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전선부를 비롯한 조선로동당의 4개 대남 부서를 북한에서는 ‘3호청사’로 부른다. 대남공작 부서가 3호 청사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민국 총무처는 경기도 과천시에 여러 동의 건물을 지어놓고 정부 기관을 입주시켰는데 이를 가리켜 ‘과천 정부청사’라고 한다. 1982년 그와 똑같이 조선로동당도 중앙청사를 짓고 로동당 산하 부처를 입주시켰다. 이러한 건물에는 1호 청사·2호 청사…7호 청사란 이름이 붙었다.
정부 부처 중에는 업무 성격상 타 기관과 함께 있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국방부나 국가정보원·대검찰청·감사원·경찰청처럼 비밀을 다루는 군사·정보·사정 기관이 그것이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기관들은 종합청사에 들어가지 않고 단독 청사를 마련하고 있다.
조선로동당도 같은 이유로 비밀을 지켜야 하는 대남공작 기관은 단독 청사를 갖게 했다. 통전부를 비롯한 4개 부서는 일련 번호에 따라 3호 청사에 들어가야 하는데, 3호 청사는 평양시 대성구역 합장동에 따로 지어준 것이다. 이런 이유로 ‘대남공작=3호 청사’라는 등식이 만들어졌다.
왜 남조선 혁명인가
현재 한국에는 전문적으로 대북공작원을 양성하는 기관이 없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은 HID로 불렸던 육군 첩보부대 예하에 대북공작원을 양성하는 기관을 운영했다. HID가 관리했던 대북공작원들은 북한에 들어가 주요 시설을 파괴하고 첩보를 수집했다.(‘신동아’ 2001년 1월호에 실린 ‘피의 보복 부른 공작원의 세계’ 참조). 그러나 한국은 19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 후 테러와 폭파로 점철된 대북공작을 중단했다.
하지만 북한은 7·4 남북공동성명 후에도 76년의 8·18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83년 아웅산 사건, 87년의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 등 테러와 폭파를 거듭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가’로 지정해, 북한과의 경제 교류를 일체 봉쇄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들어 한국이 북한과의 경제 교류를 늘리려 하자,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가 대신 ‘불량국가(rogue state)’로 지정했다. 테러지원국가와 불량국가는 내용상 큰 차이가 없다. 여기서 북한 분석가들은 미국은 김대중 정부의 요구에 부응해 주는 척 하기 위해 불량국가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을 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북한의 4대 공작기관이 노리는 것은 남조선 혁명이다. 1980년대 대학 운동권에서는 한국의 사회의 발전단계를 놓고 ‘식민지 반(半)자본주의 단계다’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단계다’ 등의 논의가 있었다. 식민지 반자본주의를 줄여서 ‘식반자론(植半資論)’,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단계는 ‘신식국독자론(新植國獨資論)’이라 불렸다. 이 두 이론은 남한을 미국의 ‘식민지’ 혹은 ‘신식민지’로 보는 차이가 있지만 미국의 식민지로 보는 공통점이 있다. 또 남한의 경제발전 단계는 반(半)자본주의냐, 정부가 자본주의를 이끄는 국가독점자본주의냐의 차이는 있으나 자본주의 단계로 보는 공통점이 있다.
식민 지배를 벗어나 독립하는 것을 북한에서는 ‘해방’이라고 한다(마찬가지로 북한 인민을 공산 독재 체제로부터 벗어나게 할 때도 ‘해방’이라고 한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는 치명적인 모순을 안고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를 거쳐 공산주의로 발전한다’는 역사 발전 이론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는 이러한 역사 발전을 가로막는 자본가 세력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세력을 꺾고 사회가 사회주의·공산주의로 발전하도록 하는 것을 ‘혁명’이라고 한다(그러나 동구권이 무너져 민주정부가 들어섰을 때도 세계 언론은 이를 ‘혁명’ 혹은 ‘시민혁명’이라고 표현했다).
남조선 혁명이란 남조선을 식민지배와 모순된 자본주의의 질곡에서 일거에 벗어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북한 통전부는, ‘북조선은 1945년 공산화와 더불어 이러한 과제를 달성했으나, 남조선은 미군이 주둔함으로써 이러한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따라서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해방과 혁명 그리고 통일을 동시에 이루는 길이다’는 신념을 창출했다. 이러한 남조선 혁명을 이루기 위해 발로 뛰는 조직이 사회문화부다.
한국은 북한보다 20배나 잘 산다. 그런데도 지하당을 구축하기 위해 장기간 체류해 남한 실상을 잘 아는 사회문화부 요원들은 자수하는 경우가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공작원들이 품은 ‘신념’에 있다.
한국의 대공수사관은 약간의 수사 교육과 이념 교육을 받은 후, 자신의 경험과 노력만으로 이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한다. 그러나 북한은 대학 과정을 통해 대남공작원을 양성하고 있다.
교육을 책임진 작전부는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이 대학은 광복 직후 강동학원으로 출범했다가 3·1학원→서울정치학원→금강학원→금성정치군사대학으로 개칭되며 김정일정치군사대학으로 발전해 왔다(금성정치군사대학의 ‘금성’은, 김일성에서 ‘일’자를 빼고 김을 ‘금’으로 읽어서 만든 이름이다).
북한 귀순자들은 북한 최고 명문인 김일성대학(김대)의 군사학부가 바로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이라고 주장한다. 김대 군사학부인 만큼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의 입학 조건은 매우 까다롭다. 우선 고등중학교(우리의 중고교를 합쳐 놓은 것으로 6년제다)의 성적이 좋아야 한다. 이러한 학생들 중에서 성분이 좋고 신체검사를 통과한 학생만 입교하는데, 입교자는 매년 200명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여학생은 선발하지 않는다고 한다(작전부에는 여자가 없다는 뜻이다).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는 7개 반(班)이 있다. 항해1반·항해2반, 기관1반·기관2반, 통신반, 안내1반·안내2반이 그것이다. 항해1·2반은 공작선 운영자를 키우는데, 이 과정을 이수하면 공작선 항해사를 거쳐 선장이 된다. 기관1·2반은 공작선의 엔진 부분을 책임진 기관사를 양성한다. 항해와 가관반의 차이를 비유해서 말하면, 자동차 운전술과 도로 지리를 배우는 것이 항해 과정이고, 자동차 정비술을 배우는 것이 기관 과정이다. 한국해양대학을 비롯한 한국의 학교에서도 항해와 기관 과정은 분리돼 있다.
통신반은 공작모선과 연락소의 통신을 담당한다. 이러한 통신을 감청·해독하고, 공작모선의 움직임을 좇는 것이 ○○○○부대로 불리는 한미연합 감청부대다. 한미연합 감청부대는 98년 12월 한국에서 민혁당을 지도해온 사회문화부 소속 공작원 윤태림을 태우기 위해 여수 쪽으로 접근해온 공작모선의 통신을 완벽히 추적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북한 공군의 미그 19기 두 대가 야간 비행 훈련을 하다 공중 충돌한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이처럼 한미연합 감청부대의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에 공작모선과 연락소는 반드시 음어와 암호로 교신한다. 때에 따라서는 한미연합 감청부대를 속이기 위해 허위 전파를 발사할 때도 있다. 일반 언어를 음어나 암호로 바꾸는 것은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로직(logic)이 있다. 통신반에서는 이 로직을 배운다.
안내 1·2반은 사회문화부 소속 공작원을 한국에 침투시키는 안내조 요원을 키운다. 공작모선에서 내린 반잠수정을 몰고 가 공작원을 한국에 침투시키고, 북한으로 복귀하는 공작원을 싣고 오는 것이 안내조다. 안내반에서는 사격·폭파 같은 특수 공작, 남한 해안의 특성과 조류 변화 따위를 학습한다. 이러한 교육 때문에 안내조는 인민군 정찰국 요원만큼 강인한 체력이 요구된다.
작전부가 운영하는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은 당연히 학비가 없다. 학생들은 좋은 식사를 제공받으며 기숙사 생활을 한다. 월급은 없지만 담배와 사탕·과자를 제공받는다. 이 학교에서 학생 1명을 키우는 데 드는 돈은 김대생 5명을 키우는 교육비와 맞먹는다고 한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자부심을 심어주기 때문에 작전부 요원을 비롯한 북한 공작원은 남한의 발전상을 보아도 쉬 귀순하지 않는 것이다. 학업을 마친 학생들은 100% 작전부 등에 취직한다. 건강이 나빠 퇴교한 학생도 워낙 신분과 실력이 좋기 때문에, 각군(郡)에 있는 조선로동당 군당 위원회 지도원으로 채용된다고 한다.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을 마치고 작전부에 배치된 사람은 165원의 월급을 받고, 1년이 지나면 185원을 받는다. 북한 일반 노동자들의 봉급이 60∼70원이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상당한 고소득이다. 결혼하지 않은 북한 공작원들은 사회안전성(경찰청에 해당) 산하 인민경비대가 지켜주는 위수구역 안의 관사에서 생활한다. 위수구역 안에는 처녀가 없어 이들은 위수구역 밖에 사는 여자들 중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신원조회를 한 후 이상이 없을 때만 결혼한다. 결혼 후 여자는 위수구역 안에 들어와 경제적으로는 훨씬 좋은 환경에서 살림을 한다.
사회문화부는 위탁교육
작전부가 운영하는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은 사회문화부를 비롯한 타 부서가 뽑은 요원을 위탁 교육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작전부로 갈 학생들과 뒤섞여 공부하지 않고 별도의 장소에서 개별교육을 받는다. 일반 대학을 다니다 이 학교로 옮겨오는 학생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울산 부부간첩으로 생포된 최정남이다. 최정남은 사리원대학을 다니다 공작원으로 선발돼 이 대학에 들어와 교육을 받았다.
대남공작은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서 위탁교육을 받은 사회문화부 요원과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을 졸업한 작전부 요원이 유기적으로 결합되면서 이루어진다.
해상으로 침투할 경우 공작모선을 이끌고 연락소를 출발해 반잠수정을 내릴 때까지는 항해반 출신의 선장이 최고 책임자다. 공작모선에서 반잠수정을 내려 해안으로 침투할 때까지는 안내조 조장이 ‘왕’이다. 그리고 한국 해안에 상륙한 다음부터는 사회문화부의 공작조장이 모든 것을 책임진다.
잠시 북한 공작원들이 작전 중에 먹는 음식을 살펴보기로 하자. 98년 묵호 앞바다에서 공기색전증으로 사망한 추진기 기수의 시체가 발견됐을 때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팀이 부검했다. 국과수는 추진기 기수가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이 호박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왜 간첩은 호박을 먹은 것일까. 이유는 어렵지 않게 추정된다.
앞서 밝혔듯 공작모선과 반잠수정은 속도가 매우 빠르다. 빠른 배는 하나같이 요동이 심하다. 더구나 날씨가 나빠져 파도가 거세지면 80t에 불과한 공작모선은 마구 흔들릴 수밖에 없다. 유고급 반잠수정은 이보다 낫겠지만 원체 배가 작기 때문에 날씨가 나쁘면 많이 흔들린다고 한다. 심한 요동에 시달리면, 아무리 뱃사람일지라도 항해조·기관조·통신조·안내조 그리고 한국으로 침투할 공작조 모두 멀미에 시달리게 된다. 이럴 경우 밥은 아예 먹지 못하고 생계란이나 호박죽을 먹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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