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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이민열풍, 왜 캐나다인가

영어에 울고 교육에 웃는 자영업자 코리언

현지르포·캐나다의 한국인·한국인 사회

  • 황용복 < 전 중앙일보 기자, 밴쿠버 거주 >

영어에 울고 교육에 웃는 자영업자 코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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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의 교육을 생각해 캐나다로 이민 오겠다, 또는 왔다는 사람이 많다. 자녀가 입시에서 해방되고, 인성 위주의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영어는 저절로 잘 하게 되는데다 학부모는 사교육비 부담이 없고, 공교육도 고등학교까지 무료고…. 대체로 이런 것들이 한국인 이민자들이 기대하는 캐나다의 교육환경이다.

한국과 캐나다의 교육 여건을 맞비교하면 이 말들이 대체로 맞다. 특히 이 나라 학생들이 인성 위주의 교육 프로그램 아래 수업하고, 입시에서도 거의 해방돼 있는 점은 한국인으로 화가 치밀 정도로 부러운 대목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오래 교육받은 학생이 이 나라로 이민 와 교육을 계속 받는 상황을 상정하면 몇 가지 더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우선 영어는 저절로 잘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 관해서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1∼2학년의 한국 학생이 이민을 온다면 이 대목은 기대에 벗어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나 그 이후에 와 대학 진학을 목표로 삼은 학생이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언어장애 때문에 예외없이 큰 홍역을 치른다.

1992년에 이민 와 몬트리올에 살고 있는 유충근씨는 한국에서 중3을 마치고 온 아들 영규씨(24세, 맥길대 재학)가 이민 초기에 말이 안 통해 얼마나 괴로워했는지를 최근에 우연히 알게 돼 마음이 아팠다고 털어놓았다. 유씨 집에 한국에서 온 유학생 몇 명이 묵었는데 그 학생들이 유씨의 아들에게 들은 얘기를 전해주더라는 것이다. 다음은 유씨의 말이다.

“아들이 이민 초기에 학교에서 말이 안 통해 집에 돌아와 여러 차례 울었다고 했다. 부모가 마음 아파할까 봐 보는 데서는 못 울고 베란다로 나갔다는 것이다. 이곳 학교에서는 토론 위주의 수업이 많은데 알아듣지도 못하고 자기 의견을 말할 수도 없고, 심지어 처음 얼마간은 다음 시간이 영어수업인지 수학수업인지, 숙제를 내준 건지 아닌지도 몰랐다는 것이다. 교민 자녀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라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몬트리올에서는 그러지도 못했다.”



유씨 아들의 경우는 프랑스어계 고등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고충이 더 컸겠지만 다른 지역 영어계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도 늦게 이민 온 경우라면 이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다고 봐야 한다. 어른들이야 말이 안 통하면 피해갈 수도 있지만 학교 다니는 자녀들은 그럴 수도 없다.

이런 과정을 참아내고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해도 대학 입학이 만만한 일이 아니다. 캐나다의 대학들은 별도의 입학시험 없이 고교 내신성적 위주로 신입생을 받기 때문에 한국처럼 입학 관문이 험난하지는 않지만 이 나라에서 일정 기간(5년 안팎)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지원자에 대해서는 일정한 토플 점수를 요구하는 것이 보통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한국 교민 자녀들이 사교육의 신세를 지는 일도 보편적이다. 과외 과목은 영어가 가장 대표적이지만 일반 과목도 대상이 된다. 과외교사는 원어민인 경우도 있고, 오래 전에 이민 와 영어에 능통한 교민(주로 1.5세)인 경우도 있다.

토플 기준을 충족시켜 입학에는 성공한 학생에 대해서도 첫 학기 수강신청 전에 토플로는 측정이 안 되는 영어작문 능력을 테스트해 불합격하면 합격할 때까지 수강을 제한하는 대학이 대부분이다. 또이를 통과하더라도 원어민 학생 이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졸업을 못하고 중도탈락하기 일쑤다.

어린 나이에 이민 오는 학생들의 경우 별로 고통받지 않고 영어를 익히지만 대신 한국어 실력이 해가 갈수록 퇴보하게 된다. 1994년에 이민 와 앨버타 주 캘거리에 살고 있는 현이섭씨(52세)는 우연히 11학년(한국의 고2에 해당) 아들이 한국의 친구에게 보내려고 써둔 편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온 아들이 쓴 한글 편지의 수준이 문장력은 둘째치고 아예 받침 없이 소리나는 대로 적었더라는 것이다.

현씨는 “이민 초기에 아들이 한국어는 다 익히고 왔다고 생각해 영어에 전념토록 요구했던 것이 현명하지 못했다”며 “그 뒤로는 한국의 친척에게 편지 쓰기, 한국어 책읽기 등을 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어만 잘하고 한국어는 못하는 교민 자녀가 사회에 나갈 경우 한국에서건, 영어권 나라에서건 별 의미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자녀는 영어·한국어 모두 공부해야

언어뿐 아니라 문화와 아이덴티티(identity) 면에서도 한국과 캐나다 양자의 장점이 몸에 밴 사회인으로 2세를 길러 내야 자녀교육에 성공한 이민이라 할 수 있다. 외형은 한국인인데 가치관과 사고방식은 완전히 서양인인 교민 자녀를 교민사회에서는 ‘바나나’라는 슬랭으로 부르기도 한다. 바나나는 겉이 노랗고 속은 희다.

모든 면이 만족스럽다 해도 이민은 일단 익숙한 것들로부터 단절을 겪게 한다. 이 나라 말을 잘한다 하더라도 모국어만큼 편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 익힌, 살아가는 방법을 포기하고 새 문화에 적응해야 하며, 좋아하는 사람들을 멀리 두고 새 사람들과 사귀어야 하니 그 자체로서 큰 상실이다.

교민사회가 상실의 충격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줄 수는 있으나 ‘한국 교민사회’가 ‘한국 사회’와 같을 수는 없다. 생활필수적 서비스라면 교민사회가 그런대로 공급하지만 지적·문화적 부분으로 가면 그 인프라스터럭처가 매우 빈약하고 아마추어리즘이 지배한다.

설사 교민사회 내의 자원이 흡족하더라도 새 이민자가 그 속에 안주한다면 ‘캐나다’로 이민 온 것이 아니라 ‘캐나다 내 교민사회’로 이민 온 꼴이 된다. 교민사회가 한국의 연장이란 시각에서 보면 토론토나 밴쿠버의 교민사회는 인구가 각각 5만, 3만쯤 되는 지방 소도시다.

와야 할 사람, 오지 말아야 할 사람

이민, 그중에서도 한국인의 캐나다 이민은 당사자에게 많은 것을 주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앗아간다. 개인의 여건과 품성에 따라 대단히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고, 큰 불행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잃는 것의 충격을 최소화하고 얻는 것을 극대화시킬 사람이 이민에 적절한 사람이다. 이민 1세들이 겪는, 앞에 쓴 어려움을 극복할 자질을 갖춘 사람이 이에 해당한다.

상당히 많은 한국인 이민자가 한국으로 되돌아간다. 한국 외교통상부 자료에 따르면 1996년에 3073명의 한국인이 캐나다로 신규이민했고 368명은 한국으로 되돌아갔다. 1997년에는 3918명이 신규이민했고 316명은 역이민했다.

이 역이민 수치는 캐나다 영주권을 반납하고 한국의 주민등록을 복원한 사람들만 집계한 것이다. 이처럼 명백히 역이민한 사람말고도 절반만 돌아간 사람도 많다. 자녀를 이 나라에 남기고 부부 혹은 그 한쪽만 되돌아가 경제활동을 하는 사례가 전형적인 반(半)역이민이다. 자녀는 캐나다 사람이 낸 세금으로 공짜교육을 받게 하고, 부모는 다른 나라에서 경제활동(납세)하는 것을 캐나다가 좋아할 리 없다. 이민 온 사람이 주(主)거주지를 캐나다로 하지 않는 것은 불법이지만 살벌하게 규제하기가 어려워 당국이 고민하고 있다. 반역이민의 사례는 한국인보다 수적으로 훨씬 많은 중국계(홍콩·대만·본토 등) 이민자가 훨씬 많다.

설사 자질이 있는 사람이 이민 온다 해도 캐나다에 대해 너무 모르고 오는 경우가 많아 먼저 온 교민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안타깝다. 이 나라의 역사와 지리에 관해 매우 기초적인 지식조차 없이 오고, 와서도 이를 갖출 기회를 얻지 못하니 캐나다의 일원으로 통합되기 어렵고, 주류사회로 진출할 엄두도 못 낸다.

이 나라가 과거 영국 식민지였고, 수도는 오타와며, 프랑스어권인 퀘벡 문제가 시끄럽더라는 정도만 알면 이 나라에 대한 기본지식을 갖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또 캐나다가 미국의 연장쯤일 것으로 생각하고 오는 이민자도 많아 보인다. 국내에, 또는 이곳 교민사회 내에 캐나다에 관한 연구가 축적되지 못한 것이 일차적인 원인이라 하겠다.

이 나라와 그 교민사회에 관해 보편성이 낮고 천박한 ‘조언’들을 듣고 생존의 ‘실전 노하우’를 익힌 것으로 생각하는 이민자들도 없지 않은 것 같다. ▲교민 간의 사기를 조심하라 ▲가서 처음 한두 해는 노는 것이 좋다 ▲김치를 먹으면 냄새 때문에 손님이 끊어진다 ▲사람들이 걸핏하면 소송을 걸어 시비를 가리려 하니 조심하라 등이 그런 ‘조언’들이다. 이들 얘기는 부분적으로 옳을 수도 있으나 캐나다나 교민사회의 근본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이런 말을 듣는 이민자는 머리에 편견이 쌓이고 마음은 움츠러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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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복 < 전 중앙일보 기자, 밴쿠버 거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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