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3월호

He Think, 축구는 과학이다!

  • 박정욱 jwp94@sportsseoul.com

    입력2005-05-03 14: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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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딩크 감독은 세계적인 명장이지만, 스타 플레이어 출신은 아니다. 그는 1946년 11월8일 태어났으니 올해로 55세다. 선수시절은 네덜란드와 미국 프랑스를 전전하며 그럭저럭 보냈다. 포지션은 미드필더.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했다. 1960∼70년 중반까지 그의 고향팀인 스포르트 바세벨트를 시작으로 그라프샤프 등 2∼3부 리그를 거쳐 PSV아인트호벤, NEC브레다 등에서 프로생활을 했다. 76년 미국 워싱턴 디플로매츠, 77년 미국 새너제이, 1978~81년 프랑스 니즈메강에서도 활약했다. 국제대회 경력은 없다. 물론 A매치 골도 없다.

    반면 그의 지도자 생활은 화려했다. 친정팀인 그라프샤프에서 4년 동안 유소년 코치를 지냈고 PSV아인트호벤에서 3년간 코치수업을 한 뒤 86년 아인트호벤 감독으로 부임해 90년까지 재임했다. 이때 그는 지도자로서 탄탄한 초석을 다졌다. 88년 유럽축구연맹(UEFA)컵 우승, 86~89년 네덜란드리그 4연속 우승, 88~90년 네덜란드 FA(축구협회)컵 3연속 우승 등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성적을 남겼다. 그리고 90~91년 터키 페너바흐체 이스탄불을 거쳐 91년 스페인리그로 옮겨 발렌시아를 94년까지 지휘했다.

    유럽리그에서 명성을 쌓은 그는 95년부터 98년까지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을 이끈다. 4년 동안 재임하며 96유럽선수권대회와 98프랑스월드컵이란 두 차례의 굵직한 대회를 치렀고 나름대로 성과도 남겼다. 98프랑스월드컵에서는 네덜란드를 4강에 진입시켰다. 또 그는 쿠코, 오베르마스, 다비즈 등 대스타를 발굴했다.

    곧이어 그는 스페인 명문구단 레알 마드리드의 사령탑으로 임명됐다. 1년 만에 스페인 레알 베티스로 자리를 옮겼고 2000년 5월까지 감독을 역임했다.

    히딩크 감독의 가족관계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3월 초, 한국에 다시 들어올 때도 가족을 데려오지 않고 혼자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레지덴셜룸에서 지낼 계획이다.





    왜 히딩크인가

    대한축구협회는 월드컵과 올림픽이 열리는 2년을 주기로, 성적부진의 책임을 물어 감독들을 물러나게 한다는 부담을 안고 히딩크 감독을 선택했다. 왜 그인가? 감독 영입에 전권을 쥐었던 이용수 기술위원장(세종대교수)의 설명에서 그 배경을 알 수 있다. 이위원장은 한국 감독이 한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 외국인 감독의 영입을 추진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첫째 누가 봐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유명한 감독이고, 둘째 한국이 높은 벽으로 느끼는 유럽 감독일 것, 셋째 크라머, 비쇼베츠 등 그 동안 한국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한 동구권 감독은 배제한다는 것 등이었다. 여기에 지금 당장 한국 대표팀을 맡을 수 있는 지도자면 금상첨화였다.

    몇 사람이 물망에 올랐다. 98프랑스월드컵에서 프랑스에 첫 우승의 영광을 안겨준 엠므 자케, 한국 프로축구 부천 SK 감독을 지낸 니폼니시, 크로아티아를 98프랑스월드컵 3위로 이끈 블라체비치 감독 등.

    한국 축구 사정에 밝아서 적임자로 손꼽히던 니폼니시 감독은 협회의 미온적이고 때늦은 움직임으로 일본 J리그 산프레체 히로시마 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블라체비치 감독은 한국행에 적극적이었으나 동구권이라는 점에서 차순위로 밀렸다.

    따라서 대한축구협회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영입을 추진한 감독은 자케와 히딩크였다. 이 가운데 자케는 한국행에 난색을 표했다. 남은 것은 히딩크 감독뿐이었다. 그 역시 한국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축구협회 가삼현 국제부장이 영입작전에 뛰어들어 히딩크의 마음을 움직였다. 가부장이 현지에서 어떻게 히딩크 감독의 마음을 한국 쪽으로 끌어당겼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왜 히딩크인가. 앞서 말한 여러 조건에 부합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영원한 라이벌 일본도 히딩크 감독이 한국대표팀 감독으로 영입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처음에는 ‘설마’라는 반응을 보였다. 히딩크라는 거물급 감독이 세계축구의 변방인 한국에 와 감독을 맡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히딩크 감독은 세계 축구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고 가는 곳마다 좋은 성적을 남겼으니 한국으로서는 기대하는 마음이 클 수밖에 없다. 월드컵을 유치해놓고 16강에 오르지 못한다면, 잔치 벌여놓고 남에게 떡이나 선사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히딩크’라는 처방전을 들고 16강의 염원을 풀려는 것이다. 히딩크를 택한 또 한 가지 이유는 유명 감독을 받아들여 한국 축구의 기틀을 새롭게 잡아보려는 거시적 안목일 것이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이번 월드컵은 외국인 감독으로 치르지만 다음에는 결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번이 마지막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국 국가대표팀이 히딩크 감독 체제로 출범하면서 보여준 가장 뚜렷한 변화는 전술시스템의 교체다. 한국 축구는 그 동안 대인방어를 주 개념으로 하는 3-5-2시스템으로 일관해왔다. 박종환 감독이 그랬고 차범근 허정무 감독 때도 스리백이었다. 전술상의 개념 차이가 있었지만 틀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전임 감독들은 한국 선수들에게 새로운 전술을 익히게 하는 것은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몸에 익은 스리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전술에 변화를 가져오려고 했다.

    그러나 히딩크는 한국 대표팀의 울산 훈련을 지휘하면서 곧바로 포백 일자(一字) 수비가 핵심인 4-4-2시스템을 도입했다. 4-4-2시스템이 한국 축구의 근간을 흔들 만큼 대단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 이미 한국 프로축구에서 여러 팀이 포백 수비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의 4-4-2시스템은 다소 독특하다. 우리가 흔히 보는 형태의 4-4-2전술은 포백 수비가 있고 그 앞의 미드필드진은 양쪽 날개와 중앙의 공격형, 수비형 미드필더로 구성돼 있어 마름모꼴을 이룬다.

    반면 히딩크는 중앙 미드필더 2명을 수비형으로 나란히 세우고 중앙의 빈 공간에 스트라이커 중 한 명을 내려 세워 공수의 연결을 맡게 한다. 따라서 4-4-2라기보다는 4-3-3이나 4-5-1의 형태로 곧잘 나타난다. 이것은 한국 프로축구의 부천 SK에서 볼 수 있다.

    3-5-2냐 4-4-2냐는 전술의 문제다. 좋고 나쁘고는 시스템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감독이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또 선수들이 얼마나 이해하고 경기에서 소화하느냐가 관건이다. 한국 대표팀도 마찬가지다. 바뀐 시스템에 선수들이 얼마나 빨리 조화를 이루느냐가 포인트다.

    그렇다면 왜 새삼스럽게 4-4-2인가. 히딩크 감독은 “4-4-2는 전세계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기본적인 시스템이다. 장점은 쉽게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수비에서 다양한 변화가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축구는 골을 넣는 것이 최종 목적이고 이를 위한 공격전술의 기본은 숫자의 우위를 점하는 것이다. 상대 선수 11명의 개인기량을 모두 제압하고 골을 넣는 신기(神技)를 갖추지 않은 이상, 시스템과 부분 전술이 필수적이다. 이런 개념으로 보면, 포백이 스리백보다 공격적이라는 것은 틀린 말이다. 포백은 말 그대로 수비수가 4명이고 스리백은 3명 아닌가. 어느 것이 더 수비적인가. 수비수의 숫자만 놓고 보면 당연히 포백시스템이 더 수비적이다.v 그렇다면 스리백이 더 공격적인가. 이것도 정답이 아니다. 3-5-2 시스템에서 윙백들이 수비에 가담하면 수비수는 5명으로 늘어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 시스템을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변수다. 축구는 격렬하고 어느 스포츠보다 동선이 길다. 체력의 부담이 큰 종목이다. 상황에 따라 시스템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공격적일 수도 있고, 수비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포백의 기본개념은 존 디펜스, 즉 지역방어다. 일렬로 늘어선 선수들이 자기 지역을 지켜가면서 유기적으로 움직여 그물망처럼 진영을 구축해 상대방의 움직임을 제압하는 것이다. 초창기 4-4-2는 포지션별로 바둑판처럼 늘어서서 움직였지만 팀마다 변형된 형태가 등장했다. 요즘 유행하는 마름모꼴도 초기 형태의 변형이다.

    히딩크 감독의 축구 철학

    히딩크 감독은 1월12일 울산 국가대표팀 훈련캠프에 합류한 뒤 13일부터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경기 외적인 면에서 더 많은 색깔을 드러냈다. 히딩크 축구는 합리적이지만 절대권력의 카리스마가 있다.

    히딩크 감독이 가장 먼저 지시한 것이 규율의 강화였다. 선수단이 전체적으로 움직일 때는 어떤 상황이든 복장을 통일할 것, 식사시간은 전 멤버가 같이 시작해 같이 끝낼 것, 시간에 늦을 때는 벌금, 단체가 모였을 때 휴대폰이 울려서는 안 된다 등.

    이런 규율은 히딩크라는 지도자의 신념인 듯했다. 그는 1월17일 울산에서 네 차례의 연습경기를 마치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선수들이 정해진 규칙과 규율에 따르면 문제 없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엄격하게 대처할 것이다. 너무 엄해 보일지 모르지만 규율을 지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규율을 지키고 강조해온 것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고 말했다. 규율과 규칙은 히딩크 감독을 세계적 거장으로 만든 뿌리였다.

    그렇다고 히딩크 감독이 마냥 선수들을 통제하고 옥죄는 것만은 아니다. 정해진 룰만 지키면 나머지 시간은 오히려 편안하게 보낼 수 있다. 그 동안 ‘튀는 행동’으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왔던 고종수(23·수원 삼성)는 “훈련에만 열중할 수 있게 배려해줘 오히려 편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는 선수단의 공식적인 단체행동 때 정해진 규율만 지키면 별도의 통제와 지시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인 감독이 선수들을 방으로 불러들여 면담하고 개인 행동에 간섭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히딩크 감독은 꼼꼼하고 세밀한 성격이다. 모든 것을 말없이 지켜보며 일일이 챙긴다. 이는 협회 직원들이 피곤해하는 부분이고 놀라는 부분이기도 하다. 히딩크 감독은 코치나 협회 직원의 보고를 돋보기 안경 너머로 지켜보며 말없이 듣다가 한마디씩 툭툭 던지며 지시한다. 그러나 결코 무리한 요구를 하는 법이 없다.

    홍콩 칼스버그컵에 출전하기 전의 일이다. 출국을 앞두고 히딩크 감독은 협회에 홍콩 훈련구장의 상태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대회 조직위원회에서 정해준 구장을 쓰면 되는데 굳이 확인을 요구했다. 운동장 사정이 좋지 않으면 장소를 옮기겠다는 말이었다. 협회는 여자대표팀과 중국 광저우에 머무르던 국제부의 이영우 대리를 홍콩으로 급파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점검하고 홍콩에서 선수단을 맞았다. 이대리는 여자대표팀 때문에 중국으로 출장을 갔는데 남자대표팀 일에 투입되는 바람에 8년 만에 성사된 남북대결을 보지 못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울산 훈련 도중 대표팀 장비 스폰서인 나이키 직원이 참가하지 않은 것을 나무라며 선수들이 훈련하는 데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며칠 뒤 나이키 직원이 왔을 때 2시간 동안 직접 면담을 하며 야단도 치고 협조도 부탁했다. 이렇듯 히딩크 감독은 모든 일에 철두철미하다.

    훈련도 마찬가지다. 선수들의 움직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러 세워놓고 아주 자세하게 잘못을 따진다. 마치 초등학교 선생님 같다. 어떻게 드리블을 하며, 수비수를 등질 때는 어떤 방향으로 하는지 등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일일이 꼼꼼하게 설명한다. 훈련 도중 선수들과 고함을 지르고 웃고 떠들다가도 선수들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싶을 때는 호주머니에서 카세트테이프를 꺼내 녹음한다.

    히딩크는 선수들의 동향이나 기량 파악에도 남다른 안목을 보여주었다. 한국 코치들과 미팅하며 이탈리아의 안정환(페루자), 벨기에의 설기현(로열 앤트워프), 독일의 이동국(브레더 베르멘) 등 유럽에 진출한 선수들은 물론 일본의 황선홍(가시와) 노정윤(세레소 오사카)의 근황과 몸상태까지 챙겼다.

    울산 훈련을 마무리하면서 윤정환(세레소 오사카) 이을용(부천 SK)과 박재홍(상무) 등이 부상으로 빠지자 보강선수를 선발할 때 무명에 가까운 신상우(대전) 송종국(부산) 등을 지목해 한국인 코치들을 놀라게 했다. 상비군에도 없는 신상우를 거명했기 때문이다. 히딩크는 선수 파악은 베어백 코치에게, 한국의 문화와 언론상황은 얀 룰프스 기술분석관에게 맡겼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쉽게 노출하는 법이 없다. 기자회견에서도 속마음을 털어놓지는 않는다. 원칙론에 가까운 말만 되풀이한다. 울산훈련이 끝나갈 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지금까지 훈련에서 가장 인상적인 선수는 누구인가”라고. 그는 대답을 피했다. “나는 선수들을 칭찬은 하지만 비난하지는 않는다. 잘못을 지적하고 야단을 치는 것은 우리팀 내부에서만 한다. 그것이 나와 선수의 약속이고 신의다.” 욕먹을 말과 행동은 아예 하지 않는 ‘능구렁이’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선수들의 유럽 진출에 대해서도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어린 선수들이 유럽에서 뛰는 것은 전적으로 찬성한다. 네덜란드에서도 클루이베르트나 다비즈가 독일로 갈 때 반대가 많았지만 결국 성공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빅리그의 명문클럽에 입단해 벤치만 지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레알 마드리드, 유벤투스 같은 팀에서 경기에 나오지 못하고 곧 사라지는 것보다는 경기에서 계속 뛸 수 있는 팀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용의 꼬리보다는 차라지 뱀의 대가리가 되는 것이 낫다는 얘기다. 그의 축구관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말이다.

    히딩크 감독의 선수 선호도를 파악하면 단면이나마 그의 축구철학을 알 수 있다. 그가 주목하는 선수 가운데 박성배(전북)와 심재원(부산)이 있다. 박성배는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스피드, 투지를 높게 샀고 심재원을 중용하는 것은 스피드가 좋기 때문이다. 이민성(상무)도 마찬가지. 허정무 감독 시절,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던 박진섭(상무)이 경쟁에서 밀린 것이 바로 스피드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은 훈련 도중 “큰 소리로 말해라. 고함을 쳐라. 그래야 팀워크도 살고 상대선수들을 제압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파이팅과 투지를 강조한다.

    히딩크의 눈에 들려면 유럽선수에 뒤지지 않는 체력과 체격, 스피드, 전술 이해력이 필요하다. 여기에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히딩크 체제에서 선수들의 변화를 예감케 하는 대목이다.

    히딩크 감독이 규율과 규칙을 강조하다 보니 선수들과 이런 저런 마찰도 있고 재미있는 얘기도 많다. 히딩크 감독은 선수단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휴대폰이 울려서는 안 된다고 지시했다. 그런데 기자회견 도중 휴대폰이 울리자 “바로 이런 것이 규율”이라고 빗대 말하기도 했다.

    울산 훈련 때 있었던 일화다. 선수단은 엄격하지만 편안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휴대폰 벨소리가 정적을 깼다. 선수들은 물론 코칭스태프까지 서로 얼굴을 보며 어리둥절했다. 서로 내가 아니라며 눈으로 얘기를 주고받았다. 범인은 곧 밝혀졌다. 웨이터의 호주머니 속이었다. 식탁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히딩크 감독은 식사시간에도 안경 너머로 선수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한다. 선수의 행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자연히 식사시간이 길어진다. 한국사람들은 식사를 빨리 끝내니 히딩크 감독을 기다려야 한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히딩크 감독이 뷔페 식당에서 식사를 끝내고 일어나는 듯해 코치들도 따라 일어났다. 그러나 감독은 다시 음식을 접시에 담았다. 코치들은 당황할 수밖에. 히딩크 감독은 “한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밥을 빨리 먹어”라고 말했다.

    감독이 복장통일을 지시했으니 어떤 옷을 입을지 결정하는 일도 문제다. 히딩크 감독은 그 결정권을 코칭스태프 가운데 가장 나이 어린 김현태 GK코치에 맡겼다. 김 코치의 패션감각에 따라 선수단의 의상이 결정된다. 그래서 김 코치는 ‘패션 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일부는 ‘앙드레 김’이라고도 한다. 옷을 고를 때는 기후와 날씨까지 고려해야 한다. 홍콩 칼스버그컵 대회를 앞두고 훈련할 때, 포근하던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졌다. 아침 날씨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김 코치는 짧은 팔 유니폼을 입으라고 선수단에 지시했다. 그런데 잘못된 선택으로 선수들이 추워하는 바람에 김 코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복장통일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뿐 아니라 기술위원들이나 협회 직원도 예외가 아니다. 트레이닝복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한 협회 직원은 식사시간마다 히딩크 감독의 눈을 피하느라 제대로 끼니를 챙겨먹지도 못했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홍콩에서 모두 유니폼을 입으니 “따로 외출복 챙길 필요없어 편하다”며 색다른 해석을 내리기도 했다.

    뜬다, ‘히딩크 신드롬’

    히딩크 감독은 요즘 축구계 최고 화제인물이다. 그만큼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축구팬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팬클럽 인터넷사이트가 생겼고 네티즌 사이에는 히딩크 감독의 얘기로 꽃을 피운다. ‘히 감독’이라는 별칭이 생겼고, ‘히딩크’를 ‘그는 생각한다. 즉 생각하는 남자(He think)’라는 해석까지 등장했다. 신문이나 방송을 들여다봐도‘히딩크’가 빠지면 축구 기사가 안 되고 방송이 안 될 지경이다. 그야말로 ‘히딩크 신드롬’이라고 할 수 있다. 히딩크 감독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얘깃거리가 되는 실정이다. 그는 홍명보 고종수 최용수의 인기를 능가할 정도다.

    어떤 이는 ‘히딩크 신드롬’에 우려를 표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은 히딩크에게 열광하고 월드컵의 밝은 청사진을 그리지만 가까운 시일 내 기대한 성적을 내지 못하면 그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차범근 감독이 98프랑스월드컵 아시아예선에서 기세를 올렸을 때 모든 이가 환호했고 허정무 감독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언론이나 팬들의 ‘냄비근성’이 히딩크에게도 예외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전쟁터의 장수는 ‘승패’를 책임져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으니까.

    히딩크 감독은 카리스마를 갖춘 엄격한 지도자지만 유머도 잃지 않는다. 그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웃음이 함께 한다. 훈련 도중 간간이 터져나오는 선수들의 한바탕 웃음소리도 새롭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에 첫발을 디딜 때부터 특유의 유머와 여유를 보여줬다. 1월10일 김포공항에 입국한 히딩크 감독과 네덜란드 코치 주변에는 100여 명의 취재진이 따라붙었다. 간단한 스탠딩인터뷰가 있었다. 그리고 히딩크 감독은 숙소로 발길을 옮겼다. 그러나 사진기자들이 카메라를 계속 들이대자 그는 마지막 컷이라는 뜻에서 “파이브, 포, 스리…”하며 카운트다운을 했다. 그리고 “생큐”라는 말을 던지고 사라졌다.

    이어 울산훈련 때도 비슷한 상황을 연출했다. 훈련 전이나 연습경기의 하프타임에 카메라의 초점은 선수들보다 히딩크 감독에게 가 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카메라의 시선을 받아주다가 선수들과 얘기를 나누기 위해 “젠틀맨, 생큐”라며 자연스럽게 ‘중지’를 유도했다. 기자회견에서도 “배가 고프니 빨리 끝냈으면 좋겠다”고 한다든지 “더 질문이 없으면 일어나겠다”며 농담을 했다.

    1월24일 홍콩 칼스버그컵 노르웨이전은 히딩크 감독이 한국대표팀을 맡고 치른 데뷔전이었다. 결과는 2-3 패배였다. 기분이 상할 만도 했지만, 그는 기자회견장에 들어서자 탁자에 놓인 스폰서 회사의 조형물을 치우며 “나는 이런 것 싫어해”라며 장난기 있는 행동부터 보였다. 그는 항상 이런 식으로 상대를 압도해간다. 유머는 히딩크의 카리스마와 엄격함을 보기좋게 포장하는 장식품이다.

    한국 축구를 뒤흔들고 있는 ‘히딩크 신드롬’. 그 뒷면에는 엄청난 돈이 숨겨져 있다. 전임 감독의 연봉은 1억2000만원이었다. 히딩크 감독의 연봉은 협회와의 합의에 따라 발표되지 않았다. 그러나 100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2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성공하면 이에 필적할 만한 보너스도 보장돼 있다. 2년 동안 히딩크 감독에게만 30억원 정도가 지출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히딩크 감독에게는 그랜저XG 승용차와 숙소(롯데호텔)가 제공된다. 월드컵이 끝날 때까지 1년 6개월 정도의 숙박비는 얼마나 될까. 하루 14만원 정도라고 하니 계산해보면 7000만원에 이른다. 차와 숙소에만 1억원 정도 투입되는 셈이다.

    히딩크 감독 체제에는 2인의 외인용병이 더 있다. 이미 네덜란드에서 핌 베어백 코치와 얀 룰프스 테크니컬코디네이터가 코칭스태프로 합류해 있다. 두 사람에게도 연봉외 차량과 숙소가 지원된다. 언뜻 계산이 되지 않을 지경이다. 게다가 홍콩 칼스버그컵 때는 미국에서 비디오전술분석가가 동원되고 오만 전지훈련 때는 네덜란드에서 체력측정전문가도 불러들였다. 모두 돈 없이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히딩크 감독을 중심으로 한 코칭스태프와 지원스태프의 수는 이전의 두 배가 훨씬 넘는다. 당연히 돈도 두 배 이상 든다.

    그래서인지,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도대체 왜 비싼 돈을 들여가며 외국인 감독을 부르느냐’는 근원적인 문제제기에서부터 ‘한국 축구를 위해 필요한 것은 유소년 축구와 유소년 클럽의 활성화다. 그 돈을 어린 선수들에게 투자하는 것이 한국 축구를 살리는 것이다’는 주장도 나온다. 재야 축구인들이 외국인 감독의 영입에 반대한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그러나 이미 외국인 감독은 들어왔고 협회는 2002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다. 모든 축구인이 하나가 돼 다가오는 큰 대회를 준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과제고 협회 집행부는 이런 비판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금은 밀월기간

    히딩크 감독은 울산-홍콩-오만-두바이로 이어지는 한국대표팀의 첫 훈련에서 많은 변화와 실험을 시도했다. 아직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히딩크 감독은 “많은 발전이 있고 앞으로 좋아질 것이며 월드컵에는 문제없다”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그는 한국 축구와 2002월드컵에 희망을 던져줄 ‘메신저’로 평가받고 있다.

    축구인들이나 언론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협조하는 분위기다. 이른바 ‘밀월’ 기간이다. 그러나 이 밀월은 길지 않을 수도 있다. 4월 유럽전지훈련을 다녀오고 5월30일부터 6월10일까지 월드컵의 전초전격인 컨페더레이션스컵이 한국과 일본에서 열린다. 각 대륙 챔피언들이 참가하는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한국이 우승을 하거나 4강 진입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달라졌다’는 평가는 받아야 한다. 아무것도 변한 것 없이 예전 그대로라면 비판의 목소리는 불거져 나올 수밖에 없다.

    허정무 감독이 시드니올림픽에서 우여곡절 끝에 2승(1패), 아시안컵 3위 등 나름대로 성적을 남겼지만 퇴진한 것도 따져보면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다. 시드니올림픽 스페인과의 1차전과 아시안컵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전에서 보여준 무기력한 경기가 치명타였다. 히딩크 감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국 대표팀이 홍콩 칼스버그컵 노르웨이전과 두바이 4개국대회 모로코전에서 무기력한 플레이를 보여주자 곧바로 비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히딩크의 환상’은 깨져야 한다는 성급한 주장까지 제기됐다. 이같은 우려는 UAE전에서의 4-1 대승으로 수그러들었지만, 언제든지 히딩크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네덜란드와 스페인 등 축구선진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한 그가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차곡차곡 준비해가고 있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경기의 승패에 일희일비하기보다 히딩크가 주도하는 변화의 몸부림에 주목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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