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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이수현 신드롬 그후의 일본열도

  • 이영이

이수현 신드롬 그후의 일본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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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의 유골은 30일 일본을 떠나 고향인 부산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이씨가 남긴 감동은 일본인 가슴에 깊이 새겨져 이씨가 그랬듯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구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이씨 사고 이후 전철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한 사례만 대여섯건이나 된다.

1일 오후 2시경 나고야(名古屋)시 쓰루마이역에서 고교 3년생이 자살하기 위해 전철 선로로 뛰어내리자 부근에 있던 회사원 등 남자 2명이 달려들어 구출했다. 경찰에 따르면 전철이 곧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 뒤 고교생이 뛰어내려 선로에 드러눕자 회사원 등 2명이 달려들어 그를 일으킨 뒤 옆에 있는 다른 선로 쪽으로 끌어냈다. 이들을 발견한 기관사는 급브레이크를 걸어 열차를 멈췄으며 회사원은 선로에 뛰어내리는 과정에서 오른쪽 어깨를 다쳐 전치 3주 가량의 부상을 입었다.

고교생을 구조한 회사원은 “학생이 뛰어내리는 것을 본 순간 신오쿠보역에서 발생한 사고가 떠올라 용기가 났다”며 “그의 목숨을 구할 수 있게 돼 정말 다행이다”고 말했다.

또 지난 달 31일 밤 도쿄 조후(調布)시 사철(私鐵) 게이오선 전철역에서도 임신 5개월의 임신부(24)가 선로에 떨어졌으나 승객 5명이 힘을 합쳐 구출했다.

도쿄소방청에 따르면 임신부가 전철에서 내린 뒤 현기증을 일으켜 선로로 떨어졌으나 승객 2명이 선로에 뛰어내려 부축하고 남자 3명이 위에서 끌어올려 무사히 구출됐다. 임신부를 끌어올렸던 5명 가운데 4명은 이름을 밝히지 않고 현장을 떠나 도쿄소방청은 표창장을 전달하기 위해 이들을 찾고 있다.



일본 언론은 잇따른 승객들의 미담을 전하며 “이수현씨 등이 보여준 용기있는 행동과 희생정신이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높아진 한국인 위상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본내에서 한국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달라졌음은 물론이다.

그동안 일본인의 외국인에 대한 시선은 별로 곱지 않았다. 특히 한국 등 아시아계 외국인은 예비범죄자쯤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지난해 ‘3국인’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 도지사를 비롯해 일부 국민들은 ‘일본 치안을 위협한다’며 외국인을 경계했다. 지난해말 ‘대도(大盜)’ 조세형(趙世衡)씨가 도쿄 주택가에서 도둑질을 하다가 붙잡혔을 때도 “그러면 그렇지”하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요즘 일본에 있는 한국인들은 어딜 가나 일본사람들에게 감사인사를 듣는다. 도쿄에서 일본어학교에 다니는 한국인 유학생 김연주(金硏珠·23)씨는 “내 돈 내고 유학하면서도 일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것 같아 주눅들곤 했는데 이번 사건 후에는 모두들 존경스런 눈으로 바라본다”며 “이씨 덕분에 한국인임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또 일본에게 있어서 한국은 툭하면 과거 침략사를 들춰내 물고 늘어지는 ‘불편한 존재’였다. 양국 문화교류가 활발해지고 관광객의 왕래도 크게 늘었지만 과거사 문제나 이해관계가 얽힌 경제문제로 돌아가면 언제나 양국관계가 경직되곤 한다.

양국관계가 진전되는 듯하자 오히려 최근에는 일본사회가 이를 경계하며 우익화되는 경향마저 나타나고 있다. 일부 역사교과서의 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과거 침략사를 정당화하거나 일본에 불리한 부분은 삭제하는가 하면, 지난해 제기됐던 재일교포의 지방의회선거 참정권 허용 문제는 자민당 내 보수세력 등의 반발에 부닥쳐 아예 물 건너간 상태다.

주일 한국대사관의 한 외교관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취임 이후 한일관계가 표면적으로는 크게 좋아진 것 같지만 구체적인 현안을 보면 해결된 것이 거의 없다. 한일관계 개선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고 꽉 막혀있는 듯한 상황에서 이씨의 의로운 죽음은 한일외교의 숨통을 틔워주는 중대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한다.

‘워싱턴 포스트’도 지난달 30일 도쿄발 기사에서 “한국인은 일본인이 차갑고 계산적이라고 보는 반면 일본인은 한국인이 과거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으나 이씨의 행동으로 이런 나쁜 감정이 일부 해소됐다”고 평가했다.

이런 점에서 이씨의 죽음은 양국 우호관계 구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씨 빈소를 방문했던 양국 고위 인사들은 하나같이 양국간 우호노력을 강조했다.

후쿠다 관방장관은 “이씨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한일 우호 친선을 위해 애쓰겠다”고 말했다. 주일대사 대리로 추도문을 낭독한 유광석(柳光錫) 정무공사도 “이씨의 죽음이 두나라 국민을 한데 묶는 역할을 했다”며 양국 간 우호관계를 더욱 튼튼하게 쌓아나가자고 다짐했다.

월드컵 명칭논란에도 일침

‘아사히신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1월31일자 사설을 통해 2002년 월드컵대회의 대회명칭과 관련, 일본 조직위원회측에 다음과 같이 양보를 촉구하기도 했다.

“…일본 조직위원회측에 요구하고 싶다. ‘일본·한국’ 순서에 계속 집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명표기를 아예 없애라는) FIFA 요청을 받아들여야 한다. 일본어가 아니라 영어 정식명칭(Korea·Japan) 그대로 사용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전례가 없는 양국 공동개최사업이다. 준비단계에서 곤란한 일이나 트러블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상대측에 세심한 배려를 해나가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새로운 한일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JR전철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남성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잃은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씨의 행위는 양 국민의 가슴을 울렸다. 월드컵대회의 일본어 표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소중한 것을 잃어서는 안된다.”

일본에서 시야를 넓힌 뒤 스포츠관련 무역일을 하며 한일 양국의 가교가 되길 꿈꾸던 ‘아름다운 청년’ 이수현. 그의 소박한 꿈을 이룰 수 없는 것은 안타깝지만 그가 남긴 소중한 교훈은 두나라 국민들의 가슴에서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신동아 2001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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