쯤 미국을 방문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아직 부시 행정부에서는 답변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부시 행정부는 아직 한국 정부 문제를 우선 순위에 놓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현재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분야는 러시아와 북한이다. 이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의 영광을 되찾자며 과거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도 곧 러시아를 방문할 계획이다. 물론 과거 냉전시대처럼 북한과 러시아가 동맹을 맺어 미국과 일본에 대항하는 축을 만들 수는 없겠지만, 새로 출발하는 부시 행정부로서는 눈에 거슬리는 움직임이다. 그래서 부시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앞서 언급한 대로, 과거 옐친 시대부터 있었던 대러시아 경제지원을 끊을 가능성이 크다. 돈줄을 끊어 푸틴의 발목을 잡겠다는 계획인데, 이를 가시화하는 방법은 미 정부의 대외 예산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공산이 크다.

    이 같은 대외 예산 삭감은 북한에 대한 지원 삭감으로도 바로 연결된다. 공화당이 북한에 경수로를 지원하는데 반대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미국의 미사일 대북조정그룹회의에서는 북한에 경수로 2기를 건설해 주기로 합의한 내용을 개정하여, 경수로 1기와 석탄 화력 발전소 6기를 지어주자는 제안이 나왔다. 이전에도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인 콘도리자 라이스 등 공화당 안보전문가들은 제네바 합의를 ‘돈을 주고 핵개발을 미봉한 졸작’이라고 평가해왔다. 경수로 지원은 제네바 합의의 미국측 이행사항이다. 공화당은 그 동안 북한이 경수로를 플루토늄으로 전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를 짧은 기간에 설치할 수 있는 화력발전으로 바꾸자고 주장해왔다.

    항상 그래왔지만 공화당 진영은 철저하게 국익과 대아시아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한반도와 북한 문제를 고려하고 있다. 즉 북한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거나 개혁하지 않는데도 미국이 북한을 계속 지원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다. 실제로 공화당측은 부시 당선자가 워싱턴에 도착하기 이전부터 치밀하게 클린턴 정권을 견제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2000년 12월18일 공화당 상·하원 지도자 11명은 클린턴 대통령에게 ‘북한과의 미사일 협상을 중단하고 차기 정부에 넘겨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백악관에 전달했다. 이 편지에는 공화당 상원 원내총무 트랜드 로트 상원의원과 데니스 헤스터트 하원 의장 등 공화당의 거물 정치인 11명이 서명했는데, 백악관은 그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런데 워싱턴의 의회 소식통은 이 편지의 내용 가운데는 “성급하거나 무분별한 북한과의 협상 타결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우리들은 대통령이 면밀하게 검토하지 않은 새로운 대북정책에 국가와 차기 행정부를 구속시키지 말 것을 촉구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움직임은 이전부터 감지되었다. 미 하원 공화당 정책위원회는 2000년 7월 중순 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기 직전 “클린턴과 앨고어 민주당 정부의 북한 유화정책은 오히려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도와준 진짜 미친 정책(truly mad policy)이다. 차기 미국 행정부는 대북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정책 견해서를 작성해서 하원의원들에게 열람시킨 바 있다. 이 정책보고서는 또 “미·일·한국 등 세 나라가 협력하여 북한에 건설중인 경수로 발전소 건설사업을 중지하고 화력 또는 수력발전소 건설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화당의 대북관은 한마디로 지난 8년간 클린턴 정권이 북한을 상대로 펴온 온건 유화정책은 잘못된 것이며, 북한은 아직도 믿을 수 없는 집단이라는 시각이다. 따라서 온건·유화 정책보다는 강력한 힘을 배경으로 한 외교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주한미국대사관 무능하다

    조지 부시 당선자 외교안보팀이 한반도를 보는 시각과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또 한 가지는 그들이 현재의 주한미국대사관 진용을 무능하다고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화당이 이런 시각을 가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보스워스 대사가 남북정상회담을 사전에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이틀 전에 한국 정부의 통보로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또 미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2000년 7월23일까지 주한미국대사관에서 근무하다 워싱턴으로 돌아간 리처드 A 크리스텐슨 전 주한미국대사관 부대사의 보고서가 특히‘친 DJ 일색’이었다는 것이다. 공화당 외교안보팀은 이 때문에 미 국무부가 한반도 상황을 잘못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공화당이 주한미국대사관 진용을 무능하다고 보는 또 한 가지 이유는 경의선을 연결하면서 남북이 발표한 비무장지대 지뢰 제거 문제 탓이다. 비무장지대는 원래 유엔군 관할이다. 그런데도 한국은 이를 북한과 단독으로 협상해 발표 하루 전날 유엔군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스워스 대사의 임기는 어차피 2월 말까지다. 그래서 부시 행정부는 3월 중으로 공화당계 인물로 주한 미국 대사를 임명할 계획이다.

    햇볕정책을 통해 대북 포용 정책을 펴고 있는 한국이 유념해야 할 사안은 공화당의 이런 정책 발표가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 나왔다는 점이다. DJ 정부가 북한을 보는 시각과, 물리력을 가진 슈퍼강국 미국에 새롭게 들어선 외교안보팀이 북한을 보는 시각이 크게 다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지 부시 당선자의 외교안보팀은 최근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국에서 미군 철수 주장이 나오고, 반미 구호가 퍼지는 점을 조지 부시 외교안보팀은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DJ에 대한 비판론도 조심스레 일고 있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최근 공화당의 일부 의원들이 미국에 망명중이던 DJ가 1983년 12월20일자 ‘LA 타임스’에 쓴 기고문을 읽고 있다고 전했다. 당시 DJ는 레이건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쓴 이 기고문에서 “레이건 대통령의 파일 속에는 한국 민주주의가 있는가?”라며, 한국의 군부 독재를 용인하려는 레이건 행정부에게 화살을 날렸다는 것이다.

    워싱턴의 이 소식통은 “공화당 의원이 이 기고문을 다시 읽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이는 현재 DJ 치하에서, 당시 DJ가 레이건에게 따진 원칙들이 실현되고 있느냐를 되묻는 것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시각은 분명히 다르다. 그래서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정책 가운데 하나인 한반도 정책은 일방적인 당근 정책보다는 채찍과 당근을 들고 북한이 선택하도록 할 가능성이 크다. 문민정부 당시 안기부 제 2차장을 역임한 세종대 김정원 교수(국제정치학)는 지난 12월 워싱턴을 방문해서 워싱턴 정가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돌아왔다.

    김교수는 “향후 북한이 적극적으로 대미 협상에 임하고, 핵과 미사일 문제를 투명하게 처리하고 약속을 이행한다면, 부시 정권도 클린턴 행정부와 다름없이 북한 개방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갈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포기하지 않고, 가장 적은 대가를 지불하면서 최대의 지원을 유도하는 방식을 고수한다면, 부시 행정부는 강경책을 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또 “부시 당선자의 세계 전략은 미국의 영토 보존과 경제적 번영, 자유민주주의 이념 수호, 동맹국 보호 등 미국의 이익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에 집중될 것이다. 그 전략의 중심에 현재 국방장관으로 지명된 럼스펠트가 쓴 ‘럼스펠트 보고서’가 있다”고 덧붙였다.

    럼스펠트 보고서는 포드 대통령 시절 국방장관을 지냈고, 이번 부시 행정부에서 다시 한 번 국방장관으로 지명된 도널드 럼스펠트가 1998년에 전세계의 핵과 미사일 확산 실태를 조사한 것이다. 보고서의 내용은 기존의 5대 핵보유국을 제외한 어느 나라도 15년 내에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없을 것이라는 95년 CIA 보고서를 완전히 뒤집었다.

    예컨대 불과 5년 정도면 한 국가가 대량파괴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고, 미국이 제때에 이를 감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보고서 발표 직후 북한의 금창리 핵시설 의혹과 대포동 미사일 발사 실험이 진행되어 놀라운 적중율을 인정받았다. 이 보고서는 미 본토에 대한 위협은 15년 뒤의 일이 아니라, 현존하는 위협이라는 점을 확인하며, NMD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

    그래서 공화당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동북아 지역 안보에 미칠 영향을 강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북한 미사일이 이란과 이라크로 수출된다면 중동의 세력 균형이 무너지고, 그 여파는 전세계로 전파된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한반도 안보를 유지하기 위해 한·미·일 동맹을 기본축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부시 행정부는 한·미·일 공조를 중시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 정부와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선공후득(先供後得)’은 DJ 정부의 주요 대북정책 기조다. 이 개념은 1998년과 1999년 차관급 회담이 거듭 무산된 이후 그때까지의 원칙이었던 상호주의를 대신해서 등장했다. 우리가 하나를 주면 북한도 하나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 상호주의라면, 선공후득은 우리가 먼저 줌으로써 북쪽도 우리에게 뭔가 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것이다. 비전향 장기수와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해법은 이 선공후득 정신에 바탕을 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관과는 다르다. 부시 행정부는 그야말로 단호한 상호주의다. 그래서 북한 사회의 개혁·개방 움직임이 없는 데도, 한국정부가 경의선 복원, 금강산 관광, 경제 원조 등 일방적인 대북 사업을 계속한다면 한·미·일 공조를 강조하는 부시 행정부와 우리 정부는 불협화음을 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이 같은 부시행정부의 한반도 정책과 인맥들을 면밀하게 연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는 부시 행정부와 어떻게든 선을 이을 수 있는 인물을 찾아야 한다.

    서로 다른 한국과 미국의 대북관

    문제는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고어 후보가 당선될 것으로만 보고 부시 당선자와 연결되는 인맥을 거의 개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리 정부는 부시 행정부와 연결되는 이렇다 할 인맥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가 이런 상황을 돌파하지 않는다면 한미관계와 햇볕정책은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현재 한국인으로서 부시 당선자 집안과 가장 가까운 사람은 재미 교포인 김영훈 목사로 알려지고 있다. 버지니아주 출신인 그는 백악관의 100인 위원회(President’s Club) 멤버다. 이 조직은 과거부터 공화당에 있던 조직으로 한 주(州)당 2명씩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이 회원들은 1년에 한두 차례씩 백악관에 초청되어 대통령으로부터 정책을 브리핑받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건의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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