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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동지를 사수하라”

김정일 서울답방 2박3일 총력 경호작전

  • 이정훈 hoon@donga.com

“1호 동지를 사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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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전문가들은 ‘경호는 과학이다’고 말한다. 경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테러 의지를 가진 세력이 최고지도자에게 접근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테러 의지를 가진 세력은 최고지도자 개인이나 최고지도자의 신념에 강력히 반대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때문에 경호 관계자는 국내외 정치 상황을 세밀히 관찰해 어디에서 반대세력이 나올지부터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세력이 최고지도자에 과도하게 접근할 경우 조심스럽게 차단하여야 한다.

10·26사건이 일어나기 전 부산과 마산 일대의 대학생들이 ‘유신 철폐’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일으켰다(釜馬사태). 부마사태에 대해 박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은 탱크와 병력을 동원해서라도 강력히 진압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글라이스틴 미국대사와 자주 접촉해 유신의 문제점을 알고 있던 김재규는 그 반대 입장이었다. 김재규와 차지철은 부마사태 대처 방안을 놓고 한바탕 설전까지 벌였다. 냉철한 경호원이라면 이때부터는 김재규 부장이 박대통령에게 접근하는 것을 차단했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넋을 놓고 있었고, 그러는 사이 김재규는 궁정동 안가에서 연회를 연다면 박대통령과 차실장을 초청해 범행을 감행했다.

10·26 사건은 경호실이 ‘경호는 과학이다’는 명제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났다. 경호는 ‘무술의 달인’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냉철한 머리를 가진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이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우리 사회는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다. 야당은 김정일 위원장이 답방하려면 6·25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해 사과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여당은 국가보안법을 개정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경호실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남(南南)갈등이 점점 커가는데 주목하고, 과학적인 경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 한 정치분석가는 재미 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여당 쪽에서는 국가보안법을 개정 내지는 폐지하자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이들은 김대통령을 지지하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주장이 힘을 얻으면 얻을수록, 보안법을 지키려는 세력도 똘똘 뭉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이 방북하고, 조선로동당의 대남 담당 김용순(金容淳) 비서가 남한을 방문한 것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보안법 위반이다. 하지만 통치권 차원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그 누구도 시비를 제기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도 통치권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이라 보안법과는 상관이 없다. 이러한 교류가 활성화되면 결국 보안법은 ‘죽은 법’이 될 테인데, 왜 자꾸 개정을 주장해 ‘살려놓는지’ 모르겠다. 김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지지하는 세력은 반대파들이 뭉칠 수 있는 소지를 주지 않는 지혜도 갖춰야 한다.”



10·26 사건의 경호는 문세광 사건 때보다 못한, 사상 최악의 경호였다. 문세광 사건 때는 그래도 박종규 실장이 뛰어나와 암살자와 대적자세를 취했으나, 10·26사건 때의 차지철 실장은 ‘혼자 살기 위해’ 대통령을 버리고 화장실로 도망쳤다. 박대통령은 두뇌도 없고 용기도 없는 자들에게 자신의 목숨을 맡겼기 때문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그리고 한국은 헌법이 바뀌고 공화국의 차수가 바뀌는(4공에서 5공으로) 혁명적인 변화를 맞았다. 경호의 실패는 곧 공화국 차수의 변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主君과 護衛무사 관계를 재건한 5공

1980년 제5공화국을 이끌게 된 전두환 대통령은, 육군 준장 시절 경호차장보를 맡아 차지철 실장 밑에서 호된 ‘시집살이’를 한 적이 있었다. 10·26 사건 직후에는 정동호(鄭東鎬) 육군 준장이 경호실장을 맡았다. 정준장은 81년 7월까지 경호실장을 하다 소장으로 진급해 나가고, 전두환 대통령의 최측근인 장세동(張世東) 육군 준장이 후임 경호실장에 임명되었다. 3공은 박종규, 유신정권은 차지철에 의해 경호실의 성격이 결정됐다면, 5공 경호실은 장세동씨에 의해 그 성격이 결정되었다.

장씨는 10·26사건 이후 극도로 위축된 경호실을 정상화하는데 집중했다. 여기에 사용된 도구는 장씨의 독특한 성격이었다. 한 소식통의 말이다. “장씨는 한마디로 사심(私心)이 없는 사람이다. 자신의 진급이나 영달에는 관심이 없었다. 모든 기준을 전대통령에게 맞추고, 전대통령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데만 주력했다. 경호원들에게 많이 베풀었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경호원들은 장씨를 좋아했다.”

장세동씨의 이러한 캐릭터는 ‘주군(主君)’인 전대통령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었다. 한 소식통의 말이다. “경호원을 상대하는데 있어 가장 탁월했던 사람은 전대통령이다. 박대통령이 ‘과묵한 카리스마’로 경호원들을 지배했다면, 경호원의 생리를 알고 있는 그는 ‘베푸는 카리스마’로 경호원들을 장악했다. 전대통령은 경호원의 이름을 외워두었다가, 부를 땐 항상 이름을 불렀다. 경호원들에게 ‘아이들은 잘 크는가’ 하고 자상하게 묻기도 하고, 부인들의 생일을 기억해 두었다가 선물을 보내주기도 했다. 혼자 먹지 않고 나눠 먹으니, 청와대 바깥에서는 전대통령에 대해 뭐라고 욕을 하든, 경호원들은 전대통령을 좋아했다. 전두환 대통령과 장세동 실장 시절이 경호실로서는 가장 황금기였던 것 같다.”

전대통령은 유난히 새벽 순찰이 많은 지도자였다. 경호원들로서는 이러한 순찰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베푸는 카리스마’ 때문에 그들은 충성을 다바쳤다. 덕분에 전대통령과 경호실은 전형적인 주군과 호위 무사 관계를 형성했다. 그러나 이러한 신뢰에도 불구하고 경호실은 아웅산 사건을 막지 못했다. 경호 측면에서 본 아웅산 사건은 ‘경호실이 대통령을 따라가지 못해 일어난 사건’으로 정리된다.

박대통령은 해외 순방을 거의 하지 않았으나, 전대통령은 적극적으로 나갔다. 잦은 새벽 순찰로 공무원을 긴장시키던 전대통령은 그 연장선 상에서 ‘UN을 무대로 한 남북 대결에서 한 표라도 더 얻어 북한을 이기자’는 취지로 경호 취약 지역인 아시아나 아프리카 같은 제3세계를 자주 방문했다. 이 과정에 일어난 것이 아웅산 사건이다. 미얀마는 남북한 동시 수교국이지만 북한과 훨씬 더 가까웠다. 전대통령은 미얀마를 우리 편으로 끌이겠다는 생각으로 방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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