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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노갑총재 김명윤이사장도 당했다”

희대의 사기사건 방정환재단 스캔들

  •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권노갑총재 김명윤이사장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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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환재단 초대 이사진에는 정치인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98년 12월 재단 창립 당시 초대 이사장에는 이동원 의원이, 이사에는 이종찬 자신을 비롯해 정희경·이경재 의원, 이종민 MBC재단이사, 정희자 힐튼호텔회장, 연극인 윤석화, 성악가 조수미, 야구선수 선동열, 유족 방운용, 전탁구선수 현정화, 전마라톤선수 황영조씨(이상 98년 당시 직위) 등이 임명됐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날의 재단 이사진 구성에 대한 이종찬씨 본인의 생각이다. 이씨는 자신이 편저한 ‘소파방정환문집’ 연표에 “‘한국방정환재단’ 이종찬 회장은 초대 이사장, 이사, 감사를 임명”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씨는 또 연표 곳곳에 등장하는 자신의 이름 뒤에 ‘한국방정환재단 창립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씨가 재단의 실질적 주인행세를 하게된 배경에는 앞서 유족이 써준 ‘양도증서’가 있다는 게 이번 사건에 관련된 이들의 대체적 의견이다. 재단을 설립하면서 아버지 이재창씨 이름으로 1억4000만원 상당의 부동산을 재단에 출연했다는 것도 기득권을 주장하는 근거. 그러나 이 부동산은 타인소유로 이재창씨가 채권을 확보하기 위해 가압류를 해놓은 상태라 사실상 재단 재산으로 활용하기는 어려운 상태다.

그러나 이런 세세한 사정과 관계없이 이씨는 재단법인 형태로 전환됐더라도 방정환재단은 자신이 만든 재단이며, 따라서 자신에게 이사장과 이사, 감사 등을 임명할 권한이 있다고 믿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창립 이후 이씨의 재단 운영 행태를 보면 그런 이씨의 믿음은 두드러진다. 이씨는 창립 이후 이경재 전의원 등 “재단 운영실태를 보고하라”고 요구하는 이사들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감을 나타내곤 했다.

이전의원은 “이종찬과는 광주이씨 종친회인 광문회에서 만났는데 나를 ‘대부님’이라 부르며 따랐다. 그 뒤 방정환 재단을 한다며 이사로 참여하라고 권했고, 좋은 뜻의 재단이라 생각해 이동원 의원과 정희경 의원, 그리고 평소 알고 지내던 정희자 힐튼호텔회장 등을 이사에 추천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평소 공손하던 이씨의 태도가 변한 것은 ‘어린이운동발상지기념탑’건립을 위해 이전의원의 알선으로 한국마사회로부터 2000만원을 지원받은 직후. 이전의원은 이종찬씨에게 돈의 사용처와 사업내용을 보고하라고 요구했으나 돌아온 것은 재단 직원이나 유족 명의의 각종 협박성 내용증명이었다. 내용은 주로 ‘이경재 의원이 재단을 빼앗으려 한다’는 것인데, 심지어 지난해 4·13총선 때는 이전의원의 지역구에까지 이전의원을 비방하는 유인물이 뿌려지기도 했다.



유인물에는 ‘이경재 의원의 만행(국회의원의 권력을 이용, 재단을 빼앗으려 했다는)으로 소파 방정환 선생님의 장남인 방운용옹(83세)은 몸져 누웠고, 이 사실로 천도교, 온양방씨 종친회(조선일보 포함), 경기·인천지역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몹시 경악해 있는 상태’라고 적혀 있었다. 유인물에 등장하는 방운용옹은 “나중에 그런 유인물이 ‘광명시 독립유공자 유가족 일동’ 명의로 뿌려졌다는 얘기를 듣고 하도 기가 차 이종찬이를 불러 야단을 쳤다”고 말했다.

‘이종찬 이사장’ 시대

이종찬씨의 권유로 재단일에 관여한 연예인들도 적지않은 곤욕을 치렀다. 연극인 윤석화씨는 99년 3월 이씨에 의해 반강제로 떠밀려 ‘남나리후원회’ 회장직을 맡았는데 그후 “회장이 한일이 뭐냐”는 이씨의 공박에 곤란을 겪었다고 한다. 개그맨 서세원씨도 99년 재단후원회장을 맡으며 이씨와 인연을 맺었다. 그후 99년 8월에는 재단 총재를 맡기도 했다. 서씨는 2000년 4월 이씨와 함께 소파상 관련 이벤트를 준비하다가 행사를 치르지 못하고 적지 않은 돈만 날리는 곤욕을 치렀다. 이 일이 있은 직후인 2000년 5월4일 서씨는 이사직을 사임하고 재단과 인연을 끊었다.

이경재 전 의원과 이종찬씨 측의 갈등은 이전의원 측 이사들인 이동원, 정희경, 정희자씨 등이 재단이사직에서 사퇴하고, 이전의원은 이사직에서 해임당함으로써 일단락됐다. 그리고 99년 8월, 이종찬씨가 이사장을 맡아 사실상 재단을 좌지우지하게 됐다. 정·재계 인사들을 제외하고 새로 편성한 이사진을 보면 윤석화, 조수미, 선동열, 현정화, 황영조, 서세원 씨 등 연예계와 스포츠계 유명인이 대부분이고 이씨는 자신은 재단이사장에 취임해 재단을 대표하게 된다.

이듬해인 2000년 5월 이씨는 공금횡령 혐의로 구속된다. 앞서 99년 7월 문예진흥원을 통해 받은 마사회 기부금 2000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수배된 뒤 2000년 5월 서울경찰청 특수수사과에 긴급 체포됐다. 재단법인에 대한 기부금은 기부자가 정한 목적 이외에는 사용할 수 없는데 이씨는 어린이운동 발상지기념탑 건립을 위해 기부된 이 돈을 개인의 부채를 갚는데 쓰는 등 무단으로 사용하다가 경찰에 적발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그 해 7월 서울지방법원 형사단독 12부에서 징역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는데, 재판과정에서 이씨는 형량을 줄이기 위해 문예진흥원에 2000만원을 환급했다.

횡령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뒤 이씨는 재단의 공직에서 물러났다. 이사장은 물론, 이사직에서도 물러나 사실상 재단 업무에 아무런 책임과 권한이 없는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이씨의 본격적인 재단관련 비리의혹은 바로 이 순간부터 시작된다.

2000년 7월14일 제4차 이사회에서 이종찬 이사장과 서세원, 선동열, 황영조, 이상엽 이사가 사임하고 새로이 김명윤 한나라당 상임고문, 권노갑 민주당최고위원, 조승형 변호사가 이사진에 합류한다. 또 8월에는 김순 이사가 사임하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이주영 한나라당의원, 탤런트 최불암씨 등이 새 이사로 재단에 가세한다. 면모일신, 정·재계의 실력자들이 가세해 방정환재단은 힘있는 사회법인으로 재탄생하는 듯했다. 이사장은 김명윤 고문이 맡았고 권노갑 고문은 재단 총재직에 취임했다. 이후 재단의 공식 문서에는 이들 두 정계 거물들의 이름과 직인이 찍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재단에는 기업들이 기부한 거액의 현찰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무렵 이종찬씨는 재단 관련 공식직함은 없이 자신을 김명윤 전의원의 비서로 소개하며 재단사무실에 상근하고 있었다. 2000년 6월부터는 언론인 출신 이억순씨가 사무총장으로 영입됐고 11월에는 이씨가 상임부총재로 자리를 옮기고 대신 역시 언론인 출신인 황인환씨가 새사무총장으로 영입됐다. 그러나 사무총장의 존재와 상관없이 기부금 관리 등 재단운영은 아무런 공식직함이 없는 이씨가 맡고 있었다. 이억순 부총재는 “지난해 6월 재단에 들어온 이후 명색이 사무총장이었지만 이종찬씨가 사실상 재단의 통장과 이사장 인감 등을 관리하며 재단을 운용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2000년 8월31일, 한화그룹은 문예진흥원을 통해 방정환재단에 ‘소파방정환문집’ 증보발간 비용으로 3억원을 지원했다. 전국 5400개 초등학교에 무상으로 소파문집을 기증하는 이 사업의 기간은 2000년 9월27일∼10월26일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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